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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수가 열매를 맺던 시절에
리즈멜은 내 대답을 듣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지간히 크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나는……모르겠다, 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한참의 침묵 끝에 리즈멜은 그런 말과 함께, 투명한 눈물을 흘렸다.
다크엘프가 인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새삼 다시 알았다. 이런 걸로 울어줄 수 있을 만큼 좋아하는구나.
조용히 눈물을 닦아낸 리즈멜은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너는 우리의 검술을 모두 체득했고, 눈도 제대로 틔웠어.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더 없을 거야.”
[퀘스트 완료 : 에르웬의 참견 - 검술 훈련]
“에르웬 이모님에게도 말을 전해 둘게, 너는 검술 훈련을 모두 마쳤다고. 그러니까, 이젠 나를 찾아오지 마.”
퀘스트 창에 붙어있던 선택 목표들이 모두 완료 처리되었다. 대련이니 선별 시험이니 하는 건 아직 하지 않았음에도.
이런 식으로 퀘스트가 완료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보상만 제대로 들어오면 상관없겠지만.
[퀘스트 보상 : ‘경험치’, ‘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목표 달성 보상 : NPC 에르웬을 통해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최고의 검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기대감을 부추기는 시스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연무장을 떠나는 리즈멜을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떠나게 둬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리즈멜이 나를 어떤 심정과 생각으로 대하고 있었는지, 무슨 의도로 내게 검을 가르쳐 준 건지.
그리고 조금 전 내가 내뱉은 말에 어떤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두 짐작은 가지만.
“어쩌겠어, NPC인데.”
나는 혼자 연무장에 주저앉아, 변명 같은 말로 자신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
혼자 연무장에서 괜히 검술 연습을 해 보며 저녁까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해가 지기 시작할 때 쯤, 그곳을 벗어나 대장장이 에르웬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다른 다크엘프에 비해 유독 작은 키를 가진 대장장이는 나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뭐냐, 조금 더 일찍 올 줄 알았건만. 연장자를 너무 기다리게 하는 거 아니냐, 몹쓸 것아.”
“기다려 달라고 한 적 없는데.”
“나 참, 여전히 말하는 본새는 귀여운 점이 없구나. 표정은 또 그게 뭐냐, 비 맞은 오렌같은 꼴인데.”
오렌이라는 건 맥락상 이 7층에 서식하는 동물 같은 거겠지. 지금 내 표정이 그렇게까지 안 좋은가?
“리즈멜도 많이 상심한 표정이던데, 둘이 싸우기라도 한 게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리즈멜의 마음이 상한 건 알겠지만, 딱히 싸운 것도 뭣도 아니다.
나로서는 그냥 새삼스레 자아 성찰을 한 것뿐이다. 리즈멜은 내가 한 말에 멋대로 충격을 받았을 뿐.
에르웬도 특별히 캐물으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그런 일도 있는 거라면서, 대장간으로 들어오라 말했다.
대장간 안에는 여전히 이런저런 무기들이 걸려 있었다. 저번에 내가 물건을 싹쓸이했는데도, 어느새 다시 꽉 차 있었다.
이 대장장이의 작업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는 나도 잘 알고 있기에, 새삼스레 놀라지는 않았다.
“저번에 가져다준 주괴를 활용하느라 고생 좀 했지, 그래도 덕분에 무척 좋은 검이 만들어졌지 뭐냐.”
에르웬은 그렇게 말하며 예스러운 케이스에 담긴 검 한 자루를 꺼내, 내게 건네었다.
“살펴봐라, 마음에 들 거다.”
만들어진 검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에보니 스틸 한손검, 거기에 약간의 장식을 더한 것처럼 보였다.
[대장장이의 걸작 : 요정시대의 검]
공격력 + 85 (참격)
치명타 피해 : x 2.8
내구도 880/880
강화 시행 가능 횟수 : 15회
하지만 시스템이 표시하는 아이템 정보는 장난이 아니었다. 일단 기본 공격력부터가 화끈하다.
내 한손검 중에서 가장 공격력이 높은 [늑대 사냥의 검]을 가볍게 능가하는 수치.
거기다가 강화 시행 횟수는 에보니 스틸의 특성을 그대로 받아 15회나 된다.
7층 수준을 한참 넘어선 적을 상대해 온 보상일까, 7층에서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아이템이 아니다.
“밸런스 잡힌 튼튼한 검을 좋아한다고 했었지? 그래서 일부러 거창한 마법 기능 같은 건 넣지 않았고-”
에르웬은 그렇게 말하며, 그래도 마법 재료를 쓰는 마당에 아무것도 없으면 아쉬울 거라며 한 마디 덧붙였다.
“너한테 딱 맞는 기능 하나만 넣어 뒀다.”
아이템 정보는 기본 스탯으로 끝이 아니다. 유니크 등급으로 완성된 검에는 고유 효과도 붙어 있었다.
고유 지속 효과 : 마력 흡수
몬스터를 처치할 시, 처치한 몬스터의 마력 일부를 흡수.
흡수한 마력 수치에 따라 내구도 회복, 자동 청결 효과.
회복분을 초과한 마력은 착용자의 MP를 회복시킴.
몬스터를 처치할 때마다 자동으로 내구도가 수리되고, 그에 더해 MP를 리필시켜주는 미친 알짜배기 옵션.
