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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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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평가

강준호의 인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딘가 아파 보이는 사람이다.

우습게도, 시련의 탑에서 이런 인상을 가진 사람은 정말 보기 힘들다.

시련의 탑에서 제공하는 스탯과 자연 회복력이, 도전자가 가진 여러 신체적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척추 측만증이라던가, 손목 터널 증후군이라던가, 거북목이라던가, 인대 손상이라던가- 그런 고질병들은 물론이요.

면역력 상승에 따라 감기 같은 여러 잔병치레에서도 해방되고, 영양 불균형과 수면 부족같은 사소한 것들도 낫게 된다.

탑의 초대장이 몇몇 사람들에게 인생 역전의 찬스로 불리는 것에는 이런 점도 크게 한몫을 하고 있다.

랭커들의 무료 버스를 타서 레벨을 조금만 올려도, 현대 의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의료 케어 풀코스를 받는 셈이니까.

하지만 강준호는 제법 레벨이 있는 도전자임에도 불구하고, 시들시들한 허수아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퀭하고, 팔다리는 근육이 제법 잡혀 있음에도 젓가락처럼 연약해 보이는 게, 딱 병자 꼴이다.

아무리 마법사 클래스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근력]과 [내구] 스탯은 갖춰져 있기에- 저러기도 힘들 텐데.

아니, 애초에 다크서클은 대체 어떻게 생긴 거야?

초인의 경지에 이른 시련의 탑 도전자는 수면이 거의 필요치 않은 몸이고, 이 정도 레벨이면 더더욱 그렇지 않나?

“저희끼리 던전을 가자고요?”

“네, 그러려고 모인 거잖아요.”

강준호는 목소리마저 시들시들했다. 사람 목소리가 시들하다는 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진짜로 딱 그렇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체내에 머금고 있는 마력은 매우 잘 다듬어져 있다. 신체는 시들시들해도 마력은 활기가 넘친다.

겉보기에는 이래도, 마력을 선명하게 감지할 수 있는 나에게는 이 사람이 오히려 훨씬 강인하게 느껴진다.

“그렇긴 하죠, 그렇지만 정통 마법이 아니더라도……두 명이서 던전 클리어는 많이 힘들 텐데요.”

“제가 그런 거 많이 해봐서 아는데, 할 만 할 거예요.”

“많이 해보셨다고요? 페스티벌은 이제 막 열렸는데……아, 혹시 랭커 분이신가요?”

페스티벌이 이제 막 열렸는데, 어떻게 던전을 많이 돌아봤다는 거냐- 그게 가능한 경우는 한 가지뿐이다.

3년 전에 이미 페스티벌에 참가해 본 경험이 있는 고레벨 플레이어일 경우, 하지만 나는 좀 다르다.

이전 페스티벌에 참가해 본 건 맞지만, 그때도 던전은 그렇게 많이 안 돌아봤었지. 도중에 하차하기도 했고.

“그건 아니고요, 제가 솔플 많이 해봤거든요. 두 명이면 차고 넘치죠.”

“솔플……어, 어어, 설마.”

피로에 절은 두 눈을 번쩍 뜬 강준호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원래는 ‘예 제가 바로 그 서진혁입니다’ 뭐 그렇게 말할 셈이었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내자니 좀 오글거렸다.

“예 그거 맞고요……됐으니까 파티 신청이나 해보세요. 이거 어떻게 하는건지 다 까먹었네.”

그냥 빠르게 파티 신청을 하고, 그대로 강준호의 뒷덜미를 끌고 가까운 포탈로 입장했다.

**

나와 강준호가 들어온 던전은 [죽음 숭배자의 신전]이라는 곳이었다.

70레벨대인 내가 들어오기에는 좀 급이 높은 던전이었지만, 어차피 내 스펙은 그보다 훨씬 높으니 상관없다.

그리고 뜻밖에 강준호도 레벨이 꽤 높은 편이어서, 이 정도면 정말로 차고 넘칠 것이었다.

