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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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디폴트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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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컴퓨터를 보호해야 할 외장은 모조리 뜯겨있고, 흉하게 드러난 내부 부품들의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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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가죽을 벗겨 낸 대형 짐승을 보는 것 같다. 이 컴퓨터의 모습에서 그나마 볼 만한 것이라고는, 정면에 달린 작은 디스플레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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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조그만 디스플레이는 웃음 모양의 이모티콘을 띄운 채,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스피커를 통해 말을 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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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십시오, 유토피아 관리 시스템 A2-33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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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게 유토피아 시티를 관리하고 있는 메인 컴퓨터, 이 도시의 기괴한 모습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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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뭘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니, 그보다도 이거- 수상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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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들의 몸에 들어가 있는 것과 비슷한 파워팩 수백 개가 컴퓨터 본체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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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징그러운 외형도 그렇고, 유토피아 관리 시스템이라는 설명도 그렇고, 암만 봐도 히든 보스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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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시티의 역사를 알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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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마력을 끌어올리며, 컴퓨터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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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건 아닌 것 같은데- 잠시 고민하고 있자니, 컴퓨터의 부품 몇 개가 움직이더니 내게 입력장치를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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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이크가 달려 있고, 익숙한 형태의 자판이 붙어 있는……그러니까, 키보드로 입력하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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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 타닥,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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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을 두드려 말한 것과 똑같이 입력하자, 디스플레이가 반짝거리며 다시금 스피커가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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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23의 데이터베이스로 답변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장착된 A2-11의 데이터를 불러옵니다, 3초가 소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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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이모티콘 모양이 바뀌었다. 이전 것보다 앙증맞게 웃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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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기능을 활성화했습니다. A2-23의 데이터베이스를 참고하여 유토피아의 역사를 자세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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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에서 출력되는 목소리도 바뀌었다. 활달한 기계음은 노이즈가 섞인 채로 설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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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프로젝트는 전후력 1163년에 시작된 ‘행성 자원 고갈 및 오염에 따른 인류 이주 계획’의 총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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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환경오염과 자원 고갈로 더 이상 인류가 살 수 없게 된 행성에서, 인류 보존을 위한 낙원을 만드는 계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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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력 1160년에 발발한 제5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유토피아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시동은 1168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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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디스플레이에서 이런저런 화면이 지나갔다. 이쪽 세계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알아보기 힘든 자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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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언뜻 보기에는, 지구와 매우 비슷한 환경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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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다. 십여 년 전 시련의 탑과 게이트가 출현하며 지구의 환경과 사회는 극적으로 바뀌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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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구는 게이트의 몬스터들에게서 채취한 코어나 마력자원을 이용해, 지하지원 의존을 크게 줄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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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초기의 낙원 프로젝트는 잔여 자원을 활용해 전 인류의 5%를 보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정되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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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23층 세계의 과거는 달랐다. 마력을 비롯한 이계의 자원 없이, 순수하게 행성의 자원만을 이용해온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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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건설 진행 중 발생한 환경 악화의 영향으로, 보존 가능 수치를 1%로 재설정해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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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탑이 나타나지 않은 지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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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설명해준 유토피아는, 한정된 자원으로 인류가 존속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은 낙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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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추출한 잔여 행성자원을 통해, 영구히 존속될 수 있을만한 숫자의 인류만을 이 땅에 남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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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존속 가능한 인류의 숫자는 첫 계산 당시에는 5%였으나, 이후에는 1%로 설정되었고- 그게 이 낙원의 예정된 인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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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인류의 1%, 지구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7천만 정도의 인간만이 이 ‘유토피아’에서 살아남아 역사를 이어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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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 유토피아 시티에는, 7천만은커녕 7명의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을 흉내 내는 기계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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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바깥의 엘리시온에 거주 중인 인간의 숫자를 헤아려보면, 그에 근접한 수치일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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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여기는 왜 이 모양이 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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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대답하지 않는 컴퓨터를 보고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판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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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11의 데이터베이스로 답변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A2-23의 메인 데이터를 불러옵니다, 3초가 소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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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컴퓨터는 다시금 시스템을 바꾸었다. 내가 처음 마주쳤던 유토피아 관리 시스템이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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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는 유토피아 프로젝트가 목표를 달성한 전후력 1203년의 데이터 열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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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열람이 필요한 데이터 F97-2199는 일급 정신 장애 및 치명적 자살 증후군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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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열람 전, 이하의 향정신성 약물을 모두 복용한 후 유서를 작성하여 주십시오. 뇌전성 모르핀 정제 2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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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은 이름만 들어도 심상찮은 마약성 약물의 목록을 줄줄이 나열했다. 물론 나는 그런 걸 갖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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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내성이 너무 높아서 죄다 한 사발씩 들이켜도 별 효과는 없겠지만……대체 왜 그런 걸 권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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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도 안 간다. 나는 [정신 오염 내성]스킬을 믿고, 다시금 자판을 두드려 해당 데이터를 재생할 것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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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프로젝트는 목표 달성 이후, 상정되지 않은 외부 요소의 간섭으로 보유 자원을 손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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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한 자원은 ‘아스트라’로 임시 명명된 에너지원으로서, 기원이 해석되지 못한 미지의 자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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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관리 시스템 A2-23은 해당 자원의 손실 이후의 측정 데이터를 토대로, 인류종 보존 가능 수치를 재설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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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새로 계산한, 보존 가능하다고 판단된 인류의 숫자를 화면에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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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보존 가능 인구 : 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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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스템의 개발자는, 보존 가능한 인류의 숫자가 0으로 계산되었을 때를 상정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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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의 시스템은 영구 보존이 가능한 숫자의 인류를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게 짜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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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 가능한 인구가 10명이라면, 그 10명을 존속시키기 위해 도시의 시스템을 스스로 개편하게 되어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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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외부 요인’의 개입으로 모종의 주요 자원을 손실하자, 그 수치가 0명이 되었고- 이는 치명적인 오류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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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은 영구 보존 가능한 인류 0명을 위해 도시 전체를 개편했고, 그 개편 끝에 지금의 유령도시가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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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명의 인류를 위해 존재하는 공허한 낙원. 