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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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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대해 알려주기로 하긴 했지만, 사실 이 15층의 지상이 어떤 환경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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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은 알고 있는데, 진짜 대충밖에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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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가 흥미를 갖고 있는 건 단순히 지상이 아니라, 천계가 아닌 다른 세상의 일이니까. 그걸 들려주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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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가 살던 장소밖에는 잘 몰라, 지상이라고는 해도……나는 좀 특별한 곳에서 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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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앤젤라와 나란히 좁다란 의자에 앉아서,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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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거쳐온 시련의 탑 세계는 물론이요, 다른 도전자들에게서 들었던 이런저런 썰까지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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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탑 세계는 층별로 완전히 천차만별의 환경을 자랑하지만, 의외로 큰 법칙 같은 것에는 서로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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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 간의 차이라던지, 마법의 체계라든지, 그런 면에서는 모두 비슷하기에- 이야기를 좀 섞어 놔도 아무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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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재주라고는 좀처럼 없는 나지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는 건 그럭저럭 잘한다. 엘레노어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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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이 들끓는 대지…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소금물…그런 게 실제로 있는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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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는 화산이니 바다니 하는 것들조차 실제로 본 적이 없는 모양이라, 내 모든 이야기를 무척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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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으로 통일되지 않은 색색깔인 의복을 사람들이 입고 다닌다는 별것도 아닌 점까지, 듣고 놀랄 정도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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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온실 속의 화초가 따로 없다. 그럼 이쯤에서 슬슬 그걸 꺼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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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늦었는데, 배고프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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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연스럽게 운을 틔웠다. 현재 시각은 조금 늦은 저녁, 하지만 서로 식사는 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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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의 유혹에 넘어가기 딱 좋은 시간이라 이거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준비해 둔 음식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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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릴 대로 물려 꼴 보기도 싫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겐 맛있는 간식류인 화이트롤을 비롯한 빵 계열 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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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나잇대 여자들은 빵이니 케이크니 하는 것들에 환장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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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뭐야? 지상의 음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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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달달한 간식거리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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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필요 없어, 우리는 지상의 음식 같은 걸 먹으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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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안다. 중죄까지는 아니지만, 천족에게 지상의 부정한 물건은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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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지상의 음식은 어떻겠어. 먹는 것만으로도 양심이 쿡쿡 찔리겠지. 하지만 원래 간식은 그런 맛에 먹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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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기 전인데, 이런 걸로 배를 채워도 되나? 시간이 늦었는데, 이런 걸 먹으면 살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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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하다 결국 손을 대 버린 순간에 몰려오는 배덕감, 그게 바로 간식의 묘미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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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때, 천신이 고작 이런 걸로 벌을 내리겠어? 특별히 금지된 것도 아니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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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는 아니지만, 안 된단 말이야. 부정이 옮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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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치고는 한번 먹어보고 싶은 눈치인데, 딱 맛만 보는 건 어때? 한 입 정도는 괜찮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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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말하며, 내가 꺼낸 간식거리 중 그나마 덜 단것 하나를 입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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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구름처럼 부드러운 표면을 이빨로 짓뭉개니 흘러나오는 달콤한 크림, 거기에 섞인 새콤한 마멀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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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봤던 요리 만화를 흉내 내며 일부러 과장된 리액션과 맛 묘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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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도 지금 내가 뭐라고 떠드는건지 잘 모른다. 되는대로 지껄이고 있을 뿐이지만, 앤젤라에겐 다르게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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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꾸역꾸역 간식거리를 먹으며,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특별히 식문화 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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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가 참지 못하고 내가 건넨 간식을 한 입 베어 물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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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닷새가 지나고, 나와 앤젤라 사이의 거리감은 무척이나 빠르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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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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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지기의 쉼터에서 귀가한 앤젤라가 그렇게 말하자, 천족 부부는 언제나처럼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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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니? 오늘 저녁은 앤젤라가 좋아하는 그라탕이란다. 기도드리고 바로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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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앤젤라가 특별히 좋아하는 요리를 한 모양이었지만, 앤젤라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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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엄마…나 오늘은 됐어. 이따가 혼자 따로 먹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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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요즘 너무 식사에 소홀한 거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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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아니야. 그냥 조금, 속이 안 좋아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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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조용히 들어와 있던 나를 살짝 흘겨보았다. 원망하는 눈치였지만, 뭐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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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은 네가 한 거야. 미운 듯 쳐다봐도 나는 아무것도 강제하지 않았다고. 내 책임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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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는 그대로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인 안젤로스 여사가 나를 향해 걱정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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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요즘 왜 저러는지……전사님은 혹시 아는 게 있으신가요? 