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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약간 멍하게 있는 경우가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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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멍한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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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안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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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일하는 도중에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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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아르바이트가 끝나갈 무렵이라서 빠졌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으나, 마음만큼 정신을 차리는 게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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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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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자문해 봐도 답답함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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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알고 있는데 딱히 고민하고 싶지 않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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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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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서 일하고 있는 그녀를 보니까 이상할 정도로 동요하고 있는 내가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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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일종의 집착이자 소유욕이라는 역겨운 감정이라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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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여친한테도 이런 게 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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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지는 본인만 집착이랑 질투가 심한 것 같다고 나한테 투덜거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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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때 나도 꽤나 오윤지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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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가 떠나고 내가 망가졌던 걸 생각해 보면 얼마나 집요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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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감정을 서예린에게 느끼고 있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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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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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카트를 잡은 채로 있는 나에게 한마디 하는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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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유아린이 최근 나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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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잘하던 애가 일도 못하게 됐으니 이제 어따 써먹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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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때마다 계속 장난을 쳐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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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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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를 끌면서 발을 분주히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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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서도 머리의 복잡함은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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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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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지금 상태는 딱 그렇게 정의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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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매우 복잡한 것이 스스로를 향한 환멸감도 느끼고, 괴로움이나, 질투도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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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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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싫은 적은 여러 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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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그런 수많은 자괴감들 중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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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애써 넘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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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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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 빼줘야 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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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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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유아린은 지난날 우리가 밤을 지새웠던 호텔 방에 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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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이자 큰형의 비서가 주고 갔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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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했으나 정작 유아린이랑 딱 한 번 쓰고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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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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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 방은 충분히 할 일을 해줬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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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방을 빼주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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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떻게 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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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있는 성인용품들이 문제였지. 무슨 산처럼 쌓여있는 것들이 보고 있자니 혀가 내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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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묻자 유아린은 얼떨떨하니 뺨을 긁적이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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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라고 하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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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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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뭐 어디다 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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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네가 가져갈 거랑 내가 가져갈 걸 나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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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지를 척 치켜들며 말하자 유아린은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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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다 버리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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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포장도 안 뜯은 새 거잖아. 게다가 브랜드도 보니까 엄청 비싼 것들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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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우진 공이 어찌 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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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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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들은 척하면서 괜히 아무거나 손에 잡아본다. 하필이면 말랑거리는 오나홀이라는 게 기분 더럽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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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비싸긴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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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동의하는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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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캉거리는 오나홀의 촉감을 신기하게 여겨서 이리저리 휘두르는 데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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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회장님 정도면 싼 걸 쓰진 않을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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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내 몸이 우뚝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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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냐고 유아린을 쳐다보자 어깨를 으쓱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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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본인들이 쓰려다가 우리 준 거잖아. 그러면 이것들도 썼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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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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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의 꼬추가 왔다 갔다 했을 수도 있는 오나홀을 바로 바닥에 던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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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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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알아선 안 되는 심연이 있다더니 진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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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의 성인용품이 쌓인 탑은 지어져선 안 되는 종류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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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혼탁함이 쌓은 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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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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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하게 내가 말하자 유아린은 약간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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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본인이 버리자고 해놓고 막상 이것들의 값어치를 알게 되니 좀 혹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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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진 말고 일단 가져가 볼까? 중고나라 같은 곳에 팔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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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중고나라에서 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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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것들이 좀 있긴 해도 성인용품을 중고나라에서 파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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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 본인도 다시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는지 입을 꾹 다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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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근데 이걸 왜 우리가 처리해? 사용한 건 수갑 하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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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유아린이랑 썼던 수갑을 들어 올리며 내가 외치자 녀석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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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비비적거리는 게 야릇했는데 무슨 유혹이라도 하는 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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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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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큰형한테 얘기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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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사태의 당사자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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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막 자주 통화할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런 건 확실하게 해둘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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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음이 몇 번 울린 다음 들려오는 큰형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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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전화가 잦구나. 또 무슨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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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본론부터 꺼내라는 게 딱 큰형다웠기에 나 역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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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에 형이 즐긴 건 형이 치워야 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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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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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동 호텔에 유아린한테 객실 카드키 준 거 있잖아. 909동. 여기 성인용품 쌓아뒀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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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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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모른다고? 그럼 형수는 이걸 누구랑 쓴 거야. 형수 바람피운 걸로 알아도 되는 거야? 엄마한테 바로 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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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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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본인이 쓴 걸 썼다고 말을 못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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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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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그래, 안 쓰고 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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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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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진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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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를 탁 치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앞에 있는 물건들이 불결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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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토하고 싶은데 일단 얘기는 끝내자. 