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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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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제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신은 제물을 받는다. 신도는 제물을 바친다. 이 둘은 제물을 통해 소통했고, 제물로써 속죄했다.

제물은 또한 시험의 성격을 띄었다.

더욱 어려운 제물을 바침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는 것이다.

폭군 시절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고 명령했던 건 굉장히 유명한 일화였다.

물론 진짜 바치려 하니 중간에 나서서 ‘서프라이즈! 아들 대신 저기 덤불에 걸린 숫양을 바치렴!’이라 했지만, 하여간 이처럼 제물은 신에게 중요한 요소였다.

“누나. 도망가자. 이건 미친 짓이야.”

“세스. 전혀 그렇지 않아. 밖으로 가는 게 더 미친 짓이야.”

“이대로 가면 죽는다고!”

“죽는 게 아니야 세스. 네가 아직 어려서 이해를 못 해서 그래.”

남동생, 세스가 입술을 꽉 깨문다.

말이 안 통하는 세스의 누나. 전형적으로 세뇌된 상태였다.

“세스. 누나는 얼른 촌장님과 얘기를 나누고 와야 하거든? 얌전히 기다려야 한다?”

“싫어!”

“세스.”

세스의 누나가 단호히 말을 뱉었다. 세스가 움찔거리며 고개를 들고, 세스의 누나가 속삭였다.

“부탁이야.”

“…….”

세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던 세스의 누나는, 세스의 머리를 두들기고 집을 떠났다.

세스가 앓는 소리를 낸다.

“왜. 왜 모두 이 세계가 이상하다는 걸 모르는 거야. 왜.”

“이 세계가 이상한 건 맞지만, 지금은 세계가 아니라 마을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해요. 세계는 더 큰 단위랍니다?”

깜짝 놀란 세스가 비명을 지르려 한다.

그건 안 될 일이었다.

나는 나무 줄기를 소환해 세스의 입을 막았다.

읍읍대는 세스의 앞에서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세스를 안심시켰다.

“안심하세요. 강도는 아니에요.”

“읍읍.”

“지금부터 입을 자유롭게 해줄 건데, 비명을 지르면 안 돼요?”

“…….”

얌전해진 세스.

나는 약속대로 풀어줬다.

직후 세스가 말을 더듬었다.

“누, 누구세요.”

“마법학교의 강사, 루이나예요.”

그 외에도 강탈의 마녀, 제국의 귀족, 대톨트피어의 시대를 연 위대한 탐험가 등의 신분이 있지만, 이건 친근하지 않으니 고이 넣어뒀다.

“……마법?”

“마법을 좋아하지만, 저는 마법은 아니고요. 마법학교의 강사예요.”

“……그게 뭔데요.”

“마법을 가르치는 학교의 선생이라는 뜻인데, 마법학교 모르세요?”

“……몰라요.”

아무래도 세스는 외딴 화전민의 마을에서만 평생 살아 이 세계의 기본 상식과 살짝 괴리된 모양이었다.

근데 그래도 마법학교는 알만 한데, 이 마을 사람들은 외부 얘기를 일절 안 하나?

흠.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철저해 보이진 않던데. 그 콜린이라는 마을을 대표하던 청년 말고는.

단순히 어린 애 앞에선 떠들지 않는 걸지도 몰랐다. 해피 중세랜드의 어린애는 부모의 소유물이고, 인격체가 아니었으니까. 이들과 동등하게 대화를 하려는 쪽이 오히려 비정상이었다.

“세스 님. 궁금한 게 있어요.”

“우선 모습을 드러내 주면 안 될까요? 허공에서 목소리만 들리니 무서워요.”

“투명화 마법을 제가 쓴 게 아니라 안 돼요. 참으세요.”

“……뭐가 궁금한데요.”

“이 마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가요. 그걸 조사하러 온 입장이라 정보를 얻고 싶은데요.”

내 말에 세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세스가 소리쳤다.

“혹시 제―, 읍읍.”

“소리치지 말라니까요. 풀어줄 텐데, 조용히 말하세요.”

나는 세스의 입을 막았던 나무줄기를 치웠다.

그러자 세스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국에서 왔나요?”

“제국 출신이긴 한데, 맥락상 그런 의미로 물어본 건 아닌 거 같네요. 제국과 상관없이 개인적인 의뢰로 온 거예요.”

세스의 표정에 실망이 어린다. 개인의 힘만으로 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막는 건 힘들다고 생각하나 본데, 나는 거기서 갈고리를 하나 만들었다.

진짜 여기 누가 자리 잡은 거야. 대체 누구길래 왕국 출신 화전민이 제국의 조사단을 간절히 바라.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매년 사람이 사라져요. 산꼭대기에 신이 살아요. 그 신에게 우리는 매년 제물을 바쳐요.”

역시나.

예상대로의 전개에 나는 턱을 매만졌다.

그런데, 흠.

신이 산다라.

나는 머릿속에 후보군을 몇 개 떠올렸다가, 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세스를 압박했다.

“정확히, 그 신이 누구인가요.”

“그건.”

“그건요?”

“…저도 잘 몰라요. 어른들이 이 얘기는 아예 안 해줘서. 저도 어른들이 신이니 뭐니 떠드는 걸 우연히 듣고 유추한 거예요.”

