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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제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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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제물을 받는다. 신도는 제물을 바친다. 이 둘은 제물을 통해 소통했고, 제물로써 속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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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은 또한 시험의 성격을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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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어려운 제물을 바침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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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시절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고 명령했던 건 굉장히 유명한 일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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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진짜 바치려 하니 중간에 나서서 ‘서프라이즈! 아들 대신 저기 덤불에 걸린 숫양을 바치렴!’이라 했지만, 하여간 이처럼 제물은 신에게 중요한 요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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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도망가자. 이건 미친 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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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 전혀 그렇지 않아. 밖으로 가는 게 더 미친 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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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죽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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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게 아니야 세스. 네가 아직 어려서 이해를 못 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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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 세스가 입술을 꽉 깨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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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 통하는 세스의 누나. 전형적으로 세뇌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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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 누나는 얼른 촌장님과 얘기를 나누고 와야 하거든? 얌전히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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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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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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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의 누나가 단호히 말을 뱉었다. 세스가 움찔거리며 고개를 들고, 세스의 누나가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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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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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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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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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를 내려다보던 세스의 누나는, 세스의 머리를 두들기고 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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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가 앓는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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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모두 이 세계가 이상하다는 걸 모르는 거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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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가 이상한 건 맞지만, 지금은 세계가 아니라 마을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해요. 세계는 더 큰 단위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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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란 세스가 비명을 지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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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안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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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 줄기를 소환해 세스의 입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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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읍대는 세스의 앞에서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세스를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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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하세요. 강도는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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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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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입을 자유롭게 해줄 건데, 비명을 지르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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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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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전해진 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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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속대로 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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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후 세스가 말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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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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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의 강사, 루이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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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강탈의 마녀, 제국의 귀족, 대톨트피어의 시대를 연 위대한 탐험가 등의 신분이 있지만, 이건 친근하지 않으니 고이 넣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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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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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좋아하지만, 저는 마법은 아니고요. 마법학교의 강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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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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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가르치는 학교의 선생이라는 뜻인데, 마법학교 모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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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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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세스는 외딴 화전민의 마을에서만 평생 살아 이 세계의 기본 상식과 살짝 괴리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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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래도 마법학교는 알만 한데, 이 마을 사람들은 외부 얘기를 일절 안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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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철저해 보이진 않던데. 그 콜린이라는 마을을 대표하던 청년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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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어린 애 앞에선 떠들지 않는 걸지도 몰랐다. 해피 중세랜드의 어린애는 부모의 소유물이고, 인격체가 아니었으니까. 이들과 동등하게 대화를 하려는 쪽이 오히려 비정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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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 님. 궁금한 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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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모습을 드러내 주면 안 될까요? 허공에서 목소리만 들리니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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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화 마법을 제가 쓴 게 아니라 안 돼요. 참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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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궁금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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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가요. 그걸 조사하러 온 입장이라 정보를 얻고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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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세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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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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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제―, 읍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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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치지 말라니까요. 풀어줄 텐데, 조용히 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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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스의 입을 막았던 나무줄기를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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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세스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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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에서 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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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출신이긴 한데, 맥락상 그런 의미로 물어본 건 아닌 거 같네요. 제국과 상관없이 개인적인 의뢰로 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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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의 표정에 실망이 어린다. 개인의 힘만으로 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막는 건 힘들다고 생각하나 본데, 나는 거기서 갈고리를 하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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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여기 누가 자리 잡은 거야. 대체 누구길래 왕국 출신 화전민이 제국의 조사단을 간절히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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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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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사람이 사라져요. 산꼭대기에 신이 살아요. 그 신에게 우리는 매년 제물을 바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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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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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의 전개에 나는 턱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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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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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산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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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릿속에 후보군을 몇 개 떠올렸다가, 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세스를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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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그 신이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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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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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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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잘 몰라요. 