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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에 딱히 가본 적이 없었는데, 막상 내부로 들어와 자리를 찾고 앉자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주변에 사람들이 지나다닌 탓에 무대가 드문드문 보였지만 그것만으로도 기대감이 차올랐다.
“와, 솔직히 영화 보는 거랑 비슷할 줄 알았는데 많이 다르네?”
“그러게. 나도 처음이라 좀 떨린다.”
최이서도 콘서트는 처음이라 설레는지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줄에서 내가 껴안고 있던 탓에 다른 사람이 종종 질투를 섞어서 째려보곤 했지만 그것도 일부였다.
애초에 이런 콘서트는 혼자 오는 경우가 드물었기에 다들 자기 짝이랑 다니는 데 여념이 없었다.
“어쩌지 너무 기대된다.”
발을 동동 구르면서 흥분을 억지로 억누르는 최이서.
얘가 이렇게 아이처럼 구는 모습은 또 처음이라서 색다른 귀여움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티켓팅에 성공한 스스로가 자랑스럽기도 했다.
한강이랑 표진호를 제물로 바칠 때만 해도 양심의 가책이 드문드문 있었으나.
이렇게 기뻐하는 최이서를 보니까 몇 번 정도 더 바쳐도 문제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어, 시작하나 봐.”
때마침 몇몇 조명이 꺼지고, 무대를 향해 남은 조명이 주목되기 시작한다.
무대 위로 가수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오지 않을까 했으나.
오히려 고요하니 울려오는 목소리에, 관객들 모두가 탄성을 지를 생각도 못 하고 매료되어 가기 시작했다.
“와.”
한 자세로 3시간을 내리 있었다 보니 찌뿌둥해진 목을 이리저리 돌린다.
최이서가 걸으며 목을 꾹꾹 눌러줘서 그나마 좀 풀어졌다.
얼추 안마를 받고, 반대로 내가 최이서한테 해주면서 우리는 서로 감상을 나눴다.
“나는 콘서트라는 게 이렇게까지 웅장한 건 줄 몰랐어. 직접 보니까 대단하네.”
내가 혀를 내두르자 최이서도 격하게 동의했다.
“이게 음원으로 듣는 거랑은 진짜 다르다. 아예 온몸으로 노래를 받아들이는 기분이었어.”
“오, 비유 좋은데? 딱 그거야.”
최이서의 가녀린 목을 눌러주면서 끄덕였다. 저 표현이 딱 옳은 듯했다.
“이제 어떻게 할까? 저녁 먹을까?”
콘서트가 끝나고, 어느새 저녁 시간.
날도 저물었고 배도 출출했기에 근처에 뭐 먹을 게 있나 핸드폰으로 확인하려는데.
“아냐.”
부드럽게 내 손을 밀어내는 최이서.
이제 마사지가 충분한 건가 싶었지만,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울림은 이상하리만치 축축한 울림을 담고 있었다.
방금까지 풋풋하던 분위기가 겨울바람을 타고 차게 식는다.
한 걸음 앞으로 나선 최이서는 나와 거리를 벌렸고, 목덜미를 눌러주던 내 손은 아련하니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마치, 떠나가는 그녀를 아쉬워하듯이.
“최이서?”
불안함에 나도 모르게 다급하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렇지 않으면 최이서가 나를 돌아보지 않고 당장이라도 떠나갈 것만 같았다.
“우진아, 지금부터 잘 들어.”
최이서의 남색 눈동자가 촉촉하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허나, 조금이라도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길 바라듯 그것은 맺혔을 뿐 흐르진 않았다.
“방학 동안, 나 윤지랑 일했어.”
“…….”
썩 반갑지 않은 이름이었다.
아직도 가슴 속에 응어리처럼 남아, 묵직함을 선사하는 그런 이름.
“지금 윤지는 너희 형이랑 일하고 있어.”
“알아, 작은형이랑 일한다며.”
지난번에 큰형한테 들어서 알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거기서 윤지를 도와줬어. 사실…… 너에 대해서 윤지 얘기를 들어보고 싶기도 했고.”
“…….”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윤지는 아직 너를 잊지 않았다는 거야.”
지난번 큰형이 비슷한 얘기를 했을 때도.
나는 그런 상상을 했었다.
만약 윤지가, 뭔가 말할 수 없는 이유로 나를 떠나간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윤지는 지금, 너를 위해서 일하고 있어.”
“나를…… 위해?”
“응, 너를 가업으로부터 해방시키려고. 네가 굳이 가족의 손 벌리지 않을 수 있도록.”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가업과 가족.
내 안에 있는 아버지의 피가 기업의 후계자로 살아가라고 끓어오르는 느낌에 몸이 뜨거웠다.
“약간의 오해… 아니, 엇갈림이 있어서 둘이 헤어졌던 것뿐이야.”
“…….”
뭔가 먹먹함이 들었다.
1학기가 끝나고 폐인처럼 살아가던 방학 동안.
몇 번이고 상상했고, 바라왔던 것이 진실이라며.
하필이면 최이서가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오윤지라는 여자를 떨칠 수 있게 가장 많이 도와줬던 그녀가.
굳이 그녀가.
내게 다시금 그날의 기억과 모르던 진실을 들이밀고 있었다.
먹먹함에 가슴이 아려왔다.
묵직함에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약간은 눈가가 촉촉해진 것 같았다.
무어라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내게, 최이서는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먼저 말할 게 우진아.”
스스럼없이.
그리고 솔직하게.
남들에겐 함부로 할 수 없는 말들을 최이서는 덤덤하니 풀어나간다.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
왜?
그런 말을 해줘야 했다.
