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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밥상에서의 일은 순조로웠다.
그야말로 훨훨 나아가는 범선처럼 모든 일이 착착 진행되었다.
어리버리한 대학생들 사이에서 나름 열심히 일하고 있자니 선배들에게 칭찬도 받았다.
심지어는 어제 손님의 컴플레인을 잘 처리했다며 주인마님이라 하실 수 있는 무뚝뚝한 파트장님께서 눈웃음을 쳐주실 정도.
“자, 잘하네.”
같이 일하고 있는 제갈재민이 나한테 라이벌 의식을 느끼곤 했는데 이제는 포기했는지 그냥 대단하다 중얼거릴 뿐이다.
“잘하고 있어.”
파트장님의 칭찬을 받으며 오늘 하루도 무난하게 이어가겠구나 싶었는데.
‘이게 뭔 상황이냐.’
순식간에 한옥과 연못에서 벗어나, 호텔 지하로 끌려온 나는 이제 룸서비스에서 일하게 되었다.
사실상 바로 투입된 거라서 일을 하면서 배우게 되었으나.
시골밥상에서 일할 때보다 훨씬 쉬웠기에 의외로 금방 적응해 냈다.
“간단한데?”
오히려 이쪽으로 온 게 더 잘된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음식이 나오면 카트에 유아린이랑 다른 친구들이 세팅한다. 그러면 나는 그걸 가지고 가서 손님방으로 전달만 해드리면 끝이었다.
얼추 점심시간이 끝나고 식사 시간.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나는 유아린이랑 다른 친구들과도 드디어 얘기할 시간이 생겼다.
“그러니까…… 내가 도망간 놈 땜빵으로 온 거라 이 말이지?”
내 말에 디자인과 한봄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여준다. 지난번에 PC방부터 해서 치킨집에서 술도 먹었으니 어느 정도 편해진 사이였다.
“그렇다니까? 부장님이 여자애들 티오를 많이 올려서 그거 때문에 룸으로 올라갈 남자애가 없었거든.”
“허어.”
얘는 밥 먹으면서 발음이 참 좋네.
밥풀 튈 것 같아서 살짝 몸을 뒤로 빼고 이야기를 마저 듣는다.
“걔가 혼자서 이것저것 하려니까 고생했겠지. 우리가 도와주고 싶어서 그냥 룸 올라가면 안 되냐고 건의했는데 회사 규정상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
“허어, 유아린이면 괜찮을 텐데.”
웬만한 남자들보다 강한 게 유아린이지 않은가. 사실 내가 올라가는 것보다 유아린이 올라가는 게 더 안전할 거다.
하지만 그런 내 장난에도 유아린은 일절 대꾸하지 않고 그냥 밥 먹는 것에 열중하고 있다.
덕분에 어색해진 분위기.
연극영화과 이세아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얼른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시골밥상은 어땠어? 지금 알바생들 사이에서 3대 금구로 선정됐던데.”
“3대 금구?”
“응, 골드원에서 제일 힘든 세 곳 중 하나라고.”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는데.”
뭔 3대 금구인가.
“외워야 할 게 많긴 했는데 그것만 다 외우면 크게 어렵진 않았어.”
“일 잘한다고 데려오셨다더니 진짜였네.”
“그래도 부장 역할은 이번에 하셨구나.”
“끄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애매한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찬송 부장이 시골밥상에서 배 째라는 식으로 굴면서 나를 데려갔던 걸 기억하고 있으니까.
시골밥상 파트장님께서 우수에 찬 눈으로 나를 보내시던 게 아직도 선명하다.
“난 먼저 간다.”
급하게 먹는다 싶었는데 벌써 다 먹었는지 벌떡 일어선 유아린. 그러고는 냉랭하니 쌩 가버린다.
“……혹시 아린이랑 싸웠어?”
이세아의 질문에 나는 어깨만 으쓱거릴 뿐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우리가 딱히 사이가 틀어질 일이 있나?
최근 대나무숲 관리도 내가 혼자서 하고 있다. 어차피 방학 기간이라서 별 글도 올라오지 않고 있지만.
“얘가 온 다음부터 좀 예민해졌어.”
“그치? 뭔가 기분도 안 좋아 보여.”
유아린이 걱정된다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나도 떠나가는 녀석의 등을 눈으로 쫓았으나 뭔가 해줄 순 없었다.
그렇게 한창 일하다 보니 결국 퇴근 시간.
시골밥상 때보다 퇴근도 빠르고, 점심 이후부터는 사실상 할 일이 거의 없어서 냅킨이나 접어댔다.
‘룸서비스 진짜 개꿀이네.’
시골밥상에서 반쯤 끌려온 셈이었으나 일은 이쪽이 더 편하긴 했다.
물론, 분위기는 훨씬 안 좋지만 말이다.
부장이랑 과장의 싸움에 분위기가 계속 망가지니, 알바생들은 물론이고 여기 직원들도 두 사람을 쉬쉬하듯 피한다.
