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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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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금기 경전

천족은 선민의식이 가득한 종족이지만, 그들의 친절 자체는 절대 위선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불편한 거지만, 어쨌든.

내가 여기서 장기간 체류하기로 마음을 먹어도 이들은 나를 친절하게 손님 대접해 줄 것이다.

물론 시스템과 설정상 정말로 장기간 체류하는 건 불가능하지만……아무튼 느긋하게 힘을 키우기에는 좋은 조건.

칼레온의 힘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고, 이곳의 특수한 환경을 이용하면 단련에도 도움이 되겠지.

그러니 일단은 이곳의 NPC들에게 호감작을 해 둘 필요가 있다. 원래 친절한 사람들이니 모나지 않게만 굴어도 되겠지.

애초에 적극적으로 호감을 사는 방법 같은 건 전혀 모르지만, 그것도 아무튼.

생각을 그만두고 현실로 돌아와서, 쟤는 아까부터 왜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걸까.

“……”

이 집 부부는 요리를 대접하겠다며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딸내미는 종일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냥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벽 뒤에 숨어서 감시하듯 보고 있는데……뭐가 하고 싶은 걸까.

그러고보니 내가 지상에서 온 인간이라는 걸 알자마자 놀라서 도망갔었지, 뭔가 이유가 있나.

“할 말 있으면 해, 계속 그렇게 보고만 있지 말고.”

“헉!”

답답해서 먼저 말을 걸어 봤더니, 화들짝 놀라며 벽 뒤로 숨는 앤젤라.

생긴 건 십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데, 하는 짓이 좀 어린애 같다. 천족은 나이를 좀 다르게 먹던가?

그냥 겁을 먹은 걸 수도 있겠지만, 저 눈빛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건 대충 알 수 있다.

내가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니지만, 저 눈빛만큼은 잘 알아볼 수 있다. 엘레노어가 종종 보여주었던 눈이니까.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건데.”

저건 호기심이 담긴 눈이다. 마냥 호기심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알아볼 수 있다.

“너, 정말로 지상에서 온 인간이야?”

내가 한 번 더 말을 걸자, 앤젤라는 여전히 벽 뒤에서 쭈뼛거리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어떻게 신수님을 쓰러트린 거야? 지상의 부정한 인간은 천계에서 엄청 약해지는데, 너는 엄청 강해 보였어.”

커뮤니티에서 확인해 보니, 천계의 제약은 단순히 스탯 저하만이 아니었다. 듣기로는 고산병이랑 비슷한 느낌이 온다나.

처음에는 괜찮은 듯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호흡도 거칠어지고 시야도 어지러워지며, 귀도 먹먹해진다고.

확실히 나도 초반에는 조금이지만 멀미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이제는 적응해서 괜찮아진 상황이지만.

도전자들에 천계에서 퀘스트를 진행하지 않고 장기간 체류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나도 약해진 거야.”

“거짓말!”

“거짓말 아닌데.”

앤젤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가 너한테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냐.

“부정을 씻지 않으면 천계에선 숨도 제대로 못 쉬어, 근데 너는 지금 완전히 멀쩡하잖아!”

고작 이 정도로 힘겨워하기에는 내 종합 내성이 너무 굉장해서 말이지. 통합된 내성 중에는 [질식 내성]도 있다.

[멀미 내성]이나 [실명 내성] 같은 것도 있고, [저주 내성] 같은 것도 작용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데.

“난 두 시간 정도는 숨 안 쉬고 버틸 수 있어, 독이랑 용암으로 샤워해도 안 다치고.”

내성 스킬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어서, 그냥 체질이 그렇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러더니 앤젤라가 하는 소리가.

“그럼 인간 아니잖아.”

이야, 그거 참 타당한 말이네.

**

앤젤라는 내 체질에 관한 이야기를 듣더니, 이어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럼 추운 건? 얼음에 들어가도 안 추워?”

“안 추운 건 아닌데, 얼어 죽지는 않아.”

“그럼 벼락은? 벼락 맞으면 어떤데?”

추운 곳에선 얼마나 버티느냐, 벼락을 맞아도 살 수 있느냐, 잠은 얼마나 안 잘 수 있는 거냐, 그런 식으로.

내 스펙을 조사하려고 하는 느낌은 아니고, 그냥 어린 조카가 아무거나 막 물어보는 느낌이었다.

조실부모 사고무친의 가정이라 조카 같은 건 있어본 적이 없긴 하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다가.

그러다가 말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아예 지상에 나 같은 인간족이 얼마나 있느냐고 묻기도 했는데.

“글쎄, 나 말고는 없을걸.”

“그럼 인간 아닌 거 아니야?”

“예전에는 안 이랬어, 인간 맞아.”

솔직히 이런 몸으로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건 좀 양심이 없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스스로 할 때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여전히 분류상으로는 인간이다. 최상위 랭커나 S급 헌터들 중에는 나보다 더한 인간도 있을 테고.

15층 세계의 인간 평균은 한참 뛰어넘었으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러면, 아까 그건 뭐 하는 거야? 이상한 자세로 눈 감고 있었잖아.”

벽 뒤에 숨어있던 앤젤라는 이제 나와 꽤 가까운 위치까지 와 있었다.

