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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시간.
오늘 촬영은 끝났고 슬슬 다들 정리하는 와중, 나는 벤치에 앉아 있는 안현호 옆에 있어줬다.
녀석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한 번 나를 흘겨보곤 뭐라 하려다가 결국 한숨만 깊게 내쉬면서 고개만 절레절레 젓는다.
“너 때문이야.”
내 탓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결국 선택은 본인 몫이지 않은가.
“이 자식아, 너무 급발진 했잖아.”
아무리 최이서가 좋아도 그냥 냅다 고백을 처박아버리면 어떻게 하냐.
무슨 스커지도 아니고 얼굴부터 들이미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얼른 자리를 피해버렸다.
“네가 자세하게 설명 안 해줬잖아.”
얼굴을 감싼 채로 계속 내 탓 중인 안현호를 보면서 한숨만 나왔다.
진짜로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어딘가 탓할 곳이 필요해 보이는 게 오히려 짠하게 느껴졌다.
“에휴, 고딩 때 잘 나갔으면 연애도 자주 해보지 않았냐? 왜 이렇게 미숙하지?”
원래 그쪽 애들이 서로 돌려가면서 여럿 사귀고 그러지 않나?
“그때는 그냥 애들이 다가왔으니까.”
“넌 그냥 죽어라.”
혀를 차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기만에 어이가 없었다.
하긴 중, 고등학교 같은 경우는 성적보다는 외모와 힘이 우선되니까 안현호 같은 경우는 최고의 매물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
잘생긴 남자를 쟁취하기 위한 학생들의 싸움을 상상하니 괜히 기분만 더러워졌다.
입만 벌리고 있으면 여자가 다가오는데 이런 걸 연구할 필요가 뭐가 있었겠는가.
“어쨌든 이제 이서 포기하는 거야? 나는 걔가 그렇게 험악한 표정 짓는 거 처음 봤어.”
“……어디까지 봤냐.”
“너 고백 박는 거 보고 바로 도망쳤지. 내가 고어 쪽은 취향이 없어서.”
사실상 안현호 사지분해 시체쇼가 아니었을까?
유혈이 낭자하지만 않을 뿐이지 그냥 이곳저곳으로 안현호의 사지가 터져 나가는 시간이었을 거다.
“그렇구나.”
뭔가 안심하는 안현호.
그러더니 주먹을 꾹 쥐며 답했다.
“포기하기엔 좀 이르지. 이서 같은 여자 어디서 보기 힘드니까.”
“…….”
동의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괜히 그랬다가 뭔가 미묘한 분위기만 만들어질 것 같았다.
“너는 어떠냐?”
“음? 나?”
“너도 이서한테 관심 있잖아. 그러니까 고백도 했던 거고, 2학기에는 진심으로 사귀려고 해볼 거 아니야?”
“아아…….”
대답하기가 애매했다.
CC를 할 생각이 없었기에 최이서랑 연인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지만.
솔직히 최근 들어 허들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이건 오윤지와의 추억에서 시간이 조금씩 지남과 동시에 서예린과 최이서가 계속 나라는 사람을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모르겠다.”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내용이었지만 안현호가 내겐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쉽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있다가 내가 이서랑 사귀게 되도 질투하지 마라.”
그때가 되면 내 마음은 어떨까.
냉정하게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눈을 감았을 때 최이서가 안현호를 보던 표정이 떠올라서.
“되겠냐.”
그런 답밖에 나오지 않았고.
“시발.”
안현호도 인정하는지 짙은 한숨을 내쉬면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의도치 않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 와중, 대충 짐 정리가 끝났는지 저쪽에서 일행들이 다가오는데.
“쯧.”
나를 보며 혀를 차는 최이서.
“엥?”
안현호가 아니라 정확히 나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당황했다.
진심으로 내게 짜증내고 있는 최이서의 모습은 꽤나 귀하면서도 내가 무슨 잘못 했는지 바로 고민하게 만들었다.
“미안…….”
근데 뜻밖에도.
옆에서 들려온 안현호의 사과에 나도 모르게 녀석을 노려본다.
“왜 네가 미안해.”
내 시선을 피하면서 슬쩍 일어나려는 안현호를 보면서 괜히 더 불안해졌다.
바로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다시 앉히고 묻는다.
“뭐가 미안하냐고 이 새끼야.”
“그…….”
그?
“고백 작전… 네가 알려줬다고 말했음.”
“아?”
“그, 그때는 너무 부끄러워서 일단 뭐라도 변명을 대야겠다고 생각해서……!”
이거 미친놈 아니야?!
