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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서준이 냅다 모든 걸 훌훌 털어내고 서역으로 떠나버리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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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심마는 해결조차 못 한 데다, 사흑련이니 뭐니 정세도 복잡하고,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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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역에 대한 궁금증의 우선 순위를 따져보자면 저 밑바닥 언저리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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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중원의 정세가 조금 안정되면 두 번째나 세 번째 신혼여행쯤 해서 가보면 되지 않을까, 싶은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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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닭에 남궁세가로 복귀한 서준을 맞이한 것은…, 성난 금춘봉의 포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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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니까!? 응? 그냥 휘두르라고! 직선으로! 쫙! 슉! 어? 이게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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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이루는 모든 것들은, 아이가 채 어미의 뱃속에서 나오기도 전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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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과 정신, 환경, 재력, 재능…, 뭐 그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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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이후 타고난 것들을 갈고닦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미 그들의 출발선은 처음부터 정해져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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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의 말을 빌리자면, 태어날 때부터 너무 많은 것들이 정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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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의 재능이 부족하다 못해 미천하다고밖에는 표현하는 게 불가능한 수준인 것도 비연의 탓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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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비연이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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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야 둘째치고 제 재능을 비연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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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춘봉은 심경이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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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오롯하기 위한 재능조차 없는 뒷골목 고아 새끼, 앞으로 나아갈 기회조차 박탈당한 꼬마 아이에게 그녀는 기회를 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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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진짜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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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아니! 어? 그…, 아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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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방방 뛰며 제 손에 쥔 목검을 휙휙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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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이야. 곧게 휘두르라고. 응? 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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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눈앞에 놓인 짚더미를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쉭. 목검이 한 치의 걸림 없이 짚더미를 베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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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짚더미의 윗부분을 밀었다. 깔끔하게 베인 짚더미가 툭 하고 넘어간다. 춘봉이 그 단면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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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봐. 평평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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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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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지금 이렇게 휘두르고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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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다시 한 번 목검을 휘둘렀다. 콰악-! 이번에는 목검이 짚더미에 틀어박혔다. 터져나가듯 화악 흩어지는 지푸라기들. 비연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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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로가 곧지 않다는 말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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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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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춘봉이 휘두른 검이기에 짚더미의 윗부분이 날아가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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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면…,이라 해야 할지 잔인무도한 살해의 현장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을 짚더미의 (아무튼) 단면은 처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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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하고 몇몇 군데는 채 베이지도 않은 채 뜯겨나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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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머리는 부쉈으니 좋았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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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야 검을 쓴다고도 말할 수가 없다. 그냥 둔기를 쓰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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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시 한 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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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애써 답답함을 누르며 비연에게 종베기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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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어 보이게 말하자면 삼재검법의 태산압정. 간단히 말해 세로 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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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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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의 검이 비틀비틀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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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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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의 입이 쩍 벌어졌다. 도대체 왜? 그냥 아래로 베는 게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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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허공에 검을 놓고 툭 떨구는 게 저것보다는 곧게 떨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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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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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비연이 상처라도 받을까, 마음껏 비명을 내지르지도 못 한 춘봉이 답답함에 덜덜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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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 웃어대는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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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춘부이, 선생님 놀이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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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이게 놀이로 보이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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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소리친 춘봉이 번쩍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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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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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오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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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늦게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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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다 달린 춘봉이 서준의 옆구리를 향해 능숙한 드롭킥을 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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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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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려한 발차기에 얻어맞고 날아간 서준이 웨엑! 입에서 피를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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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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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의 낯이 희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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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금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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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해낸 피로 다잉 메시지를 남긴 멸사천군 이서준은 그렇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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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오빠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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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발새끼야! 장난을 칠 게 따로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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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시뻘게진 금춘봉이 제자리에서 쾅쾅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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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어맞진 않았다. 심마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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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피 토한 건 장난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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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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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순식간에 쭈그러들어 우물쭈물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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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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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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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새끼야! 니가 잘 피했어야 될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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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한다. 딱히 사과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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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인성 터진 개차반 같은 말을 토해낸 금춘봉이었지만, 저 쬐깐한 얼굴에 ‘미안해 죽겠음’이라는 글자가 떡 하니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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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서준은 그냥 낄낄 웃으며 손아귀 위로 혼원을 그러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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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칠흑, 만물의 온상, 말로써 형용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무언가에 춘봉의 입이 딱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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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혼원이라는 건데 말이야. 내가 별 생각 없이 심상세계를 걷어내고 그 안을 깊숙이 들여다봤거든. 근데 거기에…, 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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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둑! 서준의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춘봉의 낯이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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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야야, 잠깐만.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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퉤! 