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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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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어억!”

오크가 반으로 갈라졌다.

그 앞에 멍하니 서 있던 데니스는 천천히 검을 내려놓았다.

마지막 마수였다.

마지막 하나 남은 마수까지 잡아낸 데니스는 혼이 나간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데니스 삼촌!”

“아리엘.”

근처 대장간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아리엘이 고개를 내밀었고.

데니스는 곧장 아리엘에게 가 상처 부위를 살폈다.

“괜찮니? 다친 곳은?”

데니스의 눈에 살짝 까져 피가 흐르는 팔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도 아리엘은 멀쩡했다.

데니스는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찬 포션을 뒤적거리다 깨달았다.

“아.”

여긴 주딱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기억 속이기도 했다.

주딱의 존재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왔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확실한 건, 포션 따위 존재할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쓸모가 없다.

주딱이 없으면 이렇게도 나약한가?

기사임에도 마을 하나 못 지켰다.

마치 그가 어렸을 때처럼.

“괜찮으세요?”

그때 아리엘의 목소리가 상념에서 깨웠다.

피 묻은 갑옷을 만지작거리는 아리엘을 데니스는 조금 떨어뜨렸다.

“나는 괜찮다. 그보다...”

데니스는 폐허가 된 마을을 바라봤다.

그도 시골 마을 출신이었다.

대전쟁이 터지며 부모도 마을도 전부 마수 무리에 의해 몰살당했다.

무너진 폐허를 보고 있으면 과거의 기억들이 어지럽게 나열되는 것만 같았다.

폐허 사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생존자들의 시선이 몹시도 날카로웠다.

“미안하구나.”

그때 환상에서 깨어나지 말 걸.

조금만 더 이곳에서 머무를 걸.

진작 주변 정찰을 돌아볼 걸.

온갖 후회가 돌 즘, 자그마한 두 손이 그의 양볼을 꽉 잡았다.

“정신 차려요!”

“!”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왜 미안하다 하시는 거예요.”

흙투성이가 된 아리엘이, 처음 보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봐야 귀여웠지만, 그 분위기에 맞춰 데니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어요. 자기가 무슨 죄인이라도 되는 것 마냥.”

역적.

‘어쩌면 그럴지도.

기사가 되었음에도 고블린 하나에 벌벌 떨던 자신이 떠올랐다.

“난 기사다.”

“알아요. 우리 마을에서 삼촌 같은 사람 처음 봤거든요.”

“그리고 고블린 하나 무서워서 벌벌 떠는 겁쟁이기도 하다.”

나약한 정신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겼다.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해 기사가 되었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한데.

“쳐들어온 건 마수인데, 왜 삼촌이 죄인이에요?”

아리엘이 우다다 쏘아붙였다.

“무서운 게 뭐가 잘못이에요? 그럼 마을 사람들도 다 죄인이에요?”

“아니, 나는 기사로서의 의무를...”

“그럼 기사 관두세요!”

데니스는 할말이 없어졌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한 번도 입밖으로 내뱉은 적은 없었다.

“그리고 보세요. 삼촌은 이미 모두를 구했잖아요!”

데니스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봤다.

마수들이 깔끔하게 절단되어 있었다.

한 마리도 빠짐없이 전부.

‘이걸 다 내가 한 건가.

믿기가 어려웠다.

앞으로 절대로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일은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삼촌은 잘못한 거 없어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소리였다.

쳐들어온 것도 마수였고, 트라우마를 심은 것도 마수였다.

어린 시절, 마을과 부모님이 마수에게 불타고 죽던 풍경이 각인처럼 새겨졌지만.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마수를 베는 것.

그거 생각보다 쉬웠다.

‘별 거 아니었다.

훈련장의 허수아비를 베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이미 그의 신체는 피나는 노력 끝에, 정식 기사가 되어 있었으니.

사실 오크 몇 마리가 오든 아무렇지 않을 테니까.

“억지로 할 필요 없어요. 필요하다면,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있어줄게요.”

하지만 데니스는 아리엘의 말에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이 듣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주딱님은 도대체 어떤 과거를 보내신 건가.

