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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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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의 아주 깊은 곳.
남궁진천이 눈을 떴다.
[죄인 남궁진천은 들으라…!]
검게 물들었던 시야에 색이 돌아왔다.
남궁진천은 고개를 들었다. 주변이 온통 붉다. 아스라이 들려오는 인간의 신음. 뼈와 살이 뭉개지는 소리.
거대한 법대(法臺) 앞에 선, 그만큼이나 거대한 존재가 남궁진천을 내려다보았다.
[망자의 혼과 기억을 붙잡아 명계의 질서를 어지럽힌 죄!]
몸이 무겁다. 기억도 희미한 옛적. 무공을 익히지 않았던 때로 돌아간 것만 같다.
[그 하나만으로도 네 죄가 태산보다 무겁다!]
눈앞의 거인. 남궁진천은 본능적으로 그 이름을 깨달았다.
염라(閻羅).
생전 지은 죄를 심판한다는, 명계의 신.
[죄인 연소희를 데려오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연소희. 단 한 시도 잊은 적이 없는 이름.
[부인…?]
한 여인이 옥졸(獄卒)의 손에 끌려나왔다. 내팽개쳐진 여인은 남궁진천과 눈이 마주치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상공…. 죄송합니다…. 제 탓에 상공마저 이렇게….]
그녀의 목소리. 그 작은 파편 하나하나가 가슴에 스민다.
사과하는 이유는 알지 못했다.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녀는 무엇 하나 잘못한 것이 없다.
설령 대죄를 범했다 한들 괜찮다. 이 두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음에 심장이 뛰었다.
쿵- 쿵-
죽어 사라졌을 것이 분명한 심장의 고동이 남궁진천의 낯을 생기로 물들였다.
염라가 외쳤다.
[죄인 연소희는 하계에 혼과 기억의 일부를 남겨 윤회의 흐름을 어그러뜨렸다! 인정하는가?]
연소희가 이를 악물었다.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설령 그것이 잘못이라 한들 어찌 제 잘못을 상공께 묻는단 말입니까…!]
[무엄하다…!]
망자의 온전한 혼이 명계에 머물지 않는다면 윤회의 시련을 거칠 수 없다.
죄인 연소희는 죄인 남궁진천의 검에 그 혼 일부를 깃들여 윤회에 차질을 빚었으니 그 죄질이 아주 무겁다.
물론 그녀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다. 그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허나 기적이라 한들 죄는 죄.
죄인 연소희는 혼의 일부가 마저 명계로 돌아온 지금까지 명계의 감옥에 갇혀있었으며, 그 혼이 완전해진 지금, 죄인 남궁진천과 함께 그 죄를 심판받아 마땅하다.
염라가 선언했다.
[죄인 남궁진천과 죄인 연소희는 그 혼을…!]
[부인.]
염라의 말이 끊겼다.
남궁진천이 환하게 웃었다. 이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었던 그 어떤 미소보다도 환하게 웃었다.
화아아악─────────
동시에 바람이 불었다. 지옥에 어울리지 않는 달콤한 바람이 연소희의 머릿결을 흩뜨렸다.
연소희의 눈이 남궁진천을 보았다. 그 환한 미소에는 그녀를 향한 그 어떠한 책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천하제일의 사내는 생의 끝을 넘어 비로소 잃어버린 조각을 되찾았다.
[너무 늦어 미안하오.]
[상공…?]
[내 이제 다시는 그대를 놓치지 않겠소.]
연소희는 멍하니 남궁진천의 미소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제게….]
[어째서라니. 나는 그대의 남편이오. 그대는 나의 하나뿐인 부인이고.]
[…저는 상공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누가 그것이 죄라 하였소.]
[예…?]
남궁진천은 연소희에게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그대 덕에 지금까지 버텨낼 수 있었소. 그대가 없었다면 무너진 채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겠지.]
[하, 하지만….]
남궁진천의 손이 연소희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그는 멋쩍은 듯 작게 웃음을 흘리다, 그녀에게 허세 없는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열심히 힘낸 내게, 사과보다는 칭찬을 해주지 않겠소?]
[노옴…!]
분노한 염라가 손을 내리쳤다.
명계에서 망자는 그 어떠한 힘도 행사할 수 없다. 그것은 하늘이 내린 법칙.
역천의 죄를 범한 죄인은 즉시 영멸의 형에 처한다.
염라의 기운이 남궁진천을 찍어눌렀다.
남궁진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는 조심스레 연소희에게 뻗었던 손을 거뒀다.
[미안하오. 아주 잠시, 이번 한 번만 더 나를 기다려주시오.]
[아, 안 됩니다 상공…! 염라는…!]
[부인.]
남궁진천이 웃었다. 뒷짐을 진 그의 혼 위로 푸른 장포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혼의 모습은 그 혼에 가장 깊숙이 새겨진 스스로의 형태.
남궁의 옷을 걸친 천하제일인의 어깨 위로 한 자루의 검이 생겨났다.
[그대의 남편은 신에게도 지지 않소.]
콰아아아앙─────────!!
염라의 손이 남궁진천이 있던 곳을 내리찍었다.
[상공……!!]
연소희가 절규했다. 가슴 속의 무언가가 찢어진 듯 울부짖었다.
[괜찮소, 부인.]
흙먼지가 걷힌 곳. 남궁진천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내 금방 돌아가리다.]
투욱, 땅을 박찬 남궁진천의 신형이 공간을 뛰어넘었다. 자연스럽게 베여나간 공간이 길을 열었다.
염라의 눈이 부릅 뜨였다.
[기어코…!]
새로운 신이 눈을 떴다. 남궁진천이 허공에 발을 딛자 그곳에서 파문이 일었다.
우웅-
퍼져나간 푸른 파문이 명계에 하늘을 그려낸다.
