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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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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은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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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 때문에 오빠가 겪을 필요도 없는 위험을 겪는 것은 아닌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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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의 종인 장로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렇다. 그들의 목적은 다른 사람이 아닌 춘봉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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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는 신검금가의 금희. 또, 신혈의 보유자인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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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곁에서 떨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춘봉은 서준의 곁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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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그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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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손을 잡고, 아니면 등에 업혀서, 혹은 품에 안긴 채 그의 며칠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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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춘봉아. 뜌땨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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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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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얘가 모자라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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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나름 바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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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혈만천과 검신을 눈앞에서 보았으니, 무언가 느낀점을 체화하려면 조금 서두르는 편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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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탓에 요 며칠간 패진광과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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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정이라는 대지에 기와 신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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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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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진짜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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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룩한 새로운 경지. 그것은 서준에게도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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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의 화경은 신의 비대를 토대로 한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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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신 중 신은 의념이나 자의식과 관련된 영역인만큼, 신의 비대를 이뤘을 때 스스로의 존재를 잃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의 존재를 확고히 해 세상에 새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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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이룬 경지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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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의 비대를 이루어 정과 신을 통합하니 그의 존재 자체가 자연에 가까워졌다. 스스로의 자아가 흐려졌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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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패진광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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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경지를 대충 함천경(含天境)이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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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천, 하늘을 담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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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정이면 땅[地]에 가깝지 않나? 웬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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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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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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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패진광의 헛소리에 잠시 어울려주다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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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자아는 어떻게 해결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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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별 문제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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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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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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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인간이 본디 타고나 스스로 성장시켜나가는 정과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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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달리 세상으로부터 얻어 채워나가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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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차이가 있다면 그 정도가 아닐까…, 하는 심증 정도만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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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받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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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툴툴대며 종이에 이런저런 글자를 주욱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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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매달린 채 빼꼼 고개를 내민 춘봉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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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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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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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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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지 이름이지. 일단 지어놓는 편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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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써 이룬 경지, 기가 몸을 대체한다, 정과 신의 통합, 자연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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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경(化氣境)? 아니다. 기신경(氣身境)이 낫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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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별론데. 화경이나 함천경 같은 이름이랑 비교하면 약해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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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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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름 짓는 재주가 없는 걸 어떡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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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일단 임시로 기신경이라 하자. 나중에 좀 더 확실히 알게 되면 새로 지으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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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일단 기신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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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춘봉을 재운 뒤, 서준은 방을 나서 지붕 위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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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지붕이란 영감의 원천이자 무공 스터디 카페쯤 되는 신묘한 지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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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신경은 닿으려면 언제든 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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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뒷감당을 어찌 할지는 생각을 좀 해봐야겠지만, 닿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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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그곳에 닿았던 흐릿한 기억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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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어검이라거나, 머리 뒤에 핀 꽃으로 쏘아내는 역천일월공이라거나, 뜻하는 대로 펼쳐지던 주술 따위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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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천일월공은 개선을 좀 해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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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절정에 막 올랐을 즈음부터 쓰던 기술이다. 이제는 화경에 가까워진 만큼 무언가 개선할 점이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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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딱히 개선할 점이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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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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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손댈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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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신경에 닿았을 때는 평소에 쓰던 것보다 가늘긴 해도 역천일월공을 수백 발씩 쏴댔는데, 새삼 생각해보니 그냥 말이 안 되는 짓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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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천일월공 이거, 화경에서도 통하는 무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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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걸 수백 발씩 쏴댄다? 시혈만천 그 새끼가 맞고 버틴 게 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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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오히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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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다음은 이기어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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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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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쓰는 비명. 크게 놀란 서준이 당장 방에 뛰쳐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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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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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땀에 푹 젖은 춘봉이 숨을 헐떡이고 있다. 그녀는 주위를 더듬대며 무언가를 찾다가, 서준과 눈이 마주치자 엉금엉금 기어와 다리에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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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디 갔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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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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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시혈만천 그 개새끼. 조금 더 잘게 찢어서 죽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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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한숨을 삼키며 춘봉을 안아들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 훌쩍 뛰어 다시금 지붕 위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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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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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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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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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게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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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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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그냥 무게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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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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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픽 웃으며 춘봉을 고쳐안았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이 가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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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체내의 기를 강하게 의식하며, 정과 신을 잇는 통로를 아주 살짝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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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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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몸에서 넘쳐흐른 기와 세상의 기가 공명한다. 