언제일지 모를 이 기억 속에도 마수가 있었다.

지금은 자신이 마수들을 베어냈다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겠지.

이건 허상일 뿐이었고.

실제론 그곳에 데니스는 없었다.

주딱은, 아리엘은 그와 같이 마수에게 모든 걸 잃어버렸다.

‘그런데도 날 보살펴 주시는가.

이 기억은 주딱의 과거였다.

즉, 아리엘은 이 모든 걸 홀로 이겨내고, 끝내 주딱이 되었지만.

그는 고작 기사가 되어서도 트라우마를 견뎌내지 못했다.

그런 한심한 자신을 위해, 기억까지 보여주며 괜찮다고 해준 것이다.

단순히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검을 들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같이 있어주기 위해...”

그걸 깨달은 순간.

그는 마지막으로 아리엘을 세게 껴안았다.

“사, 삼촌?”

당황하는 아리엘이 귀엽다.

마음씨가 친절하고 또 따스하다.

데니스는 현실을 저버리고서라도 이곳에서 평생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데니스는 아리엘의 어깨를 잡아 떼어놓았다.

“삼촌?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눈을 깜빡거리는 아리엘의 모습에 잠깐 흔들렸지만, 데니스는 결심이 섰다.

“이제 그만 깨어나겠습니다.”

주딱이 허락한대로 그는 영원히 환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고작 자신 하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돌봐준 주딱의 마음이 너무 거대했으니까.

그는 깨달아버렸다.

이만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살아갈 차례였다.

“...”

그러자 아리엘이 그대로 우뚝 굳어버렸다.

아리엘 말고 세상 모든 게 멈춰버렸다.

[시뮬레이션을 종료하시겠습니까?]

그와 함께 눈앞에 글자가 나타났으니.

“이걸 누르면...”

더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다.

아리엘이 없는 곳에서 예전처럼 홀로 살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준비되었습니다.”

아리엘은 없지만, 주딱은 그곳에 존재한다.

실제 아리엘의 곁에는 아무도 곁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번만큼은...”

미약할지언정, 주딱의 곁에 자신이 있어주면 된다.

[기록 7일차]

[시뮬레이션을 종료합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고 밝아져오는 빛을 받아들였다.

[새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 음 ㅇㅇㄹㅁㅋ

  • 오?

  • 와 ㅋㅋ 아니 진짜 되네

  • 주딱*) ?

  • 주딱으로 이행시 하겠습니다

  • 주딱*) ㅇㅇ

  • 주딱*) 주

  • 주딱

  • 주딱*) 딱

  • 딱먹고싶다

  • 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죽어야겠지?”

[해당 ip를 차단했습니다]

[기간 7일]

[사유 괴1씸한놈]

그때 메시지가 하나 더 날아왔다.

[새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 헉 이거 진짜 보내지넹

  • 주딱*) ?

  • 헉 주딱니뮤ㅠㅠ 진짜 한 번 톡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퓨ㅠㅠ

  • 주딱*) 용건

  • 주딱으로 이행시 할게용!

  • 주딱*) 주딱 딱먹고싶다면 죽일 거임

  • (‘한 번만 봐주세요 ㅠㅠ’ 메모를 들고 있는 토끼 수인족 짤)

  • 주딱*) 나가라

[해당 ip를 차단했습니다]

[기간 7초]

[사유 ㅎㅎ]

“어지럽네.”

갤러리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쓸데없는 채팅들이 계속해서 날아온다.

갤러리 초창기때부터 있었던, 주딱 채팅 기능.

일종의 주딱 호출벨이었다.

언제 위기가 닥칠지 모르니, 채팅을 보내면 되도록 내가 최우선으로 보는 연락망이었는데.

[새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 cex

[새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 hisword) 하이소드(소드마스터)가 인사를 하면? ㅋㅋㅋㅋ

[새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 주딱님 왜 토끼굴안와 나 진짜 기다리다 지쳐.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요? 그럼 언제까지고 그렇게 해 봐요. 토끼 인내심도 한계라는 게 있는데 자꾸 그렇게 나오면...

