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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누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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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끼어든 규아의 질문에 주희 선배도 내 쪽을 힐끔 쳐다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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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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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무슨 질문인지 아시잖아요. 누굴 선택하실 거냐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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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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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물어올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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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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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명스럽게 대꾸하며 규아를 무시했고, 주희 선배도 거기까진 자신이 끼어들 부분이 아니라 생각했는지 그냥 넘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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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도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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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냥 제가 애들이랑 하나씩 얘기할게요. 주변에 다른 사람이 오지 못하게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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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를 다진 내 답에 주희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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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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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두들겨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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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거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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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볼 수 없는, 주희 선배의 인자한 미소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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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게 맞다. 옳은 선택을 한 네가 자랑스럽고. 너를 좋아했다는 게 후회가 되지 않게 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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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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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끝나고.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네 여친이랑 같이 술이나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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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나는 쓰게 웃을 뿐 따로 답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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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누군가를 고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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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마, 끝까지 이기적인 사람이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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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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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시간을 내겠다고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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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MT에서 따로 시간을 가지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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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르 몰려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몰래 빠져나오는 것도 힘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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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주변에 사람들을 모으는 습성을 가진 애들이라서 하나만 비어도 금방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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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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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뭐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로 그냥 시간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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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구 대회가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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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아무것도 안 한 내가 저녁이나 준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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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진두지휘는 주희 선배가 하는 거였고 난 그냥 잡일이나 하는 거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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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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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때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보니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지만, 막상 떠올리면 시간이 꽤 지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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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랑 서로의 관계도 많이 달라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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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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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에서는 고기 구워 먹는 게 국룰이니, 바비큐 그릴에 불을 지피고 있는 내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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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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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랑 쉬고 있던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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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교수님들한테 시달렸다고 들었는데 왜 여기 나와 있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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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준비 도와줘야지. 1학년들한테만 시키면 오래 걸릴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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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선배가 있어서 괜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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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한테만 맡길 수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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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면서도 내 곁에서 따로 떨어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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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쩍게 불을 붙이고 있는 내게 다시 말을 거는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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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구우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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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까 족구 대회도 빠졌으니까 이런 거라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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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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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니고. 그냥 고기만 굽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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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때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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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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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펴진 불을 보면서 잠시 멍하니 있던 최이서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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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안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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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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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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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히 나를 쳐다보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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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당황하면 더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 최대한 담백하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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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을 받았고, 거절했어. 정말 그게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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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건 알아. 근데 네가 먼저 와서 말해주길 바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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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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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에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툴툴대던 유아린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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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성격이 다르니, 대응 방법도 달라야 했다는 걸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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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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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사과하자 빤히 나를 쳐다보던 최이서는 슬쩍 손을 그릴 위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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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 올라온 걸 확인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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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틈에 나는 잠시 주변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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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릴이 밖에 있어야 했기에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으나, 금방이라도 누가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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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나누기엔 부적합한 장소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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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테이블 세팅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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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을 이끄는 주희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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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고개를 돌리니 주희 선배는 일부러 애들이 이쪽으로 오지 못하게 테이블 세팅을 먼저 하게 만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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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와 눈을 맞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니 심호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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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는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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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말이 내뱉어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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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해야 함을 알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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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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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타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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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숯불에 맞춰서 나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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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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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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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내뱉는 스스로도 가슴이 무거웠으나, 그럼에도 해야 하는 말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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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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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축적인 의미가 담긴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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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원망이라도 들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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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대 얻어맞아도 가만히 맞아줄 생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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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녀는 크게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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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도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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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서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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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이미 이런 상황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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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덤하니 뜸을 들이는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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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대답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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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거리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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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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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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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의 최이서랑 조금도 다르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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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속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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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김우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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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마디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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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무언가 커다란 돌덩이가 박힌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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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답답함. 혀가 무거워 움직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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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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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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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식어가고 있는 걸까? 이런 의문이 드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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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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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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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여자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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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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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고했음에도, 정작 가슴이 아파지는 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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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를 실망시켰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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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무엇보다 크게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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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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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긍정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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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최이서가 원하는 답을 줄 수 없으니까. 차라리 잘 됐다 생각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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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최이서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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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리를 걸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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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들어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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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 섞인 불평불만도 당연히 온전히 나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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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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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렇게 기분 좋다는 듯 웃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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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끊임없이 고백한대. 자기한테는 너밖에 없다고, 마치 세뇌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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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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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겠어 되묻자, 최이서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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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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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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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단 한 번도 나한테. 아니, 우리한테 사랑한다고 한 적이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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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고 말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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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민해 봤어. 정작 몸을 섞는 건 또 망설이지 않아. 참을성 자체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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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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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게 찔러오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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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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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충실한 이기적인 김우진이니까. 그런 대답 밖에 해줄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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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밖에 없어서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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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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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의 손가락이 내 가슴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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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서 겨우 정답을 찾았다며, 최이서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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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고백하면, 결국 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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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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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네가 할 수 있는 표현은 딱 하나였어. 말로 하는 순간 모든 건 명확해지지만, 행동의 진위는 여러모로 달라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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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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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욕정은 다르다.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사랑에는 욕정도 포괄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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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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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네가 욕망에 충실하게 행동했던 이유야. 그것이 네가 우리에게 사랑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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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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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문구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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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욕정으로 포장하고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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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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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해서 명확해지는 순간 끝나기에 행동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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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우리의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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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사랑한다 고백하면 끝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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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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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돌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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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의 시선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를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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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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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곧은 그녀의 시선에 나도 모르게 도망치고만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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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한테, 열렬하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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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니……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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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흫, 우진아 그거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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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고 싶은 이유는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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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엄청 빨개. 부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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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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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부끄러웠으니 도망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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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하게 얼굴을 팔로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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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거리는 게 앞에 있는 숯불 때문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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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니까 반대로 성욕에 미친 척하고 표현해 왔던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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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다가온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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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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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 결국 나는 누구 하나 못 정했어. 그냥 이기적인 놈일 뿐이야. 이런 나한테도 질렸어. 이제 그만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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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 담긴 고백이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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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는 다시 내게 다가와서는 손을 잡고 확 잡아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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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이라서, 배려도 참 이기적으로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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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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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나는 다 이겼는데 질 생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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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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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내 마음을 다 고백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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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은 힘들다고 말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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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끝내자고 말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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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최이서를 향한 마음이 더 커져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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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엔 걱정됐어. 결국 네가 이 상황에 만족하면서 유지하려고 드는 게 아닐까 싶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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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의 눈동자엔 어느새, 안도감이 채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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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건, 내가 사랑한 김우진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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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하고 있는 내 앞에서 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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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 손을 두고, 기대어 온 그녀가 짤막하게 입을 맞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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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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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자고 해줘서 고마워, 우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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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해서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나를 향해 웃으며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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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김우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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