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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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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몇백 년 전, 한 연금술사가 의문을 품었다.

‘여기는 무슨 판타지 세계가 하늘에 섬도 없지?

당시 연금술사와 술을 먹던 용병이 그 말을 듣고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평소에도 연금술사는 못 알아먹을 소리만 했었으니까.

때문에 용병의 정신이 나간 건 그로부터 반년 후, 하늘에 뜬 섬을 발견하고 나서였다.

천공섬 크레토는 기적의 산물이었다. 한 연금술사가 신에 근접한 일을 했다는 증거였으니까.

동시에 그 누구의 땅도 아니었다. 연금술사가 크레토를 자유의 땅으로 규정한 후로부터 계속 그랬다.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크레토를 일종의 중립지대로 지정하고, 중요한 일들은 전부 크레토에서 처리하곤 했다.

이를테면 대규모 학회라든가.

“루이나 님. 저거 봐.”

크리스가 내 로브를 잡아당기며 흥분했다. 크리스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는데, 크리스의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옮기자 원판의 모형물이 하늘을 떠다니는 게 보였다.

크리스가 소리쳤다.

“루이나 님! 금화 조형물이야!”

“크리스 님. 저건 마법사의 이데아를 표현한 구조물이에요.”

“금화가 아니야?”

“네.”

“충격적이네.”

“저걸 보고 금화를 떠올리는 크리스 님이 충격적이에요.”

원판이면 전부 금화로 보이는 이 서큐버스를 어쩌면 좋을까. 잘 모르겠다.

우리는 적당한 여관에 짐을 풀었다. 이라고, 처음 보는 낯선 여관이었다.

“루이나 님. 이 여관을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이제 발견하면 못 참고 들어오는 몸이 됐어요.”

이런 효과를 노리고 전부 이라고 이름을 짓는 건가. 무섭다 무서워.

여관에 짐을 푼 우리는 홀에 내려가 음식을 시켰다. 몇 번이고 반복한 익숙한 행동이었다.

나는 벌꿀주를 주문하고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러자 제리가 원격으로 손가락만 펴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갈수록 원소 제어 실력이 늘어나는 제리였다.

담배 연기에 피로를 실어 날렸다. 비록 피닉스 덕에 초고속으로 천공의 섬에 도착했다지만, 여행은 여행이다. 비행기에만 타도 생기는 게 피로인데, 피닉스는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나는 의 힘으로 물리적인 충격을 아예 안 받았지만, 그래도 정신은 피곤해지니까. 쉬어주긴 해야 됐다.

느긋하게 몸을 늘어트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드디어 천공섬에 도착했네요.”

“그렇다기엔 하루도 안 돼서 도착했는데 말입니다.”

내 말에 대답한 건 종이 뭉치에 시선을 고정한 제리였다.

나는 슬쩍 제리가 든 종이를 같이 확인했다.

어디 보자. 라. 꽤 재밌는 논문이었다.

이데아는 마법사의 지향점이었다. 마법사가 도달하고자 하는,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

그리고 저 라는 논문은 마법사들이 떠올린 마법 체계가 사실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무의식중에 이데아의 영향을 받은 거라 주장했는데, 나름의 연구 결과도 있어 꽤 그럴듯한 논문이었다.

동의하기 힘든 얘기긴 했지만.

스륵. 논문을 다 읽은 제리는 이번엔 다른 논문을 꺼냈다. 제목은…이라. 흠.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끝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게 마법사다.

그들은 자신의 정신을, 육체를, 영혼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그 끝에 남은 하나에 이름을 붙이곤 했다.

켈튼의 경우 이라는 이름을.

플로라의 경우 이라는 이름을.

엘레라의 경우 이라는 이름을.

다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저 과정이 굉장히 끔찍하고 고통스럽다는 거였다.

정신을 몰아붙인다는 둥, 영혼을 몰아붙인다는 둥 비유했지만, 알기 쉽게 설명하면 마법사의 수련은 생명체의 상식을 거스르는 짓거리였다.

생명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해체한다. 방어기제를 부수고, 상식을 부수고, 고정 관념과 편견을 없앤다.

그 후 비워진 곳에 오로지 이성만을 가득 채운다. 죄악감과 절망감을 맨몸으로 온전히 느낀다.

자신의 영혼에 새겨진 이름을 알기 위해선,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래서였다. 모든 마법사의 정신이 나가 있는 건.

저런 짓을 하는데 제정신이면 그게 더 무서웠다.

각설하고.

이라는 논문은 그런 마법사의 생태계를 고찰했는데, 요약하면 그거였다.

고위 마법사가 미친 게 아니라, 미친 인간이 고위 마법사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 논문은 마음에 안 드네요. 저 논문이 진실이라면, 정상인인 저는 영원히 고위 마법사가 될 수 없잖아요.”

“…….”

“제리 님? 하시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요?”

“그런 말을 하고 싶다면 먼저 나무 인형부터 치우는 게 어떻습니까.”

[저는 나무 인형이 아니라 적영이에요.]

나는 고개를 들어 제리의 뒤를 살폈다. 제리의 뒤에선 적영이 착 달라붙어 논문을 훔쳐보고 있었는데, 적영이 마음에 들었는지 제리가 감탄사를 뱉었다.

“확실히 이 논문은 신뢰성이 높군요.”

