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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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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끼리는 싸우면 다 친구가 되는 거라고. 옛 선조들께서 말씀하신 건지 아니면 어디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인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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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따져봤을 때, 아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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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싸운 다음 친해지는 게 아니라 싸우는 거 자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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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지금처럼 상대방 대가리를 술병으로 깨부숴 버리려고 하면 싸우고 친해지는 게 아니라 서로 병원이랑 경찰서에서 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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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 야 이 새끼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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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진정 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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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술병을 들고 표진호의 머리를 깨려는 찬우를 말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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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찬우가 정하긴 했으나 이 집 삼겹살이 정말 너무 맛없어서 좀 당혹스러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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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삼겹살집에 손님이 우리밖에 없다는 게 역으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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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아! 내가아 저 자식 때무네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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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해 흥분해서 외치는 모습까지 잘생겼다고 해주기엔 아직 내 우정이 부족한 모양. 어쨌든 열심히 뜯어말리고 있는데 정작 타겟팅 된 놈은 술 마시고 울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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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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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어어어엉! 아리나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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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자식, 상남자인 척 다하더니 그냥 질질 짜면서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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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진호라는 인물이 유아린과 정찬우에게 어떤 이미지인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게는 그냥 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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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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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리면서 괴로워하고 있는 표진호를 옆에서 위로해 주고 있는 한강과 안현호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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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주 괴로운 하루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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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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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집에 있은 지 대략 두 시간 정도가 지났다. 된장찌개는 슬슬 식어가고, 고기도 딱딱했으나, 술잔만큼은 계속 촉촉하니 마르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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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술병으로 도미노를 해도 될 정도로 쌓였고, 그만큼 주인아주머니의 표정에는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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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임마아아! 내가아아! 그거 말했냐아아? 예린이 좋아한다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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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계속 나한테 말을 걸고 있는 한강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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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나 맥주 같은 걸로 잘 취하지 않는데, 워낙 많이 마신 탓인지 생각 이상으로 울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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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안현호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안 나온 지 30분은 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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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끼야아아! 형이! 형이 말하잖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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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꽐라가 되어서는 꼰대 짓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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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가 말했나? 예린이 좋아한다고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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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두 시간 만에 사람이 이렇게 등신이 될 수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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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분위기를 풀겠다고 다 같이 쉬지 않고 들이키던 게 문제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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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나도 취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꽐라가 된 사람들 챙기는 역할을 맡게 됐다는 게 싫다 못해 짜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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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요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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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아리나아아! 사랑했다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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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으으! 아리나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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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에서는 아까까지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보이던 표진호와 정찬우가 서로 얼싸 끌어안고는 실연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걸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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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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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혀가 풀린 건 느껴졌지만, 이제는 나도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그냥 소주병을 들고 입안으로 가글하듯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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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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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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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질 듯한 두통이 몸의 적신호를 알리듯 나를 깨운다.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아서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봤는데 누가 눈에 접착제라도 붙여둔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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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버둥 치듯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자 손에 걸리는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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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눈을 뜸과 동시에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자 이미 점심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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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의가 오후부터 있던 걸 생각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가야 하는 게 맞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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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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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무래도 자체적으로 휴강을 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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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학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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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익숙한 천장인 점은 다행이었다. 머리가 아작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는데 집까지 돌아온 내 스스로가 대견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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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잠이 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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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누구 핸드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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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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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시간을 확인하고 있는 핸드폰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순간 퍼뜩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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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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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격하게 움직이자 치고 올라오는 현기증과 매스꺼움에 다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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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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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 옆에서 널브러진 채로 자고 있는 안현호. 나는 녀석을 발로 차며 변기에 속을 게워 낸 후, 화장실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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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보이는 방안의 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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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어디서 주워 온 건지 모르겠는 망사 속옷을 입은 마네킹을 끌어안은 채 자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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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진호는 빨랫감처럼 창문에 걸쳐진 채로 축 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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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찬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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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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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대머리 아저씨랑 같이 끌어안고 자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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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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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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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아저씨를 제외하고 하나같이 머리에 까치집을 진 채로 다 같이 둘러앉은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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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쉴 때마다 술 냄새가 진동해서 숨을 참아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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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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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상황 정리를 해야 한다고 불러 모았는데 왜인지 나도 모르게 꺼지라고 본심을 말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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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붙잡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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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속이 매스꺼운지 얼굴이 회색빛인 안현호가 규칙적으로 호흡하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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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 간다니까 네가 길거리에 주저앉아서 너희 집에서 자고 가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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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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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여자애들한테도 똑같은 주사를 했던 전적이 있었기에 입이 꾹 다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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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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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정리 좀 해보자. 어제 삼겹살집에서…… 2차로 호프집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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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기억이 애매해서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옆에 있던 한강이 이마를 쓸어 넘기며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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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팅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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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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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찬우가 핸드폰을 꺼내 들며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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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들한테 톡이 엄청 와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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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보여주는데 새로운 친구만 13명이다. 하나 같이 찬우한테 잘 들어갔냐? 괜찮냐? 오늘 또 만나지 않겠냐? 이딴 문자 보내는데 핸드폰 박살 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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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안현호도 비슷했는지 핸드폰을 슬쩍 보면서 미간을 팍 찌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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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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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표진호만 핸드폰이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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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 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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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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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누군지 모르는 여자한테 연락 온 척해봤지만 통하지 않아서 그냥 입 다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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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어디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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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으며 묻자 뜬금없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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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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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자연스럽게 껴있는 대머리 아저씨가 답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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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으로 우리의 시선이 그분에게 쏠렸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시는 아저씨는 왜인지 찬우 옆에 찰싹 달라붙어 계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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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근데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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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아저씨는 방긋 웃으면서 답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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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헌팅포차에서 꼬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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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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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새끼들아! 너희 뭐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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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주여! 아 주여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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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아저씨는 부끄러우신지 찬우를 슬쩍 잡으셨지만 찬우는 깜짝 놀라며 멀찍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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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한테 왜 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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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우가 여자는 이제 못 믿는다면서 나한테 같이 가자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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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우 미친 똥게이 새끼야! 