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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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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말투에 제천혁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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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내어준 빈틈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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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를 내어주고 능평호의 목숨을 취했다. 그렇다면 저 목을 베어내기 위해서는 무얼 얼마나 더 내어줘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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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화경을 하나 잃었다. 여기서 더 손해를 본다면 놈을 죽여도 련의 입장에서는 별 이득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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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악문 제천혁의 눈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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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의 주변 공간에는 상처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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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은 전투가 시작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저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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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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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한 짐을 안고서도 이 정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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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 상태를 유지하며 기련문주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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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게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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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보면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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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의 효과는 크게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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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에게 온갖 방해를 가하며, 아군에게는 힘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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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수도 없이 갈아넣어 기련문주가 직접 설치한 진법이다. 효과가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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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련문주 본인이 당하는 입장이라면, 상대가 동일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 속절없이 밀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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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지금 제약당한 상태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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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련문주의 말에 검율이 탄성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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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과연 창천검존이라. 그대가 검종문에 적을 두었다면 검의 끝을 보았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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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펼치는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검의 극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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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율의 영역인 십만검역은 신검합일(身劍合一)의 이치를 극한으로 이루어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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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검이 하나이니, 십만 자루의 검과 언제든 위치를 뒤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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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러한 스스로의 영역조차 저 사내의 앞에서는 빛이 바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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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네 화경의 영역 사이에서 스스로의 영역을 저리 굳건히 지켜내는 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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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그 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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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율은 귀까지 벌겋게 물들인 채 검을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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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온 목적도, 이후의 일도, 살의도, 모조리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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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것은 검종문의 문주 검율이 아닌, 그저 한 명의 검수 검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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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본 검의 끝을 내게도 보여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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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율이 달려들었다. 기련문주가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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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끼가 기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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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천도지. 기련문주의 영역은 주변 공간을 스스로의 것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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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자체를 다루는 그의 힘은 분명 대단했으나, 남궁진천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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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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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하늘은 공간조차 무(無)로 되돌린다. 지독한 공허가 저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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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대로 검율까지 죽게 둘 수는 없다. 저놈까지 죽었다가는 다음은 자신의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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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흑련이 무너지고 자시고는 알 바 아니다. 중요한 건 하나. 자신만 죽지 않으면 된다. 그 외에는 아무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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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분멸세(二極分滅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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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를 이루는 태극. 그 근원을 쪼개어 부순다. 그로써 이루는 것은 별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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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코앞에서 공간이 무너지며 모든 것이 한 점으로 수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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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검율이 남은 오만 자루의 검과 함께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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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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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는 것이 상책. 허나 피할 수는 없다. 피한다면 남궁연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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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이 왼손을 뻗었다. 피륙으로 이루어진 손이 흑색 점을 잡아채고, 그대로 움켜쥐어 부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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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어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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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자체의 울림이 퍼져나가며 일대의 모든 공간이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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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손이 으스러졌다. 그는 제천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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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을 보이면 안 된다. 빈틈을 보일 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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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드는 검율. 그의 신형이 점멸하며 어지러이 팔방을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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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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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쉬쉬쉭-! 광속에 근접한 검이 쉴 새 없이 휘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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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검이 휘둘러진 자리에 검율은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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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를 다시 찰나로 쪼갠 시간, 검율이 휘두른 무수한 검격이 빛으로 이루어진 면이 되어 남궁진천에게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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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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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검이 그에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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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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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 다른 이기어검은 인간의 몸으로 펼칠 수 없는 동작을 자연스레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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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은 움직임 하나 없이 이기어검만으로 검율의 모든 검격을 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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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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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율은 눈물을 흘리며 미친듯이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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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친 검이 흘려지고, 찔러낸 검끝이 마주 검끝에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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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주변은 마치 범접할 수 없는 벽이 쳐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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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련문주가 끊임없이 주술을 쏟아내고 있었으나, 남궁진천은 제천혁을 견제하며 그 모든 공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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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율은 스스로와 남궁진천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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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검이 저 사내에게 닿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뼈에 사무치도록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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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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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포기할 수는 없다. 저 검의 벽을 뚫어낸다면, 자신의 검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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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검합일(身劍合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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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검이 된다. 부서지고 남은 오만 자루의 검. 한계를 넘어 스스로의 안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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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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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빛과 함께 검율의 몸에 일만 자루의 검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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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걷힌 자리. 그곳에 존재하는 오롯한 한 자루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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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으로 화한 검율이 남궁진천을 향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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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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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이기어검이 막아냈다. 