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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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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 데리러 갈게.

왜냐고 묻자, 윤지는 보고 싶다고 답했다.

이별을 통보했음에도 윤지는 그런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말해줬다.

나도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직 윤지와의 관계가 종착점에 도달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그녀의 말에.

어느새 나는 그냥 알겠다고만 답해버렸다.

“이제는 뭐가 뭔지 모르겠네.”

그냥 복잡하다.

차라리 돈 때문에 접근한 애들이었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고, 거절했음에도 거절을 거절하는 행동들을 보니 혼란스럽기만 했다.

“…….”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답지 않다는 느낌도 받았다.

MT가 끝나기 전에는 관계를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애매함에 한숨과 함께 누군가에게 상담을 받고 싶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래서 전화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싶어 연락처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뭐하세요?”

슬쩍 내 옆으로 다가온 김규아.

1학년 과대가 왜 밖에 나와 있는 건가 의문이 들었는데.

“그냥 나왔어요.”

내가 묻지 않아도 알아서 대답하는 녀석.

“화장실은 저쪽인데.”

“……진짜 매너 꽝이시네.”

나올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화장실 가려고 나온 거겠지.

가만히 있으면 가겠거니 싶었으나 규아는 계속 내 옆자리를 지킨다.

“왜.”

뭐가 문제냐고 넌지시 묻자, 규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오늘 선배들한테 다 말하셨죠? 그만하자고.”

“……어떻게 알았어?”

“아까 고기 먹을 때 이서 선배랑 아린 선배랑 얘기하는 거 들었어요.”

귀도 밝아.

그럼 무슨 대답이 돌아왔는지도 다 알고 있겠구나.

고민이 입안에 맴돌긴 했으나 규아한테 털어놓고 싶진 않았다.

그냥 갈 길 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규아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규아는 따지듯 내게 물어온다.

“결국 선배는 세 다리를 걸친 거잖아요. 저랑 크게 다르지 않잖아요.”

“……싸움 걸러 왔니?”

“근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나는 걸리면 바로 차이거나, 나쁜 년 소리 듣거나, 심하면 맞은 적도 있는데.”

그러면서 여러 애들이랑 사귀는 걸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걸 보면 참 용하다.

“뭔가, 뭔가 엄청 분하네요.”

“뭐가 분해.”

“약간…… 선배들을 보고 있으면.”

잠시 머뭇거린 규아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돌멩이를 발로 툭 걷어찬다.

“제가 지금까지 했던 일들이 전부 바보같이 느껴져요.”

“…….”

“그래서 좀 싫네요. 선배들이랑 가까워지기 싫어져요.”

“그럼 가라.”

대답도 없이 휙 몸을 틀어 가버리는 규아.

분명 아까까지는 우리가 같은 사람이라면서 꿍얼거리던 아이가.

막상 내가 헤어짐을 고백했음에도 거절당한 걸 보니 뭔가 차이를 느꼈고, 거북해 했으며, 질투하고 있다.

‘그런가.

우리가 보통의 관계는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조금은 머리가 개운해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돌아가자.

아직 끝나지 않은 장기자랑을 보기 위해서 다시 강당 안으로 들어왔는데.

잠깐 쉬는 시간인지 아니면 다른 게임이라도 하는 건지 몇몇 사람들이 우르르 앞으로 나가고 있다.

그중에는 주희 선배도 있었는데 나를 보시더니 잘 됐다면서 냉큼 끌고 가신다.

“잠깐 도와주라, 우진아.”

“네?”

무슨 상황인가 싶었는데.

잠깐 쉬는 시간을 맞이해서 앞에서 게임을 하게 되었고, 주희 선배도 반쯤 강제로 참여하게 된 것.

“그냥 가서 퀴즈 같은 거 맞추면 되는 걸 거야.”

“아, 뭐. 그 정도야.”

크게 어렵진 않아 보여서 주희 선배랑 같이 앞에 선다.

보니까 다들 남녀 페어로 맞춰서 나왔는데, 주희 선배는 같이 나갈 남자가 없어서 곤란하셨던 모양이다.

‘주희 선배가 좀 무섭긴 해.

한강 같은 경우도 주희 선배를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자아, 그럼 이번에 할 게임은 신문지 게임입니다!”

신문지 게임?

안현호가 마이크를 쥔 채로 흥을 돋우며 신문지를 각 팀별로 하나씩 건네준다.

