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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권왕이 화경…, 은 아니군. 아무튼 그에 상응하는 경지에 올랐을 줄이야. 놀라운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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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말에 패진광이 헛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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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긴 개뿔이나. 나는 한참 늦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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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늦은 게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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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검지를 펼친 채 까딱까딱 흔들었다. 상당히 열받는 동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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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선구자가 아닌가. 평생을 바쳐도 한 걸음조차 떼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하거늘. 새 지평을 열어젖혔으면 찬사를 받아 마땅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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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패진광이 서준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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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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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눈썹을 까딱였다. 서준에게는 간단한 동작으로 상대를 열받게 만드는 독특한 재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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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진광은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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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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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은 그냥 기이한 무언가다. 새 지평을 열어젖혀? 저놈이 열어젖힌 지평이 몇 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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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황제의 찬사가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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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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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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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욕을 먹은 서준은 그냥 억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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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정말로 화경끼리의 친목을 다지려 했을 뿐이라는 듯 별다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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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눈으로 서준과 패진광을 살피긴 했으나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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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 자체에 편견이 있는 서준이 그가 수상한 짓을 하지는 않나 살폈으나 별 소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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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라도 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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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멸사천군. 세대가 교체된 남궁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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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이자 남궁세가 직계의 약혼자이기도 한 멸사천군이 남궁세가의 이후 행보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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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일인 만큼 황제가 직접 정세를 살피러 출두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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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진광 그 영감이 화경에 오른 것도 봤으니 허튼 짓은 안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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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이라는 거대한 기둥이 사라지긴 했으나, 아직 남궁은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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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황제가 삿된 마음을 품고 왔을지라도 머리가 장식으로 달린 게 아니라면 알아서 몸을 사릴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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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설령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 한들 지금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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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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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자리에 선 채 세가에 모인 사람들을 보았다. 며칠간 꽤나 펴졌던 그의 표정이 다시금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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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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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화경끼리의 회담 이후로 며칠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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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남궁세가에 모여든 만큼 자잘한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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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객들이 행동을 조심한 까닭에 큰 사건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그로 인해 세가 전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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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며칠이라는 시간이 위태로운 균형 속에서 빠르게 지나가고, 끝내 남궁진천의 발인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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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남궁진천의 관이 묘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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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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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가라앉은 눈으로 남궁진천이 안치된 관을 보았다. 특수한 처리가 된 관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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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관이긴 하나, 서준은 못내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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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비싸고 좋은 관이라 한들, 하늘을 발아래 두던 제왕이 몸을 담기에는 그조차 너무 비좁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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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길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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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구 행렬은 대부분 남궁세가의 무인들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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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명을 필두로 창천대, 비연대, 청풍대, 녹림대 등의 무력대와 세가 내 대부분의 집단이 각기 모여 차례로 기다란 행렬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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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합비의 거리를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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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이 지나는 거리의 양옆으로 타 문파의 무인들이 조용히 예를 취했으며, 합비의 시민들은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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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남궁의 사람들은 이것이 남궁진천의 마지막 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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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곳에서 눈을 뜰 가주를 축복하기 위한 행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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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나아간 운구 행렬은 한 묘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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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묘비에는 검으로 새겨진 듯한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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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소희(燕小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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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그 묘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름의 형태를 취한 검흔에서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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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름을 누가 새겼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장인어른께서 직접 새기신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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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묘는 당연하다는 듯 그 옆에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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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놓인 부부의 묘. 그 모습을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사이 예식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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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의 핏줄들이, 그 가족들이, 남궁이 가족으로 받아들인 모든 이들이 절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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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 역시 절을 올린 뒤 이어지는 과정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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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듯했다. 깨닫고 나니 대부분의 예식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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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묘가 봉해졌고, 묘비가 세워졌다. 무엇도 새겨지지 않은 묘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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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뒤를 이을 남궁명이 묘비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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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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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명이 검을 뽑아든 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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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뜨여진 그의 눈이 빈 묘비를 보았다. 천천히, 허나 반듯하게 휘둘러진 검이 묘비에 글자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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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南宮津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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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명의 성정과 같이 정갈한 서체(書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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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그 모습을 보았다. 두 개의 묘와, 두 개의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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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역시 그들을 애도하듯 부슬비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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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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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고개를 젖혔다. 비가 내리는 하늘은 흐렸다.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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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것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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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조화를 이룬 무인의 바람이 하늘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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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걷어내듯 하늘을 흐리던 구름이 밀려나고, 그 위에 고고하게 떠있던 태양이 맑은 빛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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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내렸던 부슬비가 떨어지는 태양의 빛을 부수며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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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그제서야 굳었던 표정을 풀며 나란히 놓인 부부의 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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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은 만나셨을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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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면, 장인어른께서 이루어내지 못할 리가 없다. 