“아까 그거……아, 명상하고 있었던 건데.”

“명상? 마법사들이 하는 거 말이야? 너 마법사야?”

“마법사는 아니고, 마법사 지망생쯤은 돼.”

엘프 층에서 마력감응을 처음 깨우친 이후, 나는 지금도 시간이 날 때면 틈틈이 명상을 하고는 한다.

[마력 지배]라는 사기급 스킬과 마력강화를 자력으로 깨우쳤지만, 아직 내 마력 운용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마력을 다루는 것 자체는 순조로워도, 그 마력이 흐르는 내 신체 내부의 경로를 완벽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

그리고 내 몸에 흘려 넣기에 적합한 마력의 양을 아직도 잘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마력강화 이후에 찾아오는 강한 반동은 이것 때문일 거다. 무리하게 강한 마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집광]

-파앗!

“봐, 이런 것도 돼.”

나는 어린애 놀아주는 기분으로, 가볍게 [집광] 마법을 사용해 빛의 구슬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지극히 단순하게 빛을 모으는 마법이지만, 그동안 나름대로 많이 쓴 만큼 이제는 간단하게 재주를 부릴 수도 있다.

모은 빛구슬의 형태를 살짝 바꾸거나, 빛의 색깔을 살짝 바꾸거나 하는 식으로. 마법 무드등인 셈이다.

“예쁘다……신관님들이 부리는 은총의 빛 같아, 아, 아니, 그럴 리는 없지만.”

감탄하던 앤젤라가 돌연 당황하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신관의 ‘은총의 빛’이란것과 내 힘을 비교한 탓이리라.

지상의 부정한 존재인 내가 사용한 마법과, 신관들이 쓰는 은총을 같은 선상에 놓는 건 신성모독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하지만 이미 이 천계의 배경 설정은 커뮤니티에 낱낱이 파헤쳐져 있다. 그렇기에 말할 수 있다.

“또 모르지.”

비슷한 게 아니라, 정말로 같은 거라고.

**

잠시 후, 주방에서의 움직임이 잦아들고- 요리를 완성한 부부가 밖으로 나왔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바로 대접할 테니 이리로……어머 앤젤라, 뭐 하니?”

나와 같은 소파에 앉아서 이런저런 물음을 던지던 앤젤라는, 어머니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일어섰다.

나는 뭐라고 말하려다가,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는 걸 알고 침묵했다. 앤젤라는 바로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손님이 심심하실까 봐, 말동무 해주고 있었어!”

“그랬니? 우리 앤젤라가 별일이네, 이상한 얘기를 한 건 아니지?”

“응, 그냥 이것저것……천계에 대해 궁금해하시길래, 대답해 주고 있었어.”

앤젤라는 나에게 천계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보았지.

나도 이 정도 눈치는 있다. 아마 ‘이상한 얘기’ 라는게 나한테 물었던 것들이겠지.

천계 설정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아마 지상에 대해 궁금해하는 게 금기시되어 있는 건 아닐까.

천족들에게 지상은 부정한 땅, 죄인들의 땅이다.

그것에 흥미를 가지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지, 앤젤라는 그런 쪽에서 요주의 인물일테고.

앤젤라의 눈빛은 호기심이 가득했지만, 마냥 호기심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아마 본인도 껄끄러워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지상에 대해 궁금해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계속 궁금해하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 뭐 그런 거.

“예, 맞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나는 적당한 말로 앤젤라의 변명을 거들어 주었다.

실제로 기본적인 지식은 커뮤니티로 이미 습득하기도 했으니, 천계에 대해서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다.

편을 들어주는 발언에, 앤젤라가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는 잘 모르는 새고기 구이였다. 무슨 과일로 만든 특제 소스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미안하게도 딱 그 소스만 빼고 다 입에 잘 맞았다. 티 내지는 않았지만.

과일 소스라서 그런지 무척 달았거든. 화이트롤을 매일같이 처먹는 신세라, 단 걸 좋아할 수가 없다.

“아마 조만간 신관님들이 전사님을 찾아오실 거예요.”

식사를 마치고 난 후, 천족 부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신관들에게 연락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지.

신관들은 이 천계의 경찰이나 군인 같은 존재들이다. 기본적으로 전투능력을 갖추고 있는 천족 중 특히 뛰어난 자들.

물론 그래 봤자 15층 수준에, 엘리트 NPC도 거의 없다고 하니 대단한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저희는 하늘지기 집안이라, 신수님과 관련된 일이라면 모두 보고하게 되어 있거든요.”

“원래 신수님을 공격하는 건 금기지만, 전사님은 지상에서 오신 분이니 책임을 물을 일은 없을 거예요.”

“신수님의 목숨을 빼앗은 건 아니기도 하고, 지상의 인간족이라면 금기에 대해 무지한 게 당연하니까요.”

이들이 말한 ‘금기’란 천계의 주인- 천신이 정한 이 세계의 법률을 말한다. 어길 시에는 천벌이 내린다나.

“그래도 앞으로는 조심해주세요, 정말 천벌을 받을지도 모르니까요.”

천족 부부는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신관의 은총이라는 게 대단한 게 아니듯이.

천벌과 천신 역시, 전혀 대단한 존재가 아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