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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측
자유낙하로 가속하는 속도에는 결국 한계가 있다던가.
맨몸으로 음속까지도 감당할 수 있는 내가, 고작 자유낙하의 충격 정도로 뻗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둘기를 붙잡고 지면을 향해 추락하던 도중,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부딪히며 그만 생각이 바뀌었다.
-콰광!
“끄억!”
그리고 잠시 기억이 끊겼다. 9층의 뱀용에게 처박혔을 때랑 비슷한 감각이었다.
그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내구가 올랐음에도 이런 충격이라니, 대체 뭐에 부딪힌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보니, 낙하의 충격으로 만들어진 자리에 달라붙은 핏덩이가 보였다.
어우, 완전히 곤죽이 다 됐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꼬락서니지만, 군데군데 붙어 있는 깃털과 흩어진 조각을 보면 비둘기가 틀림없겠지.
인벤토리와 상태창을 열어 보니 처치 보상도 제대로 들어온 듯하고, 제대로 죽은 모양이다.
떨어진 지 조금 시간이 지난 모양, 아마 지금쯤이면 천계도 한창 붕괴 중이거나- 이미 다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내가 문제다. 당장 나부터 뭘 어째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여기가 어디래.”
인터페이스에는 맵 이름도 제대로 뜨지 않고, 지도에도 [???] 라고만 표시되고 있다.
15층의 무대인 천계를 완전히 벗어난 탓이겠지, 주변을 둘러봐도 인간의 흔적 같은 건 전혀 없다.
아, 혹시 내가 추락 도중에 부딪혔던 벽이 그건가?
각 층 지역의 맨 끝자락에 존재한다는 끝의 장벽.
파괴 불가 오브젝트 판정이 붙은 투명한 막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방금 부딪히면서 파괴된 거 아닌가?
각 층마다 맵의 넓이는 천차만별이라고 들었는데, 15층 천계는 정말 천계까지만 무대로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 천신을 처치해 천족들을 땅으로 돌려보낸다는 내 선택은 시스템이 상정하지 못한 길이었던 건가.
만약 그렇다면, 지금쯤 천족 NPC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무사히 지상으로 내려왔을까? 자아는 유지하고 있는 걸까?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내가 저지른 일의 결과가 궁금하다. 나는 제대로 그들을 해방한 걸까.
아, 근데 이러면 15층 미궁은 어떻게 되는 거지?
생각보니까, 미궁 지역도 천계에 포함된 건데- 천계가 무너졌으면 그것도 없어진 거 아닌가.
그러면 클리어는 어떻게 되는 거지, 전이문은 어떻게 되는 거고.
설마 여기서 영영 갇혀 지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거 남 걱정할 때가 아니네.
일단 어디로든 움직여서 사람을 찾아봐야겠다. 대충 방향 하나 골라서 쭉 가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아 맞다, 칼레온.”
생각해보니까, 검령이 천족들이랑 같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응?”
칼레온에게 마킹해 둔 마력을 탐색하려던 순간,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뭐지, 거리가 얼마나 멀어졌길래 마력이 아예 감지가 안 되는 거지. 대체 얼마나 떨어진 거야.
알고 보니, 칼레온은 무슨 판정이 된 건지 내 인벤토리에 혼자 돌아와 있었다.
칼레온의 마력을 쫓아서 이동할 셈이었는데, 곤란하게 됐네.
그리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이던 중, 돌연 눈앞이 깜깜해졌다.
- 아 진짜, 뭐 이런 게 다 있어?
[상위 존재 : GM ■■■가 당신의 시야를 차단합니다.]
이게 뭐야, 상위 존재? 시야 차단?
전신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싸늘한 감각이 몸을 감싼다.
“씨, 씨발!”
나는 거의 발작하듯 마력강화를 전개했다. 전신의 마력을 모조리 밖으로 토해낼 기세로.
하지만 아무리 마력을 일으켜 저항해도 시야는 돌아올 생각을 하질 않는다. 제대로 저항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숨쉬는 법조차 잊고 시야를 가린 무엇인지 모르는 것에게 저항하던 중, 아주 살짝- 살짝 무언가 보였다.
[축하합니다. 시련의 탑 15층을 최초로 클리어하셨습니다.]
다음 순간, 어둡게 물들었던 시야가 한순간에 되돌아왔다.
펼쳐진 것은 옅게 햇볕이 내리쬐는 해변가, 16층의 초반 부분이었다.
[클리어 보상 : ‘경험치’, ‘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최초 클리어 보상 : ‘천신의 축복을 받은 치마’ 를 획득하셨습니다.]
[최대 기여도 보상 : ‘영광의 축복’, ‘경험치’ 를 획득하셨습니다.]
[최후의 일격 보상 : ‘액티브 스킬 - 정화’를 획득하셨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15층 보스 클리어 판정과 함께, 시야를 가리던 어둠 너머를 엿보았던 내 눈은.
“크, 아악.”
불타는 듯한 통증과 함께 피눈물을 쏟아내었다.
**
생각하고 확인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칼레온이 혼자 인벤토리로 돌아온 경위, 15층이 멋대로 클리어 된 이유, 획득한 여러 보상들.
파괴 불가 판정인 끝의 장벽이 파괴되었던 일, 그리고 상위 존재라는 알 수 없는 것의 개입.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사소하게 느껴질 만큼, 내게 찾아온 고통은 지옥을 연상시켰다.
“아아아아악!!”
