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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백 년 전, 한 연금술사가 의문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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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무슨 판타지 세계가 하늘에 섬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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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연금술사와 술을 먹던 용병이 그 말을 듣고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평소에도 연금술사는 못 알아먹을 소리만 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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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용병의 정신이 나간 건 그로부터 반년 후, 하늘에 뜬 섬을 발견하고 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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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섬 크레토는 기적의 산물이었다. 한 연금술사가 신에 근접한 일을 했다는 증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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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그 누구의 땅도 아니었다. 연금술사가 크레토를 자유의 땅으로 규정한 후로부터 계속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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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마법사들은 크레토를 일종의 중립지대로 지정하고, 중요한 일들은 전부 크레토에서 처리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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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대규모 학회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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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저거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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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가 내 로브를 잡아당기며 흥분했다. 크리스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는데, 크리스의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옮기자 원판의 모형물이 하늘을 떠다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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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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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금화 조형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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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님. 저건 마법사의 이데아를 표현한 구조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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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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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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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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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걸 보고 금화를 떠올리는 크리스 님이 충격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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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판이면 전부 금화로 보이는 이 서큐버스를 어쩌면 좋을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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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적당한 여관에 짐을 풀었다. 이라고, 처음 보는 낯선 여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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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이 여관을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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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발견하면 못 참고 들어오는 몸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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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효과를 노리고 전부 이라고 이름을 짓는 건가. 무섭다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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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에 짐을 푼 우리는 홀에 내려가 음식을 시켰다. 몇 번이고 반복한 익숙한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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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꿀주를 주문하고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러자 제리가 원격으로 손가락만 펴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갈수록 원소 제어 실력이 늘어나는 제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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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연기에 피로를 실어 날렸다. 비록 피닉스 덕에 초고속으로 천공의 섬에 도착했다지만, 여행은 여행이다. 비행기에만 타도 생기는 게 피로인데, 피닉스는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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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의 힘으로 물리적인 충격을 아예 안 받았지만, 그래도 정신은 피곤해지니까. 쉬어주긴 해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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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몸을 늘어트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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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천공섬에 도착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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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기엔 하루도 안 돼서 도착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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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대답한 건 종이 뭉치에 시선을 고정한 제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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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쩍 제리가 든 종이를 같이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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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보자. 라. 꽤 재밌는 논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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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아는 마법사의 지향점이었다. 마법사가 도달하고자 하는,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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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 라는 논문은 마법사들이 떠올린 마법 체계가 사실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무의식중에 이데아의 영향을 받은 거라 주장했는데, 나름의 연구 결과도 있어 꽤 그럴듯한 논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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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하기 힘든 얘기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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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륵. 논문을 다 읽은 제리는 이번엔 다른 논문을 꺼냈다. 제목은…이라.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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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끝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게 마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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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자신의 정신을, 육체를, 영혼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그 끝에 남은 하나에 이름을 붙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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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의 경우 이라는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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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의 경우 이라는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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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라의 경우 이라는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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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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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저 과정이 굉장히 끔찍하고 고통스럽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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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몰아붙인다는 둥, 영혼을 몰아붙인다는 둥 비유했지만, 알기 쉽게 설명하면 마법사의 수련은 생명체의 상식을 거스르는 짓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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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해체한다. 방어기제를 부수고, 상식을 부수고, 고정 관념과 편견을 없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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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비워진 곳에 오로지 이성만을 가득 채운다. 죄악감과 절망감을 맨몸으로 온전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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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영혼에 새겨진 이름을 알기 위해선,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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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래서였다. 모든 마법사의 정신이 나가 있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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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짓을 하는데 제정신이면 그게 더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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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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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논문은 그런 마법사의 생태계를 고찰했는데, 요약하면 그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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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마법사가 미친 게 아니라, 미친 인간이 고위 마법사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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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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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마음에 안 드네요. 저 논문이 진실이라면, 정상인인 저는 영원히 고위 마법사가 될 수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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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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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님? 하시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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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을 하고 싶다면 먼저 나무 인형부터 치우는 게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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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무 인형이 아니라 적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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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들어 제리의 뒤를 살폈다. 제리의 뒤에선 적영이 착 달라붙어 논문을 훔쳐보고 있었는데, 적영이 마음에 들었는지 제리가 감탄사를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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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 논문은 신뢰성이 높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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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님도 보는 눈이 없어졌네요. 그 논문의 어디가 신뢰성이 높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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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제리 님. 그 논문은 엉터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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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요. 