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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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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년의 세계

에인을 검령에게 맡겨두기만 해도 전투는 무척 수월해진다.

이 18층에서 출현하는 몬스터들은 보통 도전자들에겐 상당한 난적이겠지만, 나한텐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의 숫자가 많고 지능적이라는 점은 별 방해도 되지 않는다. 나는 원래 이런 섬멸전에 능하다.

아니, 생각해보니 섬멸전에 능하다는 말도 좀 웃기다. 나는 이미 거의 모든 전투 형식에 능하다.

다수를 대상으로 한 섬멸전, 소수를 대상으로 한 결투전, 도주하는 적을 쫓는 추격전.

힘으로 밀어붙일 수 없는 적을 상대하는 소모전, 그 밖의 여러 전투 형식.

그나마 약한 것을 찾자면 특정한 대상을 지키는 방어전과 공중전 정도밖에 없다.

이 얼마 안 되는 약점들도 마법을 터득하는 순간 모두 해결되어버린다.

애초에 근접 전사한테 공중전이 약점이라고 지적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겠지만.

-갸오오오!

아차, 잠시 생각이 다른 길로 샜다. 상대가 아무리 약해도 전투에는 집중해야지.

검치호를 닮은 몬스터가 바짝 달려드는 것을 방패로 흘려내고, 손에 든 할버드를 휘둘렀다.

콰직, 하며 검치호의 어깻죽지에 할버드의 날이 꽂힌다. 이 상태로 단번에 손잡이를 당기면.

-콰득!

이렇게 어깻죽지를 통째로 뜯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할버드로만 가능한 당겨 베기 기술.

사실 오러를 두르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잡기술을 쓸 것 없이 토막이 나야 정상이지만.

현재 나는 일부러 약한 수준의 오러만을 두른 채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유는 당연히 단련이다. 무기 종류에 따른 오러 효율의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간 개인 단련과 몇 번의 실험 결과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길이가 길고 형태가 복잡한 무기일수록 오러를 잘 씌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검 종류는 워낙 사용이 익숙해서 대검이건 소검이건 아무런 차이가 없다만.

창이나 도끼 등은 그 크기와 길이에 비례해 오러의 효율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오러를 씌워야 하는 금속 부위의 형태에 따라서도 변화가 생긴다.

익숙하지 않은 무기라서, 익숙하지 않은 형태의 오러를 형성해야 해서- 결국 숙련도 문제다.

-콰직!

핼버드를 붕붕 휘둘러 몬스터 두 마리를 더 처치하고, 흔들리는 오러를 다시 다잡았다.

숙련도는 결국 손에 익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내가 아주 잘하는 일이다.

이제 예전처럼 내 노력이 그대로 수치로 표현되는 일은 잘 없지만, 그건 이제 상관없다.

“흡!”

-으적!

새로 나타난 몬스터의 절반가량을 핼버드로 정리하고, 이번에는 직검을 꺼냈다.

핼버드를 이용한 오러 발현은 이제 상당히 안정적이게 된 것 같으니, 이제 다음 차례.

검령이 사용하는 검술을 흉내 내며 싸워 본다. 그 기술의 깊이와 형식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더 이상 밑천을 털리고 싶어하지 않은 검령이 알려주지 않고 있는 빛의 고리를 만드는 기술.

이건 그걸 터득하기 위한 단련의 일환이다. 뭐, 순수한 검술 단련도 계속해야 하니까.

검술, 검술, 검술, 오러, 마법을 배우기는 이미 그른 것 같으니 이거라도-

“이놈의 숲은 언제쯤 나갈 수 있으려나.”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마법이 배우고 싶다.

**

이번에는 꽤 많은 숫자의 몬스터가 몰려온 탓에, 전투가 끝났을 때는 완전한 저녁이었다.

“오늘은 여기서 이만 쉬자, 너도 더 걷기 힘들지?”

전투를 마치고 돌아와, 지친 듯 검령의 다리에 몸을 기대고 있는 에인에게 그렇게 말했다.

에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곧바로 야영지를 차렸다. 에인도 꼬물꼬물 작은 손으로 나를 도왔다.

사실 에인이 도움이 된 부분은 거의 없었지만, 돕겠답시고 나서는 모습이 귀여워서 아무튼 괜찮았다.

검령 자식은 이런 건 쥐약이라면서 탱자탱자 쳐 놀기만 했는데 말이지.

“아니, 너는 마계를 누비고 다녔다는 놈이 이런 것 하나도 못하냐?”

“잡일은 적당한 잡놈을 잡아다 시키면 그만 아니냐.”

“일하기 싫어서 아무 말이나 하는 거 아니고?”

“웃기는군, 오히려 하인 하나 두지 않는 네가 이상한 거다.”

나무에 기대어 젠체하고 있는 검령을 잠시 노려보았다. 흠, 그런 말을 네가 해도 되는 거냐?

“그 눈은 뭐지, 설마 이 위대한 검령 칼레온을 하인이라 칭하려는 건가?”

말하는 꼴을 보니 자기가 대충 그런 신세라는 건 아는 모양인 것 같다. 그걸 알면서도 저러나.

“애초에 네놈은 사고방식이 이상하다. 그만한 힘과 재능을 가졌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그렇게 되는 거냐.”

“내가 뭘.”

“사자가 토끼 가죽을 쓰고 있지 않으냐. 강자로 태어난 자는 순리답게 강자로서 행동해야 하는 거다.”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앞으로 더 완드로 때려 달라는 건가?