그래?

흠.

“제물을 바치는 건 맞나요?”

“일단 한 번 산꼭대기에 간 어른들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아요. …제 아버지도 그랬어요.”

“좋아요. 신은 정확히 어디에 살죠?”

“산꼭대기라는 것만 알고 잘 몰라요. 그곳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돼 있어요.”

얘는 아는 게 뭐야 그럼.

뭐, 그래도 이거면 도움은 많이 됐다.

적어도 파틀러의 제자를 살해한 용의자가 산에 산다는 걸 안 것만으로도 충분한 수확이었다.

나는 세스에게 다가가, 귀에 입을 가져다 댔다.

“히엑!”

“저랑 만난 건, 다른 사람에겐 비밀이에요?”

“알, 알았어요.”

격렬하게 대답하는 세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불안했다.

세스는 현재 불안정한 상태다. 조금 더 보충해서 설명하자면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람의 지능은 가변형이다. IQ는 고무줄과 같아서, 설사 IQ가 200이 넘는 사람이라도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돌고래와 똑같아졌다.

지금은 순순히 내 정체를 숨기겠다고 약속했지만, 또 몰랐다. 나중에 위급해지면 자기도 모르게 약속을 깰지.

따라서 여기서는 추가 조치가 필요했다.

“상황 파악이 끝나면 한 번 더 들를게요.”

내 말에 세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희망을 먹으며 산다. 내가 금방 다시 찾아온다는 정보를 주입해 놓으면 당분간은 그 사실을 곱씹으며 사고를 치지 않을 거였다.

나는 세스의 집을 벗어나 마을 밖으로 나갔다.

얼마간 걷자 어둑해진 세상을 밝히는 빛이 보였다. 다가가자 모닥불 앞에서 일행이 떠드는 게 들렸다.

“레온 님. 그래서 말했잖아. 루이나 님은 가만히 두면 큰일 난다니까?”

“…….”

“레온 님? 왜 갑자기 말이 없어? 우유가 부족해?”

“저를 가만히 두면 왜 큰일이 난다는 건가요.”

“깜짝이야!”

크리스가 화들짝 놀란다.

나는 투명화 마법을 해제하며 말했다.

“사람이 잠깐 일을 보러간 사이에 욕을 하다니. 너무하네요.”

“욕 안 했는데?”

“했잖아요.”

“내가? 나는 그저 루이나 님을 가만히 두면 세상을 부순다는 얘기를 했을 뿐이야.”

난 또 뭐라고.

“별거 아니었네요.”

“루이나 님? 왜 별거 아니라면서 나무 병사를 소환해? 루이나 님?”

나는 크리스를 구석에 수납하고, 스튜를 한 그릇 떠서 먹었다.

스튜가 식기 전에 도착하기, 대성공.

“그래서 어땠습니까.”

제리의 질문에 나는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었다.

후우. 연기를 뱉으며 생각을 정리한 나는 차분히 입술을 뗐다.

“산꼭대기에 신이 살고, 매년 그 신에게 제물을 바친다는데요?”

“신, 말입니까.”

“누나를 너무 좋아하는, 마법과 역사에 무지한 남동생의 주장이긴 해요.”

나는 세스와 매우 짧게 만났다. 나눈 대화도 극히 짧았다.

허나 그럼에도 나는 세스의 삶을 정확히 파악했다. 저 마을이 어떤 곳인지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짧은 만남에 그만큼 파악하다니.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놀랍겠지만, 이건 내가 관찰력이 뛰어나서도 홈즈의 재림이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이건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였다.

왜냐하면―.

“신이라니. 초대 황제 폐하가 들으면 헛웃음을 터트릴 소리군요.”

왜냐하면 이 세계에 태어나 초대 황제의 얘기를 수천 번 들으며 자라온 사람이라면, 세스의 말이 말도 안 된다는 걸 알았으니까.

신이라니.

그런 게 아직도 현계에 머물렀다면, 모든 신을 현계에서 쫓아내기 위해 위대한 여정을 떠났던 초대 황제가 후대 사람들에게 이토록 숭배받는 일도 없었다.

아니. 숭배를 받다 못해 현존하는 모든 제국의 황족, 심지어 다른 왕국의 왕족마저 초대 황제의 후손이라는 점을 이용해 정통성을 확보했는데, 신이 현계에 머물렀다면 그들이 초대 황제를 빨기 위해 그토록 발악할 리가 있나.

한점의 실수도 없이 전부 내쫓았기 때문에, 초대 황제는 비로소 필멸자의 몸으로 신이 된 것이었다.

후대 사람들이 숭배하는, 진정한 신.

그렇기에 저 마을 위에 군림하는 자는 신은 아니었다.

이거 하나만은 확실했다.

“누가 화전민 마을을 지배하는 거죠?”

“악신의 교단, 외신 숭배자, 마족 계약자, 뭐 다양하긴 해요. 하지만 결국 직접 봐야 확실해져요.”

“결정됐군요.”

레온이 그릇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리도 마찬가지였다.

제리가 손목에 화염의 띠를 두른다. 투명화 마법을 준비하는 거였다.

탕! 불꽃의 총탄이 발사되고, 일행을 전부 투명하게 만든 제리가 말했다.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