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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관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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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낙하로 가속하는 속도에는 결국 한계가 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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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몸으로 음속까지도 감당할 수 있는 내가, 고작 자유낙하의 충격 정도로 뻗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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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둘기를 붙잡고 지면을 향해 추락하던 도중,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부딪히며 그만 생각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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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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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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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기억이 끊겼다. 9층의 뱀용에게 처박혔을 때랑 비슷한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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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내구가 올랐음에도 이런 충격이라니, 대체 뭐에 부딪힌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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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보니, 낙하의 충격으로 만들어진 자리에 달라붙은 핏덩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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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완전히 곤죽이 다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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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꼬락서니지만, 군데군데 붙어 있는 깃털과 흩어진 조각을 보면 비둘기가 틀림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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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벤토리와 상태창을 열어 보니 처치 보상도 제대로 들어온 듯하고, 제대로 죽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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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지 조금 시간이 지난 모양, 아마 지금쯤이면 천계도 한창 붕괴 중이거나- 이미 다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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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내가 문제다. 당장 나부터 뭘 어째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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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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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페이스에는 맵 이름도 제대로 뜨지 않고, 지도에도 [???] 라고만 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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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층의 무대인 천계를 완전히 벗어난 탓이겠지, 주변을 둘러봐도 인간의 흔적 같은 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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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혹시 내가 추락 도중에 부딪혔던 벽이 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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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층 지역의 맨 끝자락에 존재한다는 끝의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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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 불가 오브젝트 판정이 붙은 투명한 막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방금 부딪히면서 파괴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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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층마다 맵의 넓이는 천차만별이라고 들었는데, 15층 천계는 정말 천계까지만 무대로 하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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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천신을 처치해 천족들을 땅으로 돌려보낸다는 내 선택은 시스템이 상정하지 못한 길이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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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렇다면, 지금쯤 천족 NPC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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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지상으로 내려왔을까? 자아는 유지하고 있는 걸까?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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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지른 일의 결과가 궁금하다. 나는 제대로 그들을 해방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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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근데 이러면 15층 미궁은 어떻게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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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니까, 미궁 지역도 천계에 포함된 건데- 천계가 무너졌으면 그것도 없어진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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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클리어는 어떻게 되는 거지, 전이문은 어떻게 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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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여기서 영영 갇혀 지내야 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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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거 남 걱정할 때가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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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어디로든 움직여서 사람을 찾아봐야겠다. 대충 방향 하나 골라서 쭉 가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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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칼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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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까, 검령이 천족들이랑 같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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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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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온에게 마킹해 둔 마력을 탐색하려던 순간,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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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거리가 얼마나 멀어졌길래 마력이 아예 감지가 안 되는 거지. 대체 얼마나 떨어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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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칼레온은 무슨 판정이 된 건지 내 인벤토리에 혼자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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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온의 마력을 쫓아서 이동할 셈이었는데, 곤란하게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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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이던 중, 돌연 눈앞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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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진짜, 뭐 이런 게 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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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존재 : GM ■■■가 당신의 시야를 차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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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상위 존재? 시야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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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싸늘한 감각이 몸을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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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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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의 발작하듯 마력강화를 전개했다. 전신의 마력을 모조리 밖으로 토해낼 기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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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마력을 일으켜 저항해도 시야는 돌아올 생각을 하질 않는다. 제대로 저항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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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 법조차 잊고 시야를 가린 무엇인지 모르는 것에게 저항하던 중, 아주 살짝- 살짝 무언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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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시련의 탑 15층을 최초로 클리어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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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순간, 어둡게 물들었던 시야가 한순간에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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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쳐진 것은 옅게 햇볕이 내리쬐는 해변가, 16층의 초반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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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 보상 : ‘경험치’, ‘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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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클리어 보상 : ‘천신의 축복을 받은 치마’ 를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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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기여도 보상 : ‘영광의 축복’, ‘경험치’ 를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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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일격 보상 : ‘액티브 스킬 - 정화’를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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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을 알 수 없는 15층 보스 클리어 판정과 함께, 시야를 가리던 어둠 너머를 엿보았던 내 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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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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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듯한 통증과 함께 피눈물을 쏟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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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 확인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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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온이 혼자 인벤토리로 돌아온 경위, 15층이 멋대로 클리어 된 이유, 획득한 여러 보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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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 불가 판정인 끝의 장벽이 파괴되었던 일, 그리고 상위 존재라는 알 수 없는 것의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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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사소하게 느껴질 만큼, 내게 찾아온 고통은 지옥을 연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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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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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안쪽으로 오그라들어 뇌를 찌른다. 