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1 KiB
Raw Permalink Blame History

  1. 불쾌한 골짜기

엘레노어는 그 이상 말하지 않고, 조용히 방을 떠났다.

다시 혼자가 된 나는 명상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아 평범하게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간략하게 정비를 마치고 떠나려는 나를 수많은 다크엘프들이 배웅했다. 그 사이에 소문이라도 난 건가.

“너무 일찍 가는 거 아니야? 이왕이면 십 년 정도는 있다가 가지, 아쉽게.”

“야아, 인간족한테 십 년이면 엄청 긴 거 몰라?”

“그런가? 그러면 한 오 년 정도만……나는 별로 대화도 못 해봤단 말이야.”

나는 이제 엘레노어의 정혼자 신분인데도, 떠나는 사실 자체에 의문을 갖는 다크엘프는 아무도 없었다.

결투로 정혼자 자리를 빼앗은 지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신경도 안 쓰이나.

어쩌면 처음부터 구실 뿐인 이야기였음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다시 돌아올 거로 생각하거나.

뭐, 8층의 특성을 생각하면 그렇게 여겨도 별문제는 없다.

진영 퀘스트가 이어지는 8층의 배경은 7층의 미래 시점이니까.

커뮤니티에 따르면 퀘스트 NPC도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하니, 이 녀석들하고도 결국 다시 만나게 되겠지.

나를 배웅하는 이들 중에는 당연히 리즈멜을 비롯한 정찰대원들도 끼어 있었다.

“야 인간족, 이거 가져가.”

리즈멜은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받아 들고 보니, 아이템 이름이 떠올랐다.

[밤까마귀의 망토]

옅은 보랏빛이 도는 검은 망토였는데, 스탯이 없는 대신 [은신]이라는 고유 스킬이 붙어 있었다.

은신은 도적 계열 클래스의 공통 스킬로, 발소리와 기척을 없애주는 단순한 스킬이다.

그렇게 대단한 스킬은 아니지만, 아이템에 붙어도 될 만큼 만만한 스킬도 아니다.

“기척을 죽여주는 망토야, 너무 무모한 짓 좀 하지 말라는 의미로 주는 거니까. 이상한 착각 말고.”

착각할 여지가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리즈멜이 저렇게 말하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고마워, 잘 쓸게.”

순순히 감사 인사를 하자, 리즈멜은 약간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휙 돌렸다.

내게 뭔가를 건네는 것은 리즈멜만이 아니었다.

“얘 인간족아, 이것도 가져가.”

잠시 일을 도와주었던 정찰대원이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숄더 아머를 건넸다.

[특등 탐색대원의 증표]

다크엘프 퀘스트의 최주요 보상 중 하나로 알려진 방어구였다.

어라, 이거 얻기 힘든 거 아니었나.

“임시였지만 어쨌든 같은 탐색대 식구였잖아? 리즈멜이랑 엄청나게 활약도 했고 말이야.”

이번에도 순순히 감사 인사를 하고 받았다. 다른 다크엘프들도 저마다 이런저런 물건을 하나씩 건넸다.

성능 좋은 포션이나 스탯을 올려주는 영약 등의 실용적인 것도 있었고, 과자나 도시락 같은 먹거리도 있었다.

“급하게 만든 거라 생긴 건 좀 엉망이지만, 쓰거라. 유용할 거다.”

그 밖에도, 대장장이 에르웬이 짧은 순간 마법 방패를 생성하는 팔목보호대를 주기도 했다.

사실상, 7층 진영 퀘스트를 모범적으로 진행할 경우 얻어갈 수 있는 보상들을 한 번에 받고 있었다.

그 화룡점정을 찍은 것은, 당연하게도 엘레노어였다.

**

엘레노어가 건넨 것은 단순한 이별의 선물이 아닌, 약혼을 깨준 것에 대한 답례였다.

즉, 이번 에픽 퀘스트의 보상이다. 건네어진 것은 심플한 디자인의 펜던트.

펜던트 아이템은 흔치 않은 만큼, 성능이 어떤 것이라도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그런데 설명을 들어 보니, 보통 좋은 게 아니라 사기 수준 아이템이었다.

난이도가 7층 수준을 한참 벗어나서 그런지, 보상도 7층 수준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퀘스트 자체는 7층 이후로도 이어질 예정이라, 최종 보상도 아닐 텐데 말이다.

“그럼, 그대는 이제 그 시련이라는 것에 도전하러 가는 건가?”

“맞아. 내가 말을 했었나?”

“그 정도야 당연히 알지, 그대와 자주 이야기했던 주제지 않나.”

엘레노어의 눈이 별빛처럼 타오르고 있다. 미지의 세상을 향한 강렬한 호기심을 담은 눈이다.

그러고 보면, 언젠가 함께 다른 세상을 여행해 보고 싶다고 했었지.

하이엘프와의 마찰이 예정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나를 따라가겠다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엘레노어가 NPC인 이상,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대가 꼭 시련을 마치고, 여행길의 끝에 소망을 이룰 수 있기를 응원하마.”

엘레노어는 내 목표가 엄마의 성묘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걸 목표로 하는 내 마음에 대해서도.

“그리고 여행이 끝나는 날에, 달리 갈 곳이 없다면……언제든 내 곁으로 돌아와도 좋다.”