“진혁 씨……라고 부르면 될까요? 진혁 씨는 레벨이 혹시 어떻게 되세요?”

“74요, 레벨보다 스펙 좀 높은 편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래도 저희 2인인데 좀 힘들지 않을까요, 여기 레벨 컷이 80 이상인데요.”

하지만 강준호는 당연히 불안해했다. 내 스펙은 이미 80레벨도 가볍게 넘는 수준이건만.

그 때였다, 던전 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지면에서 큼직한 골렘 한 마리가 솟아올랐다.

이곳의 주요 몬스터인 [신전의 수호골렘]이다. 강준호는 재빨리 지팡이를 들어 올리고 캐스팅을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기대한 것과는 다르게, 정통 주문이 아닌 평범한 도전자처럼 스킬을 쓰고 있었다.

“진혁 씨, 탱만 잠깐 서주세요!”

“안 설 건데요.”

“네?”

당연하다는 듯이 딜러와 탱커로 역할을 구분하려는 강준호를 무시하고, 뒤로 뛰었다.

강준호도 캐스팅을 취소하고 재빨리 물러났다. 그런데, 그렇게 황당하다는 듯이 노려볼 것까지야 있나.

우리의 계획은 전원이 마법사인 파티로 입장해서, 주문 언어와 룬 문자를 사용한 정통 마법을 시험하는 것 아니었나.

그런 마당에 나한테 전사의 역할을 기대하면 안 되지, 나도 지금은 주문술사- 마법사라고.

“매직 미사일.”

-쾅!

이제는 무척 익숙해진 기초 마법을 빠르게 캐스팅해, 겉으로 보이지 않는 핵을 단번에 노려 맞췄다.

매직 미사일은 단순하기 짝이 없는 기초 공격 마법이지만, 이렇게 마력을 대량으로 담아서 쏘면 제법 위력이 나온다.

거기에 마법진을 살짝 개량해서 관통력을 더 높이는 것으로, 제법 단단한 골렘을 일격에 쓰러트릴 수 있었다.

“주문술사끼리 모여서 던전 깨자면서요, 스킬 쓰지 말고 주문으로 캐스팅하셔야지.”

나는 이번 던전 공략에서 검과 방패 모두 쓰지 않을 생각이다, 몽둥이로 더 많이 쓰던 미스릴 완드만이 이번의 주 무기.

-쿵쿵쿵!

큰 소리가 울리며 몇 마리의 골렘이 추가로 나타났다. 보행형이 아닌 날아다니는 가고일 골렘까지 함께 출현했다.

내가 손짓하자, 강준호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침내 기다리던 주문 캐스팅을 개시했다.

허공에 그려지는 룬과, 입으로 중얼거리는 주문 언어, 그리고 만들어진 마법진.

“아이시클 랜스!”

쏘아지는 마법의 구조를 [천의 마술]이 모두 풀어낸다. 그렇지, 이게 마법이지.

연속 발사된 얼음의 창이 골렘들을 꿰뚫고, 강준호는 다시 한번 같은 마법을 캐스팅해 발사했다.

나도 몇 가지의 기초 마법을 함께 사용하며 강준호가 마음껏 주문을 쓸 수 있도록 서포트했다.

그리고 동시에 관찰하며, 관측하고, 해석하여, 이해한다. 그렇게 마지막 한 마리의 골렘이 남았을 때였다.

“아, 이번엔 제가.”

나는 강준호를 뒤로 물리고, [천의 마술]을 통해 여러 번 관측하며 뜯어본 룬을 허공에 그려내었다.

구조는 완벽하게 이해했다. 요령은 부족하지만 어설픈 부분은 [마력 지배]의 정교한 컨트롤과 출력으로 메운다.

“아이시클 랜스.”

생선된 마법진이 큼지막한 얼음의 창을 토해내고, 쏘아진 창은 골렘의 핵을 정확하게 뚫고 붉은 이펙트를 터트렸다.

함께 던전에 들어온 지 10분째, 나는 강준호의 주문 하나를 베끼는 것에 성공했다.

