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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대죄를 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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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전투는 어느 정도 투닥거리는 맛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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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스탯과 스킬 성능을 바탕으로 찍어누르는 싸움은 정신을 해이해지게 만드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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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층의 랭커인 최길현만 해도, 실전 감각이라고는 전혀 없어서 창기사라고 부르기에도 창피한 수준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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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꼴이 되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어떤 수단으로든 감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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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층에서는 마력강화를 자체 봉인하고 전투하는 것으로 감각을 유지하고자 했지만, 역시 좀 부족함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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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스탯이 토막 난 상태에서 기량을 발휘해 싸우니, 훨씬 더 팽팽하게 감이 유지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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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족들은 아무래도 너무 힘으로만 찍어누르려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기량 싸움을 할 기회는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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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 한참 느슨한 상태긴 하지만, 이 정도면 몸풀기로는 썩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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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허억……어떻게, 지상의 인간이……이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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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엎어져 버르적거리던 아드리엘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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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피엘을 쓰러트린 이후, 아드리엘은 혼자서 열심히 싸웠지만- 당연히 나를 이길 수 있을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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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잴 것 없이 모든 화살을 피해낸 다음 거리를 좁혀, 명치를 존나 쎄게 때려줬더니 이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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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천족들보다는 월등히 강한 모양이지만, 그래 봤자 결국 15층 수준이라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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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내 스탯이 반 토막 난 상태라 싸움이 성립되기라도 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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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층 마족들은 마왕급 개체도 내 주먹 한 방에 뼈까지 으스러지곤 했으니까. 얘네 수준으로는 뻔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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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희 얼마나 강한 거냐. 같은 신관 중에서는 어느 정도로 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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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리에 쪼그려 앉아, 비척거리는 로피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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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알려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정한 자여, 당신에게 천벌이 내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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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족들은 험한 말도 쉽게 못 한다더니, 표정만 살벌하지 하나도 안 무서운 경고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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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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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대답이 돌아올 거란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포션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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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로피엘은 몸을 움찔거리더니 안색을 창백하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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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쫄아, 누가 뭐 고문이라도 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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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이야 임마,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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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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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포션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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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병을 들이밀자, 로피엘은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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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물을 의심하는 건가 싶어서 눈앞에서 내가 마시는 모습도 보여줬지만, 그럼에도 계속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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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짜 독극물이었어도 나한테는 안 통해서 이런 시늉을 하는 의미는 없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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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걸 알고 저러는 것 같지는 않다. 설마 인간의 물건이라고 피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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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힘을 쓰게 만드는구만, 가만있어. 입 벌려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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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읏, 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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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가만히, 이빨 치우고. 더 다치고 싶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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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억지로 입에 포션병을 처박아 삼키게 했다. 아마 이 정도면 금방 회복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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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들은 나를 중추로 안내해 줘야 한다. 그리고 애초부터 죽일 생각도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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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드리엘을 치유하고, 다른 곳에 쓰러져 있는 로피엘에게도 포션을 억지로 퍼부어 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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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니, 잠시 내버려뒀던 아드리엘은 뭔 궁상인지- 제 어깨를 감싸 안고 뚝뚝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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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으윽……으흐흑……지상의 인간에게, 더럽혀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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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시발, 살려줬더니 뭐 하는 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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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존나 이상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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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는 사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마인드가 열린 애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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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엘은 무슨 성범죄라도 당한 것처럼 오열하며 울었고, 깨어난 로피엘은 발작하듯 내게 덤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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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로피엘은 다시 처맞아 반죽음이 된 채 구름에 처박혔고, 아드리엘은 오열하다 못해 자결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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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 지랄을 해라. 그깟 포션 좀 먹었다고 아주 염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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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놓으세요! 나, 나는 더 이상……이런 몸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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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몸에 티끌 하나 안 묻었어, 미친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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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서러워하길래 중간까지는 좀 안쓰럽다고도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흘러가니 이젠 그냥 질릴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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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도가 따로 없구만, 세뇌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그러니 다른 탑의 15층이 다 그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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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 느그 신은 그냥 비둘기라고 말하면 반발만 심해지겠지.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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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재주로는 뭐라고 해도 안 통할 텐데, 어쩔 수 없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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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서진혁#2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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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시발 이거 어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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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층 진행 중인데 신관년 존나 울면서 자살하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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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중추로 데려간다길래 한번 싸워본다음 포션 먹여서 살려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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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먹으려 하길래 억지로 먹였더니 더럽혀졌다고 개지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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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 단단히 당한거같은데 얘 설득하려면 어떡해야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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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대본좀 짜주셈 급함 나 중추가야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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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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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는 역시 커뮤니티지. 