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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자의 마을
가볍게 마력을 전개하여, 무기를 든 주민들의 수준을 가늠해 보았다.
문 앞을 지키던 떡대들이 단련된 몸뚱이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이들 역시 매우 약했다.
품고 있는 마력의 양은 고만고만하고, 그렇다고 특별한 무기를 갖춘 것도 아니다.
“왜 지랄들이지.”
나는 중상을 입고 기절한 떡대에게 마저 포션을 퍼부으며 중얼거렸다.
나한테 적의가 없다는 사실은 이 수준 차이만 봐도 명백하지 않나, 죽이려면 진작에 다 죽였지.
이러면 오히려 힘의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위압]
가볍게 스킬을 사용해, 무기를 들고 나온 주민들에게 압박을 주었다.
[위압] 스킬의 효과는 상대방과의 힘의 차이가 클수록 눈에 띄게 잘 듣는다.
원래 이 정도의 차이라면 단순히 [위압]을 전개하는 것만으로 전원을 혼절시킬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적당히 출력을 조절해서 약간만 압박을 주고 있는 상태.
“으, 으헉……!”
몇몇 주민들이 헛숨을 내쉬며 벌벌 떠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정도로 압박을 받았으면 겁먹고 주저앉거나 도망칠 만도 한데, 의외로 그러지는 않는다.
도망치면 안 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건가, 그것도 슬슬 물어보면 대답해 주겠지.
“우린 딱히 댁들한테 해코지할 생각이 없는데, 이게 뭐 하는 짓들이지?”
적당한 압박은 상대방에게서 대화를 이끌어 낸다. 맹수와 대화가 통한다면 누구든 시도해 볼 테니.
“우, 우리 마을에서 나가라……이 미친 자식들, 더 이상 네놈들에겐 누구도 내줄 수 없다!”
이것 봐라, 쥐 죽은 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기를 들이밀던 떡대의 말문이 확 트였지 않나.
말하는 걸 들어보니 역시 뭔가 사건이 있었던 모양이다. 흠, 이거 느낌이 확 오는데?
이 마을은 혈사교의 마법사들이 악마 소환 의식을 벌이는 그 장소와 가장 가까운 곳이다.
그렇다면, 인신공양에 쓸 제물을 얻으러 혈사교 놈들이 찾아온 적이 있을 수도 있다.
“더 이상, 더 이상이라.”
더 이상 내줄 수 없다는 건, 그동안은 내준 적이 있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놈들은 나와 에인을 그 혈사교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 주민들이 가진 마력량이 형편없는 이유도 대충, 마력량이 많으면 제물이 된다거나 그런 거겠지?
“다, 당장 나가지 않으면…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네놈들 뜻대로 뭐든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마라!”
그나저나- 나름대로 용기를 내서 말한 것 같은데, 내용이 이래서는 너무 허접한 공갈이잖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면 뭐 어쩔 건데, 그런 말을 하려면 최소한 뭔가 행동으로 보여줘야지.
내가 스킬을 통해 주고 있는 압박과는 별개로, 이 주민들은 과하게 겁먹은 상태다.
이래서는 애초에 대화가 성립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군.
대화 말고 다른 수단을 쓰는 수밖에.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조금 거친 방법이 되겠지만, 차근차근 오해를 풀어 보자.
**
팔다리가 한 군데씩 꺾여서 바닥에 자빠져 있는 주민에게 포션을 던져주었다.
“자, 인정?”
“이, 인정하겠소.”
“암, 그래야지.”
주민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포션을 받아 들이켰다. 이런 주민의 숫자는 거의 수십에 달했다.
겁 먹은 주민들은 십여 분간의 전투 끝에 모두 제압되었다. 평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힘든 전투였다.
주민들을 죽이지 않고, 불구로 만들지도 않고, 적당한 수준의 상해만 입혀서 제압하기 위한 전투였기 때문이다.
그냥 다 죽이기 위한 싸움이었다면 1분 안에 깔끔하게 끝낼 수 있었는데, 꽤 시간을 썼다.
“인정이야?”
“그, 그래, 인정하마.”
“응, 이거 마셔.”
꼬마 에인도 내 흉내를 내며 쓰러진 주민들에게 포션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그렇게 다시 몇 분을 들여 모든 주민이 회복되기까지 기다린 후,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정말로 이 마을에 아무 해코지를 할 생각이 없고,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을 뿐이라고.
저 산에 있는 혈사교인가 뭔가 하는 놈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적대하고 있다고.
주민들은 이미 포션을 받아먹으며 ‘인정’을 선언한 상태인데도 어마어마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왔다.
“이 새끼들 봐라, 아무도 안 죽이고 포션까지 나눠줬는데도 아직도 의심질이야? 뒤질래?”
먼저 무기를 들고 덤벼놓고 이딴 태도라니, 이쯤 되면 슬슬 내가 진짜 악마로 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왜, 이번 층에 그런 설정이 걸려 있을 수도 있지 않나. 소환된 도전자가 악마로 보이는 설정.
