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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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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하며 천천히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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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시간은 오후 4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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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4시에 퇴근했으나 서예린이 5시 퇴근이라서 직원휴게실 안마의자에서 쉬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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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가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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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만에 대한당 앞에 도착해서 잠시 기다리고 있자 사복으로 갈아입은 서예린이 총총걸음으로 뛰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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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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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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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가 오라고 해놓고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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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려고 생각해 둔 곳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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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놀자고만 했으니까 뭔가 다른 게 있나 싶었는데 서예린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내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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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가자! 버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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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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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어디 놀러 갈 생각인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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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산골이라 놀만한 게 거의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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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룸메들이랑 시내에 있는 PC방에 가봤는데 20년은 된 PC방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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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예린과 같이 탄 버스는 시내로 나가는 게 아니라 호텔 부지를 순환하는 골드원 내부 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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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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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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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돈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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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드는 거 아니니까 걱정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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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얼거리면서 가는 서예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버스에서 내렸고 도착한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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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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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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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고 필름이라도 끊긴 것처럼 멍하니 주변을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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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과 화려하게도 꾸며놓은 워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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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라서 밖은 아직 추웠으나 실내 워터파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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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원에서 일하는 직원이면 스키장이나 워터파크에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는 건 들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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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내가 오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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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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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복은 따로 돈 주고 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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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지만 그것까지 무료는 아니었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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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한테 몸 보이는 게 싫어서 선택한 게 검은 래시가드에 반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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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입어보는데 수영복 입는 거보다 훨씬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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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이 9시까지라서 기껏해야 3시간 정도밖에 놀지 못하겠지만 사실 그거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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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쉬는 날이라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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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도 아마 내일 쉬니까 이렇게 놀자고 제안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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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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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달라붙은 래시가드가 마치 몸에 품고 있는 스스로를 향한 자책처럼 느껴져서 찝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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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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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국, 오윤지를 정말 제대로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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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서예린이랑 놀러 오는 것에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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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정말로 아직 내게 미련이 남아 있었다면, 이렇게 여자랑 단둘이 데이트를 오지는 않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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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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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마음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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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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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신을 내며 나를 부르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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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똑같은 브랜드의 검은 래시가드를 입고 있는 서예린의 모습을 보는 순간 고민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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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의 장점을 말하라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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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딱 하나밖에 말할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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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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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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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중요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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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너무 과하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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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아 보일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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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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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탄성을 내지르거나 뚫어져라 쳐다보면 서예린이 기고만장해질 걸 알고 있으나. 그럼에도 그녀는 눈으로 쫓을 수밖에 없는 매력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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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기만 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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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사람도 쉽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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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쁘면서도 매력적인 사람들은 쉽게 볼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TV 속에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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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가슴이 좀 커진 것 같지 않냐고 말할만했다. 딱 달라붙는 래시가드에도 몸매가 확실히 부각되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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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땋은 거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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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걸린다 싶었더니 일부러 머리를 땋아서 온 모양. 혼자서 어떻게 했나 싶었는데 직원분 중 하나가 도와주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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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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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말고 다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상큼한 미소는 폭력적이면서도 다소 강압적으로 내게 한 가지 반응만을 강요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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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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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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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좋았는지 냉큼 팔짱을 끼는 서예린. 그러고는 바로 워터슬라이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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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운행시간 얼마 안 남았어! 빨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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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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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가 남친이랑 지난주에 왔었다면서 자랑했거든. 그때 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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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는 남친이랑 싸우는 거야 잘 사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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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마. 이번에 남자친구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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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면서도 팔에서 느껴지는 서예린의 흉부 감촉을 애써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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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슬라이드의 줄에 선 후에야 내가 방금까지 큰형과 윤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다시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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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뭔가 좀 무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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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파탈이라고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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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일 정도로 매력적인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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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딱 서예린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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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본인은 별생각 없어 보이는데 그게 더 질이 나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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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둘이 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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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래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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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슬라이드를 가리키며 말하는 서예린. 