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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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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일 각? 어쩌면 반 시진 정도.

황보혜지는 허옇게 질린 낯으로 숨을 헐떡였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이 흑의인을 노려보았다.

‘가지고 놀고 있어….

실력차는 압도적이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옷이 조금 베였을 뿐.

그 압도적인 실력차를 방증하듯 흑의인은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슬슬 끝낼 때가 됐군.”

흑의인은 황보혜지를 경계조차 하지 않았다. 태평한 걸음걸이로 그녀에게 다가온다.

황보혜지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무력감에 힘이 빠진다. 맥이 탁 풀려 흑의인이 다가오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흑의인이 그런 그녀를 비웃었다.

“포기한 거냐? 뭐, 그것도 좋지. 한심한 정파 놈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로군.”

황보혜지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한심하다. 맞는 말이다. 딱히 부정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한심한 정파 놈들이라니? 간악한 사흑련 놈들이 지껄일 말이 아니다.

십육명문에는 대단한 사람이 많다. 황보준 외종조부나, 남궁명 소협이라거나, 진기재천 선배님이라거나….

황보혜지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녀는 항상 당당하던 남궁 소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하고자 하는 말을 했을 터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입에 담는 것은 금 소저의 입버릇이었다.

항상 용감하고 활기찬 소녀. 힘차게 주먹을 내지르며 애써 쾌활하게 외쳤다.

“뒤져라…!”

흠칫, 흑의인의 몸이 떨렸다.

기회다. 황보혜지의 주먹이 그 어느 때보다도 곧게 뻗어졌다.

그 안에 담긴 것은 태산의 굳건함이요, 또 황보혜지가 바라던 정숙함이니.

묘하게 어우러진 두 이치가 하나 되어 태산신권(太山神拳)이라는 이름 아래 터져나왔다.

쿠우웅──────

허공을 후려친 주먹. 황보혜지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아….”

가볍게 반 발짝 움직여 주먹을 피해낸 흑의인이 웃었다.

“훌륭하다.”

동시에 그의 손이 쏘아진다. 그의 손에 담긴 번쩍이는 강기가 다가온다. 저 별빛이 닿는 순간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두부를 으깨듯 머리가 으스러지겠지.

황보혜지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과거의 일들이 스쳤다.

─어머니, 어머니. 그녀의 기억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인은 항상 그녀를 꾸짖었다.

기억은 시간을 거슬러 더욱 과거로 향했다. 황보혜지, 그녀가 어릴 적. 따스하게 안아주던 어머니의 품.

그 시절의 어머니는 말에 가시를 담지 않았다. 항상 자신을 보며 웃었다. 웃는 눈이 마주치면 팔을 벌리셨고, 그 품에 안기면 훌쩍 들어올려 작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무엇이 어머니를 변하게 만들었을까.

휘몰아치는 기억을 되짚던 황보혜지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어머니가 변한 것은 빌어먹을 세가의 구조 자체가 문제다.

어머니가 꿈을 접고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외부의 압력이 문제다.

‘내게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을 바꾸어놓겠다. 황보세가의 가장 높은 곳에 붉은 깃발이 휘날리게 하겠다.

그리하여 어머니가 다시 예전처럼 따스한 모습을 되찾도록 하겠다.

번쩍-!

황보혜지의 눈이 뜨였다.

흑의인의 손이 황보혜지의 눈앞에서 멈춰있었다. 데굴-, 눈을 굴린 흑의인이 손을 거두었다 다시 한 번 내질렀다.

쉬익-!

황보혜지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진기재천 선배님.”

“…앗.”

황보혜지가 깨달음을 정리할 때까지 몇 번이고 눈앞에 슉슉 손을 내지르던 서준이 슬쩍 뒤로 물러났다.

그의 머리가 빠르게 굴렀다.

여기서 부정하는 편이 나은가? 아니, 그건 너무 추하다. 어차피 들켜도 문제는 없다.

결론을 내린 서준이 복면을 내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꿔뒀던 얼굴은 재빨리 이서준의 것으로 되돌린 채였다.

“이야, 어떻게 알았어?”

“이런 식으로 깨달음을 주실 분은 진기재천 선배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뭣.”

서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황보혜지는 그런 그를 보며 포권했다.