“신문지 위에서 가장 오래 버티는 팀이 이기는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문지를 접어서 면적이 더 좁아지는 거고요.”

MT에 오면 예능에서나 보던 게임들을 따라 한다고 듣긴 했는데.

딱 예능에서 보던 게임이라서 오히려 받아들이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처음에는 둘 다 양발로 서 있을 수 있는 넓이.

“생각보다 간단한데요?”

내가 웃으면서 그리 말하자 주희 선배는 입술을 말면서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이런 게임을 할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가 싶었는데 점점 좁아지는 신문지를 보고 있자니 이제야 알 것도 같았다.

‘아.

이거 생각보다 많이 좁아진다.

어느새 선배랑 찰싹 달라붙게 된 상황.

자연스럽게 선배의 양쪽 어깨를 잡고 딱 달라붙게 되었는데.

모양세가 포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한 번만 안아줄 수 있니?

그날, 주희 선배가 내게 했던 부탁이 귓가에 메아리처럼 맴돈다.

‘네 말대로 내가 착각한 건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

아직 사랑에 대해서 잘 모르는 주희 선배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명확한 정답을 내고 싶어 했다.

그건, 모든 일에 직선적인 주희 선배다운 요구였으나.

나는 거절했었다.

“하, 이런 게임인 줄 알았으면 안 부르는 건데.”

고개를 푹 숙인 주희 선배가 짜증 내듯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괜히 애들 보는데 너 불편하게 만들어서.”

주희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그래, 평소의 주희 선배라고 할 수 있었으나.

숨소리가 거칠다.

선배의 시선이 계속해서 나를 피하고 있었다.

“선배?”

조심스럽게 내가 선배를 부르자, 도망치듯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선배가 고개를 기울여 나를 쳐다봤고.

빨갛게 달아오른 선배의 표정에서, 나는 방금 윤지가 해줬던 말이 다시 떠오른다.

사랑은 순간적으로 빠지는 게 아니라.

깨닫는 거라고.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주희 선배의 포옹을 거절하면서, 선배가 감정에 대한 정답을 내놓는 걸 막았다.

하지만 지금.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선배는 답을 깨닫게 되었고.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나 역시 그것을 같이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지끈거리는 머리.

어마어마한 숙취에 눈을 뜨면서부터 벌써 괴로웠다.

MT에 가면 진탕 술을 마시는 게 국룰이라고 듣긴 했는데.

근데 이렇게까지 마실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고 해야 하나.

또한 나름대로 고민이 있다 보니 차라리 취해서 마음이 좀 편해지자는 편협한 생각에 과음을 해버렸고.

소주나 맥주에는 잘 취하지 않는데도, 나는 어느새 거나하게 취해서는 2, 3학년 남자 방에 널브러졌던 게 기억으로 끝이다.

따로 여자애들이랑은 접점이 없었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같이 마시곤 했는데 어느새 남자와 여자로 찢어져서 마시게 됐기 때문이다.

“아, 씨. 이게 뭐야.”

“애들이랑 좀 친해지나 했는데.”

실제로 그 탓에 2, 3학년 남자들은 아침부터 꾀죄죄한 몰골로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있었다.

아침밥이자 해장으로 컵라면을 먹는 남자들.

우리끼리 둘러앉아서 칙칙한 게 꼭 군대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야, 괜찮아?”

옆에 앉아서 컵라면을 먹던 안현호가 넌지시 물어왔다.

머리가 삐쭉 솟은 게 아침부터 웃게 만들어준다.

“뭐가.”

“뭐긴. 어제 진탕 퍼마셨잖아. 애들 얘기 들어보니까 다 자러 가도 너 혼자 그냥 마셨다는데?”

“아, 그랬나.”

많이 마시긴 했는데, 주변 애들이랑 얘기를 하거나 하진 않고 그냥 혼자 마셔서 잘 모르겠다.

“몰라. 그냥 마셨어.”

“하, 어제 규아랑 밖으로 나가보려고 했는데. 걔도 그냥 술만 주구장창 마시고 뻗어서 자러 가더라.”

“…….”

빤히 안현호를 쳐다보자 녀석은 라면을 먹다 말고 마주 보더니 혀를 찬다.

“왜, 규아랑 가까워지지 말라고? 이유라도 말해주든가.”

“……네가 가서 물어봐.”

지금의 규아라면 대답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며 라면이나 먹었다.

라면을 전부 먹고, 속이 개운해지자. 다음은 씻을 차례였다.

