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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세계수가 열매를 맺던 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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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멜은 내 대답을 듣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지간히 크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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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모르겠다, 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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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의 침묵 끝에 리즈멜은 그런 말과 함께, 투명한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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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가 인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새삼 다시 알았다. 이런 걸로 울어줄 수 있을 만큼 좋아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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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눈물을 닦아낸 리즈멜은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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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우리의 검술을 모두 체득했고, 눈도 제대로 틔웠어.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더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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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완료 : 에르웬의 참견 - 검술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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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웬 이모님에게도 말을 전해 둘게, 너는 검술 훈련을 모두 마쳤다고. 그러니까, 이젠 나를 찾아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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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창에 붙어있던 선택 목표들이 모두 완료 처리되었다. 대련이니 선별 시험이니 하는 건 아직 하지 않았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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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퀘스트가 완료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보상만 제대로 들어오면 상관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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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보상 : ‘경험치’, ‘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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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달성 보상 : NPC 에르웬을 통해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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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검이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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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대감을 부추기는 시스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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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덜거리는 걸음으로 연무장을 떠나는 리즈멜을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떠나게 둬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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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멜이 나를 어떤 심정과 생각으로 대하고 있었는지, 무슨 의도로 내게 검을 가르쳐 준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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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금 전 내가 내뱉은 말에 어떤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두 짐작은 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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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겠어, NPC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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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연무장에 주저앉아, 변명 같은 말로 자신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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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연무장에서 괜히 검술 연습을 해 보며 저녁까지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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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본격적으로 해가 지기 시작할 때 쯤, 그곳을 벗어나 대장장이 에르웬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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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다크엘프에 비해 유독 작은 키를 가진 대장장이는 나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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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조금 더 일찍 올 줄 알았건만. 연장자를 너무 기다리게 하는 거 아니냐, 몹쓸 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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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 달라고 한 적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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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참, 여전히 말하는 본새는 귀여운 점이 없구나. 표정은 또 그게 뭐냐, 비 맞은 오렌같은 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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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이라는 건 맥락상 이 7층에 서식하는 동물 같은 거겠지. 지금 내 표정이 그렇게까지 안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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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멜도 많이 상심한 표정이던데, 둘이 싸우기라도 한 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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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리즈멜의 마음이 상한 건 알겠지만, 딱히 싸운 것도 뭣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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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그냥 새삼스레 자아 성찰을 한 것뿐이다. 리즈멜은 내가 한 말에 멋대로 충격을 받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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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웬도 특별히 캐물으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그런 일도 있는 거라면서, 대장간으로 들어오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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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 안에는 여전히 이런저런 무기들이 걸려 있었다. 저번에 내가 물건을 싹쓸이했는데도, 어느새 다시 꽉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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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장장이의 작업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는 나도 잘 알고 있기에, 새삼스레 놀라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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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가져다준 주괴를 활용하느라 고생 좀 했지, 그래도 덕분에 무척 좋은 검이 만들어졌지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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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웬은 그렇게 말하며 예스러운 케이스에 담긴 검 한 자루를 꺼내, 내게 건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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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봐라, 마음에 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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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검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에보니 스틸 한손검, 거기에 약간의 장식을 더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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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의 걸작 : 요정시대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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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력 + 85 (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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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타 피해 : x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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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구도 880/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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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시행 가능 횟수 : 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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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스템이 표시하는 아이템 정보는 장난이 아니었다. 일단 기본 공격력부터가 화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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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손검 중에서 가장 공격력이 높은 [늑대 사냥의 검]을 가볍게 능가하는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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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가 강화 시행 횟수는 에보니 스틸의 특성을 그대로 받아 15회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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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 수준을 한참 넘어선 적을 상대해 온 보상일까, 7층에서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아이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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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 잡힌 튼튼한 검을 좋아한다고 했었지? 그래서 일부러 거창한 마법 기능 같은 건 넣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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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웬은 그렇게 말하며, 그래도 마법 재료를 쓰는 마당에 아무것도 없으면 아쉬울 거라며 한 마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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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한테 딱 맞는 기능 하나만 넣어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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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정보는 기본 스탯으로 끝이 아니다. 