그리고 머리가 흐물흐물하게 녹아 바깥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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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이게 대체 뭐지, 이게 대체 무슨,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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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허억, 커헉, 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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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구역감에 무언가를 한 바가지 토해냈다.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이 아니라, 피를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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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씨발, 눈이, 얼굴이 통째로 축축하다. 뱉어낸 것 외에도 피가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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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귀에서, 코에서,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흘러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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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넘치는 피가 모두 용암처럼 느껴진다. 진짜 용암도 그냥 버틸 수 있는데,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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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바, 씨바악! 개 같은, 아악, 끄으, 그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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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서 마구잡이로 뒹굴며 손에 잡히는 것들을 전부 움켜쥐었다. 모래, 돌, 그리고 내 몸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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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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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견디기 위해 부여잡은 어깨가 내 악력에 의해 일그러지며 또 피를 흘려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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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누가 내 뇌에다가 끓는 물을 붓고 휘젓는 느낌이다! 그게 씨발 무슨 느낌인지 알 리가 없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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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벤토리를 마구잡이로 뒤진다. 도움이 될 만한 포션이란 포션은 전부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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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히 병을 따고 마시는 것도 사치다. 나는 포션을 병째로 입 안에 넣고 그냥 씹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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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적, 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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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떤 포션도 내 상태를 낫게 할 수 없었다. 스킬, 스킬은 뭔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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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얻었던 정화 스킬이 눈에 들어왔다. 사용법도 효과도 모르는 채로 일단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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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 효과가, 아니, 이상하다. 마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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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 : 0/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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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 수치가 조금도 남지 않고 동나 있었다. 대체 뭘 했다고 마력이 완전히 바닥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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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는 건 하나다. 시야 차단에서 벗어나려고 발작적으로 마력강화를 써서 날뛴 것, 고작 그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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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잠깐 차단된 시야 너머를 엿본 것 하나만으로, 마력이 완전히 소진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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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씨발, 이게 말이 돼? 뭔가, 뭔가 다른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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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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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인벤토리를 뒤지며 아이템을 꺼내던 중, 단검 한 자루가 눈앞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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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고통에서 비롯한 발작적인 충동. 나는 대번에 그것을 쥐었다. 죽으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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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고통도 끝난다! 이 간단한 방법을 내가 왜 모르고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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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 흐하, 흐흐흐흐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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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서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나는 단검을 움켜쥐고, 대번에 그것을 내 목에 찔러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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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까 이 씨발럼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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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고, 저 멀리 집어던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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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검을 집어던지고 텅 빈 손으로 내 얼굴을 마구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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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악! 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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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을 때리고, 지면도 때리고,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부수면서 고통에 몸부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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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곤죽이 되는 고통이 뭐 별거라고, 내가 왜 목숨을 포기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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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빌어처먹을 탑에게 받아내야 할 대가가 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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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쭉빵빵한 다크 엘프랑 침대에서 뒹굴어야 한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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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엄마를, 엘레노어를 괴롭게 한 값을 치르게 해야 한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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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후우…후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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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심호흡했다. 시야 너머에 뭔가 커다란 형체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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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이 빵빵한 소머리 괴물, 16층의 주요 몬스터 중 하나인 [미노타우로스 워리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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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꽤 많다. 내가 발버둥치며 지르는 소리와,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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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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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후우…좋아,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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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만히 고통에 몸부림치고만 있으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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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인 위기감이 신체에 활력을 돌게 만든다. 역시 나는 이런 게 잘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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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둘로 쪼개고 용암을 퍼붓는 것 같은 고통도, 흘러넘치는 피눈물도, 무엇도 멈추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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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눈앞에 두고, 나는 침착함을 되찾고 검과 방패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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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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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내지르며 먼저 몬스터들 사이로 뛰어들어간다. 미친 듯이 무기를 휘두르며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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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면 싸울수록 고통은 잊혀간다. 활력과 침착함을 되찾아가며, 적을 베어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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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에 드문드문 푸른 알림창이 떠올랐으나, 신경 쓰지 않고 적만을 바라보며 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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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느새 미노타우로스 수십 마리를 발밑에 눕혔을 때쯤, 정신이 나갈 것만 같던 고통은 가라앉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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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오염 내성 Lv. 33을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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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에는 어처구니없는 레벨의 새로운 내성 스킬이 등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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