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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2 KiB
Raw Blame History

‘나 때문일지도 몰라.

춘봉은 우울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 때문에 오빠가 겪을 필요도 없는 위험을 겪는 것은 아닌가, 하는….

화산의 종인 장로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렇다. 그들의 목적은 다른 사람이 아닌 춘봉 자신이었다.

정확하게는 신검금가의 금희. 또, 신혈의 보유자인 자신….

오빠 곁에서 떨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춘봉은 서준의 곁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당장 그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했다.

그래서 손을 잡고, 아니면 등에 업혀서, 혹은 품에 안긴 채 그의 며칠을 함께 했다.

“자, 춘봉아. 뜌땨따!”

“…….”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얘가 모자라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서준은 나름 바쁘게 움직였다.

시혈만천과 검신을 눈앞에서 보았으니, 무언가 느낀점을 체화하려면 조금 서두르는 편이 좋았다.

그런 탓에 요 며칠간 패진광과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정이라는 대지에 기와 신을 심었다?”

“그렇지.”

“아니, 진짜로요?”

그가 이룩한 새로운 경지. 그것은 서준에게도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통상의 화경은 신의 비대를 토대로 한 경지다.

정기신 중 신은 의념이나 자의식과 관련된 영역인만큼, 신의 비대를 이뤘을 때 스스로의 존재를 잃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의 존재를 확고히 해 세상에 새겨낸다.

서준이 이룬 경지는 달랐다.

기의 비대를 이루어 정과 신을 통합하니 그의 존재 자체가 자연에 가까워졌다. 스스로의 자아가 흐려졌음은 물론이다.

헌데 패진광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나는 이 경지를 대충 함천경(含天境)이라 부르고 있다.”

함천, 하늘을 담았다는 뜻이다.

“아니, 정이면 땅[地]에 가깝지 않나? 웬 하늘?”

“내 마음이다.”

“아하.”

서준은 패진광의 헛소리에 잠시 어울려주다 물었다.

“그래서 자아는 어떻게 해결했는데요?”

“나는 그냥 별 문제 없었는데?”

“뭣.”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다만 인간이 본디 타고나 스스로 성장시켜나가는 정과 신.

그와 달리 세상으로부터 얻어 채워나가는 기.

무언가 차이가 있다면 그 정도가 아닐까…, 하는 심증 정도만을 얻을 수 있었다.

“열받네 진짜.”

서준은 툴툴대며 종이에 이런저런 글자를 주욱 써내려갔다.

등에 매달린 채 빼꼼 고개를 내민 춘봉이 물었다.

“이건 뭐야?”

“작명.”

“뭔 작명?”

“새로운 경지 이름이지. 일단 지어놓는 편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이잖아.”

기로써 이룬 경지, 기가 몸을 대체한다, 정과 신의 통합, 자연에 가까워진다….

“화기경(化氣境)? 아니다. 기신경(氣身境)이 낫나?”

“둘 다 별론데. 화경이나 함천경 같은 이름이랑 비교하면 약해보이잖아.”

“뭣.”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름 짓는 재주가 없는 걸 어떡하라고.

“그럼 일단 임시로 기신경이라 하자. 나중에 좀 더 확실히 알게 되면 새로 지으면 되겠지.”

아무튼 일단 기신경이다.

품에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춘봉을 재운 뒤, 서준은 방을 나서 지붕 위에 올라섰다.

한밤중의 지붕이란 영감의 원천이자 무공 스터디 카페쯤 되는 신묘한 지역인 것이다.

‘기신경은 닿으려면 언제든 닿을 수 있다.

물론 뒷감당을 어찌 할지는 생각을 좀 해봐야겠지만, 닿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서준은 그곳에 닿았던 흐릿한 기억을 되새겼다.

이기어검이라거나, 머리 뒤에 핀 꽃으로 쏘아내는 역천일월공이라거나, 뜻하는 대로 펼쳐지던 주술 따위의 기억이었다.

‘역천일월공은 개선을 좀 해야 되나?

