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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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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 같은 상황

다크엘프는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우호적이지만, 9층에서는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삼대 세력간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이후이니, 다크엘프들도 이미 인간들과 몇 번이나 충돌했을 테니까.

인간을 좋아하고 귀여워하는 성질은 그대로지만, 인간이 적이라는 것은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는 상태.

그렇기 때문인지, ‘적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한 인간’ 이 나타나자 다크엘프들은 무척 기뻐했다.

“세상에, 세상에, 너 정말 그 애니? 그동안 뭐 하고 있다가 이제야 온 거야?”

“조심해, 아직 본인인지 모르잖아! 인간은 백 년이면 죽는다고!”

“에이, 백 년보다 조금 더 오래 사는 인간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런 거겠지.”

나를 보고 마냥 좋아하는 다크엘프가 절반, 그리고 미심쩍게 여기는 다크엘프가 또 절반.

그리고 후자의 절반은 미심쩍어하면서도 슬금슬금 가까이 오려고 하고 있다.

언제 봐도 이상할 정도로 인간을 좋아하는 종족이다. 인간과 전쟁 중이라는 기분은 또 어떨는지.

“소리 소문도 없이 떠나서 백 년이나 안 나타나길래, 당연히 죽은 줄 알았어.”

나를 요새 안으로 데려온 리즈멜은 헛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살아 있는 게 이상할 정도는 아직 아니지만, 보통 인간족은 이 정도면 다 늙지 않아?”

나도 이 부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무척 고민이었는데, 아직 마땅히 생각난 건 없었다.

다른 탑처럼 깡통 NPC가 대부분이었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왜 나만 시간 여행자가 된 기분을 느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1세대 도전자들도 이런 느낌으로 탑을 올랐을까, 아니면 내가 있는 탑이 특별한 걸까.

“보통은 그렇지.”

리즈멜의 물음에 적당히 대답하고, 마력을 흩뿌려 요새 안쪽의 환경을 훑어보았다.

바깥에서 볼 때도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였는데, 안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더 장난이 아니다.

이건 뭐 드래곤이라도 쳐들어오지 않는 한은 절대 안 뚫릴 것 같다. 수준이 좀 과한 거 아닌가.

“흥, 네가 보통 애송이가 아니긴 해. 보나 마나 백 년 동안 위험한 짓만 골라서 하다가, 어떻게 된 거겠지.”

리즈멜은 전혀 늙지 않고 나타난 내 모습에 크게 의문을 가지지 않는 듯했다.

“그 불안불안한 검술도 마력도 예전이랑 전혀 달라진 게 없어, 그건 가짜가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백 년동안 그대로면 더 이상한 거 아니야?”

“마음은 천 년을 살아도 변치 않을 때가 있는 법이야. 특히나, 길을 잃은 자의 방황은 쉽게 멈출 수 없어.”

리즈멜은 그렇게 말하고는, 대뜸 내게 가까이 다가와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나는……네 덕분에 많은 인간족을 만나볼 수 있었어. 그러고 나니까, 네가 얼마나 유별난지도 알겠더라고.”

그러고 보니, 7층에서 리즈멜과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다른 인간을 만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결국 그 끝은 전쟁이 되었지만, 엘레노어의 계획을 도우며 이뤄낸 약속이었다.

“나는 뭐, 딱히- 인간족이나, 너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네 그런 점이 나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백이십년 동안 많은 인간을 보고 겪어온 리즈멜은, 나의 병든 부분을 잊지 않고- 이 말을 오래도록 준비했을 것이다.

“나로는 어렵겠지만, 엘레노어라면 할 수 있겠지. 사랑하는 사이잖아.”

근데, 첫눈에 반해서 어쩌고 하던 그거 다 구라였는데.

백이십년동안 믿고 있었구나.

이건 내가 아니라 엘레노어 잘못이다.

**

어쨌거나, 요새 안으로 들어왔으니 빠르게 퀘스트 진도를 빼기로 했다.

다크엘프들의 무수한 악수의 요청을 모두 쳐내고, 곧바로 엘레노어를 만나러 갔다.

리즈멜도 처음부터 나를 엘레노어에게 데려갈 생각이었던 모양이라, 시간 낭비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다크엘프 마을, 르우엘의 그루터기 전체가 요새화된 만큼 왕족이 지내는 거주공간도 무척 거대해졌다.

예전에는 그냥 다 똑같은 나무 아파트 안에서 살았지만, 이제는 제대로 성 같은 것이 생긴 거다.

성에는 따로 경비 병력이 있었고, 나는 순조롭게 그걸 통과해 엘레노어를 마주했다.

“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엘레노어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그런 말을 내뱉었다. 놀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왕이 8층에서 골골거리던 것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만, 9층의 퀘스트를 생각해보면 당연히 나았을 줄 알았는데.

다크엘프 여왕의 상징, 세계수에 간섭할 힘이 있다는 왕관은 엘레노어의 머리 위에 얹혀 있었다.

“이렇게 선명한 꿈은 또 처음인데……환상 마법?”

