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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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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권왕이 화경…, 은 아니군. 아무튼 그에 상응하는 경지에 올랐을 줄이야. 놀라운 일인데.”

황제의 말에 패진광이 헛웃음을 흘렸다.

“놀랍긴 개뿔이나. 나는 한참 늦었지.”

“아니, 늦은 게 아니지.”

황제가 검지를 펼친 채 까딱까딱 흔들었다. 상당히 열받는 동작이다.

“완전히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선구자가 아닌가. 평생을 바쳐도 한 걸음조차 떼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하거늘. 새 지평을 열어젖혔으면 찬사를 받아 마땅한 일이지.”

그 말에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패진광이 서준을 보았다.

“뭐요.”

서준이 눈썹을 까딱였다. 서준에게는 간단한 동작으로 상대를 열받게 만드는 독특한 재능이 있었다.

패진광은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됐다.”

저놈은 그냥 기이한 무언가다. 새 지평을 열어젖혀? 저놈이 열어젖힌 지평이 몇 개더라?

어쩐지 황제의 찬사가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왓?”

느닷없이 욕을 먹은 서준은 그냥 억울했다.

황제는 정말로 화경끼리의 친목을 다지려 했을 뿐이라는 듯 별다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묘한 눈으로 서준과 패진광을 살피긴 했으나 그뿐.

황실 자체에 편견이 있는 서준이 그가 수상한 짓을 하지는 않나 살폈으나 별 소득은 없었다.

‘간이라도 본 건가?

황실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멸사천군. 세대가 교체된 남궁세가.

태사이자 남궁세가 직계의 약혼자이기도 한 멸사천군이 남궁세가의 이후 행보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중요한 일인 만큼 황제가 직접 정세를 살피러 출두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패진광 그 영감이 화경에 오른 것도 봤으니 허튼 짓은 안 하겠지.

남궁진천이라는 거대한 기둥이 사라지긴 했으나, 아직 남궁은 건재하다.

혹여 황제가 삿된 마음을 품고 왔을지라도 머리가 장식으로 달린 게 아니라면 알아서 몸을 사릴 터.

아니, 설령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 한들 지금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시작인가.”

서준은 자리에 선 채 세가에 모인 사람들을 보았다. 며칠간 꽤나 펴졌던 그의 표정이 다시금 굳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벌써 화경끼리의 회담 이후로 며칠이 지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남궁세가에 모여든 만큼 자잘한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 않았다.

문상객들이 행동을 조심한 까닭에 큰 사건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그로 인해 세가 전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렇게 며칠이라는 시간이 위태로운 균형 속에서 빠르게 지나가고, 끝내 남궁진천의 발인일이 되었다.

오늘, 남궁진천의 관이 묘에 묻힌다.

“…….”

서준은 가라앉은 눈으로 남궁진천이 안치된 관을 보았다. 특수한 처리가 된 관이라 했다.

겉보기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관이긴 하나, 서준은 못내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제아무리 비싸고 좋은 관이라 한들, 하늘을 발아래 두던 제왕이 몸을 담기에는 그조차 너무 비좁아 보였다.

“하늘의 길을 열어라!”

운구 행렬은 대부분 남궁세가의 무인들로 구성되었다.

남궁명을 필두로 창천대, 비연대, 청풍대, 녹림대 등의 무력대와 세가 내 대부분의 집단이 각기 모여 차례로 기다란 행렬을 이루었다.

행렬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합비의 거리를 나아갔다.

행렬이 지나는 거리의 양옆으로 타 문파의 무인들이 조용히 예를 취했으며, 합비의 시민들은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곡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남궁의 사람들은 이것이 남궁진천의 마지막 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새로운 곳에서 눈을 뜰 가주를 축복하기 위한 행렬이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나아간 운구 행렬은 한 묘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묘비에는 검으로 새겨진 듯한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연소희(燕小喜)

서준은 그 묘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름의 형태를 취한 검흔에서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저 이름을 누가 새겼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장인어른께서 직접 새기신 이름이다.

남궁진천의 묘는 당연하다는 듯 그 옆에 마련되었다.

나란히 놓인 부부의 묘. 그 모습을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사이 예식이 진행되었다.