어떻게 할 거야. 이거 가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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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마음대로 사용하든가 팔아라. 어차피 태반이 쓰지 않은 물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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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말해. 쓴 건 뭐야. 포장지 뜯은 건 다 썼어? 그것만 가져다 버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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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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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부회장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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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또래 중에서는 깨끗한 편이다. 여긴 애인만 기본 세, 네 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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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앞에 유아린이랑 눈이 마주쳐서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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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애 관련해서 누구 욕할 처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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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배가 불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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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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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말 돌리는 거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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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어머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너한테 따로 지원해 줄 생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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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엄마가 형 몰래 쓰라고 용돈 조금 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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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으로 쓰라고 몰래 주머니에 꿍쳐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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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그런 거라도 이용해서 팔아보는 거 어떻겠냐. 포장 뜯지 않은 물건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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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포장 뜯은 건 다 쓴 거라는 소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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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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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유아린이 포장 뜯은 거랑 안 뜯은 걸 차곡차곡 정리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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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런 걸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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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려다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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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뭔가 가능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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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전화를 끊은 후, 나는 찬우한테 전화를 걸어서 누군가의 번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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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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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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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중성적인 느낌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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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골에 소름이 끼칠 것 같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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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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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럼 기억하지. 우리 그때 밤에 좋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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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니라 찬우랑 좋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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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아저씨의 말을 정정하자 웃으면서도 부정하진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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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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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성인용품 사시나요? 여기 비싼데 안 뜯은 것들 좀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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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찬우한테 듣고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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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우리가 샀던 성인용품 샀던 가게 사장님이 바로 대머리 아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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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수완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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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우리를 그곳으로 끌고 간 게 아저씨가 아닐까 살짝 의심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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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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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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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한테 나오라고 한 다음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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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은 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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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우? 비싼 브랜드만 모여 있네? 저걸 정말 그냥 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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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나름 정이 있으니까 좀 싸게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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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처치 곤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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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싸더라도 일단 돈이 들어온다면 그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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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옆에 뜯은 것들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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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건 사용품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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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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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입맛을 다시는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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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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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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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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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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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냐, 그럴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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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입맛 다시는 건 좀 선 넘은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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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 군침이 나와서. 내가 실수한 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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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매너라도 좋지 말았으면 그냥 시원하게 쌍욕 박았는데 그건 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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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니고, 다른 사람이 쓴 거예요. 관심 있으세요? 사용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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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쓴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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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뭐 달라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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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에 따라서 가격이 떨어질 수도 있고, 올라갈 수도 있지. 대충 0.5~ 1.5배 정도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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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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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형한테 전화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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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내가 지금 대머리 게이 아저씨한테 형이 쓴 오나홀 팔려고 하는데 사진 좀 보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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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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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형이 사용했다는 더어어러운 성인용품을 팔려고 하는데 대머리 아저씨가 형 얼굴 보내주면 2배까지 쳐준다고 했거든. 근데 내가 형 사진을 핸드폰에 넣고 다니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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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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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내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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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내줄 것 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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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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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네. 그럼 형 회사 사이트 들어가서 거기 있는 부회장 사진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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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내가 치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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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건데 뭔 소리야. 사진 안 보내면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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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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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혀가 너무 길어서 중간에 가격이 올랐어요. 2.5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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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난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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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3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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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우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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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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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배로 타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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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됐다. 그거 받아서 뭐 하냐. 그냥 형 골려준다고 생각하고 대머리 아저씨한테 팔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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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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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고마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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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욕 나오게 만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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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협상 실력이 그거밖에 안 되는데 부회장을 하고 있냐. 접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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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개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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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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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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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나한테 막말했던 복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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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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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끝낸 유아린이 해맑게 웃으며 물어왔기에 엄지를 척 올리며 답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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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용품은 정가에서 좀 아래로, 사용품은 정가의 3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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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가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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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유아린에게 나는 방긋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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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먹으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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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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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 있던 의문은 싹 사라지고 소고기에 눈이 돌아간 유아린이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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