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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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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악마는 울지 않는다

이 회색 꼬마는 좀처럼 울지 않는다.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여행하면서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에인이 반마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 이 연약해 보이는 꼬마가 사실은 무척 튼튼하다는 것.

죽기 직전까지 갔던 상태에서 기력을 깎아먹는 포션을 마시고 살아난 건, 단순한 우연이나 기적이 아니었다.

태생적으로 강인한 신체능력을 타고나는 마족의 육신을 갖고 있었기에, 그 험한 경험을 하면서도 크게 다치지 않았고.

가혹하기 그지없는 온갖 고초를 겪었음에도, 울지 않을 수 있었던 거다. 마족의 몸은 아프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재버워크에게 납치당한 에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말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에인 역시, 당장에라도 울 듯이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꼬맹이, 네가 왜 여기 있어?”

나는 에인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물었다. 에인은 지금 여기가 아니라 흑색 마탑에 있어야만 한다.

에인은 내 다리에 얼굴을 비비더니,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눈을 떴는데 모르는 곳이어서, 마법으로 빠져나왔다고.

정신을 차리는 게 흑색 마탑에 도착하는 것보다 빨랐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결계를 자력으로 빠져나왔다니.

멀지 않은 미래에 세계를 휩쓸고 마계를 제패할 ‘회색 마왕’으로서의 자질?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진혁악마님, 다쳤어?”

“어?”

“여기, 피 나고 있어……”

에인이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에인은 내가 다친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지금 나는 재버워크의 마법이 폭발하면서 입은 상처가 아직 다 낫지 않은 상태. 내 기준으론 경상 정도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여전히 중상 수준이고, 어린아이의 눈엔 훨씬 더 심각하게 보였을 것이다.

나는 이 정도면 침 바르면 낫는다며, 별일이 아니라 말하려 했다.

“나 때문에 다친 거야?”

그런데 에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리고 나는 실수했다. 곧바로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내가, 이상한 할아버지가 데려가서, 그래서, 진혁악마님이 나 구하러 와서, 그래서 다친 거야……?”

에인은 상식이 심각하게 부족하고, 재버워크의 말한 것처럼 자폐적인 기질을 간혹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이 꼬마의 머리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기억력이나 학습속도는 오히려 천재적인 수준이지.

무엇보다도 차원이 다른 마나 감응력을 지닌 아이이기에, 재버워크의 힘과 마력도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그렇기에 곧장 알아챌 수밖에 없었던 거다. 정황상, 내가 다칠 이유는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 아니, 그런 거 아니야. 나는 괜찮아. 근데 지금 여기가 좀 위험하거든? 그러니까 잠깐만 떨어져 있을래?”

하지만 에인을 천천히 달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도 재버워크가 나를 쫓아 이쪽으로 오고 있었으니까.

나는 칼레온을 꺼내 들고 ‘스승님 불러줄게. 라 말하며, 다리에 매달린 에인을 떼어내려 했다.

“진혁악마님도, 나 버릴 거야?”

“뭐?”

“진혁악마님도 내가 싫어?”

에인의 두 마디가, 내 생각과 행동을 순식간에 멈추게 만들었다.

**

스킬을 통해 수백 배까지 가속되고, 자신만의 내면세계를 구축하는 것도 가능한 사고능력.

어떤 위기를 눈앞에 두고도 빠르게 굴러가던 머리가, 어린아이의 몇 마디에 멈춰 설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충격적인 두 마디로 나를 붙잡은 에인은,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무엇보다 크게 들렸다.

“나 때문에 다쳤잖아…진혁악마님도, 엄마처럼 내가 싫어졌어? 그래서 그런 거야?”

에인이 이런 식으로 ‘엄마’를 입에 올리는 건 처음이다. 머리를 망치로 세게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 할아버지가 그랬어, 엄마는 내가 미워서 버린 거래. 그래서 아는 척도 하기 싫었던 거라고…….”

작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문장과 단어 하나하나에 물기가 서려 있다. 회색 눈이 또르르 물방울을 굴렸다.

“엄마는 나 때문에 힘들었대. 내가 옆에 있어서, 그래서, 내가 엄마라고 불러서, 그래서…너무너무 힘들고 아팠대.”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흐느낌 섞인 들숨과 날숨이 뒤엉켜 있었다.

“내가, 내가 나쁜, 악마라서……엄마가 나를 버린 거래.”

그동안 에인과 나눈 대화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뇌간을 푹푹 쑤신다.

나를 악마로 알고 있는 에인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청색 마탑주와 내가 반복해서 했던 이야기들.

악마는 나쁘다고, 세상에 ‘진혁악마님’ 같은 악마는 더 없을 거라고, 악마는 반드시 쓰러트려야 한다고, 그렇게나.

“나 때문에 다들 아프고 힘든 거랬어, 나중에 내가, 나쁜 마왕이 돼서…나 때문에 다 죽을 거랬어.”