시스템은 프로그래밍의 빈틈에 빠져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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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소모 없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용의 휴머노이드를 제조해 투입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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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는 그동안 시스템이 들려온 갖가지 노력을 표시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낭비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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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엘리시온은……결국 멸망한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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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시스템의 계산으로는, 남은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든 인류는 절대 영구 존속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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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유토피아 시티 바깥에 존재하는 엘리시온의 인구는, 미래에 자원 부족으로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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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이 세계에는 예정된 멸망이 닥쳐든다. 마치 세계수가 뿌리내린 9층의 세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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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가 신경을 써야 할 일은 아니다. 모르는 세계가 언젠가 망하든 말든 내가 알 게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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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세계에 남은 사신들을 생각하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하나쯤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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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 타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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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자판을 두들겼다. 시스템에게 설명을 요구하며, 천천히 명령을 입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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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명의 인류를 영구 보존하겠답시고, 괴상한 낭비를 하고 있는 시스템에게- 상황을 알려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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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게도 시스템은 인간 친화적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한 시간 정도를 들여서 나는 명령 입력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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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한 명령은 단순하다. 이미 인류의 영구 존속은 불가능하게 되었으니, 목표를 변경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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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0명의 영구 존속이 아닌, 남은 인류의 장기 존속을 위해 도시를 개편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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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시스템 개편을 시작합니다. 소요 예정 시간 : 312시간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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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유토피아 시티는 내부를 개편하고 문을 개방해, 엘리시온의 시민들을 안으로 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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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낙원에서 열린 낙원이 된 이 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나은 미래가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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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퀘스트 창이 제멋대로 열리더니, 빠르게 등록된 퀘스트가 곧바로 완료 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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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완료 : 닫힌 낙원 -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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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상으로 들어온 것은 새로운 스킬, [파동 제어 Lv.1]이라는 패시브가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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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시브 스킬의 효과는 굳이 설명을 읽을 필요도 없었다. 그동안의 연습을 통해 체득한 감각이 알려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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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을 비롯한 에너지를 자유롭게 요동치게 하며, 흐름을 조작할 수 있게 해주는 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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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읍……스스로 얻고 싶었는데, 그래도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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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서 나는 전격장과 같은 전자발경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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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히든 퀘스트도 어찌저찌 클리어했고, 남은 건 24층으로 넘어가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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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페스티벌 일정이 있으므로, 보스를 잡고 나서도 바로 넘어가지는 않을 셈이다. 포탈이 여기에 생길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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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직 신경 쓰이는 점이 하나 남아 있다- 인류의 영구 존속을 불가능하게 만든 ‘외부 요인’에 대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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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했다는 ‘아스트라’라는 자원에 대해서도 신경이 쓰이고, 그것과 관련해서 마음에 걸리는 점도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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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시 개편을 진행 중인 메인 컴퓨터에게 다가가, 다시금 자판을 두드려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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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마약성 약물을 복용하고 열람할 것을 권하는 데이터의 정체와, 그 미지의 ‘외부 요인’에 대해 알려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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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요인’이란, 유토피아 프로젝트가 가동 중에 연구진과 시스템에 접촉한 미지의 다원정보체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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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스템의 해석으로는 다중차원에 중첩되어 존재하는 모종의 생명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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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데이터베이스에는 해당 외부 요인이 접촉했을 당시의 영상과 음성 자료가 남아 있습니다. 재생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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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짝 긴장하며 자판을 눌렀다. 곧 작은 디스플레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드리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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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이이이이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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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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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찢어질 듯한 노이즈, 뇌를 파고드는 정체불명의 소음, 눈을 파고드는 영상 속의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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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듯한 통증과 함께 피눈물이 흐른다. 소음이 지나간 귓가에서도 주르륵 따뜻한 것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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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녹아내려 입과 코로 흘러나오는 감각, 나는 이 지옥 같은 고통을 이미 느껴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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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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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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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벤토리에서 도끼를 꺼내 내 다리를 찍었다. 다른 방향의 고통에 조금씩 진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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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알림창 몇 개가 눈앞에 떠올랐다. [정신 오염 내성] 스킬의 레벨이 한번에 두 개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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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시에 괴상한 노이즈로만 들리던 소음 속에서, 딱 한마디 말이 식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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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폐품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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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디스플레이는 원래의 화면으로 돌아왔다. 스피커도 소리의 재생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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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눈과 입과 귀와 코에서 피가 철철 흘렀지만, 끝까지 고통을 견뎌내며 정신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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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그게 이 별의 자원을 앗아간 존재의 정체……아마도 내가 15층에서 관측했던 무언가와 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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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음성과 영상을 남긴 외부 요인은, 본 시스템에 접촉할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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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 시스템은 그것의 이름을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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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자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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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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