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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무언가를 실행에 옮기기 전에는, 먼저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
예상치 못한 변수 탓에 일이 꼬이는 걸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고 서준은 그런 변태적인 취향을 가진 미치광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천서준의 모습을 한 채 남궁세가 별장의 문을 두드렸다.
“무슨 용건으로 오셨습니까?”
문지기가 친절하게 서준을 응대했다.
남궁세가쯤 되면 태도가 오만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못하련만, 친절하기까지 하니 과연 대남궁세가라 할 수 있겠다.
“안에 패진광 그놈이 있을 거다.”
“예?”
문지기의 눈이 크게 뜨였다.
권왕의 이름을 이렇게 막 부르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일 리는 없다.
“우선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패진광 그놈, 두드려 맞기 전에 빨리 튀어나오라 해라.”
“…그리 하겠습니다.”
기괴한 표정이 된 문지기가 동료에게 손짓했다. 그 동료 역시 묘한 표정이 되었다.
문지기의 동료가 말을 전하러 별장 안으로 뛰쳐들어간 뒤, 약간의 시간이 지나 패진광이 어슬렁어슬렁 모습을 드러냈다.
“뭐냐 너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
배를 벅벅 긁으며 다가온 패진광이 서준을 내려다본다.
서준은 쯧 혀를 차며 당당하게 별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지.”
문지기들이 서준을 제지하려 했으나, 패진광이 픽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됐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나 보자고.”
“예!”
패진광이 서준의 뒤를 따랐다.
서준이 걸음을 멈춘 곳은 커다란 마당의 중앙.
주변을 살피던 서준이 손가락을 튕기자 거대한 기막이 일대를 감쌌다.
“호오.”
쉽게 펼칠 수 있는 기예가 아니다.
패진광이 서준을 보며 이를 드러냈다.
“그래서, 뭐냐. 여기가 내 집이 아니라 손님 대접은 못 해주는데.”
“권왕.”
“뭐 인마.”
“천마군림 만마앙복!”
외침과 동시에 서준의 전신에서 마기가 터져나온다.
그 양과 밀도가 범상치 않다. 마기가 짙은 데다 순수함까지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대마두다.
“무슨…! 이런 미친놈이…!”
패진광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마인 놈들 머리가 맛이 갔다지만, 이런 죽을 것이 확실한 자리까지 기어들어와?
용봉지회가 열리는 하남에는 초절정이 드글거린다. 심지어 소림의 코앞. 당연히 방장 역시 상시 대기 중이다.
일격에 암살하고 즉시 도망칠 자신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그냥 헛짓거리다.
암살자 하나를 땅에 내다버리는 행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당황과 별개로 패진광은 즉시 반응해 움직였다.
그의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완벽한 자세를 잡고, 활 시위를 튕기듯 탄력적으로 주먹을 쏘아낸다.
꽈앙-! 공간을 찢어발기며 날아드는 주먹.
서준이 씩 웃었다.
“형편 없군.”
마주 주먹을 내지른다.
발끝의 회전이 허리, 어깨를 지나 주먹에 깃든다. 울컥 일어난 마기가 오른팔 전체를 감싸고, 패력괴신무와 거령신공이 거대한 힘을 부여했다.
쿠우우우웅──────────!!!
두 주먹이 맞부딪히자 공간의 울림이 터져나온다.
공기의 진동이 소리가 된다면, 공간의 진동은 중력파가 된다.
공간과 시간이 일렁이는 가운데, 패진광의 두 눈이 부릅 뜨였다.
“네놈…! 어떻게 패력괴신…, 흠?”
놀라다 말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패진광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패력괴신무를 익힌 사람은 자신과 이서준 둘뿐.
더해서 저번에 그놈이 역용술에 대해 묻고 다니지 않았던가.
패진광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 이 새끼 이서준이구나!
“…그래, 인정한다. 네가 미친 걸로는 천하제일이다!”
패진광은 이마를 탁 치고야 말았다.
서준이 낄낄 웃으며 역용술을 풀었다.
“아니, 한 번 확인해보려고 그랬죠. 티가 나나 안 나나.”
“전혀 안 나니까 다시는 하지 마라. 미친놈.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어허, 근육에 비해 새가슴이구만?”
“…너 이리 와봐라.”
패진광이 성큼 다가오자 흠칫 놀란 서준이 슬쩍 거리를 벌렸다.
“어어, 이러지 마요. 곤란해.”