“망했네.”

미친 섹무새에 솔직히 좀 재밌는 꿀잼 드립에 장문의 글카스까지.

“근데 뭐... 이렇게 될 거 같긴 했지.”

애초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정된 재앙이었다.

그래서 참다 못해 잠시 기능을 내렸다.

“차라리 제대로 된 공식 주딱 호출벨을 만들고 말지.”

무차별적으로 귓테러를 못하게, 규칙을 정해두자는 게 취지였는데.

생각해보니 데니스를 까먹고 있었다.

“아 맞다.”

무려 일주일간의 방치.

하지만 아차 싶던 것도 잠시, 나는 곧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뭐 그래봐야 VR이잖아?”

데니스는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려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푹 쉬라는 의미에서, 아늑한 배경에 친절한 npc들도 넣었다.

유일하게 신경 쓴 npc가 하나 있긴 했는데.

“그게 이름이... 아리엘이었나?”

[친절한 아리엘] - 추천!

친절하고 자상한 옆집 꼬마, 아리엘입니다.

눈치가 빠르고 생각이 깊습니다.

상대의 상처를 금방 파악하고, 이를 같이 공감하며 나눌 수 있습니다.

PTSD, 트라우마 환자에게 적극 추천되는 npc입니다.

경고!

*과한 몰입감으로 사용자를 가상 현실 의존증을 불러일으킨 사례가 존재합니다.

*평화로움 모드에서는 과도한 의존증 유발로 사용을 비추천합니다.

*해당 npc는 사용자의 정신 안정을 위해, 7일 후 자동 폐기 처리됩니다.

친절한 아리엘.

특별히 신경써서 제작된 인공지능으로 환자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써져 있었다.

물론 과한 몰입감으로 환자를 더더욱 폐인으로 만들 위험이 있었다.

“7일 후 자동 폐기도 있네.”

그래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 폐기가 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뭐 적당히 등장하다가 안하는 수준으로 사라진단 소리겠지.”

상식적으로 사용자 보는 앞에서 때려 부수진 않을 테니까.

그래서 사용했다.

즉, 지금쯤이면 데니스는 현실에서 벗어나 평화로움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분명 그래야 했다.

[오류!]

[‘친절한 아리엘’이 폐기되지 않았습니다.]

“엥.”

그런데 다시 접속해보니 나를 반기는 건 각종 오류음 뿐.

분명 폐기되었어야 했던 아리엘이 살아 있다는 알림이었다.

“이게 뭔 소리지.”

이상함에 내가 꾸며놓았던 마을을 켜 본 그 순간이었다.

-타닥... 타닥...

마을이 불타고 있었다.

정확히는 불타고 남은 흔적만 남아 있었다.

“오, 불꽃놀이 중인가?”

평화로워야 했던 마을에 마수들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으니.

아무리봐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시뮬레이션 난이도 설정]

[설정: 어려움]

그러다 난이도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왜?”

분명 평화로움으로 설정했었는데.

아무래도 마을을 만드는 과정에서 초기 설정이 어려움으로 바뀐 모양이었다.

“그럼 설마 폐기라는 것도...”

마수들이 쳐들어와서 아리엘을 물리적으로 폐기한단 소리였나?

“큰일났네.”

당연히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데니스였다.

심한 PTSD로 인해 고블린만 봐도 몸이 굳었는데, 마수 침략이라니.

주딱*: 아 님아;

주딱*: 괜찮음?

일단 데니스에게 채팅을 보냈다.

설마 PTSD 증상이 심해진 건 아닐까.

마을 풍경만 보면 진작 심해졌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이었다.

다행히도 머지않아 데니스에게 답장이 돌아왔으니.

데니스: 주딱님 감사합니다

데니스: 공유해주신 기억 덕분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주딱*: ?

데니스: 언젠가 당신의 곁에 설 수 있도록 끝없이 단련하겠습니다

나는 천천히 채팅을 다시 읽어봤다.

“엥?”

물론 다시봐도 이해는 가지 않았으니.

PTSD 환자였던 데니스가 돌연 내게 고백과도 같은 채팅을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