“돌아와도 된다니?”

“무얼, 이상한 표현도 아니지 않으냐. 그대는 내 정혼자야, 내 옆자리는 언제든 그대의 것인걸.”

이곳이 시련의 탑 서버에 불과한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무척 고마운 말이었다.

[퀘스트 완료 : 다크엘프의 서 - 서장]

**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나는 정말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그동안 고마웠어.”

다크엘프들은 내 인사에 웃음으로 화답하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엘레노어도 마찬가지였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손, 생긋 지어 보인 웃음, 그 모든 것이 판에 박은 듯 똑같았다.

“잘 가라.”

“잘 가라.”

“잘 가라.”

수십명의 다크엘프가 입술을 달싹이며 내뱉는 말까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똑같았다.

“야, 뭐야, 지랄……장난하지 마.”

2층에서 만났던 양치기 소녀처럼, 그리고 다른 층의 수많은 무기질한 깡통 NPC들처럼.

“왜 그러지, 무슨 다른 용건이라도?”

당황한 내 말에 대답한 것은 엘레노어 한 명뿐이었다.

다른 다크엘프들은 삐걱거리는 듯한 움직임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갸웃거리는 고개의 각도마저 똑같다. 동시에 움직이는 모습이 공장의 기계를 보는 것 같았다.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나?”

그나마 엘레노어만이 다르게 말하고 행동했으나, 그 말투와 표정이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아니, 심지어 느껴지는 기척마저 달랐다. 이전의 강렬한 기척이 온데간데없다.

여전히 사람처럼 반응하고,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결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어중간하게 사람을 흉내 내고 있는 무언가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아니, 아니야, 아무것도.”

-전신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런 나를 보고, 인간을 귀여워하는 다크엘프들은 일제히 걱정된다는 듯 수십 개의 손을 뻗었다.

나는 도망치듯 마을을 빠져나와, 7층의 미궁 구역으로 향했다.

**

진영 퀘스트는 아직 이걸로 끝난 게 아니다. 8층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게 지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분명 8층에서도 똑같은 NPC가 출현하는 거 아니었나?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거지?

설마 8층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이런 상태인 건 아니겠지?

“대체 뭔데, 씨발 진짜……”

혼란한 정신과 마음을 부여잡고, 떨리는 걸음으로 보스룸을 향해 전진했다.

7층의 미궁 구역은 매우 좁고, 보물 상자 같은 것도 없다. 보스룸 앞에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솔직히 이 이상 생각할 자신이 없다.

그냥, 빨리 8층으로 올라가 NPC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진정해야 한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끼익.

문을 열자 활활 타오르며 내부를 밝히는 횃불, 저 멀리 7층의 보스가 보인다.

[수많은 짐승이 살고 있는 대산림의 먹이사슬, 그 끝에 선 것은 다름 아닌 하늘의 패자였으니.]

날개를 퍼덕거리고 있는 거대한 인면조와, 윙윙거리며 배회하고 있는 거대 말벌들.

[BOSS - 천공의 패자 파르칸]

7층 보스는 남성 하피 같은 외형으로, 근접 전사의 천적이나 마찬가지인 비행형 적이다.

보스 스펙 자체는 특별히 대단하지 않지만, 데미지를 넣을 기회를 거의 주지 않는 까다로운 타입.

거기에 HP가 감소하면 떠다니는 말벌을 잡아먹고 회복하는 패턴까지 갖고 있다.

전사를 멸시하는 듯한 악랄한 패턴 탓에, 마법사나 궁수 등의 원거리 공격수가 필수적인 보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나는 이미 7층 스펙을 한참 뛰어넘었고, 이딴 놈에게 오래 시간을 쓸 생각도 싹 날아간 상태다.

인벤토리에서 커다란 쇠구슬을 꺼냈다.

조금 전에 받았던 능력치 상승 영약도 먹고, 엘레노어에게 받은 펜던트의 효과도 발동했다.

-쿠르릉!

내 몸에 마력의 빛이 어리며, 폭발적인 힘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펜던트의 효과는 마력을 저장해 뒀다가, 사용자가 원하는 순간에 개방되어 마력강화를 발동시키는 것.

다만 내 지능 스탯의 영향을 받지 않고, 강화 수치도 고정되는 등 제한 사항이 많다.

그럼에도 마력강화는 마력강화, [불굴]이 발동한 것 이상으로 놀라운 힘이 몸에 깃든다.

-끼루룩!

보스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공격을 위해 나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분명 나름대로 속도를 낸 것이겠지만, 마력강화를 한 메르세데스에 비하면 멈춘 것처럼 보인다.

[라이트닝 차지]

[감각 증폭]

[혼신]

내가 가진 모든 버프 스킬을 발동시켰다. 전격이 깃든 쇠구슬이 손안에서 찌그러진다.

-콰앙!

전력으로 내던진 쇠구슬이 적중하자, 보스의 왼쪽 가슴께가 통째로 사라졌다.

뜯겨나간 날개와 살점의 파편이 흩날리고, 보스는 그대로 추락했다.

[축하합니다. 시련의 탑 7층을 최초로 클리어하셨습니다.]

[업적 달성 : 일격필살]

[업적 보상 액티브 스킬 - 약점 간파’ 를 획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