초절정에 막 올랐을 즈음부터 쓰던 기술이다. 이제는 화경에 가까워진 만큼 무언가 개선할 점이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딱히 개선할 점이 없는 것 같았다.

‘완벽한데?

이건 뭐 손댈 게 없다.

기신경에 닿았을 때는 평소에 쓰던 것보다 가늘긴 해도 역천일월공을 수백 발씩 쏴댔는데, 새삼 생각해보니 그냥 말이 안 되는 짓거리다.

역천일월공 이거, 화경에서도 통하는 무공이다.

그런 걸 수백 발씩 쏴댄다? 시혈만천 그 새끼가 맞고 버틴 게 용하다.

‘뭐, 오히려 좋아.

그러면 다음은 이기어검인데….

오빠아아아──────!!

악을 쓰는 비명. 크게 놀란 서준이 당장 방에 뛰쳐들어갔다.

“허억…! 허억…!”

식은땀에 푹 젖은 춘봉이 숨을 헐떡이고 있다. 그녀는 주위를 더듬대며 무언가를 찾다가, 서준과 눈이 마주치자 엉금엉금 기어와 다리에 매달렸다.

“어, 어디 갔었어….”

“…….”

서준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시혈만천 그 개새끼. 조금 더 잘게 찢어서 죽일걸.

서준은 한숨을 삼키며 춘봉을 안아들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 훌쩍 뛰어 다시금 지붕 위에 올라섰다.

“춘봉아.”

“…응.”

“희야.”

“…왜 무게 잡아.”

“뭐뭣.”

“…아니야. 그냥 무게 잡아.”

“응.”

서준은 픽 웃으며 춘봉을 고쳐안았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이 가늘다.

그는 체내의 기를 강하게 의식하며, 정과 신을 잇는 통로를 아주 살짝 넓혔다.

우우웅──────────

그의 몸에서 넘쳐흐른 기와 세상의 기가 공명한다. 서준은 그곳에 조심스럽게 의념을 띄웠다.

힘차게 흐르는 강물 위에 나뭇잎을 띄운 듯 의념이 요동친다.

서준은 그 흐름을 세심하게 조절해 검에 담았다.

스릉-

검이 스스로 뽑혀나왔다. 이기어검이다.

“어…?”

춘봉의 눈이 부릅 뜨였다. 이기어검은 화경의 상징과도 같다. 그녀가 놀란 눈으로 서준을 바라보자 서준이 작게 웃었다.

“아직 화경은 아닌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완전한 이기어검도 아니다. 기신경에 닿았을 때 쓰던 이기어검과 비교하면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면.

“잘 봐, 춘봉아.”

서준은 검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중원의 태양을 베어 떨어뜨리던 그 신위.

그것을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춘봉이에게 멋진 모습 한 번 보여주는 건 어렵지 않다.

콰드드득────────!!!

서준이 바라는 것과 동시에 검에 담긴 내공이 거칠게 요동쳤다. 우웅-, 마검이 환희를 내지른다. 마검은 이기어검에 스스로의 의지를 담아 조금 더 자유롭게 움직였다.

“이 오빠는 어디 가서 맞고 다닐 만큼 약하지 않아요.”

서준은 한 손으로 춘봉을 안은 채, 나머지 한 손을 하늘 위로 뻗었다. 그의 손이 하늘을 가리키는 것과 동시에 검이 뻗어나간다.

콰아아아앙────────!!

혼탁한 빛깔의 궤적을 그리며 쏘아진 검이 하늘 끝에 닿았다. 서준은 검으로 꿰뚫은 하늘을 땅으로 끌어내렸다.

우르릉-! 커다랗게 부서진 밤하늘의 조각들이 떨어져내린다.

비처럼 쏟아지는 하늘의 파편 속에서, 서준이 춘봉을 안은 채 웃었다.

“어때. 이래도 나 못 믿어?”

“그건 아닌데….”

춘봉이 푹 고개를 숙였다. 서준은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번쩍 들어올렸다. 롱- 춘봉 모드다.

“이래도 못 미더우면 별수 없지.”

“…응?”

