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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백서준의 모습으로 종종 유사영역을 펼친 적이 있다.
내단을 신체 밖으로 꺼내어 백팔 개의 얼음 기둥을 축으로 영역을 흉내낸 것이다.
허나 이제는 그런 번거로운 작업이 필요 없다. 완전한 화경에 올랐으니 당연한 일.
망망대해 한복판에 선 서준이 바닷물에 손을 담갔다.
“팔한지옥(八寒地獄).”
이름을 부여한 하나의 심상. 진정한 영역인 이상향의 일부에 불과한 파편이 북해를 새하얗게 물들였다.
쩌저저저적─────────!!!
바다가 저항도 없이 얼어붙는다. 퍼져나가는 냉기는 곧 서준의 영역과도 같으니, 끝없이 뻗어진 냉기가 바닷속을 헤엄치는 거대한 물체를 감지했다.
“찾았다.”
서준이 미소 지으며 그곳에 모든 냉기를 집중했다.
깊은 심해. 그 새카만 바닷물의 일부가 희게 점멸하는 것과 동시에,
쩌어억-!
일순 바다가 깊숙한 곳부터 통째로 얼어붙으며 발밑이 불쑥 솟았다. 터무니없는 양의 바닷물이 순식간에 얼며 부피가 늘어난 것이다.
- 키이이이이────────!!
처절한 울음소리가 터져나온다. 마물은 기다란 몸통을 꿈틀대더니, 용수철처럼 구부렸던 몸을 단숨에 펼치며 해수면을 향해 튀어올랐다.
콰자자자작-!
완전히 얼어붙은 바다가 산산이 부서진다. 흩날리는 얼음 파편에 어지러이 산란하는 빛무리. 그 사이로 솟구친 기다란 그림자가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서준은 손을 눈썹 부근에 얹은 채 높이 떠오른 무언가를 보았다.
“용…, 은 아니고 이무기쯤 되나?”
이무기가 하늘을 날 수 있는지 없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놈은 못 나는 모양이다.
콰아아아앙─────────!!
하늘로 솟구쳤던 마물이 얼음 바다에 떨어졌다. 캬악-! 낙하의 충격에 마물이 숨을 토해낸다.
이미 그 속까지 꽁꽁 얼어붙은 바다다. 저 거대한 몸뚱이가 별다른 조치도 없이 냅다 처박혔으니 아프지 않을 리가 없다.
- 쉬이잇-!
마물은 고통스레 몸을 꿈틀대다, 이내 헤엄을 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치켜든 채 서준을 내려다보았다.
- 샤아악-!
그 기세가 상당하다. 대충 초절정 언저리.
서준은 여유로운 걸음으로 마물에게 다가갔다.
“왜 이런 데 튀어나와서 이 고생을 하니.”
이미 잔뜩 지쳐버린 마물이 거대한 꼬리를 휘두른다. 그 주변에 푸르스름한 기가 어렸다.
거대한 몸집과 막대한 기. 그 파괴력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쐐애애액────────!!
서준은 날아드는 꼬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텁-, 꼬리가 품고 있던 힘이 무색하게 간단히 막혔다.
쩌어억-!
동시에 서준의 발밑, 얼어붙은 바다가 산산이 조각난다. 손에 전달된 마물의 힘을 고스란히 발밑으로 흘려낸 것이다.
아무리 몸을 쓰는 데 자신이 없니 뭐니 해도 화경은 화경. 이 정도 화경(化勁, 상대의 힘을 흘려내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다.
서준은 마물의 꼬리를 움켜잡은 채 빙백신공의 냉기를 쏟아부었다.
쩌어억-! 저항할 틈도 없이 마물이 얼어붙었다. 한순간에 생동감 넘치는 얼음 동상 하나가 생겨났다.
서준을 삼키려 아가리를 쩍 벌린 채 굳어버린 모습.
희뿌연 냉기가 새어나오는 얼음 동상을 툭툭 두드려본 서준은 얼어붙은 바다를 박차 뛰어올랐다.