적영도 동의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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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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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는 가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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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웃으니 나도 기분이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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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웃고 다니렴 제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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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님. 루이나 님이 안 본 사이에 더 이상해졌어. 저거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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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안 본 사이에 이중인격이 됐다니. 심각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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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루이나 님의 암흑 인격이 깨어나면 인류는 멸망해. 막아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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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와 레온이 소곤댄다. 근데 다 들리게 소곤대는 것도 소곤대는 게 맞을까? 철학적인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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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희 어쩌다 그렇게 친해졌냐고. 3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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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영에게 등불을 들려준 후 종업원이 가져온 고기파이를 입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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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였는데, 적당히 식사를 마치자 크리스가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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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 먼저 가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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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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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는 협업할 마법사와 연금술사를 구하기 위해 천공의 섬에 왔다. 목적이 뚜렷한 만큼 바쁘게 움직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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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슬슬 일어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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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님도 고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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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도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천공의 섬에 왔다. 만나볼 사람이 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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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누구를 만나는지는 말 안 해줬지만, 레온이 만날 사람이라고 해봤자 뻔했다. 교국의 높은 사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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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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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도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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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모습에 단호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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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시나요. 제리 님은 아무데도 못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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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 보내주는데 저만 붙잡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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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님이 없으면 곤란해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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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점이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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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님이 없으면, 담뱃불을 붙여줄 사람이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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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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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섬은 마법사들의 비밀기지 같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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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들의 성지인 아르기넬과는 살짝 다른 느낌이었지만, 다른 느낌일 뿐 이곳도 마법사에게 중요한 건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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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곳에도 크로프트 학파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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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프트 학파가 낳은 자랑스러운 5위계 마법사인 제리가 반드시 얼굴을 비출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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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떠나자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오직 적영만이 남아 나와의 의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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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버려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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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슬픔은 오직 벌꿀주로만 달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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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꿀주를 한입 마셨다. 진짜 몇 번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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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내친김에 에 쟁여놓은 죽엽청도 꺼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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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희희덕대며 죽엽청을 꺼냈다. 감미료라도 넣은 듯 달콤하며 청량한 죽엽청을 음미하던 나는 깊게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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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술만 마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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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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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을 뜨며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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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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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뮤란 님도 있었죠. 깜빡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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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이 데려왔으면서, 깜빡하는 건 혹시 건망증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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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잘못이 아니에요. 뮤란 님의 존재감이 없는 게 문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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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뮤란의 존재감이 없었으면, 아예 존재 자체를 잊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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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안 잊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까맣게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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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누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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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지만 아무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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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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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한테 뭘 시키려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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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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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킬 일이 있어서, 바쁜 사람을 억지로 데려온 거 아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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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거요? 연금술사라 천공의 섬을 잘 알지 않을까 싶어서 데려온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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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섬은 반신의 경지에 오른 연금술사가 만든 섬이었다. 연금술사들의 자랑스러운 업적이었고. 그러니 연금술사인 뮤란도 천공의 섬을 잘 알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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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사고방식으로 데려온 건데, 반응을 보니 내 생각이 틀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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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란은 눈을 가늘게 뜨며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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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섬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것과 잘 아는 건 별개예요. 말만 들었지 와본 건 이번이 처음이어서요. 저도 루이나 님과 사정이 똑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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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뮤란 님은 여기에 왜 온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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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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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란이 으르렁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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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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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뮤란의 어깨를 두들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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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란 님. 그냥 피닉스를 타고 마법학교에 돌아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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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온 김에 구경은 할게요. 그리고 이거 적영이 말하는 게 아니라 루이나 님이 말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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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데요. 그거 적영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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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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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란도 자리에서 일어나 여관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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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런두런 모르는 사람만 떠드는 의 홀을 감상하다가,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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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관광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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