“제 뜻을 알 것 같아요.”

“그래?”

“예. 제가 황보세가에 혁명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네?”

황보혜지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어머니가 변한 것은 어쩔 수 없이 뜻을 꺾을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었어요. 그 현실을, 세가를 바꾸어놓는다면 어머니께서도 다시금 예전의 꿈을 이어갈 수 있으시겠죠. 설령 어머니께서 그걸 원치 않으신다 할지라도─ 아니, 그럴 리 없죠. 말로는 그러실지 몰라도 진심이 아닐 거예요. 어머니는 다시 무도(武道)를 걷길 원하실 겁니다. 제가 그 꿈을 이룰 수 있게끔 만들 거예요.”

“오…. 뭐, 그래…. 화이팅.”

“이럴 때가 아니에요. 혹시 수련을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철환의 개수를 늘려야겠어요.”

“어, 응….”

예상과는 다르지만, 아무튼 황보혜지가 제 뜻을 세우게 만드는 것은 성공한 것 같았다.

황보서린에게도 날벼락이 떨어졌다.

‘그 여자는 다 자기 업보지.

황보혜지의 말은 얼핏 황보서린을 위해 가문까지 뒤집어엎겠다는 말 같지만, 잘 들어보면 황보서린이 원하건 말건 다시 무의 길을 걷게 만들겠다는 소리다.

황보혜지가 황보서린보다 무력적으로 앞설 테니 어쩌면 약간의 강제력 역시 가해지지 않을까?

왠지 황보혜지 밑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황보서린의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황보세가야 뭐…, 알아서 하겠지.

서준은 빠르게 책임을 회피했다.

서준은 황보혜지에게 해주려 했던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름 멋진 조언들을 폐기했다.

‘너를 믿는 명이를 믿어. 라거나, ‘네 뜻이 향하는 곳이 곧 도(道)다. 라거나….

황보혜지는 뭐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전보다 심한 지옥훈련에 돌입했고, 시간이 흘러 용봉지회의 준결승, 그 첫 번째 대련이 시작되었다.

  • 용호문의 양소홍!

중소문파 출신임에도 준결승까지 진출한 양소홍. 그 상대는…

  • 신검금가의 금희!

귀염뽀짝 금춘봉이었다.

서로를 마주 보고 선 두 후기지수가 인사를 나눴다.

“잘 부탁드려요.”

“한 수 배우겠소.”

양소홍은 의례적인 인사를 마치자마자 돌연 말을 꺼냈다.

“금 소저, 나는 그대를 존경했소.”

“예?”

춘봉이 어리둥절한 눈을 떴다. 양소홍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양소홍의 출신 문파인 용호문은 호남에 있는 자그마한 문파다.

총 인원이 열 명 남짓한 만큼 중소문파라 칭하기도 애매한 문파, 그것이 용호문이다.

“금가가 멸문당했음에도 스스로의 힘으로 문파를 재건하려는 그대의 노력에 그 누가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있겠소.”

“어…. 감사합니다…?”

양소홍의 스승인 일평은 절정 초기의 그저 그런 무인이었다.

그는 어린 양소홍의 자질을 알아보고 용호문의 제자로 들였으며, 문파의 부흥을 위해 양소홍에게 모든 것을 가르쳤다.

기본적인 창술과 용호문의 무공인 용호지창(龍虎之槍), 강호에 나가 갖춰야 할 예의들과 사람으로서의 인의예지까지.

양소홍은 그런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다. 사력을 다해 노력하여 어느샌가 스승의 경지를 뛰어넘었으며, 스스로의 실력으로 말미암아 문하생들을 들여 용호문을 부흥시켰다.

“십육명문의 후기지수들은 그 선조들이 깔아놓은, 잘 정돈된 길을 걸으며 성장하오.”

“흠….”

“허나 그대는 달랐지. 금가가 멸문한 지 몇 년, 그 세월의 공백을 이겨내고 용봉지회의 우승 후보로 거론되고 있소.”

용호문의 창법인 용호지창은 용과 호랑이의 기상을 담은 창법이다.

하지만 이름만 그럴 뿐, 실상은 삼재검법보다 조금 뛰어날 뿐인 그저 그런 무공에 불과했다.