남궁의 핏줄들이, 그 가족들이, 남궁이 가족으로 받아들인 모든 이들이 절을 올린다.

서준 역시 절을 올린 뒤 이어지는 과정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듯했다. 깨닫고 나니 대부분의 예식이 끝났다.

남궁진천의 묘가 봉해졌고, 묘비가 세워졌다. 무엇도 새겨지지 않은 묘비였다.

남궁진천의 뒤를 이을 남궁명이 묘비 앞에 섰다.

스릉-

남궁명이 검을 뽑아든 채 눈을 감았다.

이내 뜨여진 그의 눈이 빈 묘비를 보았다. 천천히, 허나 반듯하게 휘둘러진 검이 묘비에 글자를 새겼다.

‘남궁진천(南宮津天)

남궁명의 성정과 같이 정갈한 서체(書體)였다.

서준은 그 모습을 보았다. 두 개의 묘와, 두 개의 묘비.

하늘 역시 그들을 애도하듯 부슬비를 내렸다.

“…….”

서준은 고개를 젖혔다. 비가 내리는 하늘은 흐렸다.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흐린 것보다는….

세상과 조화를 이룬 무인의 바람이 하늘에 닿았다.

손으로 걷어내듯 하늘을 흐리던 구름이 밀려나고, 그 위에 고고하게 떠있던 태양이 맑은 빛을 내렸다.

이미 내렸던 부슬비가 떨어지는 태양의 빛을 부수며 반짝인다.

서준은 그제서야 굳었던 표정을 풀며 나란히 놓인 부부의 묘를 보았다.

‘장모님은 만나셨을지 모르겠네요.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면, 장인어른께서 이루어내지 못할 리가 없다. 어쩌면 이미 재회를 마친 뒤 오랜 회포를 풀어내고 있을지도.

잠시 눈을 감고 이런저런 말들을 속으로나마 전하던 서준은 눈을 떴다.

흐린 날씨에 시작된 장례가 맑게 개인 하늘 아래 끝이 났다.

쏟아지는 햇살 사이로 서준이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춘봉과 남궁수아가 조용히 따랐다.

서준은 곁에 선 이들의 무게를 느끼며 옅게 웃었다.

‘그곳에서는 꽃을 피우시길.

흰 상복이 바람에 휘날렸다.

장례의 끝과 동시에 남궁명의 즉위식이 시작되었다.

즉위식은 화려하지 않았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남궁세가의 인원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새로운 가주의 모습을 보았다.

남궁명은 굳은 표정으로 예식을 진행했다. 그 뒤에 선 남궁세가의 장로들이 자신들의 아들을 보듯 따뜻한 시선으로 남궁명을 보았다.

서준 역시 장로들과 함께 서 남궁명을 지켜보았다.

즉위식에는 별다른 절차가 없다. 남궁세가의 가주라는 자리는 누군가에게 임명받는 자리가 아니다.

본래라면 전대 가주가 후계자에게 가주직을 물려주었겠으나, 이번 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가문을 이끌 자리를 비워둘 수 없으니 장례의 끝과 동시에 새로운 가주가 스스로의 뜻을 천명하게 되었다.

“…남궁은 문파가 아니다. 남궁이라는 이름을 잇는 가문이다. 우리는 피 대신 남궁이라는 이름을 잇는 가족이요, 언제나 그 사실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나직한 목소리가 내공을 품고 퍼져나간다.

서준은 남궁명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마침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남궁혁과 눈이 마주쳤다.

‘그때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장인어른께 제왕검형을 사사했을 때, 자신의 단전을 폐하고 혀와 손목을 잘라야 한다던 남궁혁에게 남궁명이 비슷한 말을 했다.

“잊지 마라. 우리는 무공으로 이어진 연이 아니다. 남궁의 맥을 잇는 가족이다. 가족이 있기에 가문이 있으니,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를 남궁세가라 칭한다.”

남궁을 상징하는 것은 남궁이라는 성씨 그 자체라. 설령 다른 성을 쓴다 하여도 같은 지붕 아래 뜻을 함께하는 이들은 남궁이다.

“남궁의 검은 꺾이지 아니한다. 우리는 중원의 하늘이니. 그 누구도 남궁의 이름 앞에서 교만하지 못하리라.”