“쓰읍….”
머리를 긁적인 패진광이 주변을 훑었다.
충돌의 여파가 꽤 컸는데, 다행히 이서준 이놈이 펼친 기막이 흐트러지지 않아 큰일로 번질 것 같지는 않았다.
즉, 아직 역용술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이런 걸 나만 당하기는 억울하지.”
“예?”
패진광이 히죽 웃었다.
“한 놈만 더 해보자.”
“오….”
재밌을 것 같은데?
서준이 당장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타자가 정해졌다.
이런 장난을 할 때 빠뜨리면 섭섭한 우리의 금춘봉.
터져나올 리액션을 생각하니 아주 그냥 입에 침이 고인다.
“갑니다, 영감님.”
“좋아. 나한테 할 때처럼만 해라.”
“어허, 당연하지.”
서준이 천서준의 모습을 취한 채 씩 웃자, 패진광이 엄지를 치켜세우고 몸을 숨겼다.
이내 서준은 춘봉의 방문 앞에 섰다. 안에서 그녀의 기척이 느껴진다.
타이밍을 잰다.
하나, 둘, 셋.
지금.
벌컥-!
천서준이 문을 열어젖혔다.
“거기 계집. 진기재천은 어디 있지?”
방 안에 있던 춘봉이 눈을 휘둥그레 뜬다.
서준 자신이 듣기에도 서늘한 목소리다.
목소리 자체가 평소와는 완전히 달라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건 불가능할 터.
두근, 두근, 심장이 뛴다.
도대체 어떤 찰진 반응을 보여줄까.
이내 춘봉의 입술이 움직이고, 서준의 부릅 뜨인 두 눈이 그 입술의 움직임을 읽었다.
“너 뭐 하냐? 역용술은 또 어디서 익혔어?”
“…쯧, 정신이 나간 계집이었나.”
“뭐 이 새끼야?”
벌떡 일어난 춘봉이 냅다 몸을 날렸다.
춘봉 드롭킥이다.
뻐억-!
얻어맞고 날아간 서준이 땅을 굴렀다.
“어억…!”
데굴데굴 굴러 땅에 엎어진 서준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아니, 어떻게 알았지?”
“딱 보면 모르겠냐? 하는 짓이 누가 봐도 이서준이구만.”
서준이 고개를 돌려 숨어있던 패진광을 바라보았다.
“아니! 티 난다잖아요!”
“쓰읍…, 그럴 리가 없는데. 네 역용술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
수풀 사이에서 튀어나온 패진광이 머리를 긁적인다.
서준은 툴툴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완벽에 가깝기는 무슨. 춘봉이는 보자마자 알아보더만.
“거 영감님. 눈썰미가 너무 없는 거 아니에요?”
“아니 진짜라니까?”
패진광도 진심으로 억울했다.
저놈의 역용술은 과장 하나 없이 완벽했다.
보통 역용술이 미숙한 이들은 내공의 고정이 흔들리거나 그 기운이 외부로 새어나와 티가 나기 마련인데, 서준은 그런 기색이 일절 없었다.
“몇 놈만 더 해보자.”
그렇게 이어진 실험의 결과.
놀랍게도 춘봉을 제외한 그 누구도 서준을 알아보지 못했다.
남궁혁, 장극, 남궁명, 심지어 남궁수아까지도.
“뭐지.”
서준이 춘봉을 희한한 눈으로 바라보자 그녀가 턱을 치켜들었다.
“내가 널 몇 년을 봤는데. 당연히 알아보지.”
아무래도 춘봉 오빠 탐지 레이더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서준이 춘봉을 번쩍 치켜들었다.
“우리 춘봉이 대단해!”
“음음, 그렇지.”
“춘부이!”
“뭐.”
“뜌따따!”
“우땨따!”
지켜보던 패진광은 탄식하고야 말았다.
‘흠, 무림의 미래가 어둡군.’
저런 놈이 천하제일인이 된 미래?
패진광의 머리로는 도무지 그 꼴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용봉지회에 참석하는 후기지수들은 보통 용봉지회 자체에만 그 목적이 있지는 않았다.
십육명문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 자체가 결코 흔치 않은 까닭이다.(물론 십육명문의 몇몇 문파끼리 모이는 일은 그닥 드물지 않다.)
자연히 용봉지회는 단순한 비무 대회라기 보다는 만남의 장이라는 역할을 겸했다.
