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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듯 일말의 움직임조차 없이 굳어버린 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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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다 댄 손을 천천히 내리자 해일이 서서히 스러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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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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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부분부터 흩어져가는 그 막대한 양의 바닷물은 주변을 뿌옇게 물들였고, 이내 해일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을 즈음에는 하늘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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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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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비를 토해낸다. 쏴아아-, 쏟아지는 빗줄기 아래 선 서준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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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인간이 이루어낼 수 있는 이적은 어디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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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태어난 검신은 태양을 베었고, 자신은 해일을 일으켜 그것을 비로서 내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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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사색을 끝내고 바다 위에 내려서자 멍하니 서준을 바라보던 춘봉이 말랑한 볼을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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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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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절정에 오르며 어느 정도는 따라잡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턱도 없는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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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그 어느 초절정이 저딴 짓을 태연히 벌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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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경에 올랐으나 화경에는 오르지 못했다 했던가? 춘봉이 보기에는 헛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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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만 화경이 아닐 뿐, 오빠는 이미 아득히 높은 곳에 오른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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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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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춘봉은 그 무지막지한 해일 속에서도 약간의 변화조차 없는, 할아버지가 남긴 검흔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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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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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럼 없이 오빠의 옆에 설 수 있는 무인이 되리라. 꾹 다문 입 속의 혀를 달싹이며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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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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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수아의 목소리에 춘봉이 퍼뜩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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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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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수아는 대답 대신 말없이 해안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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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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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상당히 쪽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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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후다닥 달려가 서준의 등짝을 챱챱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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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빨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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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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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픽 웃으며 춘봉과 남궁수아의 허리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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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다른 데로 가서 천천히 바다 구경이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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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바다에 온 거, 경치 좋은 데서 일몰은 보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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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과 함께이기까지 하니 더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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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의 신원을 파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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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군사 제갈통이 보고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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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흑산파의 전대 고수, 려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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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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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통은 탁상 위의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도무지 사마현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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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경의 무인을 선두에 세워 동쪽부터 서쪽을 가로지른다…. 서쪽을 흔들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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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강성에서 사흑련의 초절정 셋이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보고는 이미 들은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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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중원 곳곳에서 사흑련의 초절정 무인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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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나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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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쪽이 그 고수들을 모조리 잡아낸다면 사흑련 입장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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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통은 사마현이라는 사람을 어느 정도 알았다. 결코 아무런 의미 없이 전력을 내던지는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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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당연히 지금의 혼란은 무언가를 가리기 위한 미끼라는 것인데…. 현재 정파 무림에는 놈이 노릴 만한 무언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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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화경들의 움직임은 파악된 것이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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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현재까지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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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말 중원 서쪽을 되찾기 위함이라고? 제갈통이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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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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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원이라는 화경의 고수가 휘하의 무인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향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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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휘말린 무인들 중 주요 인물은 여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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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의 청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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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의 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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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의 허백과 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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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가의 팽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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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의 남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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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육명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이지만, 사실 그들을 잃은 것으로 큰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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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연이 남궁세가주의 친동생이라는 사실이 조금 걸리긴 하나, 그렇다 한들 큰 문제는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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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육명문의 가주는 그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아니, 설령 남궁진천이 직접 나선다 한들 사흑련 입장에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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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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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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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가능하려면 제천혁을 필두로 화경의 무인이 서넛쯤은 필요할 텐데, 지금 상황에서 그만한 전력을 뒤로 뺀다면 자칫 칠사흑문 중 여럿이 날아가버리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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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떻게든 판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너무 큰 도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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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화경의 무인 둘, 혹은 셋을 잃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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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을 잡아냈다는 상징성 외에는 손해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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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와 셋. 둘 중 무엇이 더 큰 수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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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그 하나가 천하제일인이라 한들 중원은 지나칠 정도로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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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와 셋이 동등한 전력이라 했을 때, 당연히 셋 쪽이 활용도가 넓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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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전이 되거나 천하제일인이 치고 빠지는 식의 전술을 구사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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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의 존재와 현경의 무인, 남궁세가의 수비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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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능성은 배제해도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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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달리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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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서와 산서, 강소, 절강에서 날뛰는 초절정의 무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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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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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피해가 적지는 않겠으나, 초절정 고수를 잃는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피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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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제갈통은 끝내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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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원은 화산의 장문인께 맡깁니다. 무리하지 않고 놈을 쫓아내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또한…, 공동파의 장문인께 서쪽의 동세를 항시 살펴달라 말을 전해주세요. 혹여 놈들이 서쪽의 허리를 끊으려 하면 즉시 대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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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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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실종된 주요 인물들의 수색에도 신경을 기울이도록 하십시오. 설령 이미 죽었다고 한들 그 시체라도 찾아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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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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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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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의 움직임을 살피던 사마현은 입꼬리를 찢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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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수보다는 언제나 안전하고 뒤탈 없는 수를 두는 제갈통. 그의 성향이 이번에는 발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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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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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발 선 눈으로 지도를 살피는 사마현의 모습에 보고를 올린 수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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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나간 계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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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수를 조금이라도 읽힌다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도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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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사마현은 보란 듯이 성공까지 단 한 걸음만을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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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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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통 입장에서는 결코 사마현의 수를 읽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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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 없이 뿌려대는 미끼로 낚는 것이 단 하나의 기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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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그 기물은 천하제일의 무력을 자랑한다. 