에인의 말은 계속되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재버워크는 에인에게 정말 모든 것을 들려준 모양이다.

‘진혁악마님’은 사실 악마가 아니고, 너야말로 마족이고 악마이며, 너는 나중에 회색 마왕이 될 거라고- 그렇게.

나쁜 마왕을 무찌르는 현자의 이야기를 동경하던 아이의 마음에, 재버워크는 비수를 꽂고 난도질을 벌였다.

“진혁악마님도, 나 때문에 다쳤잖아…그럼 내가 싫어진 거잖아, 그러니까…그러니까.”

고개를 푹 숙인 채 울먹이는 에인을 바라보며,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었다.

“나 때문에……”

모든 게 자기 탓이라 말하며 흐느끼는 에인의 모습 위로,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는 이 꼬마의 마음을 백분 이해한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이래저래 닮은 부분이 많은 처지였지.

엘레노어가 왜 나를 그렇게 안쓰러워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 빛나는 눈동자에도 이런 모습이 비쳤겠지.

하지만 꼭 중요한 순간마다 말주변이 부족한 나는, 어떤 말이 이 아이를 위로할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었다. 엘레노어는 나에게 어떻게 해주었던가. 어릴 적의 나에게, 엄마는 어떤 말을 해주었지.

복잡한 말도, 화려한 언변도 필요치 않았다. 그때의 나에게도, 지금의 에인에게도, 필요한 건 오직 하나였다.

“네 탓이 아니야.”

나는 조심스레 에인과 눈높이를 맞추고, 그 작은 몸을 꼭 끌어안았다.

**

말로는 모든 감정을 다 전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포옹이라는 행위가 있는 거겠지.

몸으로 때우는 건 내 전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 마디만을 반복하며, 에인을 꼭 끌어안았다.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흐느끼며 웅얼거리는 에인의 말에 나는 한결같이 대답했다. 네 탓이 아니라고.

그래, 세상의 모든 불행과 고통이 이 아이를 중심으로 얽혀 있더라도- 단지 태어났을 뿐인 생명에게 잘못은 없다.

에인을 낳고 길렀던 적색 마탑주도 그랬다. 끝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손으로 아이를 죽일 수는 없었다고 했지.

잘못한 자는 따로 있다. 죽고도 또다시 추하게 되살아난 역겨운 마법사, 모든 책임은 그 새끼가 져야 한다.

현재, 재버워크는 이미 제법 가까운 거리까지 도달해 있었다. 항구의 NPC들조차 그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어어, 저거 뭐야! 야! 저거 뭐냐고!”

“내가 어떻게 알아! 도망쳐!”

“이쪽으로 온다, 온다고!”

재버워크에게서 흘러넘친 불길한 마력이 바다를 가르고, 항구의 NPC들을 일제히 혼돈에 빠트린다.

재앙에 필적하는 괴물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에인이 진정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몇 분 뒤, 에인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얼굴을 내 어깨에서 떼며,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아니야? 나, 악마인데, 나쁜 마왕이 된다고 했는데.”

“음, 꼬맹아. 그거 말인데, 사실 악마랑 마족은 다르거든?”

나는 신중히 골라낸 말을 꺼냈다. 참고로,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마족과 악마는 정말로 엄연히 다른 존재다.

“너는 마족의 피가 조금 섞였을 뿐이야. 그리고, 마왕이 된다는 건 또 누가 그래?”

혈사교에게 납치당한 에인은 온갖 가혹한 고초를 겪었음에도 울지 않았다. 마족의 몸은 아프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재버워크에게 납치당해 심한 말을 들은 에인은, 이렇듯 내가 보는 앞에서 울었다.

육체는 마족일지라도, 마음은 분명 인간이기에. 제대로 아파하고 울음을 터트릴 수 있었던 거다.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 꼬마가 마왕 같은 게 된다니, 그럴 리가 있나.

“그거 알아? 악마는 안 울어.”

나는 에인의 지저분해진 얼굴을 조심스레 닦아주며, 작은 몸을 번쩍 안아 어깨 위에 올렸다.

재버워크는 이제 완전히 항구에 도착해 있었다. 주변은 완전히 아비규환. 이보다 더한 난장판은 없을 것이다.

한 손으로 인벤토리를 열었다. 숙소에 떨어져 있었던 큼직한 완드를 꺼내, 에인의 손에 꼭 쥐여주었다.

“그리고, 마왕이라는 건 저런 걸 말하는 거야. 딱 봐도 나쁘게 생겼지?”

대충 봐도 존나게 사악해 보이는 모습을 한 새까만 괴물- 이 에픽 퀘스트의 마지막 보스 몬스터, 재버워크.

도박에 가까운 계획이지만, 이 꼬맹이를 위해서라면 과감하게 올인 한 번쯤은 괜찮을 것 같다.

“같이 무찔러 보자, 우리 꼬마 현자님.”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함께 마왕을 무찌르고, 동경하던 이야기 속의 현자가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