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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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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련문주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정말 간신히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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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이 일 때 외부와 공간의 실을 이어 빠져나왔으니 놈도 눈치채지는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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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 도대체 뭐 하는 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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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봤을 때는 분명 이 정도 실력이 아니었다. 당시에도 특출난 점이 있기는 했으나, 결코 화경에 미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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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그때로부터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사이에 이렇게까지 성장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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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성장이 너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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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둔다면 제2의 남궁진천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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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맞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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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련문주는 나무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기분 좋게 서늘한 바람이 분다. 그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머리 위에서 떨어져내린 나뭇잎 하나를 잡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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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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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남궁진천의 시체는 가져오지 못했고, 사흑련의 화경이 떼로 죽었으니 전쟁의 승패 역시 거의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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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의 무인인 사흑련주가 있으니 사흑련이 완전히 무너지는 일은 없겠지만, 결국 대부분의 영역을 잃게 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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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간이 꽤 걸릴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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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흑련이 동네 흑도 문파는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지만 단번에 무너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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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중간에 무언가 변수가 생겨 판이 뒤집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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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사흑련이 쇠락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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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사흑련을 벗어나서 새 신분을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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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련문주가 픽 웃으며 손에 쥔 나뭇잎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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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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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끔한 통증. 의아한 표정으로 손을 펼친 기련문주의 표정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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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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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에 달린 아가리. 그것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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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영역에서 벗어난 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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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련문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급히 몸을 돌렸다. 방금까지 기대고 있던 나무에서 가지가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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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난 가지는 이내 사람의 형상을 이루고, 어느새 그곳에 자리한 서준이 기련문주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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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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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득-! 서준의 관자놀이에서 뿔이 솟았다. 맑던 하늘이 검붉게 물들고, 발 아래 자라난 잡초들에 무수한 눈알이며 아가리가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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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과 관련된 모든 문파는 멸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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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경. 간단히 부르길 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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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신의 비대를 이루어 주변 공간을 정과 기로 삼는 경지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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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주변 모든 공간을 포함해 정기신의 균형을 이루었음이니, 그 모든 것을 다시금 마로 물들인다면 동시에 극마에 다다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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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조화경과 극마의 합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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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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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라면 그런 과정을 통해 영역과 마(魔)가 조화를 이루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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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정과 마 사이의 균형을 이룬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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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경과 극마 모두 정기신의 형태에 따라 구분되는 경지이기에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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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일찍이 중원에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새로운 경지. 말 그대로 전인미답의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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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서준의 경우 그것과도 조금 달랐다. 화마경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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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존재 자체가 마에 물들었으니, 이루어낸 경지 역시 마에 한 발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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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름을 짓기에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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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로써 서준은 중원의 무인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완전히 독자적인 경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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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흑련은 존속하지 못할 것이며, 남궁의 빈 자리에 침 흘리는 승냥이들은 그 경중을 막론하고 모조리 참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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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이 마에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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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한결 온전해진 스스로의 권능을 손에 쥔 채 영역 내의 모든 것을 관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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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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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에 태양 대신 떠오른 거대한 눈알이 기련문주를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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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공기가, 발디딘 땅이, 휘감기는 풀이,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이 기련문주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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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는, 영원히 고통받으며 지은 죄를 후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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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드득-! 까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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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소리에 기련문주가 시선을 내렸다. 그 눈에 보이는 것은 무수한 아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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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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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화악-! 피가 덩어리져 솟구친다. 그럼에도 아무런 감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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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련문주의 미간이 꿈틀댄 순간, 파바박-! 불꽃이 터지듯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는 끔찍한 고통이 단번에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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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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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련문주가 고통에 절규하며 반사적으로 수인을 맺었다. 수백 년간 쌓아온 수행이 헛되지 않았다. 즉시 주술이 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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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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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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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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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기련문주의 입에서 핏덩어리가 울컥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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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魔)는 대부분의 생명에게 있어 극독과 같다. 이미 기련문주의 내부에 파고든 마기가 그의 주술을 근원부터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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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련문주의 두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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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슨 말도 안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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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영역이 존재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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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자신이 대부분의 힘을 소진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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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재주를…! 기어오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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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련문주가 이를 악물었다. 끝까지 아끼던 선천지기를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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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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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힘이 터져나오며 체내에 파고든 마기를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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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수인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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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분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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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적-! 별이 붕괴하며 빛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흑색의 점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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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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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이루는 영역조차 예외는 없다. 세상만물과 함께 무수한 눈알과 아가리들이 허공의 흑점에 빨려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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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겠다…! 내가 힘을 회복하는 날…! 네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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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양손이 원을 그렸다. 하늘과 땅을 붙잡아 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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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곤대나이(乾坤大挪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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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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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이 통째로 뒤집히며 반전한다. 기련문주의 주술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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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 점이 희게 물들며 지금껏 빨아들였던 모든 것들을 토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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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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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웅-! 