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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진 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안현호의 지인 중에 동명이인이 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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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호라는 이름은 꽤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편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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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타이밍이 공교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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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우에게 표진호가 왔다는 걸 들었고, 유아린도 그에게 전화를 받았었다. 자연스럽게 그쪽 방향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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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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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제 나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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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꾸미를 꽤나 좋아하시는지 열심히 드시고 계신 주희 선배를 두고 그대로 화장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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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은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으나 딱히 건덕지가 없었기에 잡지 못한 채로 그냥 자리에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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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로 가는 척하면서 슬쩍 방향을 틀어서 안현호 쪽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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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통화를 받고 있는 안현호는 뭔가 불편한 표정을 지은 채 일방적으로 말을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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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형.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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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집중했는지 내가 가까이 온 인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안현호. 멀뚱히 뒤에 선 채로 안현호를 빤히 쳐다보며 당당하게 도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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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형. 제가 부과대긴 해도 저희 과 애들을 다 알지는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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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진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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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 누구요? 유아린이요? 형, 저 들어본 적도 없는 애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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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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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 맞은편에 앉아서 태권도 얘기하지 않았냐고 묻고 싶었지만 일단 묵묵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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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형. 나중에 술 한 잔 해요. 네네. 알겠어요. 한번 확인해 볼게요.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유린기? 아……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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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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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는데 그것 때문에 내 존재를 알아차린 안현호가 깜짝 놀라 몸을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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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뇨. 형 아무것도 아니에요. 네에! 유아린! 꼭 찾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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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를 끊은 안현호는 손에 낀 담배가 타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나를 향해 버럭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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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뭔데. 왜 남의 통화 맘대로 듣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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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린기는 센스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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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가서 놀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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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냐고. 왜 남의 통화 함부로 듣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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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색하며 따지고 드는 안현호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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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진호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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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너도 진호 형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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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오늘 처음 듣는 이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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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설명이 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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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호 입장에서는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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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고, 당장 내가 묻고 싶은 건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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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아린 숨겨 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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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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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자리에서 같이 밥 먹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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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호가 유아린을 숨겨준 이유가 궁금했다. 따로 유아린한테 어떤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처럼 보이진 않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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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쳐다보던 안현호는 머리가 복잡한지 담배를 입에 문다. 거의 다 타들어가서 한 모금 빨고 버릴 수밖에 없었기에 시간벌이도 안 됐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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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진호 선배, 질이 엄청 안 좋은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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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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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본 적도 없는데 사람한테 비호감 된 적은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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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건너건너 몇 번 본 적이 전부이긴 한데…… 워낙 안 좋은 소문이 많아서 그냥 엮이지 않는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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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런 거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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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일진 놀이를 못 벗어난 대학생이지 않은가 싶었다고 꿍얼거리자 안현호가 미간을 팍 찌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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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잖아. 고3 때 공부 진짜 뒤지게 해서 여기도 겨우 붙었는데 옛날처럼 살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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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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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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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까 안현호는 최이서 관련해서 나한테 질투를 했을 때 말고는 크게 모난 모습을 보였던 적이 없던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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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하는 모습이 워낙 강렬 했어서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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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를 도와서 나를 저격하던 익명287도 사실 안현호가 아니라 나를 지켜주려던 최이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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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까 최이서가 얘 이미지를 망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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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만큼 최이서는 안현호가 달라붙는 게 싫었다는 소리이기도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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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좀 다르게 보이네. 나는 아직도 네가 고딩 때처럼 놀고 있는 줄 알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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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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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는 그랬다는 걸 부정할 수 없는지 입을 꾹 다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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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선배도 그렇고, 주희 선배도 그렇고. 우리 주변에는 보고 배울 선배들이 많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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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선배는 그렇긴 해도 한강 선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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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배울 점이 많은 선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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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꼬시는 거 말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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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후배들한테 이미지 메이킹을 얼마나 잘해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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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까 뭐 억지를 부려도 다들 오냐오냐하면서 따라줬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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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표진호 선배랑 유아린이 따로 얽힐 일은 없겠지. 아무리 선배라도 찾을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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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면서 돌아가자고 말하는 안현호. 확실히 지금 안 가면 유아린이랑 주희 선배가 음식을 거의 다 먹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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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안현호에 대한 이미지가 좀 바뀌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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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너 이서랑 사귀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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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걸음을 멈추고 물어오는 안현호. 왜 안 묻나 했으며 대답하기 민망한 질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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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귀는 건 아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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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대답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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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알아가는? 알음알음 그냥 얘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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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가 내년부터 사귄다고 했잖아. 그리고 넌 한 번 차였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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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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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호 떼어내겠다고 그런 거짓말도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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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한 번 차이는 것도 전략임. 그런 식으로 상대방이 나 의식하게 만드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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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한강 선배한테는 배울 수 없었던 전략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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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놈아. 그 새끼는 차인 적이 없는 거고. 빵이 없으면 케이크 처먹으라고 할 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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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한테 차이긴 했지만 사실상 TKO라서 뭐 비빌 게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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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미안한데 나는 이서 포기 안 한다. 같이 과대 부과대 하면서 딱 느껴져. 얘는 처음에는 차가운데 친해지거나 사귀기 시작하면 엄청 잘 해줄 거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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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 줄 것 같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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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기 관리가 잘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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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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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운동복을 자주 입어서 모를 수 있는데 이서가 꽤나 볼륨감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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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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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운동하는 애들이 또 떡감이 기가 막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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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너 같은 놈한테는 최이서 안 준다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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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뭔데 주고 말고야. 