혈사교 놈들이나 꼬마 에인이나 아무렇지 않게 나를 악마로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꼬마야, 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여?”
“잘 보여.”
“그래, 너한테 내가 뭘 물어보겠니.”
나는 에인의 대답에 한숨을 내쉬고, 주민들을 향해 물어볼까 고민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뿔이나 날개나 꼬리가 달린 것도 아니니까, 다른 부분이 어떻게 보이더라도 악마라고 단정하기는 힘들 거다.
지금처럼 무기를 들고 덤빈 이들을, 죽일 수 있음에도 살려 주는 자비로운 모습을 보인 이상은.
“애초에 왜 내가 혈사교랑 한 패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데, 이유 좀 들어 보자.”
그래서 나는 외견이 아닌 다른 이유를 묻는 말을 던졌다. 주민들은 하나둘씩 이유를 들어 보였다.
“놈들이 거대한 의식을 벌인다면서 한동안 안 보여서……”
“마법사들은 남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모습을 바꿀 수 있다고 하니……”
“그, 기운이라고 해야 하나……그런 게 너무 흉악해서……”
대부분이 근거 없는 의심이었다. 하지만 개중 한 사람의 말만큼은 달랐다.
“혀, 현자님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무시할 수 없는 키워드가 나왔다. 직후, 현자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남자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다른 주민들도 화들짝 놀라 남자를 쳐다보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현자라는 존재를 비밀로 하고 있던 모양.
앞에서 말한 이유는 전부 덧붙인 구실에 불과하고, 진짜 이유는 아마 이거겠군.
“그 이야기, 좀 자세히 해 봐.”
나는 인벤토리에서 미스릴 완드를 꺼내 툭툭 두들기며, 현자에 대해 물었다.
**
약간의 협박을 곁들였음에도, 마을 주민들은 현자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쓸모라고는 없는 놈들이다. 내 옆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는 에인이 훨씬 도움이 될 지경이군.
에인은 조금 전부터 내가 들려준 동화를 떠올렸는지, 현자를 꼭 보고 싶다며 내게 칭얼거리고 있다.
요 조그만 꼬마는 역시 악마를 소원 들어주는 요정 정도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소원이라고 하고 있으니.
뭐, 주민들이 현자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건 사실 아무래도 좋다. 내가 직접 찾으면 그만이니.
“현자씩이나 하는 이름이 붙어 있으면, 당연히 마법사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초감각] 스킬을 발동하고, 마력감지를 최대 수준으로 전개했다.
내 마력감지 범위는 이 마을 하나쯤은 쉽게 뒤덮는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면 그 깊이 역시 더욱 깊어진다.
눈만으로는 도저히 확인할 수 없는 사방 모든 물체의 뒷면과 내면, 그 감촉과 질감까지 세세히 느끼는 힘.
생명활동을 하고 있는 모든 존재의 내면까지 마력을 이용해 가볍게 훑어 낸다.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다른 주민들은 물론이요, 바닥에 기어 다니는 벌레의 솜털 하나하나까지 감각하며.
어떤 건물의 지하에 꼭꼭 숨어 은폐 마법을 두르고 있는 어떤 마법사의 존재를 감지해 내었다.
“찾았다.”
마법사는 내가 퍼트린 마력을 느낀 것인지, 소스라치게 놀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마법사가 숨어 있는 건물의 방향으로 단번에 도약해, 발밑에 오러를 두르고 그 천장을 덮쳤다.
오러를 이용한 타격과 마력 방출의 조합으로 건물을 단번에 가루로 만들고, 지하까지 파고든다.
-콰과광!!
“으, 으아악!”
건물을 붕괴시키며 나타난 나를 보며 기겁하는 마법사, 현자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꼬락서니는 아니다.
에인이 알면 실망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그 현자라는 놈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내가 주민들을 통해 알아낸 이 ‘현자’에 대한 정보는 몇 가지뿐.
이 마을에 남은 유일한 마법사라는 사실, 마을의 실질적인 지도자라는 사실.
그리고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흑발의 전사와, 회색 머리칼과 눈을 가진 어린아이를 막으라 했다는 사실.
마을 시민들은 현자의 말을 따라나와 에인을 혈사교 패거리로 간주하고 맞선 것인데.
이렇게 직접 그 현자를 보니, 자초지종이 어떻게 된 건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더 이상은 누구도 내줄 수 없다던 외침의 의미까지.
“진짜 창의적인 새끼들이네, 이거.”
자칭 현자의 몸에는 묘한 느낌의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최근에 느껴본 적이 있는 마력이다.
그리고 마력감지를 통해 옷 속을 투시하니 보이는 해골과 뱀이 그려진 표식, 이것도 본 적이 있다.
나를 불러낸 악마 소환진에 그려져 있던 표식, 즉 혈사교 마법사들의 상징과 똑같다.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위대한 짐승이여, 당신의 수족이 되겠습니다!”
이 마을은 현자로 위장한 혈사교 마법사의 손에 의해 관리되고 있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