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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불쾌한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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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그 이상 말하지 않고, 조용히 방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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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혼자가 된 나는 명상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아 평범하게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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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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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하게 정비를 마치고 떠나려는 나를 수많은 다크엘프들이 배웅했다. 그 사이에 소문이라도 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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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가는 거 아니야? 이왕이면 십 년 정도는 있다가 가지, 아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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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 인간족한테 십 년이면 엄청 긴 거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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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그러면 한 오 년 정도만……나는 별로 대화도 못 해봤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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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엘레노어의 정혼자 신분인데도, 떠나는 사실 자체에 의문을 갖는 다크엘프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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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로 정혼자 자리를 빼앗은 지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신경도 안 쓰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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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처음부터 구실 뿐인 이야기였음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다시 돌아올 거로 생각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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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8층의 특성을 생각하면 그렇게 여겨도 별문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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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퀘스트가 이어지는 8층의 배경은 7층의 미래 시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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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에 따르면 퀘스트 NPC도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하니, 이 녀석들하고도 결국 다시 만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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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배웅하는 이들 중에는 당연히 리즈멜을 비롯한 정찰대원들도 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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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인간족, 이거 가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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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멜은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받아 들고 보니, 아이템 이름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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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마귀의 망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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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보랏빛이 도는 검은 망토였는데, 스탯이 없는 대신 [은신]이라는 고유 스킬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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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신은 도적 계열 클래스의 공통 스킬로, 발소리와 기척을 없애주는 단순한 스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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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대단한 스킬은 아니지만, 아이템에 붙어도 될 만큼 만만한 스킬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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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척을 죽여주는 망토야, 너무 무모한 짓 좀 하지 말라는 의미로 주는 거니까. 이상한 착각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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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할 여지가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리즈멜이 저렇게 말하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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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잘 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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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순히 감사 인사를 하자, 리즈멜은 약간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휙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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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뭔가를 건네는 것은 리즈멜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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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인간족아, 이것도 가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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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일을 도와주었던 정찰대원이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숄더 아머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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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등 탐색대원의 증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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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 퀘스트의 최주요 보상 중 하나로 알려진 방어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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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이거 얻기 힘든 거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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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였지만 어쨌든 같은 탐색대 식구였잖아? 리즈멜이랑 엄청나게 활약도 했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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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순순히 감사 인사를 하고 받았다. 다른 다크엘프들도 저마다 이런저런 물건을 하나씩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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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 좋은 포션이나 스탯을 올려주는 영약 등의 실용적인 것도 있었고, 과자나 도시락 같은 먹거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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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만든 거라 생긴 건 좀 엉망이지만, 쓰거라. 유용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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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대장장이 에르웬이 짧은 순간 마법 방패를 생성하는 팔목보호대를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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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7층 진영 퀘스트를 모범적으로 진행할 경우 얻어갈 수 있는 보상들을 한 번에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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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화룡점정을 찍은 것은, 당연하게도 엘레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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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가 건넨 것은 단순한 이별의 선물이 아닌, 약혼을 깨준 것에 대한 답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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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번 에픽 퀘스트의 보상이다. 건네어진 것은 심플한 디자인의 펜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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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던트 아이템은 흔치 않은 만큼, 성능이 어떤 것이라도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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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설명을 들어 보니, 보통 좋은 게 아니라 사기 수준 아이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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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가 7층 수준을 한참 벗어나서 그런지, 보상도 7층 수준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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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자체는 7층 이후로도 이어질 예정이라, 최종 보상도 아닐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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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대는 이제 그 시련이라는 것에 도전하러 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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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내가 말을 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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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야 당연히 알지, 그대와 자주 이야기했던 주제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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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의 눈이 별빛처럼 타오르고 있다. 미지의 세상을 향한 강렬한 호기심을 담은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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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언젠가 함께 다른 세상을 여행해 보고 싶다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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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엘프와의 마찰이 예정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나를 따라가겠다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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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가 NPC인 이상,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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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꼭 시련을 마치고, 여행길의 끝에 소망을 이룰 수 있기를 응원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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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내 목표가 엄마의 성묘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걸 목표로 하는 내 마음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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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행이 끝나는 날에, 달리 갈 곳이 없다면……언제든 내 곁으로 돌아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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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도 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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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이상한 표현도 아니지 않으냐. 