요즘 앤젤라의 쉼터를 자주 찾으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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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당연하지만 거짓말이다, 왜 저러는지 너무나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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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가 끼니를 거르는 것은, 이미 직전에 배부르게 다른 것을 먹고 왔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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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벤토리에 보존해 둔 수많은 음식을 맛본 앤젤라는, 이제 천계의 음식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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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난방과 냉방을 동시에 틀고 떡볶이를 조진 다음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한 통을 해치우고 온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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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잇대의 여자애라 그런지, 이런 타락한 행위에 너무나 쉽게 넘어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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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는 아직 ‘이러면 안 되는데’ 라며 자신의 호기심과 욕망을 부정하고 있지만……아마 그것도 조만간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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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조금, 아주 조금의 선만 지나면- 그 잘났다는 천벌이 내려올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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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쉽게도, 그 단계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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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의 입에서 ‘인생 절반 손해 봤어’ 같은 말이 나오는 걸 꼭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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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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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는 일부러 진행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쯤 되면 신관이 먼저 모습을 보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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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이라는 놈은 지상에서 온 인간이 한시라도 빠르게 ‘순례’를 마쳐 주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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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 귀한 딸을 타락시켜놓고 훌쩍 떠나버리는 것도, 완전 금태양 포지션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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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조용히 [암영]을 사용해 몸을 숨기고 앤젤라의 쉼터로 잠입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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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오늘은 너랑 이야기 안 할 거야. 지상의 부정한 음식에도 손대지 않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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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기를 기다렸던 주제에 센 척을 하는 앤젤라. 늘 이런 반응이었던지라 이젠 신경도 안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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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러다가도 조금만 있으면 금방 태도를 바꿀 테니까. 굳이 내가 먼저 유혹할 필요까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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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가볍게, 운만 띄워 주면 되거든. 그것도 조만간 끝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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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진짜야! 신관님이 널 보러 방문하신다고 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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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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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하지 마! 신관님에게 그동안 있던 일을 들키면, 정말 천벌이 내질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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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며칠 동안 천벌 같은 건 내리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아직 믿지 못하는 것 같다. 그야 그럴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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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천신이 정한 금기와, 그 금기를 어겼을 때 찾아오는 천벌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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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벌이 내릴 거였으면 진작 내렸겠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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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는 내 말에 움찔했다. 내심 천벌이 내리기는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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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벌은 안 내려, 신관이니 천신이니 하는 것들이 우리가 뭘 하는지 알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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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호언장담하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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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미 들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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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닷새 동안 딱히 앤젤라와 노닥거리기만 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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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이 커뮤니티를 통해 15층의 정보 수집을 하는 한편, 히든 보스와의 싸움을 위한 준비도 착실하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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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련도 마찬가지. 착실하게 몸을 혹사해 스탯을 늘리는 한편으로, 마력 운용을 위한 훈련도 계속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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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 가장 주가 된 것은, 마력감지의 정확도와 범위를 넓히기 위한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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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스탯 저하는 그렇다 치지만, 마력감지가 약화된 것만큼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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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틀 전부터 모종의 능력으로 여길 감시하고 있었을 거야. 천신 본인일 수도 있고, 신관일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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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의 천리안도, 신관들이 갖고 있다는 은총도, 그 본질은 그냥 마법에 불과하다. 얼마든지 감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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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거짓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지상의 인간족이 천신님의 은총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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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해, 그 은총이라는 것도 별거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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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정말 천벌 받을 소리를 하는구나! 그러면 안 돼, 신성모독은 중죄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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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앤젤라의 말을 적당히 흘려넘기며, 인벤토리에서 준비해 온 것들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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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종류의 책과 천계에는 없는 간단한 아이템들, 그리고 앤젤라가 좋아하던 간식거리 몇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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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곡차곡 테이블 위에 쌓아서 정리해 뒀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선물 같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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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너 가져, 나중에 도움이 될 거야. 나는 이만 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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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뭔데, 그리고 너는 어딜 간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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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랬잖아. 신관들이 오기로 했다며. 만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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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관들은 나를 천계의 중추로 안내할 거다. 15층에 도착한 모든 도전자가 똑같이 가는 루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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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중추에는 천신이 있다. 도전자들은 15층을 지나고 나서야 정체를 알게 되는 날개 달린 괴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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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느긋하게 진행하고 싶었지만, 신관들이 나를 직접 찾아온 시점에서 더 시간을 끌긴 어렵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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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는 지상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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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가 멸망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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