어쩌면 이미 재회를 마친 뒤 오랜 회포를 풀어내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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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눈을 감고 이런저런 말들을 속으로나마 전하던 서준은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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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씨에 시작된 장례가 맑게 개인 하늘 아래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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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햇살 사이로 서준이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춘봉과 남궁수아가 조용히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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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곁에 선 이들의 무게를 느끼며 옅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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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는 꽃을 피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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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상복이 바람에 휘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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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의 끝과 동시에 남궁명의 즉위식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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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식은 화려하지 않았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남궁세가의 인원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새로운 가주의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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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명은 굳은 표정으로 예식을 진행했다. 그 뒤에 선 남궁세가의 장로들이 자신들의 아들을 보듯 따뜻한 시선으로 남궁명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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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 역시 장로들과 함께 서 남궁명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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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식에는 별다른 절차가 없다. 남궁세가의 가주라는 자리는 누군가에게 임명받는 자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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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라면 전대 가주가 후계자에게 가주직을 물려주었겠으나, 이번 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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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 이끌 자리를 비워둘 수 없으니 장례의 끝과 동시에 새로운 가주가 스스로의 뜻을 천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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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은 문파가 아니다. 남궁이라는 이름을 잇는 가문이다. 우리는 피 대신 남궁이라는 이름을 잇는 가족이요, 언제나 그 사실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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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직한 목소리가 내공을 품고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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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남궁명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마침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남궁혁과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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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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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께 제왕검형을 사사했을 때, 자신의 단전을 폐하고 혀와 손목을 잘라야 한다던 남궁혁에게 남궁명이 비슷한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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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마라. 우리는 무공으로 이어진 연이 아니다. 남궁의 맥을 잇는 가족이다. 가족이 있기에 가문이 있으니,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를 남궁세가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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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을 상징하는 것은 남궁이라는 성씨 그 자체라. 설령 다른 성을 쓴다 하여도 같은 지붕 아래 뜻을 함께하는 이들은 남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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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의 검은 꺾이지 아니한다. 우리는 중원의 하늘이니. 그 누구도 남궁의 이름 앞에서 교만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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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새삼스레 남궁명의 등을 보았다. 화경의 예민한 감각이 그의 떨림을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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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남궁명은 저 자리에 당당하게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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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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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봤을 때보다 부쩍 커진 저 등이 기껍다. 얼핏 장인어른의 모습이 남궁명에게서 보이는 듯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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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남궁명의 뒤에 선 장로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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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연, 진가위, 남궁영보, 남궁백, 남궁혁, 남궁현철, 어째서인지 패진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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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얼굴도 몇 있었으나, 대부분이 아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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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기분이 들었다. 무림에 떨어진 지 채 3년조차 되지 않는 시간. 어느새 이렇게 많은 가족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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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 이서준은 앞으로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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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명의 부름에 걸음을 옮겼다. 서준은 남궁명의 곁에 서 자신을 바라보는 무수한 눈동자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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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부로 장로 이서준을 태사직에 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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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말을 잠자코 들으며 무수한 시선들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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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의 무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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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대, 천풍대, 비연대, 녹림대, 천약당의 사람들과 금주당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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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 가며 마주친 얼굴들이 자신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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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아는 얼굴보다 모르는 얼굴이 많았다. 저 무수한 이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전부 알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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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럼에도 저들은 자신의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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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문득 맑게 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하늘 아래 선 자신의 가족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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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 모여든 이들이 발하는 기세에 하늘이 오묘한 푸른빛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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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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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저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줄기를 보았다. 남궁의 무인들이 익힌 무공이 자신과 공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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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전창뢰심공와 섬전십삼검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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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창시한 무공은 어느새 남궁의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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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누군가는 생사타통공을 통해 초절정에 다다를 것이고, 천뢰멸마공을 통해 강기를 익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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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누군가는 천인신단공을 통해 만들어진 천인신단을 복용하여 육체를 강건히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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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흔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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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남궁세가에 이토록이나 짙은 흔적이 남았다. 앞으로 남궁세가에 남을 자신의 흔적은 더욱 짙어져만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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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가슴이 술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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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구어낸 무맥(武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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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저들 하나하나에게서 뻗어나온 줄기가 한데 뭉쳐 거대한 나무를 이루는 환상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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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끝까지 자라난 나무가 저들의 위로 거대한 그늘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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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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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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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께 예를 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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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공을 품고 퍼져나가는 목소리에 모든 남궁의 무인들이 서준을 보았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저들이 모두 남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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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수한 남궁의 무인들이 일제히 오른 주먹을 가슴에 붙였다. 쿵! 하나된 거대한 소리와 함께 그보다 커다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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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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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의 태사를 향한 예가 하늘을 떨쳐울렸다. 그들의 눈에 담긴 열기. 서준이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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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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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술렁인다. 헛되지 않았다. 제대로 해왔다. 장인어른에 비해 모자랄지언정, 나는 당당히 이곳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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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허리를 꼿꼿이 편 채 모든 가족된 이들의 열의를 가슴에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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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일맥지간 화위참천거수(南宮一脈之幹 化爲參天巨樹)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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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을 하나로 잇는 줄기가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나무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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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벼락이 되어 뇌리를 관통하고, 번뜩이는 오성은 눈앞의 거대한 나무를 무공으로 승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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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의 태사, 이서준의 눈에 푸른 광망이 일렁였다. 옅은 미소를 머금은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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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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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일맥(南宮一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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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이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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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의 아주 깊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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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이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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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 남궁진천은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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