피 섞인 침을 뱉어낸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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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가만히 있으면 멀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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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토한 건 혼원을 쓰며 심상 속을 깊숙이 들여다봐서 그렇다─라고, 서준이 손 위에서 혼원을 굴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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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부릅 뜬 춘봉이 빼액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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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좀! 그걸! 으끼야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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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효와 함께 답답한 속을 뚫어낸 금춘봉이 씩씩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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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말라고! 그거! 혼원인지 뭔지! 왜 피 토하는 거 알면서 그걸 계속 쓰고 있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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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꼴받잖아. 지가 뭔데 내가 내 무공 쓰겠다는 걸 간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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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마와 기싸움을 해대는 제 오라비를 보며, 춘봉은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해탈한 석가모니가 지었을 법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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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비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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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너 정도면 사실 말을 엄청 잘 알아듣는 친구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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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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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이 데굴 눈을 굴리다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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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도 그제서야 비연에게 관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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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얘는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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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뒷골목에서 납치해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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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에게 설명을 들은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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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얘기로 들었을 때는 조금 많이 아주 약간 정도는 금춘봉을 떠올리게 하는 꼬마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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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 나름 건방지게 굴던 뒷골목 꼬마가 고분고분해진 이유? 그런 건 굳이 듣지 않아도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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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웬만한 사람들은 남궁세가에 들어오면 다 겁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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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에게는 그냥 집이지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왕궁에 들어온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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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은 그런 서준을 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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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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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준이 그렇게 안 보여도 나름 자수성가의 전설쯤 되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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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춘봉의 도움 약간과 제 미쳐날뛰는 재능만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그야말로 자수성가의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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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자신이 아는 무인들 중 가장 대단한(춘봉은 남궁진천이 살아있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에게 묻는다면 무언가 답이 나오지 않을까, 춘봉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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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동생의 믿음에 오라비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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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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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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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길을 찾아야 되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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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의 빤한 시선이 서준의 낯짝에 틀어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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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따가웠지만, 서준은 나름 진지하게 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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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에 재능이 없으면 다른 길을 찾아야지. 무(武)라는 게 너무 좋아서 굶어 죽어도 상관이 없으면 또 몰라. 어찌 됐든 성공하는 게 목표인 이상 자기한테 맞는 길을 찾는 게 맞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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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무림에서 스스로 오롯할 수 있는 방법은 무밖에 없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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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내 생각이잖아. 접시 닦기 장인 같은 사람도 스스로의 일에서 오롯함을 찾으면 그걸로 된 거지. 세상이라는 건 결국 나라는 관측자 입장에서 정의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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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그리 말하며 슬쩍 비연이라는 꼬마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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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눅든 채 푹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그 눈의 깊은 곳, 뜨겁게 타오르는 감정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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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 비연이라는 아이가 어찌 되든 서준의 알 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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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제 주변 사람만 잘 살면 그걸로 만족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챙기고자 하는 대단한 마음가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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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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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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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을 흘끔대며 입술을 삐죽이는 자신의 동생, 이제는 약혼자, 심상 속 마귀를 때려잡아준 거대 춘봉을 위해서라면 그러지 못할 이유는 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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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래. 고민 좀 하는 게 어려운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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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서준이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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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계속 가르쳐 봐. 아니지, 지금은 뭐 가르치고 있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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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 문파에서 배우던 검법이 있대. 근데 일단 그 전에 기초부터 닦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삼재검법 알려주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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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삼재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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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젖은 서준이 고개를 주억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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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먹었던 고기 만두가 진짜 맛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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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먹고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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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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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있던 금춘봉에게 배신당한 서준이 입을 떡 벌렸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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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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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남궁수아가 급하게 달려왔다. 당황한 듯 낯이 희게 물든 그녀가 허겁지겁 서준의 몸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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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피 토했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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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거. 우리 춘부이 발차기에 얻어맞는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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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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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수아의 푸른 눈이 환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시린 눈이 춘봉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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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피를 토할 정도로 때리면 안 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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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낯설 정도로 뾰족한 말투였다. 놀란 서준이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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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나긋나긋하고 온화하던 남궁수아가 춘봉에게 화를 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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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 삼아 한 말이었는데 상상 이상으로 격한 반응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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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분노를 받아내는 당사자, 춘봉은 그냥 너무 억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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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맞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그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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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덜덜 떨던 금춘봉이 결국 제 자그마한 머리통을 콱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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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으끼야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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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춘봉, 득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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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아무 생각 없이 제 심마도 미뤄둔 채 비연이라는 낯선 꼬마의 무공을 봐주겠다 말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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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부착형 심마 억제기 금춘봉과, 마음의 평안을 형상화한 남궁수아가 곁에 있으니 당장 심마가 악화될 일은 없을 뿐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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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의 고민이 서준 자신의 심득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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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타고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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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형태 없는 목줄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심마 역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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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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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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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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