“태생의 격을 스스로 낮추지 말라는 이야기다.”

검령은 혀를 쯧쯧 차며 뭐라뭐라 떠들기 시작했다. 왜 무쇠조차 가를 수 있는 검으로 채소 따위를 썰고 있느냐며.

내가 에인을 돌봐주는 모습을 보고 저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 밖에도 마법을 배우고 싶어 하는 것도.

뭐, 답지 않게 보모 노릇을 하고 있긴 하지. 마법도 이미지상으로는 나랑 별로 안 어울리고.

하지만 태어난 순리가 어쩌고 하는 말은 나에게 전혀 와 닿지 않는다.

검령은 혼자 착각하고 있지만, 애초에 나는 탑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냥 한심한 개백수였다.

놈이 검사로서의 재능을 평가할 때 논하는 것은 근골의 강인함이나 보유한 마력의 총량 같은 것들.

시련의 탑에 들어오기 전의 내게는 일절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나는 결코 강자로서 태어난 몸이 아니다.

기술의 이해력이나 응용력이라면 모를까, 시스템의 보정을 받는 한 태생의 격을 논할 수는 없지.

애초에, 저렇게 떠드는 검령 역시 답지 않게 에인을 꽤나 아끼는 것 같은데 말이다.

“스승님, 태생이라는 게 뭐야?”

“태어날 때부터 가진 힘이나 자격을 말하는 거다.”

“태어날 때 뭘 가지는데?”

저 봐라, 에인이 뭐라고 묻기 시작하자 귀여운 손주를 보는 것 같은 표정을 하지 않나.

“이 몸은 검사가 될 운명을 갖고 태어났고, 저놈도 전사로서의 운명을 타고났지.”

인자한 표정과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하는 검령, 근데 누구 마음대로 내 운명이 전사라는 거야.

한 마디 하려던 순간, 꼬마 에인이 검령에게 손가락을 까딱이며 물었다.

“그럼 나는 뭘 가지고 태어난 거야?”

일단 나는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었다. 귀여움을 타고난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마법사의 재능 내지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말하려나- 그리 생각한 순간, 검령은 의외의 답을 말했다.

“그건 네가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아직 어린 네게 어떤 자질이 잠자고 있을지 모르니.”

초대면에 쓰레기니 뭐니 지껄여 댔던 검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주 팔불출 할배가 따로 없지.

**

그로부터 이틀 후, 등에 업힌 에인에게 동화 이야기를 해 주며 걷고 있던 때였다.

뜬금없이 동화 이야기를 왜 했느냐고 물을 수 있겠는데, 다 이유가 있다.

한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에인을 조용히 만드려면 내가 대신 떠드는 방법밖에 없었거든.

참고로 이미 지구에서 읽었던 동화 내용은 다 써먹어서, 다크엘프의 동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참이다.

나를 어린애 취급하던 다크엘프들이 해 주던 이야기를, 내가 진짜 어린아이에게 해 주고 있는 거다.

“현자님 멋있다. 나도 현자님처럼 되고 싶어. 진혁악마님, 나 소원 하나 더 빌어도 돼?”

“소원을 빌 게 아니라, 네가 직접 마법을 배워서 현자가 되면 되잖아.”

“그렇구나, 그럼 나도 마법 배우면 현자님 될 수 있어? 나쁜 마왕 물리치는 멋진 용사님도?”

언젠가부터 동화책 속의 용사와 현자를 동경하기 시작한 에인, 나는 그렇다고 답해 주었다.

빈말이 아니다. 에인이 가진 마법적 재능은 실로 굉장한 것이니까.

지난 며칠 사이에 에인은 이미 스킬을 사용하는 내 수준을 가볍게 따라잡아 버렸다.

이제는 내가 사용하는 [집광]과 [철벽]등을 거의 모두 재현할 수 있을 정도까지 올라온 상태다.

마력의 총량이 부족하여 마법의 실제 성능은 애매하지만, 그 숙련도는 기적적인 수준.

이대로 이 꼬마가 마법사 부모 밑에서 꾸준히 수련한다면, 정말로 현자든 용사든 될 수 있겠지.

“나도 현자님이랑 용사님 할 수 있구나……근데 진혁악마님, 나 방금 소원 취소할래.”

하지만 에인이 무언가를 동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 역시.

아마도 검령에게 태생이 어쩌고 하는 말을 듣고 난 이후로 장래를 생각하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조그만 머리에서 나오는 장래를 향한 수많은 고민은, 실로 어린아이다운 방식으로 뚝 끊긴다.

“나는 엄마랑 같이 사는 게 제일 좋아.”

에인에게 1순위는 언제나 ‘엄마’ 였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엄마와 함께하는 것을 더 원한다.

얼마 전에 처음 먹여주었던 치즈돈까스마저, 엄마에게도 먹여주고 싶다며 아껴 두려고 했을 정도니까.

그래, 이 나이대 어린아이들에게 부모란 곧 세상 전부와 같다고- 커뮤니티에서 읽은 적이 있었지.

-부스럭.

우거진 수풀을 헤치자 저 멀리 탁 트인 길이 눈에 들어오며, 미니맵이 마침내 지도와 겹친다.

꼬마 에인의 소원을 향한 여정이 첫발을 내디뎠다. 우리는 마침내 숲 밖으로 나왔다.

“자, 너희 엄마 찾으러 가자.”

사실,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