높이 솟은 마물의 머리. 적당한 곳을 손날로 그어 쳐내니 머리가 뚝 하고 떨어졌다.
‘이런 애가 더 묵으면 녹소평처럼 되는 건가?’
당장은 힘을 제대로 다룰 줄도 모르는 것 같지만, 이대로 몇백 년을 더 살아남는다면 얘기가 다를 터.
서준은 쯧쯧 혀를 차며 마물의 머리를 들고 빙궁으로 복귀했다.
“으응? 벌써 왔느냐?”
의자 위에 늘어져 있던 백설향이 멍청하니 눈을 깜빡인다.
“그 넓은 바다에서 그놈을 어떻게 이렇게 빨리 찾은 게냐?”
“바다를 통째로 얼리니 나오더군.”
“…무식한지고.”
서준은 마물의 머리를 대충 구석에 던져놓았다.
“다음은?”
“조금 기다려라. 화경쯤 되는 무인의 손이 필요한 일이 그리 많을 리가 없지 않으냐.”
“내가 그렇게 시간이 많진 않은데.”
서준의 말에 백설향이 눈을 부릅 떴다.
“여, 역시…! 정보를 얻어내면 곧장 빙궁을 떠날 셈이로구나!”
“우리 부인이 외로움을 많이 타서 말이야.”
“뭐야. 유부남이었나?”
“문제될 것 있나?”
“그건 아니지만….”
쯧, 혀를 찬 백설향이 손을 내저었다.
“아무튼 오늘은 연회다. 소궁주의 귀환을 유야무야 넘길 수는 없지.”
그녀의 말처럼 빙궁에서는 곧장 호화로운 연회가 열렸다.
빙궁 무인의 절대다수는 여인. 술과 요리, 그에 더해 북해 특유의 이색적인 미인들이 가득한 연회는 사내라면 마다할 리가 없다.
“소궁주, 혹 빙궁의 수련법 중 쌍수라는 수법을 아시는지요?”
“쌍수?”
“예. 빙궁에는 여인이 대다수인지라 지금까지는 그 효율이 영 별로였으나, 소궁주께서 돌아오셨으니 이제는 얘기가 다르답니다.”
다만 서준은 이 자리가 마냥 불편했다. 연회는 뭔 놈의 연회.
빙궁의 장로들이 어떻게든 말을 붙여보려 주위를 맴도는데, 그게 한두 명이 아니라 어지간히 귀찮은 게 아니다.
“그 쌍수라는 게 무슨 수련법이기에?”
“남녀간의 음양합일을 통해….”
“아, 여인들끼리 열심히 하시오.”
어쩐지 전에 왔을 때보다 북해가 조금 따듯한 것 같더라니. 다음에 오면 북해가 다 녹아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서준이 시큰둥하니 자리에 앉아 술만 홀짝이니 백설향이 쯧쯧 혀를 찼다.
“풍류를 모르는 사내로다.”
“어이가 없군.”
“또 뭐가 말이냐.”
“사내 손도 못 잡아본 주제에, 사내를 알긴 아오?”
풉…! 곁에 있던 한 장로가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궁주께서는 남녀의 관계에 대해서 무지하시지요.”
“다, 닥쳐라…!”
“마침 좋은 기회가 아닙니까. 이 기회에 소궁주를 확 붙잡아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무엄하다…! 내 누누이 궁주에 대한 경의를 보이라 하지 않았느냐!”
이후의 연회는 백설향을 놀리며 나름 괜찮은 분위기 속에 끝났다. 아무래도 백설향의 유감스러움은 빙궁 내에서 딱히 비밀도 아닌 모양이다.
그날 밤 서준이 배정받은 방에 장로들이 찾아와 쌍수를 권유하기도 했으나, 딱 잘라 거절하니 별말 없이 물러났다.
다음날 서준은 곧장 백설향을 찾아갔다.
