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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꿈 같은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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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는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우호적이지만, 9층에서는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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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 세력간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이후이니, 다크엘프들도 이미 인간들과 몇 번이나 충돌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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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좋아하고 귀여워하는 성질은 그대로지만, 인간이 적이라는 것은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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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인지, ‘적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한 인간’ 이 나타나자 다크엘프들은 무척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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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세상에, 너 정말 그 애니? 그동안 뭐 하고 있다가 이제야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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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해, 아직 본인인지 모르잖아! 인간은 백 년이면 죽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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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백 년보다 조금 더 오래 사는 인간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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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마냥 좋아하는 다크엘프가 절반, 그리고 미심쩍게 여기는 다크엘프가 또 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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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후자의 절반은 미심쩍어하면서도 슬금슬금 가까이 오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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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봐도 이상할 정도로 인간을 좋아하는 종족이다. 인간과 전쟁 중이라는 기분은 또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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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소문도 없이 떠나서 백 년이나 안 나타나길래, 당연히 죽은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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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요새 안으로 데려온 리즈멜은 헛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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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게 이상할 정도는 아직 아니지만, 보통 인간족은 이 정도면 다 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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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 부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무척 고민이었는데, 아직 마땅히 생각난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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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탑처럼 깡통 NPC가 대부분이었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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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만 시간 여행자가 된 기분을 느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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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도전자들도 이런 느낌으로 탑을 올랐을까, 아니면 내가 있는 탑이 특별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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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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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멜의 물음에 적당히 대답하고, 마력을 흩뿌려 요새 안쪽의 환경을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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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볼 때도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였는데, 안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더 장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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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드래곤이라도 쳐들어오지 않는 한은 절대 안 뚫릴 것 같다. 수준이 좀 과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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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네가 보통 애송이가 아니긴 해. 보나 마나 백 년 동안 위험한 짓만 골라서 하다가, 어떻게 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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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멜은 전혀 늙지 않고 나타난 내 모습에 크게 의문을 가지지 않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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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불안불안한 검술도 마력도 예전이랑 전혀 달라진 게 없어, 그건 가짜가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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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동안 그대로면 더 이상한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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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천 년을 살아도 변치 않을 때가 있는 법이야. 특히나, 길을 잃은 자의 방황은 쉽게 멈출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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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멜은 그렇게 말하고는, 대뜸 내게 가까이 다가와 가슴에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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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네 덕분에 많은 인간족을 만나볼 수 있었어. 그러고 나니까, 네가 얼마나 유별난지도 알겠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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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7층에서 리즈멜과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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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인간을 만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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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 끝은 전쟁이 되었지만, 엘레노어의 계획을 도우며 이뤄낸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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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뭐, 딱히- 인간족이나, 너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네 그런 점이 나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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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십년 동안 많은 인간을 보고 겪어온 리즈멜은, 나의 병든 부분을 잊지 않고- 이 말을 오래도록 준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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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는 어렵겠지만, 엘레노어라면 할 수 있겠지. 사랑하는 사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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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첫눈에 반해서 어쩌고 하던 그거 다 구라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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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십년동안 믿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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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아니라 엘레노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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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요새 안으로 들어왔으니 빠르게 퀘스트 진도를 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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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들의 무수한 악수의 요청을 모두 쳐내고, 곧바로 엘레노어를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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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멜도 처음부터 나를 엘레노어에게 데려갈 생각이었던 모양이라, 시간 낭비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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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 마을, 르우엘의 그루터기 전체가 요새화된 만큼 왕족이 지내는 거주공간도 무척 거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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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그냥 다 똑같은 나무 아파트 안에서 살았지만, 이제는 제대로 성 같은 것이 생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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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는 따로 경비 병력이 있었고, 나는 순조롭게 그걸 통과해 엘레노어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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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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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그런 말을 내뱉었다. 놀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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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이 8층에서 골골거리던 것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만, 9층의 퀘스트를 생각해보면 당연히 나았을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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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 여왕의 상징, 세계수에 간섭할 힘이 있다는 왕관은 엘레노어의 머리 위에 얹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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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선명한 꿈은 또 처음인데……환상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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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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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이젠 말까지 하는군. 만질 수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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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여전히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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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손이 내 뺨을 쓸었다. 