“그러면 네가 날 지켜줘. 나보다 더 강해져서. 세기의 대천재 금춘봉은 할 수 있잖아.”

“그건….”

춘봉은 문득 뒷골목 시절을 떠올렸다. 비슷한 일이 한 번 있었던 것 같은데….

과거의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선명하게 떠오른다.

‘여기 이렇게 병신들이 많아.

‘이 수많은 병신들을 한 번 보고, 너를 다시 한 번 돌아봐. 너 정도면 진짜 개쩌는 놈이라니까?

‘신동이고 천재라면서. 조만간 절맥도 고칠 수 있을 텐데, 그때부터 열심히 쫓아와봐. 혹시 알아? 네가 엄청 세져서 날 먹여 살릴지.

‘뭐, 그때쯤 나는 초절정 찍을 거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때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이제 와서 생각해봐도 참 병신 같은 말이다.

바보도 아니고. 사람 다 있는 거리 한복판에서 그게 할 소린가?

그래서 몰랐다. 그때는 상상도 못 했는데…, 지금은 정말로 절맥이 전부 나았다.

당시에는 이때까지 살아있으리란 생각도 못 했다. 아니, 오빠가 없었다면 이미 죽어도 진작에 죽었겠지.

바보 같을 정도로 한결같은 그의 헌신 덕분이다.

심지어 이제 오빠는 초절정을 넘어 화경을 바라보는 고수가 되었다. 농담처럼 흘린 말이었지만, 그게 그저 농담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말로….

우습기 짝이 없다. 그 모자라 보이던 말이 현실이 될 줄이야.

단 하나, 자신이 오빠를 먹여 살린다는 말만 빼고.

‘한심하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춘봉은 픽픽 헛웃음을 흘리다 서준을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자신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그래. 언제나처럼, 자신을 믿어주는…, 또, 애틋해서 몸이 녹아버릴 것만 같은….

“…맞지.”

“응?”

“나 금춘봉이야.”

춘봉이 힘차게 가슴을 내밀었다. 서준에게 번쩍 들린 롱- 춘봉의 눈이 옅은 빛을 품었다.

하나를 빼고 전부 이루어졌다면, 그 나머지 하나 역시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

“너보다 강해질 거야.”

“와 정말요?”

“농담 아니야. 너보다 강해져서, 맨날 빙탕호로 심부름 시킬 거야.”

“그건 지금도 해줄 수 있는데…?”

“시끄러.”

춘봉이 삐죽 입술을 내밀자 서준이 그녀를 지붕 위에 내려주었다.

“그러면 오늘부터는 혼자 잘 수 있지?”

“…그건 아닌데.”

“뭣.”

서준이 낄낄 웃으며 제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시혈만천의 진기를 흡수하며 조금 과하게 뭉친 내단의 존재가 느껴진다.

휘릭-!

철컥, 허공에 머물던 검이 스스로 검집에 들어왔다. 기신경에 슬쩍 담구고 있던 발을 뺀 서준은 조심스럽게 내단의 일부를 떼어냈다.

화악-!

가슴을 통과하듯 바깥으로 나온 황금빛 내단이 찬란한 빛을 내뿜는다.

서준은 그것을 춘봉에게 건넸다.

“자, 네 오빠야.”

“…무슨 의미야?”

“나는 이미 충분하고도 넘쳐서 너 주려고. 네 내공이랑 별 차이 없어서 흡수하기도 쉬울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서준이 우물쭈물대는 춘봉의 품에 내단을 쑥 집어넣었다.

“나중에 생사타통공 쓰기 직전에 먹어.”

춘봉은 제 품을 더듬었다. 동글동글한 내단이 느껴진다. 그녀는 그것을 멍하니 매만졌다. 이제는 아예 영약을 만들어서 주네….

무언가 고민하던 춘봉이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야.”

“응?”

서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입술을 꾹 깨물던 춘봉이 말을 이었다.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잘 들어.”

“나는 언제나 금춘봉의 말을 경청하고 있어요.”

“사랑해.”

“어?”

“나랑 살자. 잘 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