검율은 유(柔)의 묘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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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도, 초식도 잊은 채, 그저 하나의 묘리를 검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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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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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릉-, 오묘한 금속음과 함께 남궁진천의 검이 미끄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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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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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검율이 남은 사만 자루의 검 중 하나와 위치를 뒤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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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 묘. 그 다음은 쾌(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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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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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뛰어넘어 나아간다. 상식 바깥의 속도가 기어코 남궁진천의 검을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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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간일지라도, 남궁진천이 세운 검의 벽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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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율과 남궁진천의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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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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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모든 것. 지금껏 걸어온 검의 길을 한데 모아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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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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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율의 머리가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쾌와 패의 묘리를 한 곳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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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펼쳐온 모든 검을 아득히 뛰어넘는 단 한 번의 휘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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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율은 아찔한 쾌감과 함께 일순 남궁진천과 마음이 통한 듯한 감각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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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검은 어떻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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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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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이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검에 대해 사흘 밤낮을 토론할 수 있는 좋은 친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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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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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노린 이상, 그와는 결코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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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손이 가볍게 허공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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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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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율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검과 위치를 바꾸지도 않았다. 그래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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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목 앞에서 우뚝 멈춘 검. 검율은 끝내 남궁진천에게 닿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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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검(心劍)…. 이것이…. 당신이 본 검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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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검율의 몸뚱어리가 땅에 떨어졌다. 어떠한 상처도 없었으나,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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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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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지고 남은 사만 자루의 검이 빛이 되어 스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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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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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이 피를 토했다. 그의 가슴이 움푹 패였다. 검율을 마무리하며 생긴 빈틈. 제천혁이 주먹을 꽂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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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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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은 숨을 내쉬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아득한 곳으로 뻗은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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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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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을 수 있다. 아니, 그보다 더욱 높은 곳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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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남궁진천은 눈앞의 길을 미련도 없이 치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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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게 남은 미련. 부인. 그 기억을 잊는다면 눈앞의 모든 것을 베어내고 신좌에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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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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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찌 그럴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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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은 여전히 남궁연의 곁에 선 채 검명에 귀를 기울였다. 부인의 흐릿한 목소리가 그를 보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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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슬퍼 마시오,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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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홀가분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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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라도 그대의 뒤를 쫓을 수 있어 기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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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흐릿한 여인의 형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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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개화지천. 꽃이 피지 않는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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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을 잃은 남궁진천의 영역은 불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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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흔적을 지워낸다면 언제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나, 남궁진천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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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반쪽을 잊는다는 것은 죽음 따위와 비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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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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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검이 비통하게 울었다. 그럼에도 그는 끝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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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제천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입술을 달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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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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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천의 담담한 말에 기련문주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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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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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구경을 마친 서준은 남궁세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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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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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고모님과 연락이 끊겨 직접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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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명의 말을 들은 서준은 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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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이 직접 가셨으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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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이라는 말과 가장 멀리 떨어진 사내가 남궁진천이다. 서준은 그가 피 한 방울 흘리는 모습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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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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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이상하게 욱씬거린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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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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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씩 웃으며 서준의 엉덩이를 탁탁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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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쓰이면 가보든가. 어차피 금방 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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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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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당장 급한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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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이들의 표정은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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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인, 창천검존 남궁진천을 그 누가 걱정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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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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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자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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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발끝에 혼원일월공의 구체를 뭉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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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빨리 갔다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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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빙탕호로 얼려놓을 테니까 빨리 갔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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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은 뒤 남궁수아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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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도 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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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몸조심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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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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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께서 향한 장소는 이미 들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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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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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신형이 하늘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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