가만히 두자, 손은 목선을 타고 내려가 가슴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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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더 천천히 내려가, 내 허벅지에 닿더니 점점 안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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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미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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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둘 수는 없지, 백 년이 지났다더니 이 년은 변한 게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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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정말 그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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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손을 확 쳐내자, 엘레노어는 그제야 눈앞의 광경이 진짜라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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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백 년이나 지났는데, 인간족인 그대가 어떻게? 정말로 그대인가? 다시 돌아온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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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무엇보다 크게 뒤흔드는 상대, 역시 엘레노어를 상대하는 건 거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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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설명을 뱉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가만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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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가 알아서 진정하기까지, 그저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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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이 된 엘레노어가 자리하고 있는 알현실은 무척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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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성이기도 하고, 여왕이기도 하니까 이런 곳에 있는 모양인데, 공간 낭비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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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라고 할만한 이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옥좌와 커다란 회의용 테이블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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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공간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 엘레노어는 이 공간을 잘 나눠 쓸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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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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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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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두니 진정을 하기는커녕, 나한테 매미처럼 바짝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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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다크엘프들도 날 보고 막 접근해 오긴 했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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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닿아 있지 않으면 실감이 안 난단 말이다. 그대가 정말 내 곁에 있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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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상 쓰며 달라붙어 있는 엘레노어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뭔가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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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고목을 연상시키던 전 여왕과 닮은 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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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여왕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엘레노어도 전쟁을 겪으면 바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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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을 깰 명분이 필요할 때 나타나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약혼을 깨 주고 훌쩍 떠나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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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불안한 시기에 나타나서는, 우리를 한껏 돕고 또 훌쩍 사라져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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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는 내가 가장 힘들고 괴로울 시기에,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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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깨를 꼭 끌어안은 엘레노어의 팔이 살짝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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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까지는 우연이라고 쳐도, 이 정도면 보고도 못 믿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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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그렇겠지 싶었다. 나는 그냥 퀘스트 라인을 따라왔을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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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엘레노어의 중요한 순간마다 나타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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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이 엘레노어의 중요한 순간만을 골라서 시련의 탑에 배치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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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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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의 시점에서 보는 도전자는 너무나 불가사의하고, 신비롭고, 굉장한 존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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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엘레노어가 내게 강한 호감을 보이는 것도, 시스템이 정해놓은 결정 사항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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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어떻게 생긴 것까지 딱 내 이상형인지 모르겠다. 그대라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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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시스템에 의해 정해진 것일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배경 설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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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내가 들여다보았던 엘레노어의 과거는, 리즈멜의 검에서 느껴졌던 세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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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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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생생해서, 도저히 창작된 배경처럼은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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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그러고도 한동안 떨어질 생각을 하질 않았고, 결국 내가 억지로 떨쳐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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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도 정말 너무하구나, 아직 백 년 치를 보충하기까지는 한참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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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백 년 동안 붙어 있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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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거 아닌가, 정혼자가 백 년 동안 얼굴도 안 비춰서 쓸쓸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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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는 엘레노어는 음흉한 표정으로 웃으며 제 아랫배를 툭툭 건드렸다. 또 지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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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처럼 무시하고, 에픽 퀘스트 진행을 위해 뭔가 도울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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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상황에 내가 도울 일이라면 뻔하지, 원래 퀘스트 라인도 이런 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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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선택한 진영의 지도자에게 임무를 받고, 8층에서처럼 전선에 나서 활약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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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물론 있지. 오직 그대만 해줄 수 있는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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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도 결국 퀘스트를 위해 존재하는 NPC다. 결국 흐름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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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이 오래 붙어있지 말자, 이번에도 빠르게 퀘스트를 깨고 보상만 받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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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엘레노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정된 퀘스트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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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동침해 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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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지금 내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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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 다크엘프의 서 - 여왕의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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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의 헛소리가 그대로 퀘스트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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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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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지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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