옆에 안내 문구를 보니까 커다란 튜브에 뒷자리 앞자리가 나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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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앞에 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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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대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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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타나 뒤에 타나 똑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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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슬라이드 직원의 부러움과 시샘이 담긴 눈초리를 받으며 튜브에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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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앉아서 다리를 벌려야 했는데 이게 좀 묘한 게 앞사람이 내 다리 사이에 들어오는 식으로 앉게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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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재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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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애처럼 즐기고 있는 서예린을 보니 방금까지 살짝 차올랐던 음란한 생각이 금세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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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색의 반응에 찬물을 끼얹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나, 내 기대를 죽인 건 반대로 서예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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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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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슬라이드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한 손을 놓고는 꼼지락거리며 등 뒤로 손을 움직인 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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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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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고 부드러운 손이 정확하게 내게 닿은 걸 느낀 순간 예열도 없이 바로 힘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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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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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웃고 있는 게 딱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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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소리처럼 흘러나온 웃음소리에 맞춰서 손가락이 마치 처음 보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처럼 불규칙하면서도 재빠르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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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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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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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으나 저항의 의지가 사라지는 손길에 남성으로서 무기력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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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보다 더 짧았던 시간이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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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내려가는 슬라이드 안으로 빛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드디어 끝에 도착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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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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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슬라이드가 드디어 끝나고, 풀 밖으로 나가야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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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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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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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나가고 어정쩡하니 서 있는 나를 보면서 서예린은 입가를 가리면서 호들갑스럽게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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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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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으득 물고 힘이 빠지길 기다렸으나 앞에 있는 여자가 계속 있으면 아무래도 빠지지 않을 것 같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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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저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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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거리며 손짓하자 서예린은 비웃으며 냉큼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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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나가고 있나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안전요원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호흡을 가다듬자 겨우 힘이 풀려 밖에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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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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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도 비슷한 상황이 계속해서 벌어졌다. 같이 온천에 들어가도 서예린의 손은 가만히 있지 않았고, 파도풀에 들어가면 의도적으로 껴안아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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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내지 못하게 하니까 이런 식으로 직접 몸으로 유혹하는 건가 싶었는데 딱 거기서 끝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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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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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묘하게 간질거리면서도 괜히 나를 시험하는 느낌이 들었으나 어쨌든 참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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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워터파크는 생각 이상으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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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이랑 같이 돌아다니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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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선들마저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마저 그냥 즐길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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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짧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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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온 서예린은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을 보면서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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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파크 같이 즐길 거리가 많은 장소에서 고작 3시간을 놀았으니 아쉬울 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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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쉬는데 우리 내일 또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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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수 제한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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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은 무료이긴 했어도 계속해서 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제한이 있었으니 내일 오려면 우리 돈을 지불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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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돈 내고 오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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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하러 와서 돈을 쓰는 건 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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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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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도 진심은 아니었는지 워터파크에 굳이 집착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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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와중.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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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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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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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찍은 사진을 한 장씩 넘기면서 검토 중인 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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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한테 상담해 준다고 한 거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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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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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따로 변하거나 하진 않았으나 화면을 옆으로 넘기던 손가락이 멈춘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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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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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내듯 부르자 서예린이 바로 팔짱을 끼면서 엉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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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맥주 마실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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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교로 넘기려고 하는 게 아주 요망했으나 결국 따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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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집에서 마시려고 했는데 C동 호텔 지하에 있는 치킨집은 오늘 정기휴무라며 문을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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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밖으로 나갈 수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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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숙소로 들어왔는데 또 나가는 건 우리 둘 다 싫었고, 시간도 적절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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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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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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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내자고 하려고 했으나 서예린이 좋은 생각이 났다면서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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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방 가서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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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애초에 거기서 할 말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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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이 있는데 할 대화 주제는 아닌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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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너희 방 가서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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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다는 듯 다른 방안을 내놓는 서예린. 굳이 오늘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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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가슴 언저리에 남은 응어리가 얼른 해소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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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서예린과 함께 숙소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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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잠들기엔 이른 시간이었기에 룸메이트들에게 서예린이 잠깐 있다가 간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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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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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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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싶어서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방을 확인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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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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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무도 없나 싶었는데 뒤에서 느껴진 인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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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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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이 따라 들어온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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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기다리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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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보면 허락해 주시지 않을까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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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꽃받침 하면서 웃는 서예린. 확실히 서예린 얼굴 보는 순간 싫었던 사람도 얼른 들어오라고 말해줄 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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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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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진짜 어디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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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단톡을 확인해 보려 핸드폰을 꺼내 드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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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너희 이런 거도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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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탁자에 놓여 있던 술병을 들고 온 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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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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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와인은 앞으로 있을 무언가의 전조처럼 떨떠름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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