“그래서 다음 일은?”
“끄응…. 연회도 싫다, 여자도 싫다, 화경쯤 됐으니 재물이 부족할 일도 없을 테고….”
설령 재물을 원한다 해도 북해빙궁에는 화경의 무인을 만족시킬 만한 재물이 없다. 그러니 재물은 논외.
무공? 이미 빙백신공과 북명신공을 대성하지 않았나. 그 둘을 익혔으면 빙궁의 정수를 모조리 터득한 셈이다.
‘놈이 혹할 만한 게 정말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고민하던 백설향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조금 더 놈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놈이 다음 일을 원한다면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것들 중에….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백설향이 입을 열었다.
“듣자하니 장로들이 새로운 진법을 연구 중이라더군.”
이전, 검마를 저지하기 위해 빙궁의 장로들이 빙설천라진을 펼쳤으나 그 결과가 영 좋지 못했다. 검마를 저지하긴커녕 빙궁의 장로만 하나 죽어버린 것이다.
이후에도 그리 무력하게 당할 수만은 없으니, 그날 이후로 장로들은 진법의 연구에 매진했다.
허나 진법이라는 것이 뚝딱 만들어지진 않는다. 연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벌써 그 진도가 막힌 상황.
“그걸 도와서 진법을 완성시켜라?”
“그래.”
“흐음….”
서준이 묘한 눈으로 백설향을 보았다.
진법의 완성? 솔직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미 어느 정도 틀은 잡혀있을 터. 단순히 완성시키는 것 정도야 금방 끝나긴 할 테지만….
‘도와줘야 되나?’
일단 북해빙궁은 적이다. 만약 세를 회복한다면 훗날 정파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
‘파해법도 같이 만들면 될 것 같긴 한데….’
고민하던 서준이 물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뭐냐.”
“빙궁은 왜 사파지?”
보통 사흑련에 속한 문파들은 무공의 성취를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까지 봐온 북해빙궁은 딱히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빙정이라는 신물을 통해 무공을 연마하는 것 같으니 딱히 사람을 갈아넣을 일도 없을 터.
“으음…. 과거의 일 때문이지.”
“호오, 대학살이라도 벌인 건가?”
“그런 건 아니다. 새외무림(塞外武林)이라는 말을 아느냐?”
새외무림이란 중원 밖, 변방에 위치한 무림을 뜻하는 말이다.
“새외무림은 원래 사파 취급이었다. 무신 주운천이 중원을 통일하며 새외무림 역시 중원 무림 취급을 받았고, 어쩌다 보니 그냥 사파로 묶인 게지.”
“저런.”
한 마디로 그냥 위치 때문에 사파 취급을 받는다는 소리였다.
“어차피 정파의 고리타분한 영감들과 얽히고 싶지도 않다. 사흑련 소속이라 해도 별 간섭이 없으니 된 거지.”
북해빙궁이 정파와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종종 빙궁의 무인들이 눈에 띄긴 했지만, 그거야 사흑련 소속이니 어쩔 수 없는 일.
대충 생각을 정리한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대충 알겠다. 진법을 완성시켜주지.”
“허, 꽤나 오만방자한 태도구나. 아무리 화경의 무인이라도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백설향이 이죽였다. 꽤나 열받는 표정이다.
허나 태도와는 별개로 그녀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옳거니! 아무튼 이걸로 됐다.’
이것으로 아무리 못해도 몇 달 정도는 시간을 벌 수 있을 터. 그 정도 시간이면 놈에 대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그를 바탕으로 놈에게 어떻게든 빙궁을 떠맡기고야 말리라…!
백설향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걸렸다.
비슷한 시각, 안휘성의 외곽.
춘봉이 거리를 걸으며 투덜댔다.
“남편이 너무 유능해도 문제야.”
“응?”
그녀와 함께 걷던 남궁수아가 쿡쿡 웃었다.
“너무 바빠서?”