그런 후기지수들의 모임에 참석한 남궁명은 안면이 있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거나, 초면인 이들과 새로이 안면을 트는 둥 바쁜 시간을 보냈다.
‘사교는 중요하다.’
남궁세가의 가풍은 사교에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로지 검.
어차피 검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면 사교 따위는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궁명은 굉장히 특이한 편에 속했다.
여럿이 힘을 합치면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 아래 그는 친목을 다지는 일에 꽤나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성격 자체도 살가운 편이었던지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황보 소저? 거의 이 년 만에 보는 것 같은데.”
“네, 네에…. 남궁 소협….”
황보혜지가 얼굴을 붉히며 조신하게 웃는다.
남궁명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어느새 꽤나 수가 불어난 사람들을 살폈다.
‘예상보다 사람이 많군.’
그간 보지 못했던 얼굴들도 있는 것으로 보아하니 무언가 일이 있었다고 보는 게 옳다.
그 일에 대해서는 남궁명 역시 짐작가는 게 있었다.
‘형님 때문일 것 같긴 한데….’
화려하게 등장한 초면의 초절정 고수.
그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신검금가의 부활.
역시라고 해야 할지, 남궁명의 귀에 들려오는 대화 대부분은 그 두 주제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역시 금가 쪽 선배님이시겠지?”
“나는 남궁세가 쪽 선배님이시라 들었네. 남궁의 장로라 하시더군.”
“아, 남궁. 그러면 이해가 되는군. 확실히 남궁 사람들이 화끈하지.”
“헌데 금가의 후계자가 스승이라 하지 않으셨나.”
“그거야 나도 모르지. 저기 남궁 소협 있으니 가서 물어보든가 하시게.”
“이미 물어봤지.”
“그런데?”
“자신이 말해주어도 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곤란하다더군.”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던 남궁명은 황보혜지가 꼼지락대는 기척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나, 남궁 소협은 요 근래에 어떻게 지내셨나요?”
“저야 수련에 매진했지요.”
“아…! 대련 봤어요! 대단한 성취를 이루셨던데….”
“하하, 고맙습니다. 황보 소저께서야 말로 진전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저는, 네…. 그래도 어머니 눈에는 여전히 부족해 보이는 것 같지만요….”
황보혜지의 말에 남궁명의 입가에 애매한 미소가 걸렸다.
“여전히 엄격하신 모양입니다.”
“아뇨…. 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거니까요….”
“황보 소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준이라면 이 중원에 그 기준을 만족시킬 사람이 몇 없을 겁니다.”
빈말이 아니다.
황보혜지의 성취는 분명 뛰어나다. 또래에 비해 뛰어난 것은 당연하고, 십육명문 사이에서도 평균은 넘는다.
내심 황보혜지의 모친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집안의 일에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도 없는 일.
말로나마 건넨 남궁명의 위로에 황보혜지가 배시시 웃었다.
“말씀이라도 감사해요….”
“내 얘기가 많이 나왔다고?”
“예, 형님. 아무래도 인상이 꽤 강렬하게 남은 것 같습니다.”
남궁명이 옅게 웃었다.
서준은 그런 그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 뭐, 모여서 그런 얘기들만 한 거야?”
“이래저래 사건이 많았습니다. 큰 싸움도 한 번 벌어졌었죠.”
“싸움? 왜?”
“청춘들이 모인 자리 아니겠습니까.”
“아, 사랑 싸움?”
남궁명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준이 낄낄 웃었다.
“좋을 때구만.”
“…보통 형님보다 나이가 많습니다만.”
“어허, 아우. 그런 절정 따리들이랑 비교하면 곤란해.”
남궁명이 곤란한 듯 웃는다.
서준은 그와 함께 다시금 소림사에 발을 들였다.
말해 뭐 하랴, 당연히 회의 때문이다.
‘벌써 집 가고 싶네.’
정말 오기 싫었지만, 서준으로서도 별수 없었다.
소림사 방장이 말하지 않았던가. 무인은 무로 말하는 법이라고.
아마 대장군과 비무라도 시켜준다는 얘기 같은데….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놈을 두들겨 패줄 수 있다면 그만한 기쁨이 또 없을 것이다.
뭐…. 어찌 됐든, 오늘 가서 얘기나 한 번 들어보면 그만이다.
일단 들어보고 마음에 안 들면 항의하면 되니까.
항의하는 게 이서준이 될지 백서준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