내 등반에 관심이 있는 망령들은 한둘이 아니니 분명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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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글을 올린 지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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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좀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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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시발련 우는거봐라 존나꼴리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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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좋아하는 축구선수 이름 빨리 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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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줘패놓고 억지로 약먹이면 나같아도 울겠다 미친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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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진혁이는 싸패라 그런거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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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족눈나 짤 이게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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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도움을 받으려면 마땅한 ‘성의’가 있어야하지 않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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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진혁아 형은 많은거 안바란다 딱 다섯장만 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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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이거 ㄹㅇ이다 진혁아 성의표시만 살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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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는거 살짝 반응오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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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진혁게이야 니네 탑에는 왤케 예쁜NPC가 많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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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이새끼 원래 비틱전문 분탕이었잖음 ㅋㅋ 이것도 고도의 비틱인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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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 언제 15층갔음? 존나빠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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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댓글이 달리기까지는, 언제나처럼 한참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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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시간을 들여서 아드리엘을 진정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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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느냐, 나를 중추로 데려가야 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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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을 한참 쏟아내었다. 커뮤니티에서 알려준 대로 말한 거라서, 나도 내가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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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서는 절대 떠올릴 수 없었을 청산유수 같은 말을 내뱉었다는 것만 대충 기억나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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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나를 중추로 이송한 뒤 자살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 전에 천계에 난리가 날 거라서 그건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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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에 가려면……우선 이걸 마시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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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엘은 내게 푸른 빛의 액체가 담긴 병을 들이밀었다. 이게 뭔지는 이미 커뮤니티를 통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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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자에게 걸려 있는 제약을 완화해주는 포션이다. 여기서는 성수라고 부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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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실상은 성수가 아니라 특수한 연금술 포션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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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진짜 성수는 내 인벤토리에도 들어 있다. 그냥 다른 층의 상점에서 살 수 있는 소모품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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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한 자를 천신님이 거하신 곳에 그냥 들여보낼 수 없기에……최소한의 부정을 씻어내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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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엘은 거의 벌벌 떨며 말했다. 나는 얌전히 성수라고 주장하는 포션을 받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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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의 기운이 땅에서 태어난 부정한 자를 거부합니다. 모든 스탯이 저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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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메시지에서 ‘대폭’ 이라는 단어가 빠지고, 그냥 저하된다는 말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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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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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해 보니, 반 토막이 났던 스탯이 1할 정도 회복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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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층은 퀘스트를 진행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원래 스탯을 회복할 수 있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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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으로 미궁 지역에 도전할 때가 되면 모든 스탯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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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퀘스트 라인을 정직하게 따라가면, 히든 보스인 천신에게는 절대 도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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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다른 탑의 천계는 지금도 서서히 최악의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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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럼……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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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드리엘과 로피엘을 따라, 천계의 중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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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의 중추는 거대한 구름으로 둘러싸인 신전 같은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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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천신을 모시고 있는 곳이기에 신전이 맞기도 하다. 그리고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소수의 천족은 모두 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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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많은 신관 중에서도 정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대신관이라는 녀석인데, 나는 곧 그 대신관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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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피엘, 아드리엘, 둘 다 수고 많았습니다. 많이 지친 모양이니,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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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네 쌍이나 달린 대신관은 나를 데려온 두 신관을 물리고, 나와 독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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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인간이여, 그대도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어요. 이제부터는 그대의 죄를 묻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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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관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신전의 중앙으로 안내했다. 천벌이 집행되는 제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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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하늘지기 약취 혐의에 대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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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내가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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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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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라면 복잡한 절차가 있겠지만, 나는 그런 걸 모두 무시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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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내가 했으니까, 질질 끌지 말고 바로 그 천벌이나 내려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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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하는 대신관, 신경 쓰지 않고 인벤토리에서 망치를 꺼낸다. 그대로 뛰어올라 제단을 내려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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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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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요하다는 제단이 초전박살난다. 나는 이어서 쇠구슬을 꺼내 주변으로 흩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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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난장판이 벌어진다. 천계의 중추, 그것도 제단에서의 난동은 이들의 법에 따르면 일급 천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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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급 천벌은 신관에 의해 집행되지 않는다. 천벌의 주체인 천신 본인이 나서서 심판하는 최대의 금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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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일급 심판의 정체는, 천신을 자칭하는 비둘기 괴물에게로의 인신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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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성한 겁니까, 지상의 인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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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 대신관은 나를 천신에게 데려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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