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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금기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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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족은 선민의식이 가득한 종족이지만, 그들의 친절 자체는 절대 위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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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더욱 불편한 거지만,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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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서 장기간 체류하기로 마음을 먹어도 이들은 나를 친절하게 손님 대접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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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시스템과 설정상 정말로 장기간 체류하는 건 불가능하지만……아무튼 느긋하게 힘을 키우기에는 좋은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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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온의 힘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고, 이곳의 특수한 환경을 이용하면 단련에도 도움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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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일단은 이곳의 NPC들에게 호감작을 해 둘 필요가 있다. 원래 친절한 사람들이니 모나지 않게만 굴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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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적극적으로 호감을 사는 방법 같은 건 전혀 모르지만, 그것도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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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그만두고 현실로 돌아와서, 쟤는 아까부터 왜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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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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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부부는 요리를 대접하겠다며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딸내미는 종일 나를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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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벽 뒤에 숨어서 감시하듯 보고 있는데……뭐가 하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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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내가 지상에서 온 인간이라는 걸 알자마자 놀라서 도망갔었지, 뭔가 이유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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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있으면 해, 계속 그렇게 보고만 있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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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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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서 먼저 말을 걸어 봤더니, 화들짝 놀라며 벽 뒤로 숨는 앤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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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건 십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데, 하는 짓이 좀 어린애 같다. 천족은 나이를 좀 다르게 먹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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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겁을 먹은 걸 수도 있겠지만, 저 눈빛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건 대충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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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니지만, 저 눈빛만큼은 잘 알아볼 수 있다. 엘레노어가 종종 보여주었던 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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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렇게 궁금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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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호기심이 담긴 눈이다. 마냥 호기심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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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정말로 지상에서 온 인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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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번 더 말을 걸자, 앤젤라는 여전히 벽 뒤에서 쭈뼛거리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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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어떻게 신수님을 쓰러트린 거야? 지상의 부정한 인간은 천계에서 엄청 약해지는데, 너는 엄청 강해 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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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에서 확인해 보니, 천계의 제약은 단순히 스탯 저하만이 아니었다. 듣기로는 고산병이랑 비슷한 느낌이 온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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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괜찮은 듯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호흡도 거칠어지고 시야도 어지러워지며, 귀도 먹먹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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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나도 초반에는 조금이지만 멀미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이제는 적응해서 괜찮아진 상황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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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자들에 천계에서 퀘스트를 진행하지 않고 장기간 체류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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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약해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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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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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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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가 너한테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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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을 씻지 않으면 천계에선 숨도 제대로 못 쉬어, 근데 너는 지금 완전히 멀쩡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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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이 정도로 힘겨워하기에는 내 종합 내성이 너무 굉장해서 말이지. 통합된 내성 중에는 [질식 내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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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미 내성]이나 [실명 내성] 같은 것도 있고, [저주 내성] 같은 것도 작용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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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두 시간 정도는 숨 안 쉬고 버틸 수 있어, 독이랑 용암으로 샤워해도 안 다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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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 스킬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어서, 그냥 체질이 그렇다고 대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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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앤젤라가 하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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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인간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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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그거 참 타당한 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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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는 내 체질에 관한 이야기를 듣더니, 이어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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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추운 건? 얼음에 들어가도 안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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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추운 건 아닌데, 얼어 죽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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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벼락은? 벼락 맞으면 어떤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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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곳에선 얼마나 버티느냐, 벼락을 맞아도 살 수 있느냐, 잠은 얼마나 안 잘 수 있는 거냐, 그런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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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펙을 조사하려고 하는 느낌은 아니고, 그냥 어린 조카가 아무거나 막 물어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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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실부모 사고무친의 가정이라 조카 같은 건 있어본 적이 없긴 하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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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말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아예 지상에 나 같은 인간족이 얼마나 있느냐고 묻기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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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나 말고는 없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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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인간 아닌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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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안 이랬어, 인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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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런 몸으로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건 좀 양심이 없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스스로 할 때도 있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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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여전히 분류상으로는 인간이다. 최상위 랭커나 S급 헌터들 중에는 나보다 더한 인간도 있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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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층 세계의 인간 평균은 한참 뛰어넘었으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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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아까 그건 뭐 하는 거야? 