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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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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온갖 감정이 요동치는 사교계는 마족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실제로도 몇 번 검거 됐었는데, 때문에 이 세계의 사교계에선 유독 물을 흐리는 사람을 ‘마족에게 홀렸다’라며 욕하곤 했다.

사교계는 닫힌 세계다. 자기들만의 논리로, 자기들의 규칙을 지키며 사는 세계.

이런 곳의 공통점이 무엇이냐.

바로 외부인이 접근하기 힘든 거였다.

이런 닫힌 사교계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았다.

권력에는 이권이 따라온다. 원시 인류가 리더를 정했을 때부터 계속 그랬다.

그리고 사교계를 운영하는 귀족들은 이 세계 권력의 정점이었다.

사교계라 하면 직관적으로 안 와닿을 수 있으니 권력자들의 커뮤니티라 바꾸어 말하겠다.

권력자들이 서로 비밀스러운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돈을 벌고 싶다면, 권력을 쥐고 싶다면, 위로 올라가고 싶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벼야 됐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근데 그래도 사교계 정도면 닫힌 커뮤니티 중에선 열려 있는 편이긴 했다.

일반적인 프라이빗 소셜 클럽들은 완전 회원제에 외부인은 아예 출입도 안 시켰으니까.

허나 사교계? 늙은 사내들끼리만 모여서 얘기하면 재미없으니 데뷔탕트로 영애들을 매년 꾸준히 유입시키는 곳이다. 외부인에게 비교적 관대했다.

예컨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업적을 세웠다던가, 아니면 재미있는 모험을 했다던가, 아니면 재미있는 사람이면 사교계에 잠깐이라도 초대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렇기에 완전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우선 항해를 시작해 대모험을 한 후 그걸 바탕으로 귀족과 우호 관계를 쌓았는데, 너무 널리 알려진 루트라 요즘은 살짝 시들해진 게 웃긴 점이라면 웃긴 점이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들으면 알겠지만, 결국 사교계에 진입하는 방법은 두 개였다.

첫 번째. 수저를 물고 태어나기. 그냥 태생이 귀족이면 사교계에 ‘입장’ 자체는 시켜줬다. 재미도 없고 쓸모도 없어서 그 뒤로 안 부를 수는 있어도, 최초의 한 번은 무조건 끼워주는 것이다.

두 번째. 유명해지기. 유명해져서 가십의 중심이 된다? 그 순간부터는 가만히 있어도 귀족들이 부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사교계 진입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첫 번째에 비해 두 번째의 난이도 차이가 너무 높지 않나 싶겠지만, 원래 세상이 그랬다. 타고나는 거에 따라 대부분이 결정됐다.

하여간.

그래서 나는 둘 중 어떤 방법으로 사교계에 진입해야 되냐면, 뭐든 상관없었다.

우선 나는 유명 인사였다. 성배 퀘스트, 반란군 제압, 악신의 교단 저지, 자의식과잉이 아니라 가감 없이 담백하게 요즘 가장 유명한 사람이 나였다.

성배 퀘스트까지 갈 것도 없다. 악신의 교단을 때려잡은 얘기만 해줘도 사람들이 환장했다.

거기에 나는 귀족이기도 했다. 심지어 영지가 딸린 계승 남작.

이건 사회적으로 굉장히 높은 위치였다.

단승 귀족이 아닌 것부터 심상치 않은데, 영지? 그 시점에서 허울뿐인 몰락 귀족들은 어떤 작위건 전부 내 밑에 깔렸다.

즉 원한다면 나는 언제든 사교계에 참가할 수 있는 위치였으나.

여기서는 내 목적도 생각해야 됐다.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마족을 찾는 거였다. 사교계에 화려하게 데뷔해 이목을 끄는 게 아니라.

아니, 나는 거기서 더 나아가 이목을 끄는 걸 지양할 필요가 있었다.

괜히 이목을 끌어서 사람들이 달라붙으면 차분히 관찰할 기회가 사라졌으니까.

따라서 마족 탐색이 목적이라면 사교계에 조용하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됐는데, 이걸 원한다면 평범한 방법으로 사교계에 진입하는 게 가장 좋았다.

그래.

귀족의 입장으로 가는 게 좋다는 뜻이다.

“루이나 님. 여기야?”

“아마도요.”

나는 피닉스에서 내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든다. 시골에 처박힌 영지 아니랄까 봐. 외지인을 배척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다.

“루이나 님. 저건 외지인 배척이 아니라, 하늘에서 피닉스를 타고 내려와서 놀란 거야.”

“고작 이런 거에 놀라는 게 문제예요. 마법 보급이 덜 됐다는 거니까요.”

나는 짧게 대꾸하고 걸음을 옮겼다.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진 밀밭…은 아니고, 평범한 크기의 밀밭을 지나치자 전형적인 시골 영지가 나를 반겼다.

적당히 사람이 지나다니고, 적당히 외부인이 있고, 적당히 활기가 돌지만, 엄밀히 따지면 한산한 게 맞는 영지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없어서 좋네요.”

“루이나 님은 가끔 무서운 소리를 한다니까. 혹시 이러다 사람이 싫다고 세상을 불태우는 거 아니지?”

“그러면 마법을 만들어줄 마법사도 다 불타잖아요. 제가 그런 짓을 왜 해요.”