서준은 그곳에 조심스럽게 의념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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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차게 흐르는 강물 위에 나뭇잎을 띄운 듯 의념이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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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그 흐름을 세심하게 조절해 검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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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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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스스로 뽑혀나왔다. 이기어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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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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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의 눈이 부릅 뜨였다. 이기어검은 화경의 상징과도 같다. 그녀가 놀란 눈으로 서준을 바라보자 서준이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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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화경은 아닌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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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이기어검도 아니다. 기신경에 닿았을 때 쓰던 이기어검과 비교하면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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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 한 번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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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봐, 춘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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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검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중원의 태양을 베어 떨어뜨리던 그 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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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춘봉이에게 멋진 모습 한 번 보여주는 건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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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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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바라는 것과 동시에 검에 담긴 내공이 거칠게 요동쳤다. 우웅-, 마검이 환희를 내지른다. 마검은 이기어검에 스스로의 의지를 담아 조금 더 자유롭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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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빠는 어디 가서 맞고 다닐 만큼 약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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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한 손으로 춘봉을 안은 채, 나머지 한 손을 하늘 위로 뻗었다. 그의 손이 하늘을 가리키는 것과 동시에 검이 뻗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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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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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탁한 빛깔의 궤적을 그리며 쏘아진 검이 하늘 끝에 닿았다. 서준은 검으로 꿰뚫은 하늘을 땅으로 끌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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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릉-! 커다랗게 부서진 밤하늘의 조각들이 떨어져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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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처럼 쏟아지는 하늘의 파편 속에서, 서준이 춘봉을 안은 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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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이래도 나 못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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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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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푹 고개를 숙였다. 서준은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번쩍 들어올렸다. 롱- 춘봉 모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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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못 미더우면 별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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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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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네가 날 지켜줘. 나보다 더 강해져서. 세기의 대천재 금춘봉은 할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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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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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은 문득 뒷골목 시절을 떠올렸다. 비슷한 일이 한 번 있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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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선명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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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렇게 병신들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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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많은 병신들을 한 번 보고, 너를 다시 한 번 돌아봐. 너 정도면 진짜 개쩌는 놈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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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이고 천재라면서. 조만간 절맥도 고칠 수 있을 텐데, 그때부터 열심히 쫓아와봐. 혹시 알아? 네가 엄청 세져서 날 먹여 살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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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때쯤 나는 초절정 찍을 거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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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이제 와서 생각해봐도 참 병신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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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도 아니고. 사람 다 있는 거리 한복판에서 그게 할 소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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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몰랐다. 그때는 상상도 못 했는데…, 지금은 정말로 절맥이 전부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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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이때까지 살아있으리란 생각도 못 했다. 아니, 오빠가 없었다면 이미 죽어도 진작에 죽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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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같을 정도로 한결같은 그의 헌신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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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제 오빠는 초절정을 넘어 화경을 바라보는 고수가 되었다. 농담처럼 흘린 말이었지만, 그게 그저 농담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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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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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기 짝이 없다. 그 모자라 보이던 말이 현실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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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 자신이 오빠를 먹여 살린다는 말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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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하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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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은 픽픽 헛웃음을 흘리다 서준을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자신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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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언제나처럼, 자신을 믿어주는…, 또, 애틋해서 몸이 녹아버릴 것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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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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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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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금춘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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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힘차게 가슴을 내밀었다. 서준에게 번쩍 들린 롱- 춘봉의 눈이 옅은 빛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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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빼고 전부 이루어졌다면, 그 나머지 하나 역시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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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보다 강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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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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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아니야. 너보다 강해져서, 맨날 빙탕호로 심부름 시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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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지금도 해줄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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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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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삐죽 입술을 내밀자 서준이 그녀를 지붕 위에 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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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오늘부터는 혼자 잘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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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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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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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낄낄 웃으며 제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시혈만천의 진기를 흡수하며 조금 과하게 뭉친 내단의 존재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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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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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컥, 허공에 머물던 검이 스스로 검집에 들어왔다. 기신경에 슬쩍 담구고 있던 발을 뺀 서준은 조심스럽게 내단의 일부를 떼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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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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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통과하듯 바깥으로 나온 황금빛 내단이 찬란한 빛을 내뿜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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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그것을 춘봉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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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네 오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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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의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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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충분하고도 넘쳐서 너 주려고. 네 내공이랑 별 차이 없어서 흡수하기도 쉬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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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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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우물쭈물대는 춘봉의 품에 내단을 쑥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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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생사타통공 쓰기 직전에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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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은 제 품을 더듬었다. 동글동글한 내단이 느껴진다. 그녀는 그것을 멍하니 매만졌다. 이제는 아예 영약을 만들어서 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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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고민하던 춘봉이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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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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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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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입술을 꾹 깨물던 춘봉이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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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말할 거니까 잘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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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금춘봉의 말을 경청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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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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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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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살자. 잘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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