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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야
지상에 대해 알려주기로 하긴 했지만, 사실 이 15층의 지상이 어떤 환경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대충은 알고 있는데, 진짜 대충밖에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앤젤라가 흥미를 갖고 있는 건 단순히 지상이 아니라, 천계가 아닌 다른 세상의 일이니까. 그걸 들려주면 충분하다.
“나도 내가 살던 장소밖에는 잘 몰라, 지상이라고는 해도……나는 좀 특별한 곳에서 왔거든.”
나는 앤젤라와 나란히 좁다란 의자에 앉아서,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내가 거쳐온 시련의 탑 세계는 물론이요, 다른 도전자들에게서 들었던 이런저런 썰까지 풀어놓았다.
시련의 탑 세계는 층별로 완전히 천차만별의 환경을 자랑하지만, 의외로 큰 법칙 같은 것에는 서로 차이가 없다.
종족 간의 차이라던지, 마법의 체계라든지, 그런 면에서는 모두 비슷하기에- 이야기를 좀 섞어 놔도 아무 문제가 없다.
말재주라고는 좀처럼 없는 나지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는 건 그럭저럭 잘한다. 엘레노어 덕분이다.
“용암이 들끓는 대지…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소금물…그런 게 실제로 있는 거였구나.”
앤젤라는 화산이니 바다니 하는 것들조차 실제로 본 적이 없는 모양이라, 내 모든 이야기를 무척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흰색으로 통일되지 않은 색색깔인 의복을 사람들이 입고 다닌다는 별것도 아닌 점까지, 듣고 놀랄 정도였으니.
아주 온실 속의 화초가 따로 없다. 그럼 이쯤에서 슬슬 그걸 꺼내 볼까.
“시간이 좀 늦었는데, 배고프지 않냐?”
나는 자연스럽게 운을 틔웠다. 현재 시각은 조금 늦은 저녁, 하지만 서로 식사는 하지 않은 상태다.
간식의 유혹에 넘어가기 딱 좋은 시간이라 이거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준비해 둔 음식을 꺼냈다.
나는 물릴 대로 물려 꼴 보기도 싫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겐 맛있는 간식류인 화이트롤을 비롯한 빵 계열 위주.
원래 이 나잇대 여자들은 빵이니 케이크니 하는 것들에 환장하지 않던가.
“이게 다 뭐야? 지상의 음식이야?”
“어, 달달한 간식거리들이지.”
“나는 필요 없어, 우리는 지상의 음식 같은 걸 먹으면 안 돼.”
나도 안다. 중죄까지는 아니지만, 천족에게 지상의 부정한 물건은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하물며 지상의 음식은 어떻겠어. 먹는 것만으로도 양심이 쿡쿡 찔리겠지. 하지만 원래 간식은 그런 맛에 먹는 거다.
밥 먹기 전인데, 이런 걸로 배를 채워도 되나? 시간이 늦었는데, 이런 걸 먹으면 살찌지 않을까?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하다 결국 손을 대 버린 순간에 몰려오는 배덕감, 그게 바로 간식의 묘미 아니겠나.
“뭐 어때, 천신이 고작 이런 걸로 벌을 내리겠어? 특별히 금지된 것도 아니라며?”
“금지는 아니지만, 안 된단 말이야. 부정이 옮는다고!”
“그런 것치고는 한번 먹어보고 싶은 눈치인데, 딱 맛만 보는 건 어때? 한 입 정도는 괜찮잖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내가 꺼낸 간식거리 중 그나마 덜 단것 하나를 입에 넣었다.
“음…구름처럼 부드러운 표면을 이빨로 짓뭉개니 흘러나오는 달콤한 크림, 거기에 섞인 새콤한 마멀레이드……”
예전에 봤던 요리 만화를 흉내 내며 일부러 과장된 리액션과 맛 묘사를 한다.
사실, 나도 지금 내가 뭐라고 떠드는건지 잘 모른다. 되는대로 지껄이고 있을 뿐이지만, 앤젤라에겐 다르게 보이겠지.
그렇게 꾸역꾸역 간식거리를 먹으며,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특별히 식문화 위주로.
앤젤라가 참지 못하고 내가 건넨 간식을 한 입 베어 물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그로부터 닷새가 지나고, 나와 앤젤라 사이의 거리감은 무척이나 빠르게 줄어들었다.
“엄마, 나 왔어……”
하늘지기의 쉼터에서 귀가한 앤젤라가 그렇게 말하자, 천족 부부는 언제나처럼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왔니? 오늘 저녁은 앤젤라가 좋아하는 그라탕이란다. 기도드리고 바로 오렴.”
오늘은 앤젤라가 특별히 좋아하는 요리를 한 모양이었지만, 앤젤라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 엄마…나 오늘은 됐어. 이따가 혼자 따로 먹을게.”
“또? 요즘 너무 식사에 소홀한 거 아니니?”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조금, 속이 안 좋아서 그래.”
앤젤라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조용히 들어와 있던 나를 살짝 흘겨보았다. 원망하는 눈치였지만, 뭐 어쩌랴.
선택은 네가 한 거야. 미운 듯 쳐다봐도 나는 아무것도 강제하지 않았다고. 내 책임 아니지.
앤젤라는 그대로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인 안젤로스 여사가 나를 향해 걱정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딸이 요즘 왜 저러는지……전사님은 혹시 아는 게 있으신가요? 요즘 앤젤라의 쉼터를 자주 찾으시잖아요.”