“환상 아니야.”

“맙소사, 이젠 말까지 하는군. 만질 수도 있나?”

엘레노어는 여전히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부드러운 손이 내 뺨을 쓸었다. 가만히 두자, 손은 목선을 타고 내려가 가슴에 닿았다.

그리고 더 천천히 내려가, 내 허벅지에 닿더니 점점 안쪽으로-

“이게 미쳤나.”

-가게 둘 수는 없지, 백 년이 지났다더니 이 년은 변한 게 없네.

“어어, 정말 그대인가?”

내가 손을 확 쳐내자, 엘레노어는 그제야 눈앞의 광경이 진짜라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하지만 백 년이나 지났는데, 인간족인 그대가 어떻게? 정말로 그대인가? 다시 돌아온 건가?”

내 마음을 무엇보다 크게 뒤흔드는 상대, 역시 엘레노어를 상대하는 건 거북하다.

뭐라고 설명을 뱉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가만히 서 있었다.

엘레노어가 알아서 진정하기까지, 그저 가만히.

**

여왕이 된 엘레노어가 자리하고 있는 알현실은 무척 넓다.

일단 성이기도 하고, 여왕이기도 하니까 이런 곳에 있는 모양인데, 공간 낭비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신하라고 할만한 이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옥좌와 커다란 회의용 테이블이 있을 뿐.

그야말로 공간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 엘레노어는 이 공간을 잘 나눠 쓸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좀 놔.”

“싫다.”

가만히 두니 진정을 하기는커녕, 나한테 매미처럼 바짝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으니까.

다른 다크엘프들도 날 보고 막 접근해 오긴 했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이렇게 닿아 있지 않으면 실감이 안 난단 말이다. 그대가 정말 내 곁에 있다는 게.”

나는 인상 쓰며 달라붙어 있는 엘레노어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뭔가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마른 고목을 연상시키던 전 여왕과 닮은 눈을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여왕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엘레노어도 전쟁을 겪으면 바뀔 것이라고.

“약혼을 깰 명분이 필요할 때 나타나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약혼을 깨 주고 훌쩍 떠나버렸지.”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불안한 시기에 나타나서는, 우리를 한껏 돕고 또 훌쩍 사라져버렸지.”

“그리고 이제는 내가 가장 힘들고 괴로울 시기에,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지 않았느냐.”

내 어깨를 꼭 끌어안은 엘레노어의 팔이 살짝 떨렸다.

“두 번까지는 우연이라고 쳐도, 이 정도면 보고도 못 믿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

그것도 그렇겠지 싶었다. 나는 그냥 퀘스트 라인을 따라왔을 뿐이지만.

내가 엘레노어의 중요한 순간마다 나타나는 게 아니다.

시스템이 엘레노어의 중요한 순간만을 골라서 시련의 탑에 배치한 거다.

“그렇겠네.”

NPC의 시점에서 보는 도전자는 너무나 불가사의하고, 신비롭고, 굉장한 존재겠지.

어쩌면 엘레노어가 내게 강한 호감을 보이는 것도, 시스템이 정해놓은 결정 사항일지도 모른다.

“후후, 어떻게 생긴 것까지 딱 내 이상형인지 모르겠다. 그대라는 사람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시스템에 의해 정해진 것일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배경 설정일까.

적어도 내가 들여다보았던 엘레노어의 과거는, 리즈멜의 검에서 느껴졌던 세월은.

“그러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몰라.”

너무나 생생해서, 도저히 창작된 배경처럼은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지.

**

엘레노어는 그러고도 한동안 떨어질 생각을 하질 않았고, 결국 내가 억지로 떨쳐내야만 했다.

“그대도 정말 너무하구나, 아직 백 년 치를 보충하기까지는 한참 남았는데!”

“그래서 백 년 동안 붙어 있겠다고?”

“당연한 거 아닌가, 정혼자가 백 년 동안 얼굴도 안 비춰서 쓸쓸했다고?”

그렇게 말하는 엘레노어는 음흉한 표정으로 웃으며 제 아랫배를 툭툭 건드렸다. 또 지랄이다.

나는 언제나처럼 무시하고, 에픽 퀘스트 진행을 위해 뭔가 도울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전쟁 상황에 내가 도울 일이라면 뻔하지, 원래 퀘스트 라인도 이런 식이니까.

자신이 선택한 진영의 지도자에게 임무를 받고, 8층에서처럼 전선에 나서 활약하는 것.

“아아, 물론 있지. 오직 그대만 해줄 수 있는 일이야.”

엘레노어도 결국 퀘스트를 위해 존재하는 NPC다. 결국 흐름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쓸데없이 오래 붙어있지 말자, 이번에도 빠르게 퀘스트를 깨고 보상만 받는 거다.

그런데, 엘레노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정된 퀘스트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나랑 동침해 주겠나?”

여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지금 내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

[에픽 : 다크엘프의 서 - 여왕의 명]

엘레노어의 헛소리가 그대로 퀘스트로 등록되었다.

“허?”

이게 무슨 지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