꺼져! 우리 집에 다신 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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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아니라고! 아, 진짜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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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떡 일어나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부정하는 찬우. 아저씨가 혹시 상처받지 않으실까 했는데 싱긋 웃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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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하룻밤의 꿈도 나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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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수전 다 겪은 빡빡이 아저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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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쫓아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일단 꾹 참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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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아저씨가 그나마 우리 중에 가장 많은 걸 기억하시는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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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가서 뭐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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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묻자 아저씨는 웃으면서 답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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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가만 한 시간 동안 내내 부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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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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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군대 다녀온 사람이 누가 있다고 노래방에서 군가를 부르고 지랄하겠는가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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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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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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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비명을 지른 한강과 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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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무청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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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강 님, 표진호 님 동반입대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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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에서 동반입대 관련해서 자세하게 알려주는 문자가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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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입대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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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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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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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만에 찐친 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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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안현호가 박수까지 쳐가면서 그대로 축하해줬다. 아무래도 어제 술 취하고 둘이 핸드폰으로 동반입대 신청한 다음 군가를 목청 터져라 불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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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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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랑 거리를 벌린 찬우가 조심스럽게 묻자, 아저씨는 슬쩍 구석에 있는 커다란 검정, 빨간 봉투들을 가리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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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용품 가게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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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는 왜 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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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짜증 내면서 소리치자 아저씨는 어색하니 답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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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본인이 가자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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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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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한테 차인 게 뭐가 대수냐고. 어차피 혼자 다 해결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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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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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사고 싶은 거 다 사라고. 영혼의 단짝이 생각보다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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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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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x가 별거냐고. 넣고 흔들고 싸면 그게 섹x라고. 그니까 오x홀 사면 그게 섹x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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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으로 네 사람의 원망스러운 시선이 내게 쏠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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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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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하게 헛기침하며 핸드폰에 온 문자로 온 결제내역을 확인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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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용품 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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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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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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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도대체 뭘 샀는데 성인용품 샵에서 칠십만 원을 긁어! 미친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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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어서 나는 성큼성큼 가서 안에 있는 물건들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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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가만 무려 네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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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은 박스로 사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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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시한 속옷부터 시작해서 여성을 위한 진동 기구와 바이브 엉덩이에 들어가는 플러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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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건 벌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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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성기만 똑 떼어놓은 기괴한 도구부터, 왜 산 건지 모르겠는 진동 딜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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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미친 물건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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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거기서 가져온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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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끌어안고 잔 마네킹을 가리키면서 중얼거리는 한강. 아주 좋은 깨달음을 얻으셔서 좋겠다고 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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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갈 때 오나홀 다 가져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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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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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우는 딜도랑 플러그까지 챙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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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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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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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어보니 성인용품 가게까지 간 다음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우리 집에 왔다가 그대로 다들 픽픽 쓰러졌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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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설명을 전부 들은 나는 조심스럽게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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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한데, 가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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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럼. 나도 출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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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흔쾌히 웃으면서 일어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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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상한 짓 하진 않았으니까 걱정 말고. 나도 나름대로 신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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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며 현관문으로 가 윙크를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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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밤이었어, 친구들. 나중에 또 같이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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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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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엉덩이 아픈 느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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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라서 안 씻고 그냥 가셔도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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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저런 선임 있으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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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아저씨가 나가시고 우리는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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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젯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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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우는 대머리 아저씨와 비밀친구가 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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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한강과 표진호는 동반입대를 하게 됐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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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성인용품 가게에서 70만 원을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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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 승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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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익 웃는 안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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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글맞게도 본인은 아무것도 실수 안 했다면서 좋아하며 핸드폰을 살펴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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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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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새파랗게 질리는 표정에 무슨 일인가 냉큼 달려가 바로 놀려줄 준비를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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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신: 최이서(73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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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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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려, 일흔세 번을 최이서에게 전화한 미친 기록이 안현호에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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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아니!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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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급하게 최이서에게 다시 통화를 걸어봤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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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신자에게 차단된 번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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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현호의 연애에 있어 사실상 완전한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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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전화하고 사고 친 건 안현호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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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나도 아린이한테 다섯 번이나 걸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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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마 안현호의 압도적인 통화 기록 덕분에 다섯 번은 귀엽게 느껴지는 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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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일곱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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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에서 끼어든 표진호 덕분에 어젯밤 도합 열두 번의 전화를 받으신 유아린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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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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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선배는 서예린에게 했나 싶었는데 보니까 아주 골고루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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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사귀었던 여자애들한테 한 번씩 싹 전화를 돌린 기록을 보며 안현호를 제외하고 다 같이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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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병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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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나은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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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만 원을 긁긴 했으나 그래도 사회적인 명예는 지키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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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 1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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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 1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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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 1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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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기록이 있었지만 반대로 발신이 아닌 수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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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다 통화를 했다는 점이 좀 불안하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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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이나 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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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최후의 승자는 나였구나 싶어서 방긋 웃으면서 핸드폰을 집어넣으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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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통화 기록의 맨 밑에 있어선 안 될 이름이 하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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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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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 전화, 3분 4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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