[이곳에서 대역죄인을 단죄하겠다!]
염라가 허공을 쥐었다. 그의 의념이 형태를 갖춰 거대한 검이 되었다.
쿠구구구─────────
육신에 구애받지 않는 염라의 크기는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다.
그가 힘을 드러냈을 때, 손에 쥔 대검은 중원 대륙을 가로지르고도 남을 거대함을 자랑한다.
남궁진천은 고개를 젖혔다. 떨어져내리는 염라의 검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마치 신벌이 떨어져내리는 듯했다. 제아무리 천하제일인이라 한들 맞설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허나 남궁진천은 손을 뻗었다. 서늘한 눈이 명계의 신을 보았다.
[방해하지 마라.]
──────────────!!
한 자루의 검이 푸른 궤적을 그리며 쏘아졌다.
보잘것없는 검이다. 염라의 검은 대륙과 비견되는 크기를 자랑한다. 그의 검 앞에서 남궁진천의 검은 한낱 티끌조차 되지 못한다.
꺾이는 것은 남궁진천이다. 그것이 상식이다.
허나 신에게 있어 상식은 그 어떠한 가치조차 지니지 못하니.
쩌저적────────!!
보잘것없는 검이 그려내는 궤적이 끝을 모르고 뻗어나간다.
검과 대검이 맞닿고, 대검이 산산이 부서져내린다.
떨어지는 파편 사이로 검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퍼억-!
푸른 궤적이 끝내 염라의 가슴마저 꿰뚫었다. 염라의 입장에서는 간지럽지도 않을 작은 상처.
그럼에도 염라의 낯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이, 건…!]
남궁진천이 무심히 손을 들어올렸다. 빈손. 허나 검을 쥔 듯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이 횡으로 휘둘러지는 것과 동시에 염라의 허리가 끊어졌다.
쩌어어억────────!!!
아득한 크기의 거신이 무너져내린다.
남궁진천은 쓰러지는 염라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연소희의 앞에 섰다.
그는 한 쪽 무릎을 꿇은 채 연소희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물로 흐릿해진 눈동자에 자신의 모습이 비친다. 그토록이나 바라왔던 광경. 긴장감에 손이 떨려온다.
[부인….]
남궁진천은 오롯이 부인을 바라보며 떨리는 손을 천천히 내뻗었다.
[다시 나와…. 함께해 주시겠소?]
연소희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눈에 남궁진천이 담겼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녀의 남편.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다. 그녀의 과오로 인해 그마저 죄인이 되고 말았기에.
허나 상공께서 자신을 원한다 하였다.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남자가 이토록이나 분명한 말로 자신을 원해온다.
명계도, 염라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언제나 그녀만을 바라봐 주던 사내가 이곳에 있기에.
누구보다도 강한, 그녀만의 영웅이 이곳에 있기에.
[예, 상공….]
[…고맙소, 부인.]
눈물이 흐른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남궁진천은 스스로가 완전해짐을 느끼며 스스로의 신명(神名)을 입에 담았다.
[비익천(比翼天)]
명계 한가운데 푸른 하늘이 환하게 빛난다.
암수가 각각 하나의 눈과 날개를 가져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 전해지는 비익조(比翼鳥).
삶의 끝에서야 비로소 짝을 되찾은 비익조가 그 날개를 활짝 펼쳤다.
[아아….]
동시에 남궁진천의 몸을 감싼 휘광이 하늘로 뻗었다. 완전해진 혼에 벼락 같은 충만함이 차오른다.
남궁진천은 허공에 뜬 채 읊조렸다. 완전해진 영역의 이름이었다.
[만개화지천(滿開花之天).]
화아아아악──────────!!
화사한 꽃이 명계를 가득 채운다. 텅 비어 짙푸르던 하늘. 그 텅 빈 공간이 생기를 되찾아 세상을 따스하게 감쌌다.
[노오옴…!!]
염라의 상반신이 손을 뻗었으나, 그것이 닿는 일은 없었다.
염라의 몸이 손끝부터 하늘에 흩어진다.
이제 막 신의 경지에 오른 이가 명계의 신을 철저히 압도했다.
남궁진천은 연소희의 손을 맞잡은 채 빛의 계단을 올랐다. 명계에 피어난 꽃들이 그들의 주위로 흩날린다.
연소희는 남궁진천을 따라 걸으며 명계를 내려다보았다.
푸른 하늘에 휘말린 염라와 그 수하들이 스러지고 있었다.
명계 일부를 물들인 저 하늘은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괜찮을까요, 상공…?]
[괜찮소.]
저것은 어차피 염라의 수많은 분신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영구적인 힘의 소모가 있겠으나, 남궁진천이 거기까지 신경 써 줄 이유는 없다.
[그보다, 그대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소.]
지금껏 검에 깃든 그녀의 기억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것은 남궁진천의 기억이었으며, 또 연소희의 일부였으나, 결코 연소희 본인은 아니었다. 기억 속의 그녀와 하염없이 대화를 주고받았을 뿐.
언젠가 다시 만날 그녀에게 전하기 위해 남궁진천은 그 모든 대화를 기억했다.
[그거 아시오? 우리에게 사위가 생겼소.]
남궁진천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한동안은 대화를 쉴 날이 없으리라.
비익천신 남궁진천과 그 부인 연소희가 선계에 올랐다.
*
환한 빛과 함께 일변한 풍경. 손을 맞잡은 부부에게 한 사내가 천천히 다가왔다.
“어서 오시게. 나는 금휘제라 하네.”
둘을 마중나온 검신이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기다리고 있었네.”
*
“꿈을 꿨어….”
남궁수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니, 꿈이 아니야…!”
그녀의 만면에 환한 미소가 꽃처럼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