남자들끼리 이런 얘기 좀 주고받을 수 있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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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무용담이라도 펼치는 줄 알고 있는 안현호의 엉덩이를 발로 찬 후, 그대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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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정분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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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온 우리 둘을 보면서 삐줍거리는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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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린기가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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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야, 그거 내 중학교 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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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입에 착 달라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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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린기 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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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튀김이 땡긴다 생각해서 중얼거리며 자리에 앉자 유아린이 팍 인상을 찌푸리며 따지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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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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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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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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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은 저녁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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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서예린이 합류했고, 마지막으로는 최이서까지 오면서 전부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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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은 순탄하게 진행되었고, 미친년 연기하는 유아린은 꽤나 신선해서 내 개인적으로 소장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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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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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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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들고 지랄발광 하는 화면 속 유아린을 보면서 웃고 있자니 옆자리에 슬며시 다가온 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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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자연스럽게 내 허벅지에 손을 올리는 게 거의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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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인가 떼어낸 적이 있으나 그럴 때마다 "튕겨? 귀엽네?"하고 짓궂게 웃는 모습이 좀 빡쳐서 그냥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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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잘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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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솔직히 우리 애들이 다 얼굴이 좀 되니까 내가 편집만 잘 해주면 우리 에쁠 받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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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할 거야. 혹시 도움 필요하면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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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하는 거 보면 애는 참 착한데 말이다. 배려도 잘하고 사람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게 왜 서예린이 인기가 많은지 그냥 딱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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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데 하나만 봐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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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부탁하는 모습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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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쉬는 시간이라서 한가한 내게 부탁할 때도 저렇게 정중하면서도 방해해서 미안해 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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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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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하나만 골라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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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옷 같은 거 봐달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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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옷을 잘 입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보는 눈은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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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친한테 끌려 다니면서 이것저것 옷을 많이 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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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친이 옷에 관심이 굉장히 많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사치를 부리거나 명품만 사는 건 아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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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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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지에 대한 생각을 접으며 서예린이 내민 핸드폰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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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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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귀를 끼고, 브라랑 팬티만 입고 있는 여자가 귀여운 척하면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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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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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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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지금 나한테 뭘 보여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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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게 다음 화면으로 넘기자 이번에는 젖소 비키니를 입은 여자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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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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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하면 뭐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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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지 같은 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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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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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까지 서예린에 대해 칭찬했던 내 스스로가 싫어진다. 도대체 이런 걸 왜 보여주는 건가 되묻자 서예린은 웃으면서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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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할 때 입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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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혹해서 나도 모르게 고를 뻔했으나 입술을 으득 물면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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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안 어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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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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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젖소부터. 이런 건 서양에서나 하는 거야. 그쪽은 풍만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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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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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를 살짝 꼬집는 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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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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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첫 번째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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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으득 물면서 사진을 첫 번째로 돌린다. 검은 고양이 비키니를 입고 있는 여자의 등 뒤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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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꼬리가 달려 있는데 저게 어디에 달려 있는 건지 잘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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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팬티에 달려 있는 걸 수도 있으나 그게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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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게 어디에 달린 건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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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가리키며 묻자 서예린의 얼굴이 발그랗게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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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 제안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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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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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진짜 큰일 날 애네? 야동 작작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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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 아파 보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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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아파 보이는 건 숙련된 조교 분들이라 그런 거고요. 아오, 야동을 몇 개를 보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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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예전에 품번 추천도 해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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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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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암! 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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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쓰러지듯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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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번 추천은 왜 해줘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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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복장도 거기서 나오던 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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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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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들킬 일 없다고 낄낄거리며 익명69에게 추천해줬던 내 자신이 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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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계속 달라붙으며 찡얼거리는 서예린을 가까스로 떼어내고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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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애들은 뭐하나 싶어서 슬쩍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나무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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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야,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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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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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최이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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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순간적으로 싸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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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한 번 차이는 것도 전략임. 그런 식으로 상대방이 나 의식하게 만드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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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해줬던 조언이 떠오르며 이마를 탁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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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두 사람의 모습이 딱 보이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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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좋아해. 사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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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하면서도 다소 정석적인 고백 멘트가 안현호의 입에서 튀어나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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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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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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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 표정이 저렇게 썩어 문드러지는 건 살면서 처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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