“제리 님도 보는 눈이 없어졌네요. 그 논문의 어디가 신뢰성이 높나요.”

[맞아요. 제리 님. 그 논문은 엉터리예요.]

“봐요. 적영도 동의하잖아요.”

“하하.”

제리는 가볍게 웃었다.

네가 웃으니 나도 기분이 좋네.

항상 웃고 다니렴 제리야.

“레온 님. 루이나 님이 안 본 사이에 더 이상해졌어. 저거 어떻게 해?”

“잠깐 안 본 사이에 이중인격이 됐다니. 심각하군요.”

“이러다가 루이나 님의 암흑 인격이 깨어나면 인류는 멸망해. 막아야 돼.”

크리스와 레온이 소곤댄다. 근데 다 들리게 소곤대는 것도 소곤대는 게 맞을까? 철학적인 의문이었다.

그래서 너희 어쩌다 그렇게 친해졌냐고. 3번 물었다.

나는 적영에게 등불을 들려준 후 종업원이 가져온 고기파이를 입에 넣었다.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였는데, 적당히 식사를 마치자 크리스가 말을 꺼냈다.

“그럼 나 먼저 가볼게.”

“고생하세요.”

크리스는 협업할 마법사와 연금술사를 구하기 위해 천공의 섬에 왔다. 목적이 뚜렷한 만큼 바쁘게 움직일 것이었다.

“저도 슬슬 일어나보겠습니다.”

“레온 님도 고생하세요.”

레온도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천공의 섬에 왔다. 만나볼 사람이 있다던가.

정확히 누구를 만나는지는 말 안 해줬지만, 레온이 만날 사람이라고 해봤자 뻔했다. 교국의 높은 사람이겠지.

“그럼 저도.”

제리도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 모습에 단호히 말했다.

“어딜 가시나요. 제리 님은 아무데도 못 보내요.”

“왜 다 보내주는데 저만 붙잡습니까.”

“제리 님이 없으면 곤란해지잖아요.”

“어떤 점이 말입니까.”

“제리 님이 없으면, 담뱃불을 붙여줄 사람이 없잖아요.”

“가보겠습니다.”

천공의 섬은 마법사들의 비밀기지 같은 곳이었다.

마법사들의 성지인 아르기넬과는 살짝 다른 느낌이었지만, 다른 느낌일 뿐 이곳도 마법사에게 중요한 건 똑같았다.

그래서 이곳에도 크로프트 학파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

크로프트 학파가 낳은 자랑스러운 5위계 마법사인 제리가 반드시 얼굴을 비출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모두가 떠나자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오직 적영만이 남아 나와의 의리를 지켰다.

또 버려졌어?

이 슬픔은 오직 벌꿀주로만 달랠 수 있었다.

나는 벌꿀주를 한입 마셨다. 진짜 몇 번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좋아. 내친김에 에 쟁여놓은 죽엽청도 꺼내야지.

나는 희희덕대며 죽엽청을 꺼냈다. 감미료라도 넣은 듯 달콤하며 청량한 죽엽청을 음미하던 나는 깊게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언제까지 술만 마실 건가요.”

“깜짝이에요.”

그리고 눈을 뜨며 놀랐다.

이상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뮤란 님도 있었죠. 깜빡했네요.”

“…루이나 님이 데려왔으면서, 깜빡하는 건 혹시 건망증인가요?”

“제 잘못이 아니에요. 뮤란 님의 존재감이 없는 게 문제예요.”

얼마나 뮤란의 존재감이 없었으면, 아예 존재 자체를 잊었겠는가.

물론 나는 안 잊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까맣게 잊었다.

그게 누구냐고?

나도 모르지만 아무튼 있다.

뮤란이 물었다.

“…그래서 저한테 뭘 시키려는 건가요.”

“뭐가요.”

“…시킬 일이 있어서, 바쁜 사람을 억지로 데려온 거 아니었나요?”

“아 그거요? 연금술사라 천공의 섬을 잘 알지 않을까 싶어서 데려온 건데요.”

천공의 섬은 반신의 경지에 오른 연금술사가 만든 섬이었다. 연금술사들의 자랑스러운 업적이었고. 그러니 연금술사인 뮤란도 천공의 섬을 잘 알 거였다.

라는 사고방식으로 데려온 건데, 반응을 보니 내 생각이 틀렸나 보다.

뮤란은 눈을 가늘게 뜨며 설명했다.

“…천공의 섬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것과 잘 아는 건 별개예요. 말만 들었지 와본 건 이번이 처음이어서요. 저도 루이나 님과 사정이 똑같아요.”

“그럼 뮤란 님은 여기에 왜 온 거죠?”

“…죽여버릴까.”

뮤란이 으르렁댄다.

표독해요.

나는 뮤란의 어깨를 두들겨줬다.

[뮤란 님. 그냥 피닉스를 타고 마법학교에 돌아갈래요?]

“…여기까지 온 김에 구경은 할게요. 그리고 이거 적영이 말하는 게 아니라 루이나 님이 말하는 거죠?”

“아닌데요. 그거 적영인데요.”

“…일어나 볼게요.”

뮤란도 자리에서 일어나 여관을 나갔다.

나는 두런두런 모르는 사람만 떠드는 의 홀을 감상하다가,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관광이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