선배들 하는 얘기를 힐끔힐끔 들어보니 이찬송 부장이 사고를 쳐서 부장 대우를 제대로 못 받는 사람이라 과장이 저렇게 싸움을 걸 수 있는 거란다.
‘개판이구만.’
혀를 차면서 퇴근 준비를 끝내자 롱패딩을 입은 채 아장아장 걷고 있는 유아린이 딱 눈에 들어왔다.
밖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모양인데.
“같이 가자.”
냉큼 달려가서 합류하자 힐끔 나를 보더니 별 관심 없다는 듯 쌩하니 가버리는 게 아닌가.
“봄이랑 세아는?”
둘은 어디 가고 혼자 숙소로 돌아가나 싶어서 묻자 유아린의 고개가 퍼뜩 돌아가더니 쏘아보듯 나를 노려본다.
“왜 걔네 친하게 부르냐?”
엥?
“……친해졌으니까?”
당연한 소리를 왜 묻는 건지 모르겠다고 되묻자 유아린은 입술이 달싹거리더니.
“둘이 예린이 퇴근 기다린다고 해서 나는 그냥 가려고.”
그러곤 그대로 가버렸다.
“아, 뭔데. 왜 그러는데.”
“…….”
“뭔 문제인데 그러냐.”
“…….”
“누가 괴롭혀? 아님 선배들이 이상한 소리해서 그래?”
“…….”
“허, 답답하네.”
얘가 저렇게 답답한 애는 아니었는데.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는지 괜히 거리를 두려고 한다.
‘모르겠구만.’
버스에서도 의도적으로 나를 피해서 다른 곳에 앉는 걸 보니 이걸 뭐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상황.
누구 조언이라도 구할 사람이 없을까 싶은 와중. 이럴 때 딱 적당한 곳이 떠올랐다.
- 관리자: 아는 여자애가 갑자기 화내는데 이거 뭐임?
오랜만에 건강한 글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관리자라서 그런 걸까.
답글은 생각보다 금방 달렸다.
↳ 익명85: 고백 박았음?
↳ 관리자(작성자): ㄴㄴ 진짜 그냥 친구임.
↳ 익명11: 남녀 관계에 친구가 어디 있어 병신아.
↳ 익명288: 진짜 뜬금없이? 아무 말도 없이 화내는 거임? 뭐 좀 전후상황 설명을 해봐.
↳ 관리자(작성자): 설명은 좀 그렇고. 애 기분 풀어줄 방법 같은 거 없나?
답글에는 배가 불렀다느니, 존나 편하게 우리를 사용하려고 한다면서도 꽤나 여럿 답이 왔다.
↳ 익명11: 그냥 고양이 사진 같은 거 보여주면서 물어봐. 이거 귀엽지 않냐? 하고.
↳ 익명52: 먹을 걸로 유인 ㄱ 비쌀수록 효과적임.
↳ 익명308: 그냥 못 생겨서 싫어하는 것 같은데.
↳ 익명147: 일단 웃겨. 농담하거나 앞에서 몸 개그를 치삼.
↳ 익명69: 섹x 하고 싶다고 말해. 그럼 받아줄 듯?
↳ 익명90: 섹x 하고 싶다아아!
↳ 익명246: 애니 얘기해 보세요. 제가 추천드릴 건 이번에 신작으로 나온 걸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법한…….
↳ 익명44: 괴담으로 가도 괜찮음. 무서운 얘기는 은근 집중이 잘 되니까.
↳ 익명198: 그냥 묶어두고 미안하다고 앙앙거릴 때까지 엉덩이 때리삼.
↳ 익명59(관리인1호): …….
“앗.”
유아린한테 걸렸다.
어차피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나는 핸드폰을 내리면서 괜히 안 보던 척한다.
버스에서 내리고 혼자 성큼성큼 걸어가는 유아린의 뒷모습을 따라가며 물어본다.
“이거 사진 귀엽지 않아?”
미안한데 내가 고양이 사진은 없어서 대신 한강이랑 표진호가 술 마시고 벌칙으로 찍은 아헤가오 사진을 보여준다.
“씨발, 내 눈…….”
그러자 진지하게 짜증 내면서 역겹다는 눈으로 나를 보는 유아린.
흠, 이건 실패했군.
익명11은 하루 밴이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간다.
“이거 먹을래?”
지금 당장 수중에 먹을 게 마땅치 않다 보니 직원들 먹으라고 식당에 있던 박하사탕을 건네 봤는데.
“…….”
그러자 바로 초코바를 꺼내 들며 혼자 으득 씹어 먹는 녀석.
“……한 입만.”
너무 맛있어 보여서 나도 모르게 침이 고였는데 유아린은 중지만 날릴 뿐이었다.
익명52도 밴이다.
“옛날 옛날에…….”
“존나 노잼이니까 하지 마라.”
농담도 통하지 않는 건가.
몸 개그라도 할까 싶었으나 그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익명147도 밴.
“섹x 할…….”
“아오! 씹새끼가!”