“엉. 나도 기껏 초절정이 됐는데 도와줄 수가 없잖아.”
이건 무력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그도 그럴 것이 내공의 성질을 제멋대로 휙휙 바꾼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중원의 살수들이 듣는다면 배가 아파서 방구석을 데굴데굴 구르고 말 거다.
“내가 봤을 때 걔는 조금만 삐뚤어졌어도 살왕(殺王)이니 뭐니 하는 흉흉한 별호로 불렸을걸?”
“으음, 그러면 나는 살후(殺后)려나?”
“아니, 말릴 생각을 해야지!”
“그런가?”
쿡쿡 웃는 남궁수아를 보며 춘봉이 고개를 저었다.
이 언니, 전에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에휴.”
어쨌든 아쉽기 그지없는 일이다. 백서준이라 했던가? 춘봉 자신은 당연하게도 빙백신공 따위는 다룰 줄 몰랐기에 같이 잠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놀아줄 사람이 떠난 춘봉은 심심해졌고, 그것이 그녀가 지금 안휘의 외곽까지 외유를 나온 이유였다.
“그나저나 이거 진짜 신기하네.”
속칭 남궁 판별기. 새로운 이름으로는 택천지재공(擇天之才功).
하늘의 재능을 가진 이를 가려낸다는 의미로, 몇 번 실험해본 결과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거 완전 인생 역전의 기회잖아.”
뒷골목에서 구르던 내가 사실은 무공 천재?
이건 못 참는다. 춘봉은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곧장 남궁수아를 끌고 남궁세가를 나섰다.
남궁세가가 위치한 합비는 제외. 어차피 그 동네는 대부분 잘 사는 사람들밖에 없다.
원래 희망이라는 것은 절망 속에서 그 찬란함을 뽐내는 법.
그런 까닭에 춘봉은 굳이 안휘의 외곽 부근까지 나와 뒷골목에 들어섰다.
“자자! 줄을 서시오! 인생 역전의 기회! 당신도 할 수 있다!”
동네 잡상인 같은 호객 행위에 사람들이 하나 둘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춘봉과 남궁수아를 향한 관심이었다.
안휘가 중원에서 그나마 살기 좋은 곳이라고는 하지만 어디에나 빈부격차는 존재하는 바.
때깔 고운 여인들이 뒷골목에서 호객 행위를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에서 빛이 나면 무공에 재능이 있는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냥 돈 뜯어내려는 거잖아.”
“돈 안 받는다는데?”
“겁 많은 놈들 같으니. 내가 한 번 해본다.”
춘봉은 꼬질꼬질한 뒷골목 사람들의 손목을 덥썩덥썩 잡으며 택천지재공을 발휘했다.
그렇게 몇 명을 검사했을까? 춘봉에게 손목을 잡힌 한 사내의 눈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어, 어어…!”
“저게 진짜라고?”
사람들이 웅성대는 가운데, 선택받은 사내가 씩 웃었다.
“흐, 흐하하…! 내 이럴 줄 알았지!”
사내는 신기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여인을 보았다. 살면서 본 여인들 중 가장 커다란 가슴을 가진 여인이었다. 꿀꺽, 절로 침이 넘어간다.
“아무튼 내가 대단한 사람이다, 이거 아니야?”
“그렇지! 완전 인생 역전이지!”
춘봉이 히히 웃었다.
이건 몇 번을 봐도 신기하다. 도대체 무슨 원리로 재능을 판별하는 거지?
이서준이 다른 건 몰라도 무공에 있어서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새삼 제 오빠를 떠올린 춘봉의 어깨가 드높이 치솟았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놀러나온 터라 그녀는 잠시 잊고 있었다.
뒷골목 친구들의 평균 인성을.
“거기 계집! 대단하신 이 몸이 특별히 너를 첩으로 삼아주마!”
사내가 남궁수아를 가리키며 호탕하게 웃었다.
“엥?”
춘봉이 눈을 깜빡였다. 이건 또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