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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유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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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을 검령에게 맡겨두기만 해도 전투는 무척 수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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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18층에서 출현하는 몬스터들은 보통 도전자들에겐 상당한 난적이겠지만, 나한텐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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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숫자가 많고 지능적이라는 점은 별 방해도 되지 않는다. 나는 원래 이런 섬멸전에 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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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생각해보니 섬멸전에 능하다는 말도 좀 웃기다. 나는 이미 거의 모든 전투 형식에 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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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를 대상으로 한 섬멸전, 소수를 대상으로 한 결투전, 도주하는 적을 쫓는 추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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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으로 밀어붙일 수 없는 적을 상대하는 소모전, 그 밖의 여러 전투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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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약한 것을 찾자면 특정한 대상을 지키는 방어전과 공중전 정도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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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마 안 되는 약점들도 마법을 터득하는 순간 모두 해결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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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근접 전사한테 공중전이 약점이라고 지적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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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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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잠시 생각이 다른 길로 샜다. 상대가 아무리 약해도 전투에는 집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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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치호를 닮은 몬스터가 바짝 달려드는 것을 방패로 흘려내고, 손에 든 할버드를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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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하며 검치호의 어깻죽지에 할버드의 날이 꽂힌다. 이 상태로 단번에 손잡이를 당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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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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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어깻죽지를 통째로 뜯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할버드로만 가능한 당겨 베기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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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러를 두르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잡기술을 쓸 것 없이 토막이 나야 정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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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는 일부러 약한 수준의 오러만을 두른 채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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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당연히 단련이다. 무기 종류에 따른 오러 효율의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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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개인 단련과 몇 번의 실험 결과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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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이가 길고 형태가 복잡한 무기일수록 오러를 잘 씌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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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 종류는 워낙 사용이 익숙해서 대검이건 소검이건 아무런 차이가 없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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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이나 도끼 등은 그 크기와 길이에 비례해 오러의 효율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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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러를 씌워야 하는 금속 부위의 형태에 따라서도 변화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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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무기라서, 익숙하지 않은 형태의 오러를 형성해야 해서- 결국 숙련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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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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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버드를 붕붕 휘둘러 몬스터 두 마리를 더 처치하고, 흔들리는 오러를 다시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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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도는 결국 손에 익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내가 아주 잘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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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예전처럼 내 노력이 그대로 수치로 표현되는 일은 잘 없지만, 그건 이제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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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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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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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타난 몬스터의 절반가량을 핼버드로 정리하고, 이번에는 직검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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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버드를 이용한 오러 발현은 이제 상당히 안정적이게 된 것 같으니, 이제 다음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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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령이 사용하는 검술을 흉내 내며 싸워 본다. 그 기술의 깊이와 형식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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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밑천을 털리고 싶어하지 않은 검령이 알려주지 않고 있는 빛의 고리를 만드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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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걸 터득하기 위한 단련의 일환이다. 뭐, 순수한 검술 단련도 계속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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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검술, 검술, 오러, 마법을 배우기는 이미 그른 것 같으니 이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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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숲은 언제쯤 나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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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마법이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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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꽤 많은 숫자의 몬스터가 몰려온 탓에, 전투가 끝났을 때는 완전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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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서 이만 쉬자, 너도 더 걷기 힘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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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를 마치고 돌아와, 지친 듯 검령의 다리에 몸을 기대고 있는 에인에게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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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곧바로 야영지를 차렸다. 에인도 꼬물꼬물 작은 손으로 나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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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에인이 도움이 된 부분은 거의 없었지만, 돕겠답시고 나서는 모습이 귀여워서 아무튼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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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령 자식은 이런 건 쥐약이라면서 탱자탱자 쳐 놀기만 했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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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너는 마계를 누비고 다녔다는 놈이 이런 것 하나도 못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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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일은 적당한 잡놈을 잡아다 시키면 그만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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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기 싫어서 아무 말이나 하는 거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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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군, 오히려 하인 하나 두지 않는 네가 이상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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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기대어 젠체하고 있는 검령을 잠시 노려보았다. 흠, 그런 말을 네가 해도 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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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은 뭐지, 설마 이 위대한 검령 칼레온을 하인이라 칭하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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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꼴을 보니 자기가 대충 그런 신세라는 건 아는 모양인 것 같다. 그걸 알면서도 저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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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네놈은 사고방식이 이상하다. 그만한 힘과 재능을 가졌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그렇게 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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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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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토끼 가죽을 쓰고 있지 않으냐. 