“야! 나는 그냥 그런 방법도 있다는 걸 알려준 거지 언제 내가 당장 최이서한테 달려가서 찐한 고백 박으라고 했냐?!”
바로 주먹을 들고 안현호를 줘패기 시작했다. 녀석도 미안했는지 가드만 든 채로 막는데 조금도 안 아파하는 게 더 빡쳤다.
“미안…… 진짜 미안.”
그러니까 지금 최이서가 봤을 때 나는.
자기 좋아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한테 소개해 주려고 한 기괴한 쓰레기 새끼가 되어 있다는 소리였으니.
어느새 근처까지 다가온 최이서와 눈을 맞추자.
최이서가 옆에 있는 유아린과 서예린이 모르게 내게 뭔가 입 모양으로 말한다.
“멋지다고?”
아니란다.
“목마르다고?”
아니란다.
“호롤로로?”
바로 중지를 드는 최이서.
한 번 더 해준 덕분에 이제야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아, 뒤졌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면서, 정답을 맞췄다는 기쁨보다는 한숨만 절로 흘러나왔다.
“아니라니까.”
다른 일행들과 헤어지고, 최이서랑 같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나름대로 변명을 하는 중이었다.
아니, 변명이 아니지.
펙트를 체크하는 중이었다.
“진짜 아니야?”
새침한 표정으로 물어오는 최이서.
아까 나를 향해 쏘아지던 싸늘함이 많이 누그러진 상태였다.
“그냥 지난번에 너한테 고백했다고 말했던 거 있잖아. 그거 변명하다가 말한 거라니까? 너한테 고백 박으라는 말을 내가 왜 하냐고.”
내 진심이 통했던 걸까.
최이서의 마음이 좀 풀린 모양이다.
“오해했잖아.”
그리 말하며 슬며시 다가오는 최이서.
“그치?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두들겨 패기 전에 일단 얘기부터 좀 들어줄래?”
“……불가항력이었어.”
애들이랑 헤어지자마자 바로 주먹 들고 나한테 달려들어 주신 덕분에 그냥 흠씬 두들겨 맞았다.
최이서 입장에서는 자기랑 거리 두려고 일부러 안현호를 소개해 주는 느낌을 받았을 테니 그런 반응도 이해는 한다.
어쨌든 오해가 풀리고 이제 좀 편안해졌는지 최이서가 가벼운 푸념을 늘어놓는다.
“이제 현호 어떻게 보지? 아, 왜 고백을 해서는!”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과대와 부과대라는 입장이었기에 어쨌든 두 사람은 부딪치거나 같이 엮일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안현호가 냅다 고백을 박아버렸으니 앞으로 어색할 일만 남았다는 소리였다.
아까도 안현호는 최이서랑 같이 있는 걸 어색해해서 혼자서 가버렸으니까.
“뭐, 잘 해봐야지. 안 어색하게.”
“…….”
내가 뭐 만족스러운 답을 해줄 수 있겠나 싶어서 대꾸했는데 썩 원하던 대답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볼을 살짝 부풀린 채로 최이서는 내게 물어왔다.
“내가 진짜 현호랑 사귀면 어쩌려고 했어?”
“그런 걸 묻는 거야?”
“아니, 내가 너한테 질려서 다른 남자한테 간다고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인생은 실전이야.”
그건 그렇지.
아까도 엇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었던 것 같은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이게 나름대로 정리된 답변이었다. 애초에 최이서도 지금 내가 다른 여자애들이랑 엮이는 걸 보면서 따로 뭐라고 하지 않는다.
당장에 서예린이랑 하룻밤 보낸 걸 알고 있음에도 여자친구가 아니라서 뭐라 못하지 않았는가.
냉정하게 말해서.
우린 친구.
조금 선을 넘긴 했으나 어쨌든 그 정도 관계를 유지 중이었다.
“네가 나한테 뭐라고 안 하는 것처럼, 나도 네가 다른 남자를 만나도 뭐라고 못 하지.”
사귀게 된다면 축하한다고 응원해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그런 나를, 최이서는 더없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노려본다.
“너 그런 취향이야? 막 뺏기고 그런 거?”
“미쳤니?”
도대체 어떻게 그런 걸 좋아할 수 있냐.
아니, 그런 취향인 사람들이 있긴 하겠지. 세상에는 똥도 처먹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부류라고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다.
“전혀 그런 취향 아닌데?”
확고하게 내가 대답하자 최이서는 팔짱을 끼면서 내게 따지고 든다.
“근데 왜 제대로 말 못 해? 다른 남자한테 가지 말라고 그 정도 말은 해줄 수 있는 거 아냐?”
“그럴 자격이 나한테는…….”
없지 않은가.