**

던전의 보스인 [고위 죽음 숭배자]의 머리통에 큼지막한 바위 하나가 떨어졌다.

사지가 모두 불로 그을린데다가, 머리에 얼음송곳이 하나 박혀 있었고, 여기저기 관통상까지 입었던 보스는 그대로 머리가 깨졌다.

곧 던전 클리어 메시지가 나타나며, 인벤토리에 [페스티벌 코인]을 포함한 보상들이 주르륵 들어왔다.

2인 파티인데다가, 스킬을 자체 봉인하고 정통 마법만 쓴다는 패널티가 있었음에도, 우리의 클리어 타임은 평균보다 빨랐다.

쉴 새 없이 주문 마법을 쏟아내던 강준호는 그대로 맥이 풀린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으아~ 깼다!”

강준호의 표정은 더 이상 병든 환자처럼 시들시들하지 않았다. 아드레날린이 팍팍 돈 모양이다.

“흐아……전 이게 진짜 될 줄 몰랐어요. 솔직히 처음 계획부터 제대로 공략하긴 힘들 것 같았거든요.”

강준호는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근데, 진짜, 캬…진혁 씨 진짜 나빴네. 마법사로 클래스 바꾼 거 여태껏 숨긴 거예요? 완전 속았네?”

이번 던전 공략에서 나는 강준호의 마법을 무척 많이 베껴내었다. 하지만 마법적으로 이득을 본 건 강준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마법을 잘 쓰지 못할 뿐이지, 마력을 다루는 기술 자체는 매우 뛰어나다. 그렇기에 강준호에게 여러 조언을 해 줄 수도 있었다.

이를테면 감지를 펼쳐 골렘의 핵을 단번에 찾는 방법이라던가, 흘러나오는 마력을 정돈하는 방법이라던가, 그런 것들.

거기에 마법을 하나하나 베껴서 그대로 쓰는 모습까지 보여줬더니, 강준호는 이제 내가 마법사 클래스라고 믿고 있었다.

뭐, 그렇겠지. 세상에 어느 전붕이가 이 정도로 마력을 다루겠어. 정통 마법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도 다행이다, 진혁 씨 오늘 토너먼트 나가죠? 예선 A조던데.”

“예, 그쵸.”

“전사였으면 대진 꽤 빡셌을거예요, 예선치고 엄청 힘들겠던데.”

강준호는 뜬금없이 토너먼트 대진 이야기를 했다. 전사였으면 대진이 빡셌을 거라니. 이유가 뭘까.

“이거 보세요, 고스펙 근접 계열이랑 광역 위주 마법사 클래스랑 막 섞여 있잖아요. 이러면 전사는 힘들죠.”

가만히 들어 보니, 일반론에서 비롯한 상성 이야기였다. 5인 조별 경기에서 이런 구성은 전사에게 힘들다고.

전사와 마법사 클래스가 1대1이면 전사가 좀 더 유리하지만, 이런 난전 상황에서는 마법사가 훨씬 유리하다나.

듣자하니 꽤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평범하게 생각해보면 보통은 그렇겠지, 보통은.

“그래도 마법 쓰시는 거 보니까, 어디……이렇게만 가면 승점은 충분히 챙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강준호는 던전을 공략하는 사이 내게 친밀감이 꽤 쌓였는지, 아예 전략적인 승점 획득 방식까지 조언해주었다.

욕심내지 말고 특기를 살려 2등만 노리면, 안정적으로 승점을 챙겨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을 수 있을 거라고.

“이따가 경기 보러 갈게요.”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커뮤니티 특유의 호들갑을 제외하면, 나를 향한 냉정한 평가는 꽤 낮다는 것을.

하긴, 커뮤니티의 여론이 꼭 실제 여론과 일치하는 건 아니지.

우승후보라고 했던 건 그냥, 소위 말하는 커뮤니티 한줌단들의 농담 섞인 ‘억빠’였다.

“예선은 살살 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오늘 예선에서 나 만나는 놈들은, 그냥 운이 나빴다고 생각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