서예린의 조언을 따라봤으나 돌아온 건 옆구리를 때리는 라이트훅.
예상해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덕분에 방어하긴 했으나 아픈 건 여전히 아프다.
하지만 덕분에 유아린이 드디어 이쪽을 봐주었다.
씩씩거리고 있긴 했지만.
일단 익명69랑 90도 같이 밴이다.
“애니…… 보니?”
“안 봐.”
그럴 것 같더라.
“그럼 무서운 얘기는…….”
“나 제일 싫어해.”
의외네.
대나무숲에서 받은 조언들이 하나둘 바닥나고 있다. 하여간 이 새끼들은 인생에 도움 될 때가 없다.
아주 버러지 같은 사이버의 망령들.
그런 너희라도 사랑한다 개새끼들아.
“그럼 다음이…….”
뭐가 남았나 싶어서 대나무숲을 다시 확인해 본다.
↳ 익명198: 그냥 묶어두고 미안하다고 앙앙거릴 때까지 엉덩이 때리삼.
“흠.”
턱을 만지작거리며 유아린 쪽을 힐끔 보자 녀석은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챘는지.
“하지 마.”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괜히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줄이…… 노끈이어도 되려나.”
“하지 말라고!”
“일단 편의점 가서 끈이 있는지부터…….”
“하, 하지 말라고 변태 새꺄!”
그렇게 외치고는 냉큼 달려가는 유아린의 뒷모습을 보면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저런 걸 보니까 또 평소랑 엇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으니까.
“야, 유아린!”
도망치는 녀석을 부르자,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힐끔 고개를 돌린다.
아까 점심때 주려고 샀던 초코몽을 가방에서 꺼낸 뒤, 녀석에게 휙 던져줬고.
놈은 깔끔하게 받아낸 다음 멍하니 그걸 내려다본다.
“마셔.”
“안 마셔.”
“그럼 다른 사람 주든가.”
“가져가!”
다시 나한테 던지려고 해서 이번에는 내 쪽이 몸을 틀어서 도망쳐 버렸다.
쿵.
숙소에 있는 소형 냉장고에 초코몽을 넣은 유아린은 복잡한 심경을 뒤로한 채 씻는다.
↳ 익명11: 관리자야 어떻게 됐나.
↳ 익명233: 우리 대나무숲 첫 업적인가.
↳ 익명44: 괜찮았죠? 기분 풀리셨나요?
↳ 익명198: 우리 덕분에 관리자 모쏠 탈출했네.
↳ 관리자: 지금부터 여기에 답글 다는 새끼들은 전부 밴이다.
↳ 익명69: ??
나와서 대나무숲을 확인하니 개짓거리 중인 김우진. 멍하니 글을 보던 자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걸 깨달은 유아린은 핸드폰을 개어둔 이불로 던져버린다.
덜컹.
“어우, 피곤하다아.”
“고생하셨어요.”
마침 일을 끝내고 들어온 민주희. 민주희와는 원래 영화 때부터 친했기에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어? 이거 초코몽 누구 꺼냐?”
목이 말랐는지 냉장고부터 확인하는 민주희. 순간 움찔한 유아린은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
“드세요. 받은 건데 별로 마시고 싶지가 않네요.”
“그래? 나중에 먹을게.”
초코몽 대신 물을 마시는 주희 선배를 보며 유아린은 이상하게 안도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으나.
‘아냐, 생각하지 마.’
더 이상 이런 걸로 고민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 잡으며 오늘의 피로를 풀었다.
다음 날
“그니까 일단 문을 두드려.”
오늘은 주문이 없어서 한봄과 이세아랑 떠드는 중인 김우진.
그리고 그런 세 사람을 멀리서 보고 있는 유아린.
룸서비스인데 룸에 못 올라가는 두 사람을 위해서 김우진은 썰을 푸는 중이었다.
“룸서비스. 이렇게 말하면 손님이 나올 거 아냐?”
“그치.”
“와, 약간 두근거릴 듯.”
그러더니 김우진이 갑자기 썰을 풀다 말고 갑자기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는.
“손님이 딱 나오셔. 그럼 우선 손님을 봬서 너무 기쁘다는 의미로 춤을 갈겨.”
갑자기 스탭을 밟으며 기괴한 춤을 추는 게 아닌가.
“이런 식으로, 어? 손님을 뵈어서 제가 이만큼 기쁩니다. 이렇게, 이렇게 쇽쇽.”
‘미친 새끼.’
저게 재밌다고 하는 건가 유아린은 어이가 없다고 팔짱을 끼고 쳐다봤으나.
“푸핫! 김우진 개웃곀!”
“흐허헣! 손님한테 갑자기 춤을 왜 춰!”
두 친구의 웃음 장벽이 저렇게 낮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뭐가 재밌다고 저리 웃어주는지.
계속 나름대로 스탭을 밟으며 춤을 추는 김우진과 앞에서 깔깔거리며 웃어대는 두 친구를 보며.
뿌득.
이상하게도 기분이 점점 더러워지는 유아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