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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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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하여 하늘을 붙잡아 검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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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검이 제천혁을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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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혁은 그를 보았다.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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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는 기절한 남궁연이 있다. 엉망이 된 주변. 그녀 주변의 공간만이 멀쩡해 이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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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피붙이 하나 지키는 것이 그리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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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니 당연한 일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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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되지 않는군. 고작 피로 이어진 관계에 얽매일 사내로는 보이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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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사람이 못 되오…. 여전히 검을 놓지 못한 우자일 뿐…. 겁 많은 범인에 지나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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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검이 휘둘러졌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임에도 그의 검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예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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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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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젖혀 피한 제천혁이 앞발을 크게 앞으로 밀었다. 동시에 그의 주먹이 희게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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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천(破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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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제천혁의 영역은 대단한 공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상대를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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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에서 말하는 존재의 소멸이니 하는 것들은 그저 제천혁의 주먹에 깃든 하나의 힘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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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그의 영역은 상대를 면밀히 꿰뚫는다. 그 움직임, 상태, 이어질 동작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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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죽기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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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혁은 자신의 영역 속 남궁진천을 보았다. 생명은 꺼지기 직전이요, 움직임에는 이전과 같은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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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도대체 이 느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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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혁은 알 수 없는 위기감에 황급히 몸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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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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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공간이 검게 벌어진다. 위험을 직감한 제천혁이 크게 물러나 허공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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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투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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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격한 권격에 남궁진천의 몸이 흔들린다. 가슴에 뻥 뚫린 구멍에서는 끝도 없이 피가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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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혁의 주먹에 담긴 공능이 그의 존재 자체를 갉아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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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은 여전히 옅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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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잃어 후회하고 싶지 않소…. 상실이라는 그 고통이 두려워 도무지 견딜 수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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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은 시골 소녀에게 가장 먼저 입맛을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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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음식을 먹어도 그때 그 맛을 도무지 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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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여인이 사는 마을을 벗어났다가도 며칠이 지나면 다시금 발걸음이 그곳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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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 년, 이 년, 삼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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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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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극적인 순간은 없었다. 그저 스며들듯 여인의 존재가 가슴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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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한 순간, 남궁진천은 깨달았다. 이제는 이 여인이 곁에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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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그의 청혼에 크게 기뻐했고, 가족과 함께 남궁세가에 들어와 신혼 생활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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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터진 것은 첫째, 수아를 낳고 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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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의 어미가 된 여인은 전보다 조금 어른스러운 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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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원래부터 조금 몸이 약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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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의 몸보다 중요한 건 없소. 다른 일은 전부 제쳐두고 보신에 신경 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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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인은 몸이 조금 나아지자마자 바쁘게 움직였다. 아무리 남궁세가라 한들 근본도 없는 시골 여인이 안주인이 된 것에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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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여인에게 직접 불만을 토하는 이는 없었으나, 타고나길 눈치가 좋았던 여인이 그런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할 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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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지아비를 위해, 태어난 아이를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안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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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은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그녀의 활기찬 모습이 마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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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둔했다.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남궁진천은 여전히 그 시절의 자신을 미치도록 혐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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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찬 모습이 좋았다면 그 모습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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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 내의 모든 이들의 입을 틀어막아서라도 부인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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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검만 붙잡고 살아온 사내는 그토록이나 미숙하고, 멍청했다. 끔찍할만치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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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그 시절의 자신을 몇 번이나 목 졸라 죽여도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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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강렬한 감정에 눈이 먼 머저리. 그 머릿속에 들어찬 꽃밭에는 불행한 미래가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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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괜찮다며 웃는 부인의 말에 실없이 웃으며 사랑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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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둘째, 명이를 낳고 파국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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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께서는 정이 너무 많아요. 제가 없으면 어찌 하시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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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진 듯 싶었던 부인의 몸은 아이를 낳으며 급격하게 쇠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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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앓던 지병이 악화됐고, 떨어진 체력은 병을 이겨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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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져누운 부인은 그럼에도 스스로의 안위보다 제 미숙한 지아비를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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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제가 없을 때, 너무 외로워지신다면 제 검을 저처럼 여겨주세요. 검에 깃들어서라도 상공의 곁에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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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소리 마시오, 부인. 그대가 잘못될 일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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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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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무에 통달한 그의 이성은 끊임없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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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늦었다고. 돌이킬 수 없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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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지키고 싶었던 이를 지키지 못한 검은 그저 사람을 죽이는 검일 뿐이요, 그런 피 묻은 검으로는 사랑하는 이 하나 살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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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활검에 몰두해 보기도 했으나, 미천한 재능으로는 때를 맞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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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 저는 괜찮아요.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금방 나을 거예요. 수아…, 그리고 명이랑 소풍을 가기로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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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남궁진천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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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 상공…, 저, 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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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에는 눈앞에 닥친 죽음이 두려워 눈물을 쏟았다. 떨리는 손으로 남궁진천의 손을 붙잡고 애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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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고. 조금 더,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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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은 그녀를 위해 무엇 하나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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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지독하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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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과오가 부인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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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부인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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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증스러운 살인자는 자신이 죽인 반쪽 앞에서 염치도 없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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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고, 또 후회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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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반쪽을 잃었다. 