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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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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우선 하나….”

담담한 말투에 제천혁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일부러 내어준 빈틈이었나….

옆구리를 내어주고 능평호의 목숨을 취했다. 그렇다면 저 목을 베어내기 위해서는 무얼 얼마나 더 내어줘야 한단 말인가?

이미 화경을 하나 잃었다. 여기서 더 손해를 본다면 놈을 죽여도 련의 입장에서는 별 이득이 되지 못한다.

이를 악문 제천혁의 눈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놈의 주변 공간에는 상처 하나 없다.

남궁진천은 전투가 시작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저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남궁연 때문이다.

그만한 짐을 안고서도 이 정도라고?

대치 상태를 유지하며 기련문주에게 물었다.

“…진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게 맞나?”

“씨발. 보면 몰라?”

진법의 효과는 크게 둘.

남궁진천에게 온갖 방해를 가하며, 아군에게는 힘을 더한다.

사람을 수도 없이 갈아넣어 기련문주가 직접 설치한 진법이다. 효과가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다.

기련문주 본인이 당하는 입장이라면, 상대가 동일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 속절없이 밀렸을 것이다.

“저게 지금 제약당한 상태인 거다.”

기련문주의 말에 검율이 탄성을 터뜨렸다.

“허…! 과연 창천검존이라. 그대가 검종문에 적을 두었다면 검의 끝을 보았을 터인데….”

가볍게 펼치는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검의 극에 다다랐다.

검율의 영역인 십만검역은 신검합일(身劍合一)의 이치를 극한으로 이루어낸 것.

자신과 검이 하나이니, 십만 자루의 검과 언제든 위치를 뒤바꿀 수 있다.

허나 그러한 스스로의 영역조차 저 사내의 앞에서는 빛이 바랜다.

애초에 네 화경의 영역 사이에서 스스로의 영역을 저리 굳건히 지켜내는 사내다.

‘나와는 그 격이 다르다.

검율은 귀까지 벌겋게 물들인 채 검을 치켜들었다.

이곳에 온 목적도, 이후의 일도, 살의도, 모조리 잊었다.

여기 있는 것은 검종문의 문주 검율이 아닌, 그저 한 명의 검수 검율이다.

“그대가 본 검의 끝을 내게도 보여주시오!”

검율이 달려들었다. 기련문주가 혀를 찼다.

“저 새끼가 기어코…!”

요천도지. 기련문주의 영역은 주변 공간을 스스로의 것으로 삼는다.

공간 자체를 다루는 그의 힘은 분명 대단했으나, 남궁진천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극상성.

남궁진천의 하늘은 공간조차 무(無)로 되돌린다. 지독한 공허가 저곳에 있었다.

허나 이대로 검율까지 죽게 둘 수는 없다. 저놈까지 죽었다가는 다음은 자신의 차례다.

사흑련이 무너지고 자시고는 알 바 아니다. 중요한 건 하나. 자신만 죽지 않으면 된다. 그 외에는 아무래도 좋다.

“이극분멸세(二極分滅世)…!”

태초를 이루는 태극. 그 근원을 쪼개어 부순다. 그로써 이루는 것은 별의 끝.

남궁진천의 코앞에서 공간이 무너지며 모든 것이 한 점으로 수렴한다.

동시에 검율이 남은 오만 자루의 검과 함께 달려들었다.

쉬익-!

피하는 것이 상책. 허나 피할 수는 없다. 피한다면 남궁연이 죽는다.

남궁진천이 왼손을 뻗었다. 피륙으로 이루어진 손이 흑색 점을 잡아채고, 그대로 움켜쥐어 부숴냈다.

쩌어어억────────!!

공간 자체의 울림이 퍼져나가며 일대의 모든 공간이 요동친다.

남궁진천의 손이 으스러졌다. 그는 제천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빈틈을 보이면 안 된다. 빈틈을 보일 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어야 한다.

달려드는 검율. 그의 신형이 점멸하며 어지러이 팔방을 오간다.

“흡…!”

쉬쉬쉬쉭-! 광속에 근접한 검이 쉴 새 없이 휘둘러진다.

한 번 검이 휘둘러진 자리에 검율은 존재하지 않았다.

찰나를 다시 찰나로 쪼갠 시간, 검율이 휘두른 무수한 검격이 빛으로 이루어진 면이 되어 남궁진천에게 쏟아졌다.

휘릭-!

남궁진천의 검이 그에 맞섰다.

쿠구구구궁────────!!!

극에 다른 이기어검은 인간의 몸으로 펼칠 수 없는 동작을 자연스레 펼쳐낸다.

남궁진천은 움직임 하나 없이 이기어검만으로 검율의 모든 검격을 쳐냈다.

‘이것이…!

검율은 눈물을 흘리며 미친듯이 검을 휘둘렀다.

내리친 검이 흘려지고, 찔러낸 검끝이 마주 검끝에 막힌다.

남궁진천의 주변은 마치 범접할 수 없는 벽이 쳐진 듯했다.

기련문주가 끊임없이 주술을 쏟아내고 있었으나, 남궁진천은 제천혁을 견제하며 그 모든 공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검율은 스스로와 남궁진천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느꼈다.

자신의 검이 저 사내에게 닿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뼈에 사무치도록 깨달았다.

‘허나…!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포기할 수는 없다. 저 검의 벽을 뚫어낸다면, 자신의 검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신검합일(身劍合一).