유니크 등급으로 완성된 검에는 고유 효과도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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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 지속 효과 : 마력 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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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처치할 시, 처치한 몬스터의 마력 일부를 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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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한 마력 수치에 따라 내구도 회복, 자동 청결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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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분을 초과한 마력은 착용자의 MP를 회복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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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처치할 때마다 자동으로 내구도가 수리되고, 그에 더해 MP를 리필시켜주는 미친 알짜배기 옵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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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수리에 들어가는 골드나 재료는 차고 넘치는 신세지만, 실시간 회복은 나에게도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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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플러라는 특성상 늘어지는 다대일 전투 상황에 처할 일이 매우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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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는 스킬과 아이템 효과 덕분에 계속 회복되지만, MP랑 무기 내구도는 점점 떨어지기 마련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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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옵션이라면 내 집중력이 버텨주는 한 언제까지고 최대의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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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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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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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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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자리에서 검을 휘둘러 대며, 순순히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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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웬은 마냥 기뻐하는 나를 보고 웃으며, 자연스럽게 대장간 안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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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좋아해 주니 어깨가 빠지도록 힘쓴 보람이 있구나, 표정도 훨씬 보기 좋아. 앞으로도 좀 그러고 다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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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인벤토리에 수납했다. 기본 옵션이 워낙 좋으니, 강화는 좀 나중에 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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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웬은 언제 준비해 둔 건지, 간단한 다과와 찻잔을 꺼냈다. 나를 위해 일부러 준비해 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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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들은 왜 자꾸 나한테 뭘 먹이려고 드는건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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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크엘프들에게 작은 길고양이 정도로 보이는 건 알고 있지만, 에르웬은 안 그러는 편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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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웬이 특별히 나이가 많은 편이라고 들었는데, 시골 할머니가 종종 찾아오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시작한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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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족이 뭘 좋아하는지는 잘 몰라서, 아무거나 사다 놨는데……혹시 못 먹는 게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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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런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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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좀 앉아라, 설마 검만 홀랑 받아먹고 고생한 사람은 나 몰라라 하려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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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다과는 보아하니 단 것 같아서, 대충 입에 집어넣고 씹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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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적, 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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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웬은 그런 나를 보며 약간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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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참, 달콤한 과자를 먹으면서 지을만한 표정이 아니잖으냐. 너 같은 인간족은 살면서 처음 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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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나 말고 다른 인간족을 많이 봤다는 듯한 말투였다. 다른 다크엘프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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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괜히 궁금해져서, 인간족을 많이 봤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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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요즘 젊은 것들보다는 많이 본 편이지. 누가 뭐래도 얼마 안 남은 세계수 세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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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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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 시들고 썩은 세계수가, 아직 열매를 맺을 수 있었을 적부터 살아온 늙은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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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였다. 포레스트 엘프와 나이트 엘프 모두, 세계수를 통해 혼이 순환하고 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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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엘프의 혼은 다시 세계수의 품으로 돌아가고, 세계수는 열매를 맺어 영혼이 깃들 그릇을 다시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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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일종의 환생 시스템, 하지만 이는 세계수가 시들고 힘을 잃으며 과거의 일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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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엘프 종족의 이름이 하이엘프와 다크엘프가 되기 전의, 어마어마하게 오래된 옛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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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엘프는 모두 영생이라 할 만큼 길게 살았지. 지금도 매우 길게 사는 편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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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는 에르웬의 눈동자는 유독 흐린 빛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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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거 아느냐, 영생이니 불멸이니 하는 건 사실 죽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란다. 조금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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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이란, 나 외의 모든 것이 죽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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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 두고, 세상 모든 것이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스러져 이별을 고하지. 그런 느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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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없는 이야기지만, 그냥 흘려넘길 수는 없는 말이었다. 에르웬의 목소리에는 무언가 절절한 것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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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우리는 시간과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이 좀 유별난 편이지. 돌이켜 보면 수십 년도 찰나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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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의미인지 알 만했다. 그렇기에 인간을 마냥 귀엽게 볼 수 있는 거겠지. 생각나는 것을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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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벌레처럼 보일 수도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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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에게 인간은 길고양이보다 더 낮은 무언가처럼 보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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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웬은 내 말을 듣더니, 옅은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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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무척이나 위대하게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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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웬의 부드러운 손이 내 손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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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처럼 짧은 삶을 살지만, 그럼에도 굉장한 존재감을 남기지. 우리에게 인간과 접해본 기억은 좀처럼 잊을 수 없는 것으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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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을 살았을 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손에서, 굳센 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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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리즈멜이 너를 특별히 걱정하는 거란다, 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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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웬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닫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 손을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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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말 없이 그저 토닥이는 그 손길에서는, 어쩐지 많은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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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NPC는 무슨. 나는 아직도 변명 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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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멜한테 사과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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