하지만 입술을 짓이기며 쏟아낸 건 하얀 입김뿐이었다.
“윤지는 내 친구고. 너는 친구의 남자친구였어. 도의적으로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점점 일그러지는 최이서의 표정.
그 탓에 눈물이 흐를 뻔한 걸 최이서가 다급하게 손으로 훔쳐 닦아낸다.
“우진아, 이걸 다 알게 된 다음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아?”
억지로 웃어보려 했으나 마음대로 안 되는지 뺨이 어색하니 굳어있다.
“조금.”
“…….”
“아주 조금만.”
푸념에 가까운 소망.
안타까움 속에 담긴 간절함.
“너를 일찍 만나고 싶었어.”
그제야.
최이서는 내게 웃어주었다.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어색함도 없는 미소는 나를 향한 사랑의 고백이자 이별의 선물.
어느 날.
내가 우리 두 사람의 추억을 떠올릴 때.
이 시간.
최이서의 저 환한 미소가.
추억의 에필로그이자, 짧았던 사랑의 마침표겠구나.
“또.”
그걸 깨달은 나는.
“내가 똑같은 걸 또 겪어야 해?”
최이서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방금 전까지의 굳어있던 스스로가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자취방 구석에 부둥켜 앉아 엉엉 울면서 떠나간 님을 그리워하는 건.
이제는 나란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안현호가 고백하고, 그날 집에 가면서 네가 나한테 했던 말 기억해?”
손을 뻗었다.
최이서는 뒷걸음질 치며 그것을 피했지만.
“너를 붙잡을 자격을, 네가 주겠다며.”
나는 그녀를 붙잡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손을 뻗는다.
“잡지 마. 그때랑 지금은…… 많은 게 달라.”
이번엔 최이서가 내 손을 쳐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다시 손을 뻗었다.
또 나를 쳐내려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며 거리를 좁혔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
나는 울분이 섞인 감정으로 그녀를 질타한다.
“내가 진짜 마음에 안 드는 게 뭔지 알아?”
머리가 뜨거워질 정도로 화가 나고, 이 상황에서 더럽게 짜증 날 정도로 거슬리는 게 딱 하나 있었다.
오윤지와 내 사이를 틀어지게 한 누군가?
오윤지랑 일하면서 제대로 설명도 안 한 둘째 형?
최이서를 일한다고 시키고 따로 불러서 설명한 오윤지?
아니.
다 아니었다.
전부 아니다.
“내가, 내가 진짜 화가 나는 건!”
바로 너였다.
최이서.
“왜 네가 죄책감을 느껴!”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그녀가 미웠다.
“네가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있냐고!”
과거를 후회하는 그녀가 싫었다.
왜냐면 나는.
“나를 구해줬잖아!”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으니까.
덕분에 또 누군가를 사랑하며, 다시 시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만들어 준 게 최이서였다.
나를 고쳐준 게 바로 그녀였다.
“그걸 왜 후회하고 있어! 그걸 왜 죄지은 것처럼 생각하고 있어! 네가, 네가 뭘 잘못했다고!”
잘못한 게 있다면 나와 오윤지거나 혹은 관련된 누군가겠지만.
적어도 최이서는 아니었다.
“난, 너 안 놓을 거야.”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의 손목을 놓아준다.
그리곤 내 품 안으로 그녀를 숨기듯 부드럽게 안아준다.
“너는 절대로 가해자가 아니야. 누구도 너한테 손가락질 하지 못해.”
친구의 애인을 사랑한 나쁜 년이라고?
아니, 아니다.
누군가 손가락질한다면.
“네가 아니라, 내가 나쁜 놈인 거야.”
그건 나여야만 했다.
“내가 줏대 없이 이 여자, 저 여자 꼬시고 다니는 쓰레기라 그런 거야.”
서예린도 그렇고, 유아린도 그렇다.
그녀들이 나에게 호감을 품어주고 있으며, 이리 어중간한 상황에 놓인 건 결국 나 때문이다.
“내가 나쁜 거니까, 너는 걱정하지 마.”
그냥 가엾게도 남자를 잘못 만났을 뿐이다.
오히려 전 애인의 친구에게조차 마수를 뻗은 쓰레기라며 돌을 던지는 대상은 내가 될 것이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맘껏 해. 무엇을 해도 결국 나쁜 건 내가 될 테니까.”
사랑을 하겠다면 사랑을 해라.
떠나겠다면 그만 떠나가라.
과거를 다 잊고 모른 척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하지만.
그게 본인의 감정이길 바랐다.
지금처럼 다른 이를 통해 가지게 된 죄책감 때문에 그러지 않았으면 했다.
훌쩍이며 울고 있는 최이서는 내 가슴을 주먹으로 툭 두들겼다.
아무런 힘도 없는 질책.
“어떻게 그럴 수 있어?”
“…….”
“내가 있어도, 다른 사람을 만나겠다는 말을…… 마치 나를 위한 것처럼 할 수 있어?!”
“쓰레기니까?”
쓰게 웃으면서 최이서를 안은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그러니까 네가 나를 좋아해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
“개자식! 나쁜 놈!”
가슴을 두드리는 최이서의 손길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
오히려 그것이, 그녀가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겨울바람을 맞으며 시원하게 웃음이 지어졌다.
그런 나를 올려다본 최이서는 주먹을 꽉 쥐고는 숨을 고르며.
“나쁜 남자는.”
아까 줄을 섰을 때처럼 나한테 힌트를 주었다.
“이럴 때 키스를 해.”
아.
“배울 게 많구나.”
한 손을 아래로 내려 최이서의 허리에 두르고, 남은 손으로 그녀의 뒷목을 받치며 입술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