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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1 KiB

  1. 대죄를 범하다

역시 전투는 어느 정도 투닥거리는 맛이 있어야 한다.

압도적인 스탯과 스킬 성능을 바탕으로 찍어누르는 싸움은 정신을 해이해지게 만드는 법이다.

25층의 랭커인 최길현만 해도, 실전 감각이라고는 전혀 없어서 창기사라고 부르기에도 창피한 수준이었으니.

나도 그 꼴이 되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어떤 수단으로든 감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14층에서는 마력강화를 자체 봉인하고 전투하는 것으로 감각을 유지하고자 했지만, 역시 좀 부족함이 있었는데.

이렇게 스탯이 토막 난 상태에서 기량을 발휘해 싸우니, 훨씬 더 팽팽하게 감이 유지되는 것 같다.

마족들은 아무래도 너무 힘으로만 찍어누르려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기량 싸움을 할 기회는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아직 한참 느슨한 상태긴 하지만, 이 정도면 몸풀기로는 썩 괜찮았다.

“헉, 허억……어떻게, 지상의 인간이……이토록……”

바닥에 엎어져 버르적거리던 아드리엘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로피엘을 쓰러트린 이후, 아드리엘은 혼자서 열심히 싸웠지만- 당연히 나를 이길 수 있을리는 없었다.

길게 잴 것 없이 모든 화살을 피해낸 다음 거리를 좁혀, 명치를 존나 쎄게 때려줬더니 이 꼴이다.

보통 천족들보다는 월등히 강한 모양이지만, 그래 봤자 결국 15층 수준이라는 거겠지.

그나마 내 스탯이 반 토막 난 상태라 싸움이 성립되기라도 한 거다.

14층 마족들은 마왕급 개체도 내 주먹 한 방에 뼈까지 으스러지곤 했으니까. 얘네 수준으로는 뻔하지 뭐.

“야, 너희 얼마나 강한 거냐. 같은 신관 중에서는 어느 정도로 센 거야?”

나는 자리에 쪼그려 앉아, 비척거리는 로피엘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알려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정한 자여, 당신에게 천벌이 내릴 겁니다!”

천족들은 험한 말도 쉽게 못 한다더니, 표정만 살벌하지 하나도 안 무서운 경고로군.

“내리라지, 뭐.”

어차피 대답이 돌아올 거란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포션을 꺼냈다.

그러자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로피엘은 몸을 움찔거리더니 안색을 창백하게 물들였다.

왜 이렇게 쫄아, 누가 뭐 고문이라도 한대?

“포션이야 임마, 마셔.”

“으읏.”

“진짜 포션이라니까?”

포션병을 들이밀자, 로피엘은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돌렸다.

내용물을 의심하는 건가 싶어서 눈앞에서 내가 마시는 모습도 보여줬지만, 그럼에도 계속 거부한다.

사실 진짜 독극물이었어도 나한테는 안 통해서 이런 시늉을 하는 의미는 없긴 하다.

하지만 그걸 알고 저러는 것 같지는 않다. 설마 인간의 물건이라고 피하는 건가.

“결국 힘을 쓰게 만드는구만, 가만있어. 입 벌려 새끼야.”

“읏, 으읍!”

“어허, 가만히, 이빨 치우고. 더 다치고 싶냐?”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입에 포션병을 처박아 삼키게 했다. 아마 이 정도면 금방 회복되겠지.

이 녀석들은 나를 중추로 안내해 줘야 한다. 그리고 애초부터 죽일 생각도 없었고.

그렇게 아드리엘을 치유하고, 다른 곳에 쓰러져 있는 로피엘에게도 포션을 억지로 퍼부어 치료했다.

그러고 나니, 잠시 내버려뒀던 아드리엘은 뭔 궁상인지- 제 어깨를 감싸 안고 뚝뚝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윽, 으윽……으흐흑……지상의 인간에게, 더럽혀졌어……”

아니 시발, 살려줬더니 뭐 하는 짓이야.

그림이 존나 이상하잖아.

**

앤젤라는 사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마인드가 열린 애였던 걸까.

아드리엘은 무슨 성범죄라도 당한 것처럼 오열하며 울었고, 깨어난 로피엘은 발작하듯 내게 덤벼들었다.

이후 로피엘은 다시 처맞아 반죽음이 된 채 구름에 처박혔고, 아드리엘은 오열하다 못해 자결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얼씨구, 지랄을 해라. 그깟 포션 좀 먹었다고 아주 염병을……”

“이거 놓으세요! 나, 나는 더 이상……이런 몸으로는……!”

“네 몸에 티끌 하나 안 묻었어, 미친년아!”

너무 서러워하길래 중간까지는 좀 안쓰럽다고도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흘러가니 이젠 그냥 질릴 지경이다.

광신도가 따로 없구만, 세뇌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그러니 다른 탑의 15층이 다 그 모양이지.

이런 상황에 느그 신은 그냥 비둘기라고 말하면 반발만 심해지겠지.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내 말재주로는 뭐라고 해도 안 통할 텐데, 어쩔 수 없구만.

[작성자 : 서진혁#2661]

[제목 : 시발 이거 어떡함?]