낚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그것을 사냥하려면 사냥꾼 입장에서도 압도적인 전력을 준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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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일이 실패로 끝나거나, 혹은 시간이 약간만 지체되어도 사흑련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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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감이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라도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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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흑련은 이미 사냥 준비를 위해 어마어마한 출혈을 감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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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 하나에만 련 내의 절정경 100명, 일류 내지 이류의 무인 500명, 범인 3000명을 제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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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고작 진법 하나에 들어간 소모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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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조금만 틀어져도 그 모든 준비가 무용지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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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하는 이들의 마음과 성향을 꿰뚫고 있지 않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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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대로 사냥감, 남궁진천이 사마현의 뜻대로 움직여주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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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쟁은 사흑련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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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현은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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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의 소식이 끊겼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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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창천대주 및 창천대 전원이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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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연. 그녀는 남궁진천의 친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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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이어졌음에도 그녀는 남궁진천과 여러모로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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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이 고요한 하늘이라면, 그녀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요란한 하늘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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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 좋지 않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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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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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궁세가 내부에는 마땅한 전력이 없다. 가문을 지킬 정도의 고수들은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전력은 전쟁 탓에 외부에 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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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연의 구호를 위해 보낼 전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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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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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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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판도, 십육명문이라는 이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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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에게는 전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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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연은 남궁진천의 가족이다. 남궁진천이 직접 움직일 이유로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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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의 이해도 바라지 않는다. 부인을 잃은 그 순간부터, 남궁진천에게 가족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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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전을 나서 올려다본 하늘은 맑았다. 남궁진천은 그 깊숙한 곳에 감춰진 천기를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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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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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허리춤에서 검이 스스로 뽑혀나와 허공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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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는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화경의 무인이라면 천기를 바꿔 쓰는 것 역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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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은 굳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천기가 어떻건, 가족을 구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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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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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이 검 위에 걸터앉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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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동안 가문은 명이 네가 이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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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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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부탁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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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실, 검에 올라탄 남궁진천의 몸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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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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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가 베이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남궁진천의 신형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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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명의 고요한 시선이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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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은 공간을 베어내며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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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저 검 위에 걸터앉아 있었으나, 나아가는 검은 앞선 공간을 꿰뚫어 남궁진천을 순식간에 섬서의 최북단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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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이 땅에 발을 디뎠다. 남궁세가를 떠난 지 채 찰나의 시간이 흐르기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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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경의 무인이 휩쓸고 지나간 땅은 황폐했다. 시체조차 온전히 남지 않아 건조한 공기만이 코끝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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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주변을 살피던 남궁진천은 희미한 흔적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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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 정도의 무인이 아니라면 발견할 수 없을 아주 미세한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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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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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자신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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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음에도 지원을 부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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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여 인질이라는 손패를 버릴 이유가 없으니 남궁연은 아직 살아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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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한 짓을 했다가는 남궁연의 목숨이 위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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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검이 남궁진천의 주변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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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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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접어 이동하던 그는 사막의 한복판에 섰다. 모래바람에 시야가 뿌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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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곳에 그의 누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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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서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이었다. 사흑련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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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까지 이어진 희미한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이는 거의 없고, 그것을 발견하더라도 이곳까지 오는 데는 시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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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남궁진천을 지원하러 올 가능성은 터무니없이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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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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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당한 남궁연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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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멍청한 놈이…! 빨리 도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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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네 신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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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은 남궁연의 곁에 선 채 그들을 보았다. 전부 아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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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천제가의 가주 제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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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련문의 문주 혁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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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종문의 문주 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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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흑련의 직속 무력대주 능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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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경의 무인이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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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을 펼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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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변을 에워싼 초절정의 무인이 대략 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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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악-! 순식간에 펼쳐진 진이 일대를 격리한다. 진 내부에는 남궁진천과 남궁연, 그리고 네 명의 화경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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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올 줄이야. 그것도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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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혁이 남궁진천과 마주 보고 섰다. 우측에 기련문주가, 좌측에 검율이, 후방에 능평호가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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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곳이 나의 무덤이 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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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검존 남궁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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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의 사내는 그토록 바라던 끝이 왔음에 티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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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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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순히 죽어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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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바람에 아이들이 휘말려서는 안 된다. 갈 때는 가더라도 이들은 전부 데려가야 아이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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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아이들에게 맡겨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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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걱정은 않는다. 믿음직한 사위가 생겼으니, 아이들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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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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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죽지 못하더라도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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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자 하는 이기심보다는, 살아있는 동생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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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은 그렇게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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