나는 잘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당연하지만 거짓말이다, 왜 저러는지 너무나 잘 안다.
앤젤라가 끼니를 거르는 것은, 이미 직전에 배부르게 다른 것을 먹고 왔기 때문.
내가 인벤토리에 보존해 둔 수많은 음식을 맛본 앤젤라는, 이제 천계의 음식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오늘도 난방과 냉방을 동시에 틀고 떡볶이를 조진 다음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한 통을 해치우고 온 상태.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잇대의 여자애라 그런지, 이런 타락한 행위에 너무나 쉽게 넘어오고 말았다.
앤젤라는 아직 ‘이러면 안 되는데’ 라며 자신의 호기심과 욕망을 부정하고 있지만……아마 그것도 조만간일거다.
앞으로 조금, 아주 조금의 선만 지나면- 그 잘났다는 천벌이 내려올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쉽게도, 그 단계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것 같다.
앤젤라의 입에서 ‘인생 절반 손해 봤어’ 같은 말이 나오는 걸 꼭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슬슬 오겠지.”
퀘스트는 일부러 진행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쯤 되면 신관이 먼저 모습을 보일 거다.
천신이라는 놈은 지상에서 온 인간이 한시라도 빠르게 ‘순례’를 마쳐 주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남의 집 귀한 딸을 타락시켜놓고 훌쩍 떠나버리는 것도, 완전 금태양 포지션이네.
**
다음 날, 나는 조용히 [암영]을 사용해 몸을 숨기고 앤젤라의 쉼터로 잠입해 들어왔다.
“오, 오늘은 너랑 이야기 안 할 거야. 지상의 부정한 음식에도 손대지 않을 거고……!”
내가 오기를 기다렸던 주제에 센 척을 하는 앤젤라. 늘 이런 반응이었던지라 이젠 신경도 안 쓰인다.
어차피 이러다가도 조금만 있으면 금방 태도를 바꿀 테니까. 굳이 내가 먼저 유혹할 필요까지도 없다.
나는 그냥 가볍게, 운만 띄워 주면 되거든. 그것도 조만간 끝이겠지만.
“오늘은 진짜야! 신관님이 널 보러 방문하신다고 했단 말이야!”
“오, 그래?”
“무시하지 마! 신관님에게 그동안 있던 일을 들키면, 정말 천벌이 내질지도 몰라!”
이미 며칠 동안 천벌 같은 건 내리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아직 믿지 못하는 것 같다. 그야 그럴 테지.
이들에게 천신이 정한 금기와, 그 금기를 어겼을 때 찾아오는 천벌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존재니까.
“천벌이 내릴 거였으면 진작 내렸겠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
앤젤라는 내 말에 움찔했다. 내심 천벌이 내리기는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다.
“천벌은 안 내려, 신관이니 천신이니 하는 것들이 우리가 뭘 하는지 알더라도.”
나는 그렇게 호언장담하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사실, 이미 들켰거든.”
나는 지난 닷새 동안 딱히 앤젤라와 노닥거리기만 한 게 아니다.
틈틈이 커뮤니티를 통해 15층의 정보 수집을 하는 한편, 히든 보스와의 싸움을 위한 준비도 착실하게 하고 있었다.
단련도 마찬가지. 착실하게 몸을 혹사해 스탯을 늘리는 한편으로, 마력 운용을 위한 훈련도 계속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주가 된 것은, 마력감지의 정확도와 범위를 넓히기 위한 훈련.
다른 스탯 저하는 그렇다 치지만, 마력감지가 약화된 것만큼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거든.
“아마 이틀 전부터 모종의 능력으로 여길 감시하고 있었을 거야. 천신 본인일 수도 있고, 신관일 수도 있고.”
앤젤라의 천리안도, 신관들이 갖고 있다는 은총도, 그 본질은 그냥 마법에 불과하다. 얼마든지 감지할 수 있다.
“거, 거짓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지상의 인간족이 천신님의 은총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고?”
“가능해, 그 은총이라는 것도 별거 아니니까.”
“너 정말 천벌 받을 소리를 하는구나! 그러면 안 돼, 신성모독은 중죄란 말이야!”
나는 앤젤라의 말을 적당히 흘려넘기며, 인벤토리에서 준비해 온 것들을 꺼냈다.
몇 종류의 책과 천계에는 없는 간단한 아이템들, 그리고 앤젤라가 좋아하던 간식거리 몇 개.
차곡차곡 테이블 위에 쌓아서 정리해 뒀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선물 같은 거다.
“이건 너 가져, 나중에 도움이 될 거야. 나는 이만 가 보련다.”
“이게 다 뭔데, 그리고 너는 어딜 간다는 건데.”
“네가 그랬잖아. 신관들이 오기로 했다며. 만나러 가야지.”
신관들은 나를 천계의 중추로 안내할 거다. 15층에 도착한 모든 도전자가 똑같이 가는 루트다.
그리고 중추에는 천신이 있다. 도전자들은 15층을 지나고 나서야 정체를 알게 되는 날개 달린 괴물이.
좀 더 느긋하게 진행하고 싶었지만, 신관들이 나를 직접 찾아온 시점에서 더 시간을 끌긴 어렵겠지.
“그럴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는 지상에서 보자.”
천계가 멸망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