이상한 자세로 눈 감고 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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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뒤에 숨어있던 앤젤라는 이제 나와 꽤 가까운 위치까지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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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그거……아, 명상하고 있었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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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마법사들이 하는 거 말이야? 너 마법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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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는 아니고, 마법사 지망생쯤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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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 층에서 마력감응을 처음 깨우친 이후, 나는 지금도 시간이 날 때면 틈틈이 명상을 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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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 지배]라는 사기급 스킬과 마력강화를 자력으로 깨우쳤지만, 아직 내 마력 운용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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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을 다루는 것 자체는 순조로워도, 그 마력이 흐르는 내 신체 내부의 경로를 완벽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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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 몸에 흘려 넣기에 적합한 마력의 양을 아직도 잘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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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마력강화 이후에 찾아오는 강한 반동은 이것 때문일 거다. 무리하게 강한 마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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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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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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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 이런 것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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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애 놀아주는 기분으로, 가볍게 [집광] 마법을 사용해 빛의 구슬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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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단순하게 빛을 모으는 마법이지만, 그동안 나름대로 많이 쓴 만큼 이제는 간단하게 재주를 부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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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은 빛구슬의 형태를 살짝 바꾸거나, 빛의 색깔을 살짝 바꾸거나 하는 식으로. 마법 무드등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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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신관님들이 부리는 은총의 빛 같아, 아, 아니, 그럴 리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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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하던 앤젤라가 돌연 당황하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신관의 ‘은총의 빛’이란것과 내 힘을 비교한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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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부정한 존재인 내가 사용한 마법과, 신관들이 쓰는 은총을 같은 선상에 놓는 건 신성모독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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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미 이 천계의 배경 설정은 커뮤니티에 낱낱이 파헤쳐져 있다. 그렇기에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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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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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게 아니라, 정말로 같은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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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주방에서의 움직임이 잦아들고- 요리를 완성한 부부가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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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리셨어요, 바로 대접할 테니 이리로……어머 앤젤라, 뭐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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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은 소파에 앉아서 이런저런 물음을 던지던 앤젤라는, 어머니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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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뭐라고 말하려다가,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는 걸 알고 침묵했다. 앤젤라는 바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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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무것도 아니야! 손님이 심심하실까 봐, 말동무 해주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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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니? 우리 앤젤라가 별일이네, 이상한 얘기를 한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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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냥 이것저것……천계에 대해 궁금해하시길래, 대답해 주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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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는 나에게 천계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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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 정도 눈치는 있다. 아마 ‘이상한 얘기’ 라는게 나한테 물었던 것들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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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 설정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아마 지상에 대해 궁금해하는 게 금기시되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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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족들에게 지상은 부정한 땅, 죄인들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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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 흥미를 가지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지, 앤젤라는 그런 쪽에서 요주의 인물일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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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라의 눈빛은 호기심이 가득했지만, 마냥 호기심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아마 본인도 껄끄러워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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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대해 궁금해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계속 궁금해하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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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맞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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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당한 말로 앤젤라의 변명을 거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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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기본적인 지식은 커뮤니티로 이미 습득하기도 했으니, 천계에 대해서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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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을 들어주는 발언에, 앤젤라가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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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잘 모르는 새고기 구이였다. 무슨 과일로 만든 특제 소스를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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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안하게도 딱 그 소스만 빼고 다 입에 잘 맞았다. 티 내지는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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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소스라서 그런지 무척 달았거든. 화이트롤을 매일같이 처먹는 신세라, 단 걸 좋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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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조만간 신관님들이 전사님을 찾아오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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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난 후, 천족 부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신관들에게 연락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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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관들은 이 천계의 경찰이나 군인 같은 존재들이다. 기본적으로 전투능력을 갖추고 있는 천족 중 특히 뛰어난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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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래 봤자 15층 수준에, 엘리트 NPC도 거의 없다고 하니 대단한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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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하늘지기 집안이라, 신수님과 관련된 일이라면 모두 보고하게 되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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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신수님을 공격하는 건 금기지만, 전사님은 지상에서 오신 분이니 책임을 물을 일은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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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님의 목숨을 빼앗은 건 아니기도 하고, 지상의 인간족이라면 금기에 대해 무지한 게 당연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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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말한 ‘금기’란 천계의 주인- 천신이 정한 이 세계의 법률을 말한다. 어길 시에는 천벌이 내린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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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앞으로는 조심해주세요, 정말 천벌을 받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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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족 부부는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신관의 은총이라는 게 대단한 게 아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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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벌과 천신 역시, 전혀 대단한 존재가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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