세상을 불태우다니. 그런 비생산적인 일을 내가 할 리가 있나.

물론 탐욕의 세 번째 손가락이 보여준 탐욕의 미로에서는 세상을 몇 개 멸망시켰었지만, 그건 환상이었다. 현실에서 내가 그럴 리는 없었다.

심지어 마법이 없는 세계도 아니고 마법이 멀쩡히 존재하는 세계인데, 이런 곳을 불태우는 건 내가 미쳐서 정신이 나가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치더라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마법을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 있을 테니까.

“그래? 아니면 말고.”

“이게 다 크리스 님이 사람을 금화로 봐서 그래요. 그러니 저라는 사람도 잘못 파악했죠.”

“내가 언제 사람을 금화로 봤어. 루이나 님.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 소리 하지 마.”

“플로라.”

“잉잉.”

나는 크리스의 눈물 버튼을 누르고 성읍을 가로질러 영주성에 접근했다.

이곳의 영주성은 시골 영지의 영주성답게 수수했다. 황도의 성과 비교하면 거의 낙서와 미술 작품 수준의 차이가 있었다.

뭐, 워낙 관리가 잘 돼서 보기 나쁘진 않긴 했지만.

솔직히 황제의 성과 비교하면 세상에 낙서가 아닌 게 몇이나 된다고. 비교 자체가 가혹한 처사였다.

나는 영주성 입구에 다가갔다.

그러자 경비원이 막아섰다.

나는 당당히 어깨를 펴고 신원을 밝히려다가, 경비원의 다음 말에 눈을 깜빡였다.

“초대받으신 분입니까?”

초대? 무슨 초대?

이해가 안 가 나는 눈동자를 굴리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비슷해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루이나예요.”

“루이나, 루이나. …루이나?”

목록을 확인하던 경비원은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입을 멍하니 벌리며 내 얼굴을 확인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루이나 엘피니엘 남작님?”

“들어갈게요.”

“잠…!”

경비병이 나를 제지하려 했지만, 어림도 없지.

나는 나무 거인을 소환해 강제로 문을 열고 영주성 안으로 난입했다.

영주성은 굉장히 깔끔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실용성으로 가득 차 거기서 생기는 미학이 있었다.

이 영지의 전 주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센스가 좋았다.

그렇게 해피 중세랜드에 피어난 미니멀리즘을 즐기던 나는, 귓가를 간지럽히는 소음에 자리에 멈춰 섰다.

‘호엘 님도 참 대단하십니다. 영지를 맡아서 관리하다니.

‘사실상 호엘 님의 영지죠. 주인은 코빼기도 안 보이지 않습니까.

찾았다!

나는 소음이 들린 곳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잘 관리된 정원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파티를 벌이는 중이었는데, 그중 한 남자가 나와 시선을 마주치고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지?”

“호엘 님이 초대하신 거 아닙니까?”

“저런 여자 초대한 기억은 없는데 말이지. 이봐. 누군데 함부로 영주성에 들어온 거지?”

“그러니까요.”

나는 남자에게, 영주 대리인 호엘에게 다가갔다.

그다음 말했다.

“당신들은 대체 누군데, 제 성에서 술파티를 벌이고 계신 거죠?”

“…….”

호엘의 얼굴이 하얘졌다. 원래도 피부가 하얬는데, 거기서 더 하얘져서 이제는 거의 귀신 수준이었다.

나는 호엘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그래도 저를 보자마자 ‘누가 매춘부를 불렀어’라고 소리치진 않았으니까요. 최악은 피하셨어요.”

“…엘, 엘피니엘 남작님?”

호엘이 말을 더듬는다. 지금 일어난 일이 현실이라는 걸 도저히 믿기 싫은 사람처럼.

사람의 가학심을 불러일으키는 반응이었다.

못 참게 만드네.

근데 별개로 사실 나는 딱히 화가 나지 않았다. 술파티를 벌이는 게 뭐 대수라고. 오히려 거슬린다면 벌꿀주가 아니라 와인을 마시는 게 거슬렸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영주 대리인이면 제 얼굴은 외워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적어도 내 외모가 은발 녹안이라는 건 알아야 정상인데, 반응을 보면 그것도 모르는 듯했다.

파티를 좋아하는 건 괜찮아도 일을 못 하는 건 조금.

이건 아니지.

“호엘 님이라면 저를 대신해서 엘피니엘 남작령을 부강하게 만들어 줄 줄 알았는데, 실망이 커요.”

“루이나 님? 루이나 님은 호엘 님을 만나보기는커녕 남작령 자체에 처음 와봤잖아. 그런데 어떻게 믿었다는 거야?”

“황제 폐하가 임시로 쓰라고 내려준 대리인이잖아요. 당연히 일을 잘할 줄 알았죠.”

“아하.”

괜히 전령관이 임시 대리인을 해고하고 원하는 사람으로 바꾸라는 조언을 한 게 아니었다. 역시 사람들의 조언엔 다 이유가 있었다.

나는 벌벌 떠는 호엘을 훑다가, 다른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쳤다.

내 시선이 닿을 때마다 모두 움찔거렸는데, 나는 모든 사람들을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파티는 끝났어요. 모두 집으로 돌아가세요.”

그리고 호엘 너는 나 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