강자로 태어난 자는 순리답게 강자로서 행동해야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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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앞으로 더 완드로 때려 달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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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의 격을 스스로 낮추지 말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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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령은 혀를 쯧쯧 차며 뭐라뭐라 떠들기 시작했다. 왜 무쇠조차 가를 수 있는 검으로 채소 따위를 썰고 있느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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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에인을 돌봐주는 모습을 보고 저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 밖에도 마법을 배우고 싶어 하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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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답지 않게 보모 노릇을 하고 있긴 하지. 마법도 이미지상으로는 나랑 별로 안 어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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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태어난 순리가 어쩌고 하는 말은 나에게 전혀 와 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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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령은 혼자 착각하고 있지만, 애초에 나는 탑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냥 한심한 개백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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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검사로서의 재능을 평가할 때 논하는 것은 근골의 강인함이나 보유한 마력의 총량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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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탑에 들어오기 전의 내게는 일절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나는 결코 강자로서 태어난 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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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이해력이나 응용력이라면 모를까, 시스템의 보정을 받는 한 태생의 격을 논할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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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저렇게 떠드는 검령 역시 답지 않게 에인을 꽤나 아끼는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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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태생이라는 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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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가진 힘이나 자격을 말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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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 뭘 가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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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봐라, 에인이 뭐라고 묻기 시작하자 귀여운 손주를 보는 것 같은 표정을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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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은 검사가 될 운명을 갖고 태어났고, 저놈도 전사로서의 운명을 타고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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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한 표정과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하는 검령, 근데 누구 마음대로 내 운명이 전사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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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 하려던 순간, 꼬마 에인이 검령에게 손가락을 까딱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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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는 뭘 가지고 태어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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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었다. 귀여움을 타고난 건 확실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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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재능 내지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말하려나- 그리 생각한 순간, 검령은 의외의 답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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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네가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아직 어린 네게 어떤 자질이 잠자고 있을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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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면에 쓰레기니 뭐니 지껄여 댔던 검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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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팔불출 할배가 따로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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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이틀 후, 등에 업힌 에인에게 동화 이야기를 해 주며 걷고 있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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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동화 이야기를 왜 했느냐고 물을 수 있겠는데,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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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에인을 조용히 만드려면 내가 대신 떠드는 방법밖에 없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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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미 지구에서 읽었던 동화 내용은 다 써먹어서, 다크엘프의 동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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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어린애 취급하던 다크엘프들이 해 주던 이야기를, 내가 진짜 어린아이에게 해 주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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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님 멋있다. 나도 현자님처럼 되고 싶어. 진혁악마님, 나 소원 하나 더 빌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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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빌 게 아니라, 네가 직접 마법을 배워서 현자가 되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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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그럼 나도 마법 배우면 현자님 될 수 있어? 나쁜 마왕 물리치는 멋진 용사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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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동화책 속의 용사와 현자를 동경하기 시작한 에인, 나는 그렇다고 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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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말이 아니다. 에인이 가진 마법적 재능은 실로 굉장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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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사이에 에인은 이미 스킬을 사용하는 내 수준을 가볍게 따라잡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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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가 사용하는 [집광]과 [철벽]등을 거의 모두 재현할 수 있을 정도까지 올라온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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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의 총량이 부족하여 마법의 실제 성능은 애매하지만, 그 숙련도는 기적적인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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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이 꼬마가 마법사 부모 밑에서 꾸준히 수련한다면, 정말로 현자든 용사든 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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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현자님이랑 용사님 할 수 있구나……근데 진혁악마님, 나 방금 소원 취소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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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에인이 무언가를 동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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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검령에게 태생이 어쩌고 하는 말을 듣고 난 이후로 장래를 생각하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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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머리에서 나오는 장래를 향한 수많은 고민은, 실로 어린아이다운 방식으로 뚝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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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랑 같이 사는 게 제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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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에게 1순위는 언제나 ‘엄마’ 였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엄마와 함께하는 것을 더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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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처음 먹여주었던 치즈돈까스마저, 엄마에게도 먹여주고 싶다며 아껴 두려고 했을 정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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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나이대 어린아이들에게 부모란 곧 세상 전부와 같다고- 커뮤니티에서 읽은 적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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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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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수풀을 헤치자 저 멀리 탁 트인 길이 눈에 들어오며, 미니맵이 마침내 지도와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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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에인의 소원을 향한 여정이 첫발을 내디뎠다. 우리는 마침내 숲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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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너희 엄마 찾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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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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