가슴에 남은 빈자리는 여전히 채워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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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내지 못한 미련에 다시 검을 잡았으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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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이들마저 스스로의 길을 찾았으니, 애써 이 질긴 명줄을 붙잡을 필요가 어디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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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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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은 하늘이 흩어진다. 더는 영역을 유지할 힘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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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으로 부러진 부인의 검은 사막의 모래에 파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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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은 흐린 눈으로 제천혁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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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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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게 들려오는 폭발음. 남궁진천의 입가에 기꺼운 미소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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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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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을 너무도 닮은 딸이 방황 끝에 찾아낸 그녀의 반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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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는 같은 아픔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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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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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혁은 마음이 급해졌다. 정파의 지원이 오기 전에 남궁진천을 죽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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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원이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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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여파가 극심했다 한들 정파의 영역과는 거리가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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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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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혁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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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은 떨리는 손을 들어올렸다. 빈손. 허나 검을 쥔 듯 허공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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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지막 검이네, 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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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까지 제 의미를 찾지 못한 검일지언정, 사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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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가벼워진 마음이 후회를 놓아주고, 환상인지, 혹은 여태껏 자신을 기다려주었는지 알 수 없는 부인의 형상이 저 멀리서 손을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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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 역시 웃으며 마주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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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한 발,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모습이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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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없는 무림에는 꽃이 피지 않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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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혁의 눈이 부릅 뜨였다. 심장이 옥죄여온다. 그는 즉시 주먹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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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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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하나 남은 팔마저 박살났다. 그럼에도 서늘한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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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역이 끊임없이 죽음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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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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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혁이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아예 남궁진천의 몸뚱이를 산산조각낼 심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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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미 베였다.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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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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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검(活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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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이 펼쳐낸 마지막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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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고자 하는 검이었으나, 그의 검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을 죽이는 법밖에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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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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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혁은 하늘을 보았다. 화경 간의 전투에 엉망이 되었던 공간이 수복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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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이치가 아닌, 한 사람이 이루어낸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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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 검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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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를 끝으로 제천혁의 몸이 사막에 파묻혔다. 화악-! 그의 시체 주변으로 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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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쏟아내던 하늘은 푸르게 개었고, 적막하던 사막은 온갖 꽃들이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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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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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보이지 않는다. 남궁진천은 희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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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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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니…!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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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식을 보지 못하게 되어 아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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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꾸 대신 돌아오는 것은 쏟아지는 자연의 기(氣). 사위의 노력에 남궁진천은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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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말게…. 이제는 나도 앞으로 나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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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아가려면 일단 몸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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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 길은 이곳에 있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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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야. 그보다 더욱 어두컴컴한 길이 아주 깊숙한 곳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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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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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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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게…. 아직 끝을 내지 못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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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은 작게 웃으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바람이 불고, 검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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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네라면 잘 해낼 것이라 믿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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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끝으로 남궁진천의 의식이 심연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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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깊은 통로의 저편에서 작게 손을 흔드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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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어 미안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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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은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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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을 떠난 신(神)이 명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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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의 가장 큰 별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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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 남궁진천은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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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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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사막에 핀 꽃을 보았다. 의식 없는 남궁연을 보았고, 굳게 선 채 죽은 남궁진천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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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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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고 있었으나, 눈을 돌리고 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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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찔려 죽어가는 아빠의 뒷모습과, 굳게 선 채 움직이지 않는 장인어른의 뒷모습이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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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파문이 일었다. 애써 무시해오던 감정이 자비 없이 눈앞에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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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던 감정을 마주한 순간 서준의 신(神)이 경계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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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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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련문주의 시체. 그 품 속에서 짚인형 하나가 기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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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살아남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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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이 혼의 이동을 눈치챘을 때는 영락없이 죽는 줄 알았으나, 자신은 끝내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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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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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인형이 형태를 뒤바꾸며 사람의 형상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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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련문주 혁문약이 남궁진천의 시신을 보며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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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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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서준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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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기절한 남궁의 핏줄을 데리고 돌아가라. 순순히 물러나면 붙잡지 않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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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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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붉은 눈으로 그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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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펼쳐진 영역이 일대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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