어른들이 이 얘기는 아예 안 해줘서. 저도 어른들이 신이니 뭐니 떠드는 걸 우연히 듣고 유추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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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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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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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을 바치는 건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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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 번 산꼭대기에 간 어른들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아요. …제 아버지도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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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신은 정확히 어디에 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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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라는 것만 알고 잘 몰라요. 그곳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돼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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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아는 게 뭐야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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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도 이거면 도움은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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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파틀러의 제자를 살해한 용의자가 산에 산다는 걸 안 것만으로도 충분한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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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스에게 다가가, 귀에 입을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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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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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 만난 건, 다른 사람에겐 비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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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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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하게 대답하는 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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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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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는 현재 불안정한 상태다. 조금 더 보충해서 설명하자면 제정신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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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지능은 가변형이다. IQ는 고무줄과 같아서, 설사 IQ가 200이 넘는 사람이라도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돌고래와 똑같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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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순순히 내 정체를 숨기겠다고 약속했지만, 또 몰랐다. 나중에 위급해지면 자기도 모르게 약속을 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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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여기서는 추가 조치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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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파악이 끝나면 한 번 더 들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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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세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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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희망을 먹으며 산다. 내가 금방 다시 찾아온다는 정보를 주입해 놓으면 당분간은 그 사실을 곱씹으며 사고를 치지 않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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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스의 집을 벗어나 마을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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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간 걷자 어둑해진 세상을 밝히는 빛이 보였다. 다가가자 모닥불 앞에서 일행이 떠드는 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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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님. 그래서 말했잖아. 루이나 님은 가만히 두면 큰일 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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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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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님? 왜 갑자기 말이 없어? 우유가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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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가만히 두면 왜 큰일이 난다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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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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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가 화들짝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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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투명화 마법을 해제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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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잠깐 일을 보러간 사이에 욕을 하다니. 너무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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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안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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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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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는 그저 루이나 님을 가만히 두면 세상을 부순다는 얘기를 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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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또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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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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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왜 별거 아니라면서 나무 병사를 소환해? 루이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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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리스를 구석에 수납하고, 스튜를 한 그릇 떠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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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가 식기 전에 도착하기, 대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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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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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의 질문에 나는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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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연기를 뱉으며 생각을 정리한 나는 차분히 입술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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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에 신이 살고, 매년 그 신에게 제물을 바친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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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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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를 너무 좋아하는, 마법과 역사에 무지한 남동생의 주장이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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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스와 매우 짧게 만났다. 나눈 대화도 극히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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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럼에도 나는 세스의 삶을 정확히 파악했다. 저 마을이 어떤 곳인지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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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만남에 그만큼 파악하다니.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놀랍겠지만, 이건 내가 관찰력이 뛰어나서도 홈즈의 재림이어서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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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건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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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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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라니. 초대 황제 폐하가 들으면 헛웃음을 터트릴 소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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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이 세계에 태어나 초대 황제의 얘기를 수천 번 들으며 자라온 사람이라면, 세스의 말이 말도 안 된다는 걸 알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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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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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아직도 현계에 머물렀다면, 모든 신을 현계에서 쫓아내기 위해 위대한 여정을 떠났던 초대 황제가 후대 사람들에게 이토록 숭배받는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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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숭배를 받다 못해 현존하는 모든 제국의 황족, 심지어 다른 왕국의 왕족마저 초대 황제의 후손이라는 점을 이용해 정통성을 확보했는데, 신이 현계에 머물렀다면 그들이 초대 황제를 빨기 위해 그토록 발악할 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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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점의 실수도 없이 전부 내쫓았기 때문에, 초대 황제는 비로소 필멸자의 몸으로 신이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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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 사람들이 숭배하는, 진정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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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저 마을 위에 군림하는 자는 신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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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하나만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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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화전민 마을을 지배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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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신의 교단, 외신 숭배자, 마족 계약자, 뭐 다양하긴 해요. 하지만 결국 직접 봐야 확실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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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됐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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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이 그릇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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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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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가 손목에 화염의 띠를 두른다. 투명화 마법을 준비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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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불꽃의 총탄이 발사되고, 일행을 전부 투명하게 만든 제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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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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