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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지이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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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리키며 격렬하게 부르는 서예린. 술자리라서 주변이 전부 소란스러웠기에 크게 눈에 띄진 않았지만 서예린 근처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내게 꽂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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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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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텅텅 내리치면서 부르는 서예린. 근처에는 유아린과 더불어 다른 1학년들도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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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는 왜 저렇게 취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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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서예린은 술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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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살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이 몸조차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했을 때 상당히 위험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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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술자리에서도 일정 이상 마신 순간부터 술잔을 치우던 모습까지 보여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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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르으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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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나하게 취한 서예린이 계속해서 나를 부른다. 원래는 집에 갈 거라 거절하려고 했지만 너무 고집스럽게 불러대는 서예린에게 말려 결국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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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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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유아린이 있던 자리라 자연스럽게 서예린과 유아린 사이에 앉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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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됐다 싶어서 슬쩍 귓속말로 유아린에게 묻자 녀석도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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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갑자기 와서는 막 마셔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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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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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까 아까 너 어디 갔냐고 묻긴 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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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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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냐고 되물으려 했으나 내 턱에 느껴지는 촉감. 강제적으로 돌아간 고개는 서예린 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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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봐아아! 내가 부러는데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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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긴 뭘 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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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을 잡은 서예린의 손을 뿌리치며 한마디 했는데 녀석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빤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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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왜 그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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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눈을 피할 이유가 없었기에 마주 보면서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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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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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휙 돌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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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보냐며 이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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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그래 놓고 본인이 다른 곳을 보고 있으면 나랑 어쩌자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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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불렀더니 서예린은 계속 나를 안 보려고 시선을 이리저리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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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한다기보다 내가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게 즐거운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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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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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연스럽게 내게 쏟아지는 시선. 한강 같은 2학년 선배들은 다른 테이블이라 별 상관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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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들이 나와 서예린을 빤히 쳐다보면서 조금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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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도 처음 현아가 봤을 때랑 마찬가지로, 여러 사건으로 얽혀 있던 나랑 서예린이 친한 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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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둘이 잘도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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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던 유아린이 혀를 차면서 내 자리에 소주잔을 놓고는 술을 따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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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 이제 가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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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유아린은 눈썹을 모으듯 찌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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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래, 술찌라서 도망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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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이 너무 같잖아서 한숨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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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렇게 했지만 막상 술잔을 내려다보니 또 땡기긴 했다. 아까 물치과 이은우랑 같이 있으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뒤통수를 띵하니 울려오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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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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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술잔을 들며 유아린에게 내밀자 씨익 웃으면서 잔을 부딪치곤 그대로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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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술을 입에 털어 넣었고 그대로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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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정신을 가글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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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뇌를 소독하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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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기 시작하자 끝도 없이 계속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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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의 술에 취한 목소리가 마치 더욱 빠르게 움직이라 재촉하는 장단처럼 느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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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잘 먹는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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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유아린은 자판기라도 되는 듯 계속해서 술잔에 술을 털어주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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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니 잘 마시네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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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내 어깨에 찰싹 달라붙어서 술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는 서예린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페로몬을 풍겨 내 신경을 어지럽혔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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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아아아! 형 팔 떨어진다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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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다른 1학년들을 제치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주희 선배까지도 내게 술병을 내밀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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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입에 술을 털어 넣다 보니 덜컥 지난번 사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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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려 김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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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해서 애들한테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투정 부렸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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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이 끊겨서 기억은 없지만 또 그날의 추태를 부릴 수는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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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밖에 나갔다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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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향했다. 내 어깨에 기대서 잠들어 있던 서예린이 순간 넘어질 뻔해서 잠에서 깬 건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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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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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아직도 축제 공연이 한창이었다. 술을 진탕 마셔서 늦은 줄 알았는데 아직 9시밖에 되지 않았다는 게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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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다른 테이블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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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부터 최이서가 안 보여서 어디 있나 했는데 과대라서 그런지 교수님들 옆에서 얘기를 듣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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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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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저러면 교수님들한테 잘 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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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는 최이서를 보고 있자니 그녀도 내 시선을 느끼고 핸드폰을 두드리더니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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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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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을 확인해 보라는 제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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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에게 온 방금 온 톡을 확인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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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이서: 애들이랑 재밌게 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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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이서: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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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섬뜩한 문구에 나도 모르게 숨이 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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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시 최이서를 봤을 때,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나에게 주먹을 쥐고 조심하라고 경고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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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웃으면서 손만 살짝 흔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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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이제 좀 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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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를 피면서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한다. 몸을 풀자 술도 어느 정도 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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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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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등 뒤에서 묵직한 무게감이 나를 밀고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앞으로 넘어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뒤를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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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엔 내 등에 박치기를 한 자세 그대로 굳어 있는 서예린의 정수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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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눈은 땅을 본 채로 굳어 있는 그녀. 뭔가 싶었는데 별거 아니었는지 다시 흐느적거리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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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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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쐬러 간다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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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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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진짜 왜 이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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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오늘 왜 이렇게 많이 마셨냐. 지난번엔 알아서 조절 잘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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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랬나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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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서예린이 아니었으면 들어주기 힘들 정도로 혀를 꼬는 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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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마시고 집에 가서 자는 게 좋겠다고 말해주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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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오늘 좋은 밤 보내시고요! 꼭 좋은 인연 만나세요. 원래 이럴 때 눈 맞으면 호텔가고 그러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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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쪽에서 들려온 래퍼의 농담. 