그대는 내 정혼자야, 내 옆자리는 언제든 그대의 것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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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시련의 탑 서버에 불과한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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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무척 고마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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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완료 : 다크엘프의 서 - 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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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나는 정말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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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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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들은 내 인사에 웃음으로 화답하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엘레노어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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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살랑 흔들리는 손, 생긋 지어 보인 웃음, 그 모든 것이 판에 박은 듯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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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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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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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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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명의 다크엘프가 입술을 달싹이며 내뱉는 말까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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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뭐야, 지랄……장난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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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서 만났던 양치기 소녀처럼, 그리고 다른 층의 수많은 무기질한 깡통 NPC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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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지, 무슨 다른 용건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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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 내 말에 대답한 것은 엘레노어 한 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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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다크엘프들은 삐걱거리는 듯한 움직임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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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웃거리는 고개의 각도마저 똑같다. 동시에 움직이는 모습이 공장의 기계를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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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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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엘레노어만이 다르게 말하고 행동했으나, 그 말투와 표정이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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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심지어 느껴지는 기척마저 달랐다. 이전의 강렬한 기척이 온데간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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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사람처럼 반응하고,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결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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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중간하게 사람을 흉내 내고 있는 무언가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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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니야,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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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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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를 보고, 인간을 귀여워하는 다크엘프들은 일제히 걱정된다는 듯 수십 개의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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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망치듯 마을을 빠져나와, 7층의 미궁 구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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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퀘스트는 아직 이걸로 끝난 게 아니다. 8층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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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게 지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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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8층에서도 똑같은 NPC가 출현하는 거 아니었나?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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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8층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이런 상태인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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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뭔데, 씨발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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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정신과 마음을 부여잡고, 떨리는 걸음으로 보스룸을 향해 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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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의 미궁 구역은 매우 좁고, 보물 상자 같은 것도 없다. 보스룸 앞에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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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솔직히 이 이상 생각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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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빨리 8층으로 올라가 NPC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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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진정해야 한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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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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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자 활활 타오르며 내부를 밝히는 횃불, 저 멀리 7층의 보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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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짐승이 살고 있는 대산림의 먹이사슬, 그 끝에 선 것은 다름 아닌 하늘의 패자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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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퍼덕거리고 있는 거대한 인면조와, 윙윙거리며 배회하고 있는 거대 말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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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S - 천공의 패자 파르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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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 보스는 남성 하피 같은 외형으로, 근접 전사의 천적이나 마찬가지인 비행형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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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스펙 자체는 특별히 대단하지 않지만, 데미지를 넣을 기회를 거의 주지 않는 까다로운 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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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HP가 감소하면 떠다니는 말벌을 잡아먹고 회복하는 패턴까지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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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를 멸시하는 듯한 악랄한 패턴 탓에, 마법사나 궁수 등의 원거리 공격수가 필수적인 보스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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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이미 7층 스펙을 한참 뛰어넘었고, 이딴 놈에게 오래 시간을 쓸 생각도 싹 날아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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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벤토리에서 커다란 쇠구슬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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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받았던 능력치 상승 영약도 먹고, 엘레노어에게 받은 펜던트의 효과도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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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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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마력의 빛이 어리며, 폭발적인 힘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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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던트의 효과는 마력을 저장해 뒀다가, 사용자가 원하는 순간에 개방되어 마력강화를 발동시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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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내 지능 스탯의 영향을 받지 않고, 강화 수치도 고정되는 등 제한 사항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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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마력강화는 마력강화, [불굴]이 발동한 것 이상으로 놀라운 힘이 몸에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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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루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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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공격을 위해 나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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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나름대로 속도를 낸 것이겠지만, 마력강화를 한 메르세데스에 비하면 멈춘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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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닝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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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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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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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모든 버프 스킬을 발동시켰다. 전격이 깃든 쇠구슬이 손안에서 찌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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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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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으로 내던진 쇠구슬이 적중하자, 보스의 왼쪽 가슴께가 통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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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겨나간 날개와 살점의 파편이 흩날리고, 보스는 그대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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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시련의 탑 7층을 최초로 클리어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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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달성 : 일격필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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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보상 ‘ 액티브 스킬 - 약점 간파’ 를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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