눈이 안쪽으로 오그라들어 뇌를 찌른다. 그리고 머리가 흐물흐물하게 녹아 바깥으로 흐른다.
뭐지, 이게 대체 뭐지, 이게 대체 무슨,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으허억, 커헉, 끄아악……!”
치솟는 구역감에 무언가를 한 바가지 토해냈다.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이 아니라, 피를 토해냈다.
그리고, 씨발, 눈이, 얼굴이 통째로 축축하다. 뱉어낸 것 외에도 피가 흐르고 있다.
눈에서, 귀에서, 코에서,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흘러넘친다.
흘러넘치는 피가 모두 용암처럼 느껴진다. 진짜 용암도 그냥 버틸 수 있는데, 뜨겁다.
“씨바, 씨바악! 개 같은, 아악, 끄으, 그그극!”
바닥에서 마구잡이로 뒹굴며 손에 잡히는 것들을 전부 움켜쥐었다. 모래, 돌, 그리고 내 몸뚱이.
-뿌드득!
고통을 견디기 위해 부여잡은 어깨가 내 악력에 의해 일그러지며 또 피를 흘려대었다.
뇌가, 누가 내 뇌에다가 끓는 물을 붓고 휘젓는 느낌이다! 그게 씨발 무슨 느낌인지 알 리가 없는데도!
인벤토리를 마구잡이로 뒤진다. 도움이 될 만한 포션이란 포션은 전부 꺼낸다.
일일히 병을 따고 마시는 것도 사치다. 나는 포션을 병째로 입 안에 넣고 그냥 씹어 삼켰다.
-으적, 으적!
하지만 어떤 포션도 내 상태를 낫게 할 수 없었다. 스킬, 스킬은 뭔가 없을까.
조금 전에 얻었던 정화 스킬이 눈에 들어왔다. 사용법도 효과도 모르는 채로 일단 사용했다.
하지만 아무 효과가, 아니, 이상하다. 마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MP : 0/790
MP 수치가 조금도 남지 않고 동나 있었다. 대체 뭘 했다고 마력이 완전히 바닥난 거지?
기억나는 건 하나다. 시야 차단에서 벗어나려고 발작적으로 마력강화를 써서 날뛴 것, 고작 그거 하나.
아주 잠깐 차단된 시야 너머를 엿본 것 하나만으로, 마력이 완전히 소진되고 말았다.
젠장, 씨발, 이게 말이 돼? 뭔가, 뭔가 다른 방법은.
-툭.
무작정 인벤토리를 뒤지며 아이템을 꺼내던 중, 단검 한 자루가 눈앞에 떨어졌다.
어마어마한 고통에서 비롯한 발작적인 충동. 나는 대번에 그것을 쥐었다. 죽으면 끝난다.
죽으면 고통도 끝난다! 이 간단한 방법을 내가 왜 모르고 있었는지!
“흐, 흐하, 흐흐흐흐하하!”
기뻐서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나는 단검을 움켜쥐고, 대번에 그것을 내 목에 찔러넣-
“좆까 이 씨발럼아아아아아악!!”
-지 않고, 저 멀리 집어던져 버렸다.
**
단검을 집어던지고 텅 빈 손으로 내 얼굴을 마구 때렸다.
“아아악! 썅!”
내 얼굴을 때리고, 지면도 때리고,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부수면서 고통에 몸부림쳤다.
뇌가 곤죽이 되는 고통이 뭐 별거라고, 내가 왜 목숨을 포기해야 하는데?
나는 이 빌어처먹을 탑에게 받아내야 할 대가가 있단 말이다.
쭉쭉빵빵한 다크 엘프랑 침대에서 뒹굴어야 한단 말이다.
나를, 엄마를, 엘레노어를 괴롭게 한 값을 치르게 해야 한단 말이다.
“후우…후우…후우우……!”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심호흡했다. 시야 너머에 뭔가 커다란 형체가 들어왔다.
근육이 빵빵한 소머리 괴물, 16층의 주요 몬스터 중 하나인 [미노타우로스 워리어]다.
숫자가 꽤 많다. 내가 발버둥치며 지르는 소리와,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온 것 같다.
마침 잘 됐다.
“허억, 후우…좋아, 좋다고.”
이대로 가만히 고통에 몸부림치고만 있으면 죽는다.
직관적인 위기감이 신체에 활력을 돌게 만든다. 역시 나는 이런 게 잘 맞아.
머리를 둘로 쪼개고 용암을 퍼붓는 것 같은 고통도, 흘러넘치는 피눈물도, 무엇도 멈추지 않았지만.
적을 눈앞에 두고, 나는 침착함을 되찾고 검과 방패를 꺼내 들었다.
“아아아아아!!”
소리를 내지르며 먼저 몬스터들 사이로 뛰어들어간다. 미친 듯이 무기를 휘두르며 싸운다.
싸우면 싸울수록 고통은 잊혀간다. 활력과 침착함을 되찾아가며, 적을 베어넘긴다.
시야에 드문드문 푸른 알림창이 떠올랐으나, 신경 쓰지 않고 적만을 바라보며 벤다.
그렇게 어느새 미노타우로스 수십 마리를 발밑에 눕혔을 때쯤, 정신이 나갈 것만 같던 고통은 가라앉았고.
[정신 오염 내성 Lv. 33을 획득하셨습니다.]
내 상태창에는 어처구니없는 레벨의 새로운 내성 스킬이 등록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