스스로가 검이 된다. 부서지고 남은 오만 자루의 검. 한계를 넘어 스스로의 안에 담아낸다.

키이이이잉─────────!!

환한 빛과 함께 검율의 몸에 일만 자루의 검이 담겼다.

빛이 걷힌 자리. 그곳에 존재하는 오롯한 한 자루의 검.

검으로 화한 검율이 남궁진천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앙-!

남궁진천의 이기어검이 막아냈다. 검율은 유(柔)의 묘를 떠올렸다.

무공도, 초식도 잊은 채, 그저 하나의 묘리를 검에 담아냈다.

유(柔).

스릉-, 오묘한 금속음과 함께 남궁진천의 검이 미끄러진다.

핏-!

동시에 검율이 남은 사만 자루의 검 중 하나와 위치를 뒤바꾸었다.

유의 묘. 그 다음은 쾌(快).

쉬이익-!

빛을 뛰어넘어 나아간다. 상식 바깥의 속도가 기어코 남궁진천의 검을 앞섰다.

한 순간일지라도, 남궁진천이 세운 검의 벽을 넘어섰다.

검율과 남궁진천의 눈이 마주쳤다.

‘받아보시오.

자신의 모든 것. 지금껏 걸어온 검의 길을 한데 모아 휘두른다.

패(覇).

검율의 머리가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쾌와 패의 묘리를 한 곳에 담았다.

한평생 펼쳐온 모든 검을 아득히 뛰어넘는 단 한 번의 휘두름.

검율은 아찔한 쾌감과 함께 일순 남궁진천과 마음이 통한 듯한 감각을 느꼈다.

‘나의 검은 어떻소?

“훌륭하오….”

남궁진천이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검에 대해 사흘 밤낮을 토론할 수 있는 좋은 친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

가족을 노린 이상, 그와는 결코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

남궁진천의 손이 가볍게 허공을 그었다.

“아….”

검율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검과 위치를 바꾸지도 않았다. 그래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남궁진천의 목 앞에서 우뚝 멈춘 검. 검율은 끝내 남궁진천에게 닿지 못했다.

“심검(心劍)…. 이것이…. 당신이 본 검의 끝….”

털썩-, 검율의 몸뚱어리가 땅에 떨어졌다. 어떠한 상처도 없었으나,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사아아──────

부서지고 남은 사만 자루의 검이 빛이 되어 스러졌다.

“쿨럭…!”

남궁진천이 피를 토했다. 그의 가슴이 움푹 패였다. 검율을 마무리하며 생긴 빈틈. 제천혁이 주먹을 꽂아넣었다.

“후우….”

남궁진천은 숨을 내쉬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아득한 곳으로 뻗은 길이 보인다.

‘현경….

닿을 수 있다. 아니, 그보다 더욱 높은 곳까지도.

하지만 남궁진천은 눈앞의 길을 미련도 없이 치워냈다.

짙게 남은 미련. 부인. 그 기억을 잊는다면 눈앞의 모든 것을 베어내고 신좌에 오를 수 있다.

허나….

‘내가 어찌 그럴 수 있겠소….

남궁진천은 여전히 남궁연의 곁에 선 채 검명에 귀를 기울였다. 부인의 흐릿한 목소리가 그를 보듬었다.

“그리 슬퍼 마시오, 부인….”

그는 홀가분하게 웃었다.

“나는 이제라도 그대의 뒤를 쫓을 수 있어 기쁘오….”

먼 곳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흐릿한 여인의 형상이 스쳤다.

불개화지천. 꽃이 피지 않는 하늘.

반쪽을 잃은 남궁진천의 영역은 불완전했다.

그 흔적을 지워낸다면 언제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나, 남궁진천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자신의 반쪽을 잊는다는 것은 죽음 따위와 비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기에.

우웅──────……

남궁진천의 검이 비통하게 울었다. 그럼에도 그는 끝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저 제천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입술을 달싹였다.

“이제 둘….”

남궁진천의 담담한 말에 기련문주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빌어먹을….”

바다 구경을 마친 서준은 남궁세가로 돌아왔다.

“장인어른께서?”

“예. 고모님과 연락이 끊겨 직접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남궁명의 말을 들은 서준은 머리를 긁적였다.

‘장인어른이 직접 가셨으면 뭐….

위험이라는 말과 가장 멀리 떨어진 사내가 남궁진천이다. 서준은 그가 피 한 방울 흘리는 모습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왜….

가슴이 이상하게 욱씬거린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오빠.”

춘봉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씩 웃으며 서준의 엉덩이를 탁탁 때렸다.

“신경 쓰이면 가보든가. 어차피 금방 가잖아.”

“…그런가?”

어차피 당장 급한 일도 없다.

서준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이들의 표정은 평온하다.

천하제일인, 창천검존 남궁진천을 그 누가 걱정하겠는가.

‘그거 참….

외로운 자리일지도 모르겠다.

서준이 발끝에 혼원일월공의 구체를 뭉쳤다.

“그럼 빨리 갔다 올게.”

“응. 빙탕호로 얼려놓을 테니까 빨리 갔다 와.”

춘봉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은 뒤 남궁수아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누나도 쉬고 있어.”

“응. 몸조심 하고.”

“당연하지.”

장인어른께서 향한 장소는 이미 들어 알고 있다.

콰아아아앙────────!!

서준의 신형이 하늘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