서준은 새삼스레 남궁명의 등을 보았다. 화경의 예민한 감각이 그의 떨림을 알려왔다.

그럼에도 남궁명은 저 자리에 당당하게 섰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했었나.

처음 봤을 때보다 부쩍 커진 저 등이 기껍다. 얼핏 장인어른의 모습이 남궁명에게서 보이는 듯도 했다.

서준은 남궁명의 뒤에 선 장로들을 보았다.

남궁연, 진가위, 남궁영보, 남궁백, 남궁혁, 남궁현철, 어째서인지 패진광까지.

모르는 얼굴도 몇 있었으나, 대부분이 아는 이들이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무림에 떨어진 지 채 3년조차 되지 않는 시간. 어느새 이렇게 많은 가족이 생겼다.

“장로 이서준은 앞으로 나오라.”

남궁명의 부름에 걸음을 옮겼다. 서준은 남궁명의 곁에 서 자신을 바라보는 무수한 눈동자들을 보았다.

“금일부로 장로 이서준을 태사직에 봉한다.”

이어지는 말을 잠자코 들으며 무수한 시선들을 마주했다.

남궁의 무인들.

창천대, 천풍대, 비연대, 녹림대, 천약당의 사람들과 금주당의 사람들.

오며 가며 마주친 얼굴들이 자신을 본다.

그럼에도 아는 얼굴보다 모르는 얼굴이 많았다. 저 무수한 이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전부 알지도 못했다.

허나 그럼에도 저들은 자신의 가족이다.

서준은 문득 맑게 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하늘 아래 선 자신의 가족들을 보았다.

한 곳에 모여든 이들이 발하는 기세에 하늘이 오묘한 푸른빛을 머금었다.

“아….”

서준은 저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줄기를 보았다. 남궁의 무인들이 익힌 무공이 자신과 공명한다.

섬전창뢰심공와 섬전십삼검뢰.

서준이 창시한 무공은 어느새 남궁의 토대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 누군가는 생사타통공을 통해 초절정에 다다를 것이고, 천뢰멸마공을 통해 강기를 익혀나갈 것이다.

또 누군가는 천인신단공을 통해 만들어진 천인신단을 복용하여 육체를 강건히 하리라.

‘…내 흔적인가.

벌써 남궁세가에 이토록이나 짙은 흔적이 남았다. 앞으로 남궁세가에 남을 자신의 흔적은 더욱 짙어져만 가겠지.

묘하게 가슴이 술렁인다.

‘내가 일구어낸 무맥(武脈).

서준은 저들 하나하나에게서 뻗어나온 줄기가 한데 뭉쳐 거대한 나무를 이루는 환상을 보았다.

하늘 끝까지 자라난 나무가 저들의 위로 거대한 그늘을 내린다.

“…이런 거였구나.”

서준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어렸다.

“태사께 예를 취하라!”

내공을 품고 퍼져나가는 목소리에 모든 남궁의 무인들이 서준을 보았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저들이 모두 남궁이다.

그 무수한 남궁의 무인들이 일제히 오른 주먹을 가슴에 붙였다. 쿵! 하나된 거대한 소리와 함께 그보다 커다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충!

남궁의 태사를 향한 예가 하늘을 떨쳐울렸다. 그들의 눈에 담긴 열기. 서준이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가슴이 술렁인다. 헛되지 않았다. 제대로 해왔다. 장인어른에 비해 모자랄지언정, 나는 당당히 이곳에 서있다.

서준은 허리를 꼿꼿이 편 채 모든 가족된 이들의 열의를 가슴에 품었다.

‘남궁일맥지간 화위참천거수(南宮一脈之幹 化爲參天巨樹)라….

남궁을 하나로 잇는 줄기가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나무를 이룬다.

깨달음은 벼락이 되어 뇌리를 관통하고, 번뜩이는 오성은 눈앞의 거대한 나무를 무공으로 승화시킨다.

남궁의 태사, 이서준의 눈에 푸른 광망이 일렁였다. 옅은 미소를 머금은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무공의 이름은….

남궁일맥(南宮一脈).

그 이름이 좋을 것 같았다.

명계의 아주 깊은 곳.

남궁진천이 눈을 떴다.

[죄인 남궁진천은 들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