15층 진행 중인데 신관년 존나 울면서 자살하려함

나 중추로 데려간다길래 한번 싸워본다음 포션 먹여서 살려줬거든

안 먹으려 하길래 억지로 먹였더니 더럽혀졌다고 개지랄함

세뇌 단단히 당한거같은데 얘 설득하려면 어떡해야하냐

아무나 대본좀 짜주셈 급함 나 중추가야됨

(사진)

이럴 때는 역시 커뮤니티지. 내 등반에 관심이 있는 망령들은 한둘이 아니니 분명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예상대로 글을 올린 지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 오좀꼴

  • 와 시발련 우는거봐라 존나꼴리네 ㅋㅋㅋㅋ

  • ㄴ 좋아하는 축구선수 이름 빨리 급함

  • 줘패놓고 억지로 약먹이면 나같아도 울겠다 미친놈아

  • ㄴ 진혁이는 싸패라 그런거 모른다

  • 천족눈나 짤 이게다임?

  • ㄴ 도움을 받으려면 마땅한 ‘성의’가 있어야하지 않겠냐?

  • ㄴ 진혁아 형은 많은거 안바란다 딱 다섯장만 풀자

  • ㄴ 이거 ㄹㅇ이다 진혁아 성의표시만 살짝 하자

  • 우는거 살짝 반응오네 아

  • 근데 진혁게이야 니네 탑에는 왤케 예쁜NPC가 많냐

  • ㄴ 이새끼 원래 비틱전문 분탕이었잖음 ㅋㅋ 이것도 고도의 비틱인거임

  • 얘 언제 15층갔음? 존나빠르네

물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댓글이 달리기까지는, 언제나처럼 한참 걸렸다.

**

어떻게든 시간을 들여서 아드리엘을 진정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느냐, 나를 중추로 데려가야 하지 않느냐.

그런 말을 한참 쏟아내었다. 커뮤니티에서 알려준 대로 말한 거라서, 나도 내가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나 혼자서는 절대 떠올릴 수 없었을 청산유수 같은 말을 내뱉었다는 것만 대충 기억나는 정도.

이러면 나를 중추로 이송한 뒤 자살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 전에 천계에 난리가 날 거라서 그건 상관없다.

“중추에 가려면……우선 이걸 마시셔야 합니다……”

아드리엘은 내게 푸른 빛의 액체가 담긴 병을 들이밀었다. 이게 뭔지는 이미 커뮤니티를 통해 알고 있었다.

도전자에게 걸려 있는 제약을 완화해주는 포션이다. 여기서는 성수라고 부르는 것 같다.

물론 실상은 성수가 아니라 특수한 연금술 포션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에 진짜 성수는 내 인벤토리에도 들어 있다. 그냥 다른 층의 상점에서 살 수 있는 소모품이거든.

“부정한 자를 천신님이 거하신 곳에 그냥 들여보낼 수 없기에……최소한의 부정을 씻어내기 위함입니다.”

아드리엘은 거의 벌벌 떨며 말했다. 나는 얌전히 성수라고 주장하는 포션을 받아 마셨다.

[천계의 기운이 땅에서 태어난 부정한 자를 거부합니다. 모든 스탯이 저하됩니다.]

시스템 메시지에서 ‘대폭’ 이라는 단어가 빠지고, 그냥 저하된다는 말로 바뀌었다.

“상태창.”

확인해 보니, 반 토막이 났던 스탯이 1할 정도 회복되어 있었다.

15층은 퀘스트를 진행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원래 스탯을 회복할 수 있는 구조다.

최종적으로 미궁 지역에 도전할 때가 되면 모든 스탯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는 방식.

하지만 이렇게 퀘스트 라인을 정직하게 따라가면, 히든 보스인 천신에게는 절대 도달할 수 없다.

그렇기에 다른 탑의 천계는 지금도 서서히 최악의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그럼……가시죠.”

나는 아드리엘과 로피엘을 따라, 천계의 중추로 향했다.

**

천계의 중추는 거대한 구름으로 둘러싸인 신전 같은 장소다.

실제로 천신을 모시고 있는 곳이기에 신전이 맞기도 하다. 그리고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소수의 천족은 모두 신관이다.

그 수많은 신관 중에서도 정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대신관이라는 녀석인데, 나는 곧 그 대신관과 마주했다.

“로피엘, 아드리엘, 둘 다 수고 많았습니다. 많이 지친 모양이니,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해요.”

날개가 네 쌍이나 달린 대신관은 나를 데려온 두 신관을 물리고, 나와 독대했다.

“지상의 인간이여, 그대도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어요. 이제부터는 그대의 죄를 묻겠습니다.”

대신관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신전의 중앙으로 안내했다. 천벌이 집행되는 제단이다.

“우선, 하늘지기 약취 혐의에 대해서는……”

“어, 내가 했어.”

“예?”

원래대로라면 복잡한 절차가 있겠지만, 나는 그런 걸 모두 무시하고 말했다.

“다 내가 했으니까, 질질 끌지 말고 바로 그 천벌이나 내려 보라고.”

당황하는 대신관, 신경 쓰지 않고 인벤토리에서 망치를 꺼낸다. 그대로 뛰어올라 제단을 내려찍는다.

-콰앙!

그 중요하다는 제단이 초전박살난다. 나는 이어서 쇠구슬을 꺼내 주변으로 흩뿌렸다.

순식간에 난장판이 벌어진다. 천계의 중추, 그것도 제단에서의 난동은 이들의 법에 따르면 일급 천벌감.

일급 천벌은 신관에 의해 집행되지 않는다. 천벌의 주체인 천신 본인이 나서서 심판하는 최대의 금기이기에.

그리고 그 일급 심판의 정체는, 천신을 자칭하는 비둘기 괴물에게로의 인신공양.

“실성한 겁니까, 지상의 인간이여……?”

이제 저 대신관은 나를 천신에게 데려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