터져나온 충격파에 기련문주의 몸이 튕겨져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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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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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세상을 수놓은 수만 개의 눈알이 그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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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천일월공(逆天日月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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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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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련문주의 몸에 무수한 구멍이 뚫렸다. 너덜너덜해진 몸이 뜯겨나간다. 비명조차 낼 수 없었다. 무수한 육편이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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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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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아가리들이 달려들어 그런 기련문주의 파편을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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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드득-! 까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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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리들이 먹어치운 파편은 서준의 영역 깊은 곳, 가장 어두운 감옥에 차곡차곡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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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혼조차 놓치지 않았다. 영혼을 볼 수 없다 한들, 이미 영역 내부에 있다면 통째로 가둬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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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격리하는 데 성공했다면 혼을 느끼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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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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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의 절규가 울려퍼진다. 북명신공이 기련문주의 혼이 소멸하기 직전까지 그의 기운을 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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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기련문주의 혼은 힘을 회복할 것이고, 그것은 다시금 서준의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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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그는 영원히 고통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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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준은 시야를 넓게 했다. 화악-! 기련문주가 갇힌 감옥이 순식간에 멀어지며 영역 전체가 시야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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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바깥 세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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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은 사람의 머리통만 한 구체에 지나지 않았으며, 서준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그 구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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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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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혀를 차며 구체를 가슴 속에 밀어넣었다. 끊임없이 들려오던 기련문주의 비명이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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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멍함이 남은 상태로 주변을 살폈다. 주변은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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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전히 남궁진천과 남궁연의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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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시작된 이후로 단 한 발자국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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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련문주는 영역 안에서 춤추는 꼭뚜각시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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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작은 기척에 등을 돌리니 정신을 차린 남궁연이 멍한 눈으로 남궁진천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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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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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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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연의 눈에서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져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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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그녀의 점혈을 풀었다. 그녀는 텅 빈 눈으로 남궁진천의 시신을 바라보다 망설임 없이 스스로의 검으로 목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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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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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앞에서 멈춘 검은 움직이지 못했다. 이기어검으로 남궁연의 검을 붙잡은 서준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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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죽으면 장인어른의 죽음이 뭐가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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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에…, 오라버니가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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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님을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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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이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한들, 이제 와서야 죽음을 맞이한 까닭은 오롯이 남궁연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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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살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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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당신이 죽으면 장인어른의 죽음이 뭐가 됩니까. 고작 화경 넷 죽인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가족을 살렸기에 의미가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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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연은 입술을 짓씹은 채 고개를 떨궜다. 무어라 위로를 하기에는 서준 역시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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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그녀를 바라보다 이내 기감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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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가까워지는 기척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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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흑련의 기척도, 무림맹의 기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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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과 제천혁의 전투로 그 여파가 중원 전체에 퍼졌을 텐데, 누구 하나 달려오는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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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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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남궁연을 허공섭물로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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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채 사막에 파묻힌 장모님의 검을 조심스레 품에 넣고, 여전히 살아계신 듯 굳건히 서있는 장인어른을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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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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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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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핀 꽃과 맑게 갠 하늘이 보인다. 남궁진천의 활검이 빚어낸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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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끝까지 사위에게 가르침을 남기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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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그 풍경을 바라보던 서준이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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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사이 피어난 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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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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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에서는 통곡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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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말 많던 패진광조차 입을 다물었고, 남궁수아는 쓰러져 오열하다 기절하듯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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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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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가를 붉게 물들인 남궁명이 서준을 찾았다. 그는 넋이 나간 듯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서준에게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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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께서 임시나마 가주직을 맡아주십시오…. 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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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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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수아를 돌보던 서준이 몸을 일으켰다. 춘봉이 그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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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께서 가문을 맡긴 건 명이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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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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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 가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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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굳은 표정으로 남궁명의 어깨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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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해. 감당은 내가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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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는 그 자체로 대단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남궁의 진정한 힘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남궁진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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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부재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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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가 흔들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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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그 꼴을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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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는 건 없어. 네가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내가 장인어른의 역할을 대신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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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방을 나섰다. 남궁명과 춘봉이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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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말투는 부드러웠으나, 주변의 이들은 긴장을 놓지 못했다. 심장을 죄는 듯한 오한이 언제나 그의 곁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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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만이 그를 스스럼없이 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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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괜찮은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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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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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게 웃어준 서준이 남궁수아의 방을 일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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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부러진 검은 남궁진천의 곁에 묻힐 예정이었으나, 검은 남궁수아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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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뜻이리라 짐작하며 검의 다음 소유자는 남궁수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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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내릴 듯 울던 남궁수아의 모습이 선명했다. 서준이 미간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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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까지는 시간이 꽤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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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준비하는 데 못해도 몇 주는 걸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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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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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흑련은 무너질 것이며, 무림맹 역시 그 무능에 대한 명분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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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만 지껄인다면, 내가 직접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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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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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을 향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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