그리 덧붙이자 최이서는 또 한 번 심통이 났는지 입술을 깨문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절대 안 해주는구나?”
“…….”
후 하고 숨을 내쉬더니 최이서가 주변을 둘러본다. 집에 거의 다 왔으나 걸음을 멈추고는 나를 빤히 노려보는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여 있었다.
“너, 예린이랑 섹프 맞지?”
“그건…….”
“예린이 사진 가지고 있을 때는 그냥 넘어갔는데. 이제는 확실해졌잖아. 맞지?”
그때는 분명 아니었는데.
“나름 변명을 해보자면 그때는 진짜 아니었어.”
“그건 넘어가고. 지금은 어쨌든 했다는 거 아니야.”
“그, 네에.”
뭔가 씹 쓰레기가 되어가는 중인 느낌이네. 분명 CC 안 할 거라고 열심히 못 박으면서 다녔던 것 같은데.
“근데 내가 왜 너한테 뭐라고 안 하는 것 같아?”
“……여, 여자친구가 아니니까?”
나는 그래서 그런 줄 알았다.
실제로 최이서도 그렇게 말했었고.
“그것도 있어. 근데 그게 전부는 아니야.”
“그럼?”
“네가 힘들어하니까.”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최이서는 잠시 뜸을 주듯 입술을 꾹 다물고 있다.
다음 말이 나오지 않길 바라는 내가 있었으나, 그런 나의 마음을 간파한 듯 바로 덧붙여 선언한다.
“네가, 윤지 때문에 여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힘들어하고 있으니까. 단순히 육체적으로 관계를 가지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정신적인 교감을 거부하고 있으니까.”
비겁하다.
나는 비겁한 사람이었다.
그런 비겁함을, 이해하고 배려해 주는 게.
지금 내 앞에 있는 최이서였다.
“섹x? 하려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어. 호텔 잡아도 되고! 네 방에 가도 돼! 근데 일부러 안 하는 거야. 왜인지 알아?”
“…….”
“그러면! 그러면 몸으로 네 마음을 연 게 되는 거잖아.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너를 강제적으로 나랑 사귀게 하는 거잖아!”
퍽!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는 최이서. 힘이 풀린 허망한 주먹이었지만 오늘 맞은 어떤 것보다 가장 아팠다.
“예린이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그 아이는 내가 보지 못한 너의 일면을 봐서 나랑은 반대로 접근하는 걸 수도 있지. 누가 정답인지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야.”
관리자로서의 김우진.
서예린은 그걸 봤다.
최이서와 서예린은 정반대 선상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나와의 관계를 알파벳의 서순으로 나열했다면.
최이서는 A부터 시작했으나.
서예린은 Z부터 시작한 셈이었다.
“자격이 없다고? 다른 남자한테 떠나는 걸 붙잡을 자격이 없어? 그걸 누가 정했는데?”
“그건…….”
“내가 정해줄게, 잡아.”
꽈악.
내 손을 잡은 최이서의 호흡이 가쁘다. 여러 가지로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는 걸 참고 있는 중이었다.
“잡으라고. 어디 못 가게. 내가 혹시라도 다른 남자한테 설레고, 눈을 돌리려고 하면.”
“…….”
“잡으라고 이 새끼야!”
와락 안겨 들어온 최이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 꽉 안은 채로 놓지 않는다.
그런 최이서를 내려다보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지 않아.”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솔직한 심정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너무…… 아팠어.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오윤지가 종종 꿈에서 나와.”
내가 누군가를 사귀지 못하는 이유.
“걔가 떠난 다음,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방학이라 정말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강의도 못 나갔을 거다.
“그때 너무 아팠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귀고 싶지 않아.”
최이서의 흐느낌과 떨리는 나의 목소리가 뒤섞인다.
“그게 내 마음이고, 다짐이야.”
평생을 함께할 것 같았던 여자가.
진심으로 결혼까지도 생각했던 여자가.
늘 해맑게 웃으며 나와 사랑했던 여자가.
결국 떠나갔다.
그게 현실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절대불변의 사랑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윤지가 떠났다.
최이서도.
지금은 내게 이렇게 말하지만.
어느 순간 떠나갈 수 있었다.
그러면.
정말 너무 힘들 것 같았다.
나는 겁쟁이에, 약한 사람이니까.
“더는 흔들지 말아줘.”
갈 곳을 잃은 나의 두 손이 덜덜 떨고 있는 최이서를.
“제발.”
조심스럽게 안아주었다.
“내게 소중한 사람이 되지 말아줘.”
더 이상, 내 안에 들어오지 말아 달라는 나의 부탁에도.
최이서의 손은.
여전히, 나를 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