욕실이 많기도 했고, 애들이 금방금방 씻고 나온 덕분에 깔끔하게 씻을 수 있었고.

복잡한 머리가 상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갈 준비를 하기 위해 다들 정리하는 와중.

1층에서 후드를 뒤집어쓴 채로 짐을 옮기고 있는 유아린이 딱 보였다.

아직 잠에서 덜 깼는지 비몽사몽한 눈으로 버스에 짐을 챙기고 있는 녀석.

“유아린.”

슬쩍 가서 부르자, 유아린은 빤히 나를 쳐다보더니 혀를 찬다.

“어제 어서 술 마셨냐. 찾으려고 해도 보이지가 않아.”

“남자 방에서. 다 같이 마시긴 했는데, 사실상 그냥 혼자 마셨지.”

“그래, 차라리 잘됐네. 딴년들이랑 술 마셨다고 했으면 죽였을 텐데.”

“……잠깐 나 좀 보자.”

“또 왜. 이미 얘기 끝난 거 아니었어?”

“안 끝났어.”

내가 진지하게 말하자 유아린이 애매한 표정을 지으면서 뒤따라온다.

중간에 서예린에게는 톡을 보냈고, 가던 길에 최이서를 만나서 합류시켰다.

결국.

아무도 없는 팬션 뒤.

내 앞에 선 세 사람.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팔짱을 끼는 등. 서로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내가 왜 자신들을 불렀는지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렇게 모이니까 좀 쪽팔린데.”

“……동의.”

유아린의 투덜거림에 최이서 역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예린은 졸린 듯 하품을 늘어져라 했으나, 시선 자체는 또렷하게 이쪽을 보고 있었다.

“왜 불렀어? 이제 곧 버스 타야 되는데?”

서예린의 질문에 다시 한번 내게로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손에 땀이 나면서 호흡이 살짝 가빠질 것만 같았으나.

주먹을 꽉 잡고, 나는 세 사람을 마주 보며 말했다.

“아버지가 나한테 그러더라. 윤지랑 헤어지고, 다른 여자들 만나고 다니면서 스스로의 욕심만 채운다고.”

“……아버님이?”

유아린의 호칭에 두 사람이 휙 그녀를 노려봤으나, 일단 무시하고 말을 이어간다.

“이기적이고, 탐욕스럽다고.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그래서 그걸 부정하려고 나는 어떻게든 너희 중 누군가 하나를 정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누군가를 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반대로, 모두를 놓으려고 마음먹었었다.

그게 아버지가 생각하는 나와 정 반대되는 행동이었으니까.

내 말에 다들 힐끔 서로를 쳐다본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예상이 잘 안되는 모양이었다.

“근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결국 이런 것도 아버지의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게 아닌가 하고. 아버지가 읽은 그대로의 김우진이 아니었나 싶었어.”

아버지의 말은 씨앗처럼 내 안에 파고들어, 쑥쑥 자라왔다.

“하지만 어제 그만하자고 했던 말을 너희에게 거절당하고.”

주먹을 꽉 움켜쥔다.

가슴 속에서 뭔가 활활 타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알을 깨고 나온다고 표현해야 할까?

어느새 나를 막고 있던 아버지의 족쇄가 풀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의 말을 부정하는 방식은 내게 맞지 않는단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나는 반대로 갈 거다.

아버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탐욕적이고, 더 이기적으로.”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들이 예상했던 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거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을 때.

아버지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실로 궁금했고.

또한 확신을 가지자, 이제야 나라는 사람에게 걸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손을 뻗는다.

셋 중 누구에게도 향해 있진 않으나.

분명하게 세 사람에게 뻗어진 내 손은 각오와 의지를 담고 있었다.

“셋 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

이제야 말로 내뱉을 수 있다.

환하게 지어진 미소에는 의미 모를 후련함이 담겨 있었다.


천천히 눈을 뜨자, 처음 나를 반겨준 건 욱신거리는 전신의 통증이었다.

‘뭐지.

슬쩍 눈을 떠 주변을 둘러보자, 환자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과 간호사들.

링겔 같은 게 꽂혀 있는 건 아니라 슬그머니 일어나자, 마침 간호사분께서 이쪽으로 오신다.

“아, 깨셨어요? 선생님이 오셔서 설명해 주실 텐데, 몸에 딱히 이상은 없으시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

아, 기억났다.

존나 처 맞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