아이템 수리에 들어가는 골드나 재료는 차고 넘치는 신세지만, 실시간 회복은 나에게도 특별하다.
나는 솔플러라는 특성상 늘어지는 다대일 전투 상황에 처할 일이 매우 많은 편이다.
HP는 스킬과 아이템 효과 덕분에 계속 회복되지만, MP랑 무기 내구도는 점점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 옵션이라면 내 집중력이 버텨주는 한 언제까지고 최대의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될 거다.
“끝내주는데.”
“마음에 드느냐?”
“어어, 엄청.”
나는 제자리에서 검을 휘둘러 대며, 순순히 기뻐했다.
**
에르웬은 마냥 기뻐하는 나를 보고 웃으며, 자연스럽게 대장간 안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렇게 좋아해 주니 어깨가 빠지도록 힘쓴 보람이 있구나, 표정도 훨씬 보기 좋아. 앞으로도 좀 그러고 다녀라.”
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인벤토리에 수납했다. 기본 옵션이 워낙 좋으니, 강화는 좀 나중에 해도 될 것 같다.
에르웬은 언제 준비해 둔 건지, 간단한 다과와 찻잔을 꺼냈다. 나를 위해 일부러 준비해 둔 것처럼 보였다.
다크엘프들은 왜 자꾸 나한테 뭘 먹이려고 드는건지 원.
내가 다크엘프들에게 작은 길고양이 정도로 보이는 건 알고 있지만, 에르웬은 안 그러는 편이었는데.
에르웬이 특별히 나이가 많은 편이라고 들었는데, 시골 할머니가 종종 찾아오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시작한 셈인가.
“인간족이 뭘 좋아하는지는 잘 몰라서, 아무거나 사다 놨는데……혹시 못 먹는 게 있느냐?”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 좀 앉아라, 설마 검만 홀랑 받아먹고 고생한 사람은 나 몰라라 하려는 건 아니겠지?”
나는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다과는 보아하니 단 것 같아서, 대충 입에 집어넣고 씹어먹었다.
-으적, 으적.
에르웬은 그런 나를 보며 약간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 참, 달콤한 과자를 먹으면서 지을만한 표정이 아니잖으냐. 너 같은 인간족은 살면서 처음 보는구나.”
마치 나 말고 다른 인간족을 많이 봤다는 듯한 말투였다. 다른 다크엘프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던데.
나는 괜히 궁금해져서, 인간족을 많이 봤느냐고 물었다.
“뭐, 요즘 젊은 것들보다는 많이 본 편이지. 누가 뭐래도 얼마 안 남은 세계수 세대니까 말이다.”
“세계수 세대?”
“지금은 다 시들고 썩은 세계수가, 아직 열매를 맺을 수 있었을 적부터 살아온 늙은이란 뜻이다.”
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였다. 포레스트 엘프와 나이트 엘프 모두, 세계수를 통해 혼이 순환하고 있다던가.
죽은 엘프의 혼은 다시 세계수의 품으로 돌아가고, 세계수는 열매를 맺어 영혼이 깃들 그릇을 다시 낳는다.
말하자면 일종의 환생 시스템, 하지만 이는 세계수가 시들고 힘을 잃으며 과거의 일이 되었다고 한다.
두 엘프 종족의 이름이 하이엘프와 다크엘프가 되기 전의, 어마어마하게 오래된 옛날의 이야기.
“그 시절의 엘프는 모두 영생이라 할 만큼 길게 살았지. 지금도 매우 길게 사는 편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에르웬의 눈동자는 유독 흐린 빛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거 아느냐, 영생이니 불멸이니 하는 건 사실 죽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란다. 조금 달라.”
“영생이란, 나 외의 모든 것이 죽는 거다.”
“오직 나만 두고, 세상 모든 것이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스러져 이별을 고하지. 그런 느낌이란다.”
맥락 없는 이야기지만, 그냥 흘려넘길 수는 없는 말이었다. 에르웬의 목소리에는 무언가 절절한 것이 담겨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시간과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이 좀 유별난 편이지. 돌이켜 보면 수십 년도 찰나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무슨 의미인지 알 만했다. 그렇기에 인간을 마냥 귀엽게 볼 수 있는 거겠지. 생각나는 것을 말하자면-
“인간이 벌레처럼 보일 수도 있겠네.”
-다크엘프에게 인간은 길고양이보다 더 낮은 무언가처럼 보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에르웬은 내 말을 듣더니, 옅은 웃음을 지었다.
“아니, 무척이나 위대하게 보여.”
에르웬의 부드러운 손이 내 손을 감쌌다.
“찰나처럼 짧은 삶을 살지만, 그럼에도 굉장한 존재감을 남기지. 우리에게 인간과 접해본 기억은 좀처럼 잊을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수천년을 살았을 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손에서, 굳센 힘이 느껴진다.
“그래서 리즈멜이 너를 특별히 걱정하는 거란다, 얘야.”
에르웬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닫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 손을 토닥였다.
아무런 말 없이 그저 토닥이는 그 손길에서는, 어쩐지 많은 것이 느껴졌다.
젠장, NPC는 무슨. 나는 아직도 변명 뿐이구나.
리즈멜한테 사과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