양소홍과 그의 스승인 일평은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양소홍이 이미 용호지창을 대성한 까닭이다.

용호지창에 담긴 뜻으로 오를 수 있는 경지는 절정 초기 즈음이 끝이다. 양소홍은 스승을 뛰어넘은 그 순간, 용호지창의 한계를 절감했다.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무공이 필요하다.

하지만 용호문은 그런 상승무공을 구할 능력이 없었다. 그런 탓에 양소홍과 일평은 용호지창을 뜯어고쳐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기에 이르렀다.

“그대와 같은 천재가 내가 걸을 길을 밝혀주었으면 하고 바랐소.”

“으음…?”

“내가 이룬 경지는 범인들의 것. 사력을 다해 노력한다면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경지에 지나지 않소. 내가 가진 재능의 한계를 그 언제고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소.”

양소홍은 새롭게 창안한 용호지창으로 절정 초기를 넘어섰다.

최소한의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을 수련으로 가득 채웠다.

그런 나날을 보내며 양소홍은 생각했다.

그 누구라도 자신처럼 수련한다면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중소문파 출신의 무인들이 오만하고 게으른 대문파의 무인들에 비해 뒤처지는 것은 그들 역시 최선을 다하지 않은 까닭이라고.

“허나 그대는 다르지 않소. 그래서 존경했소. 그대가 중소문파 무인들의 귀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꽤나 길게 이어진 양소홍의 말에 춘봉은 생각했다.

‘이 새끼 뭐라는 거지?

평범한 개소리를 꽤나 그럴 듯하게 늘어놓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재능 없는 범인? 잔인한 말이지만 그런 사람은 저 나이에 저런 경지에 다다를 수가 없다. 중소문파 출신이라면 더더욱.

‘아, 이서준이랑 비교하면 그럴 수도 있긴 하겠네.

그렇게 따지면 재능이 없는 게 맞다. 이서준이었으면 지금쯤 용호문에 신공이 열 개쯤 있긴 했겠지.

하지만 그건 좀 너무 많이 특이한 경우다. 이서준과 비교하면 무인 전부가 범부로 전락하고 만다.

한마디로 이서준이 이상한 거지 양소홍이 재능이 없는 건 아니라는 소리다.

그리고 또 하나.

춘봉 자신이 왜 중소문파 무인들의 귀감이 된단 말인가? 신검금가는 십육명문보다도 위에 서있는 신가(神家)인데.

“어….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요?”

“실망했소.”

“아하…?”

“나는 노력해서 여기까지 올라왔소. 죽을 만큼 노력해서. 허나 그대들은? 그게 아니지 않소.”

양소홍이 말을 이었다.

“그대도 결국 십육명문의 위상에 기대는 한낱 무인에 불과하더군. 스스로 금가를 빛나게 하지는 못할지언정, 진기재천과 남궁세가의 위명에 의존해 가문을 일으키려 하고 있소.”

양소홍이 춘봉을 또렷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대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소?”

우리 오빠 영약 선물해주려고?

춘봉이 머리를 긁적였다.

허나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었던지 양소홍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나는 누구나 나처럼 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 싸우고 있소. 중소문파라 한들 대문파에 뒤지지 않는다고, 노력한다면 언제나 십육명문의 이름이 뒤바뀔 수 있다고.”

“아, 예….”

“그대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낼 수 있었음에도 그리 하지 않고 사도를 걸었음을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이오.”

양소홍의 말에 대련장이 술렁였다.

누군가는 양소홍의 말에 감화되어 뜨거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누군가는 그를 그냥 병신 보듯 바라보았다.

서준의 얘기다.

‘그냥 트래시 토크겠지?

그게 아니고서야 말이 안 되는데.

서준이 신기한 눈으로 양소홍을 바라보던 그때, 문득 춘봉이 푸흐흐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왜 부끄러워 해?”

“…아무래도 헛된 대화였나 보군.”

“그게 아니지.”

춘봉이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었다.

“나는 귀엽잖아.”

“……?”

양소홍이 멍청한 눈을 떴다. 춘봉이 삐죽 웃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래도 돼. 꼬우면 너도 나만큼 귀엽든가. 그러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의문의 고수가 열심히 도와줄걸?”

놀랍게도 실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