그걸 들은 주변 사람들이 깔깔거리며 웃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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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좀 과장해서 말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중요한 건 서예린이 그쪽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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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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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나를 부르는데 목소리에 뭔가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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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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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x가 그렇게 좋은 건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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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게 미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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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으나 다행이도 근처에 사람이 없어서 아무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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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유아린이 이쪽을 빤히 노려보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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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술을 마셔서 익명69 때 말버릇이 튀어나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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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해서 이런 건가 싶었는데 서예린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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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칭구드리…… 오늘 다 약소옥있데에에. 남치니랑 뜨거운 밤을 보낸다고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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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자 서예린, 유아린이 그래서 같이 술 마시고 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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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농담하며 주제를 돌리려 했으나 입술을 삐죽 내민 채로 나를 쳐다보는 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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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막 세상이 달라지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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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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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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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달라지는 게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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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따지자면 야동으로 쌓은 환상이 좀 사라진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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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에에! 왜들 그렇게에 하자고오! 막 가자고오오! 그러는 거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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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안 되겠다. 넌 집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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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현실 섹x좌가 될 것 같은 서예린이었기에 유아린에게 집에 데려다주라고 말하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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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가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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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허리를 붙잡고는 놓아주지 않는 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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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트리려고 몇 번인가 실랑이하다가 결국에는 그냥 같이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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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둘만 가는 건 좀 묘했기에 유아린도 같이 가자고 부르자 냉큼 따라와 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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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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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한 유아린을 데리러 온 정찬우. 유아린의 표정이 바로 구겨졌으나, 찬우의 표정이 오늘만큼은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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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아, 나랑 따로 같이 가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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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이는 찬우. 정중하게 유아린에게 부탁했는데 왜인지 유아린이 내 쪽을 쳐다본다. 마치 답을 나한테 떠넘기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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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가봐. 나는 서예린 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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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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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은 굉장히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나를 쏘아봤으나 그렇다고 찬우랑 가는 걸 거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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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녀도 평소의 찬우랑은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눈치 챈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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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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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찬우랑 떠나버린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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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진지한 얘기가 가능한 평화적으로 끝나길 바라며 서예린을 부축해서 데려가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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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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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쪽으로 다가온 한강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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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모르게 조용히 빠져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제일 걸리기 싫은 사람한테 딱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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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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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 너무 취해서 집에 데려다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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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 말하자 한강 선배는 성큼 앞으로 다가온다. 일단 당장 나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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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가 데려다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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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얘 뭐 어떻게 하려는 거 아니에요. 그냥 집에 데려다 준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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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지금 취해서 익명69 때 보이던 모습을 막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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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보여서는 곤란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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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배는 끈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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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데려다 준다니까? 우진아, 나 예린이랑 진짜 잘 되고 싶어. 양보 좀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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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본인이 내 입장이었으면 절대로 서예린을 그냥 집에만 보내지 않을 거니까 나를 막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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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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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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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기대어 있던 서예린이 슬그머니 일어나서는 똘망똘망하게 한강 선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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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 취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발음은 깔끔했고, 자세도 곧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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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이랑 같이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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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았다는 걸, 이제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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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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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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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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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김우진은 아까부터 아무 말이 없어서 서예린의 마음은 계속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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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꽤 많이 마셨지만 정신 자체는 아직 멀쩡했다. 생각 이상으로 자신이 술에 강한 편이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시간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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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의도적으로 술에 취한 연기를 했다는 게 들통났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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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의 관리자가 김우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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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안 순간부터 계속 가슴이 쿵쾅쿵쾅 두근거리고 뭔가 솟구쳐 올라오는 걸 참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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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척하지 않으면 말 거는 것도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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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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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사진을 보낸 일부터 해서 꽤나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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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서예린은 그가 관리자라는 게 기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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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걸 알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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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김우진에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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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을 통해서 보였던 자신의 본모습을, 본심을 말하는 건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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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로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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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아직 준비가 안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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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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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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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의 자취방에 도착했고 김우진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는 어색하게 인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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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난 간다. 컨디션이라도 사주려고 했는데…… 필요 없어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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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떠나가는 김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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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등을 보면서 서예린은 여러 감정이 용솟음쳤다. 사실상 자신이 유일하게 본모습을 보일 수 있는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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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앞에서조차 이렇게 마음속에 있는 본모습을 꽁꽁 감추고 있는 게 옳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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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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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앓다가 마음의 고름이 질 때가 되면 이미 늦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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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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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대나무숲이라는 익명 게시판을 통해서 섹x좌라는 본인의 추한 모습도 받아들여 준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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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한 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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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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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이 든 순간 서예린은 이미 앞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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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못 간 김우진의 옷 끄트머리를 가까스로 잡으며 멈춰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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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취한 거 맞네. 개 잘 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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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함에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는 앞에 있는 남자가 귀엽다고 생각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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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이렇게 잡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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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고민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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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은 우습게도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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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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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가장 어울리지 않는 한마디를 떠올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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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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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굳이 따지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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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새로운 관계로 넘어가는 일종의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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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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